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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정지우/반흔瘢痕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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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반흔瘢痕 외 1편
갈 곳이 없습니다. 당신은 마지막 사람 속에 의자를 놓고 구원처럼 간절히 앉기를 청합니다. 둘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없다는 사실은 의자에 먼저 앉아버린 말 때문입니다. 당신은 말의 시간을 살아내기 위해 일어서지도 앉지도 못합니다. 뾰족한 말의 심장을 어루만지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절망이 말에 닿을 공간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시간의 옹이를 알아들을 수 없는 의자는 옹이 안에서 다리를 지웁니다. 갈 곳이 없는, 옆 사람의 흐느낌이 들립니다. 커다란 구멍이 보입니다. 구멍에서 목소리가 흘러넘칩니다. 의자의 못 자국으로 아픈 말을 덮습니다. 당신은 투명한 통각(痛覺)의 힘으로 옆 사람의 구멍을 막아주었습니다. 열두 개의 다리가 쉴 수 있는 별자리는 오갈 곳이 없었던 당신이었습니다. 하늘을 못 박고 있는 별처럼
깜박깜박
오직 눈빛으로만 살아갈 수 있느냐고, 1초의 생각에 딱 들어맞는 생각으로 눈의 틀 속에 갇히는 질문들.
눈에 넣을 수 없는 것은 세상에 없다는 이 질문은 어둡거나 밝게 깜박거린다.
세상에 없는 아버지도 응시의 초점으로 눈앞을 가로막는다. 아직 돌아가지 않으셨군요? 왜 아직 보내지 않았니? 눈 감을 수 없는 까닭으로 주고받는 질문들.
너는 나에게 윙크를 했고 다시 되돌려주는 윙크의 사이를 오가는 그곳에서 만나고자. 도달하고자 애를 쓴다.
아무것도 아닌 사이에서 그 무엇도 아닌 사이를 슬퍼할 때까지 서로의 질문에 닿을 수 없어서 사랑을 선택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눈앞에 없어도 질문을 하지.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처럼 묻고 있지.
해안선을 돌아가고 있는 태양을,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의 눈을 보았지. 눈을 흘러가는 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서로의 각인된 눈으로 밤의 질문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이후를 살고 있다.
더듬어서라도 가야할 깜박이는 날들이라고 충혈의 시간은 대답한다.
정지우鄭誌友 -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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