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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조미희/너를 기다렸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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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희
너를 기다렸다 외 1편
심장박동의 숫자로 골목마다 기웃거리며 혹시 라는 개를 풀어 놓는다
살금살금 발자국과 후다닥 눈동자를 들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어디에도 없다 너는
열두 달 내내 헐떡이던 달이 누런 낯짝으로 기다리라고 한다
새벽부터 블루문을 뜯어 먹는다
기다리라고, 기다리라고 점점 줄어드는 합리적 동그라미들, 계단에 이끼가 파랗게 피어나는 것과 창문을 열어 너를 기다리는 것은 낮에 별을 볼 수 있다는 뻔뻔한 일기예보를 기다리는 일이다
저 속임수의 하늘 어딘가에 있을 구름은 모든 가짜들을 풀어 새를 날린다 새들은 내가 즐겨 쓰는 말투를 물고 높이 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이리저리 날고 있는 저 가짜들
기다리는 일은, 기다리는 곳을 지켜야 일어나는 일
앞발을 핥는 담장
정글처럼 무성한 털들이 왼쪽 춤을 췄다 이곳은 우리의 소파, 사색을 즐긴다 햇살도 영역이 있어 쾌청한 날이면 늘 저곳에서 뒹굴다 가는 따뜻한 고양이 연간 일조량을 조사하기 위해 고양이를 해부하면 될까 추운 곳 마다 고양이를 밀어 넣으면 기온이 상승할까
고양이는 기다린다 앞발의 꼿꼿한 발톱과 장난기를 세공하며, 아무도 모르게 분신술로 은거하고 어슬렁거리며 나타날 햇살이라는 새로운 품종의 고양이를
앞발을 핥는 천한 시간
고양이는 일인용 휴양지다
불임의 역점사업이 한창 인 싱글 족들, 나비라는 이름은 전설이 되고 날렵하던 목덜미에 고독이 벽돌처럼 쌓여 있다
소파 위로 햇빛 조명 하나 둘 꺼지고 푹신한 발리 보라카이 카프리 차례로 구름을 타고 밀려왔다 흘러갔다 선과 선을 찢으며 와인 빛 어스름이 긴장을 풀고 똑똑 저녁의 밥숟가락을 부딪는 낯선 식탁 밑, 자동차 엔진처럼 하나 둘 식어가는 우리들의 벼랑
도도한 그림자는 긴 다리의 어둠을 가볍게 입고 꽃잎처럼 네 발을 펼치고 야옹, 불야성을 피해 구름과 구름을 점핑, 고개를 쳐들고 좀 더 높이 무거워지는 거야
조미희 - 2015년 《시인수첩》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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