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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김종찬/명예퇴직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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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2,685회 작성일 15-07-13 12:56

본문

김종찬

명예퇴직 외 1

 

 

회사를 빠져나온 트럭이

48번국도 도로 위에 의자를 떨구고 갔다

내팽개쳐진 의자가 불안하다

달리던 길이 브레이크를 밟고 장애물을 피해간다

어떤 속도는 핸들을 꺾어

중앙선을 침범하기도 한다

떨어진 후유증으로 볼트가 반쯤 풀리고

등받이 쪽은 금이 갔다

자동차와 정면으로 맞닥뜨린 의자가 길바닥에 나뒹군다

아무도 치우지 않는 의자

사무실에서 몇 십 년 안락하게 회전하던 때를 놓치고

질주하는 도로의 차선을 붙들고 서있다

도로가에는 이제 막

벚꽃이 하나 둘 봄을 부풀린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꽃의 언 입이 가지를 물고 있다

안간힘이다

 

 

 


슬픈 전설 22페이지

 

 

화사花蛇 네 마리가 그녀의 머리에 화관처럼 올려져있다

한 번의 시련에 한 마리의 뱀이 머리에 똬리를 튼다

75세 그녀의 삶은 22페이지로 요약되었다

 

태몽은 이무기를 타고 집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애초에 용이 아닌 물뱀의 운명이었다

그녀는 우포늪에서 물뱀처럼 물 위를 기어 다니며 우렁이를 잡는다

 

질척거려 더 이상 넘어가지 않는 일기장

우렁이가 내뿜는 끈적한 물길을 따라 하루에도 십 리쯤 물질을 하는 그녀

우렁이 껍데기 속에 온몸을 후벼 넣는다

 

일기장을 들춰보면 남편은 길 잃은 기러기처럼 갈대숲에 쓰러져있고

아이들은 따뜻한 나라로 황급히 날아갔다

 

매일 늪의 품속으로 걸어 들어간 그녀

일기장에는 가시연꽃 부들이 우산처럼 떠있고

 

쇠물닭 논병아리가 행간의 밑줄을 긋고 간다

가끔 청개구리가 창포위에서 쉼표도 찍고 황소개구리는 마침표를 찍는다

노랑부리저어새 쓰지 못한 여백을 좌우로 저으며 행간을 더듬는다

 

늪이 건네 준 빛바랜 장미 한 송이 받아 들고

그녀는 얇디얇은 우렁이 껍질 속에서 밤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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