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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양진기/귀신고래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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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기
귀신고래 외 1편
죽여야 사는 육식동물이었지
젖을 빨 때부터 경쟁이 시작되는 지상의 포유류
먹거나 먹히거나 이기거나 지거나
동족의 목에 송곳니를 꽂는 삶은 끔찍해
바다로 갔어
바다로 투신해 육지의 생을 버렸어
한 많은 영혼이 귀신이 된다는데
귀신은 되지 않고 고래가 되었어
무덤 같은 등을 지고 다니다 그 무덤에 묻히는 고래
방고래를 빠져나와 공중으로 흩어지는 연기처럼
가끔씩 수면으로 떠올라 부푼 꿈을 허공에 뿌리며
백만 년 동안 몸을 부풀려 공중부양을 연습했지
두둥실 떠올라 수평선 끝까지 가 보려고 해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불분명한 곳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삶과 죽음이 모호해지는 그곳
펄쩍 뛰면 구름 속 세상
지하철 행상인
객차가 움직일 때마다
덜컹, 내려앉았던 한때를 기억한다
카트 트렁크를 열면
그가 지상에서 떼어 온 물건들이 열변을 토한다
금이 간 사랑도 붙일 수 있는 강력 본드,
슬픔이 스며들지 않는 비옷,
펄럭이는 마음을 붙들어 주는 빨래집게가 말을 붙인다
단돈 이천 원의 물건을 들고
객차 한 바퀴 휘휘 돌지만
승객들은 사랑도, 슬픔도, 펄럭이는 상대도 잃어버렸다
그가 마음 문을 닫자 객차 문이 열린다
여닫히는 마음 문을 지나며
하루치의 희망도 여닫힌다
지하에서 지하로 이동하며
지상의 생활을 접은 지 오래
지상에 노출되면 필사적으로
땅속으로 파고드는 땅강아지
지하의 단칸방으로 스며든다
젖은 벽지 위에는 검은 꽃들이 피어나고
그의 꿈도 축축하게 젖어 흘러내린다
내가 먼저 가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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