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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조정인/울음의 외곽을 도는 남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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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1,877회 작성일 15-07-1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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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인

울음의 외곽을 도는 남자 외 1

    

 

쇠가 울음을 낳다니, 그는 쇠의 울음을 받아낸 사람.

그가 채를 들어 수평으로 짧게, 징 한복판을 두드린다.

 

쇠가 운다, 복판에서 시작된 진동의 결이 둥글게 여진을 밀어내며 터뜨린

, 울음 이후.

 

두 셋 음역이 겹쳐지며 귓속에서 소리의 겹꽃이 피는 순간

모질게도 꽃숭어리 째로 첨벙, 물에 담근다.

울음을 틀어막는다.

 

끓어 넘친 울음의 반동이 폭발적으로 물방울왕관을 치켜든다.

크고 작은 파동에 따라 동시적으로! 물의 피막을 입는 소리들.

소리와 물방울이 활짝, 한 얼굴이다.

 

소리의 비등점을 찾아 쇠를 펴는 일은 어떤 일인가.

그가 다시 징채를 고쳐 잡는다.

캄캄한 물질에 한주먹씩 마음을 심던 어느 날은

불현듯 저의 혼을 탈탈 털어 넣었을 그.

 

쇠에서 기나긴 소리의 결을 풀어낸 마지막 제식을 마친 후

그는 멀리 가는 울음을 따라나섰다.

 

울음은 본시 짐승의 것. 사람과 쇠가 공명을 일으킨 지점에서

온몸이 울음인 크고 사나운 짐승이 뛰쳐나간 후

 

짐승을 따라나선 그는 한 계절이 다 가도록 초막에 오지 않았다.

 

 

 

 

사과나무과원 가는 길

 

 

나에게 사슴처럼 향기롭고 뱀처럼 슬픈 계절이 도래했다, 라고 쓴 문장의 독을 핥으며 스무 해 넘게 견딜 수 있었다.

해안도시 M은 눈이 많았다. 한 사람이 도착했고 나에게서 무럭무럭 동굴이 자라났다. 어제와는 분명 구별되는 날들이 대문 앞에 몰려와 있었다. 한 사람이 들어와 있는 동안 질병인 날들. 아플 만큼 아픈 것만이 최선의 치유법이라는 말 외엔 아무 것도 내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영혼의 흰 골격만으로 먹고 마시고 눕는 날들이 이어졌다. 어두운 거울 속에서 발가벗은 나를 아프게 펼쳐보고는 했다. 거울 속에 펼쳐보는 날개로는 그에게 갈 수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입구로 폭설이 들이치고는 했다. 손바닥에 받아보면 피 묻은 깃털이 되는. 흉곽 안쪽에 그토록 막막한 벌판이 펼쳐져 있다니, 무시로 펄럭이는 선로가 나 있다니.

반듯이 누워, 눈발 속으로 상한 날개를 끌고 멀어지는 내 뒷모습을 바라다보고는 했다. 선로가 사라지는 곳에 폭설이 내려앉은 것처럼 꽃을 피운 사과나무과원이 있었다.

 

 

조정인 - 1998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장미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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