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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김시언/목소리를 조율하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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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언
목소리를 조율하다 외 1편
된장국 달라는 주문을 놓치고
잘 가라는 말도 삼킨 점원
지켜보던 사장이 그를 불렀다
먼저, 목을 쭉 빼고
아랫배에 힘을 주고
목 아래에서 소리를 빼
시간 날 때마다 아아 소리 지르고
미지근한 물을 마시는 건 기본
집에서 도라지 감초 배를 끓여먹고
생강차도 마셔봐
그래야 이 생활 오래한다
그만둘까 어쩔까 확률 따지지 말고
자자, 활짝 웃으며 말끝을 올려봐
돈가스집 사장은
손님 없는 시간에
목소리 다듬기 강의를 한다
알바생 목소리에
시급이 배어 있다는 걸
모르는 척
외출
단단한 단풍나무 아래가 그의 집이다
문짝 없는 현관 주춧돌에
그의 신발이 가지런하다
무상으로 빌려준 단풍나무
옷걸이 두 개가 어깨를 부딪친다
첫 단추만 끼워진 남방이 살랑거린다
이파리 와르르 떨구는 나무 아래
한 사내가 종이박스 잇댄 요에서
겨울 스웨터를 껴입고 잠 잔다
몸을 웅크리며 입맛을 다신다
저 사내는 귀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어빠진 김치가 말라붙은 김치통과
라면 몇 가닥이 눌어붙은 양은냄비 놓인 방상 앞에서
딸아이가 웅크린 채 할머니를 기다리는
늙고 병든 어머니와 자식이 사는 어두운 단칸방으로
도망간 마누라 안부를 물으러 갔을까
미끄덩거리는 설거지통에
짝 안 맞는 젓가락이 널부러져 있는
햇살에 하얀 이 드러내며 웃는
가족사진만 빛나는 집에 갔다올지도 모른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신발을 벗어던지고
저벅저벅 사진 한가운데로 걸어들어갈지도 모른다
사내가 자꾸 움찔거린다
김시언 -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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