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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이은/원 플러스 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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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2,525회 작성일 15-07-13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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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

원 플러스 원 외 1

 

 

엄마가 죽었어요 겉옷도 벗지 않는 채 그것이 죽음에 대한 예의인가요 엄마의 옷장에는 입지 않은 옷들이 가득 했어요 옷장 문이 스르르 열리고 옷들이 쏟아졌어요 옷걸이에 걸린 옷들이 너울거렸어요 팔다리가 뒤엉킨 옷들이 시체처럼 몸을 빠져나갔어요 나는 옷을 빠져나온 팔이 되어 꿈틀거렸어요 엄마가 죽었어요 몸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모래사막에 쓸려가는 바람소리처럼 들렸어요 아빠의 넥타이가 팽하게 조여왔어요 창 밖으로 늙은 개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어요 목이 딸려 올라갔어요 엄마는 발끝을 바닥에 닿지 않으려고 얼마나 몸을 둥굴게 말았을까요 발끝과 바닥 사이가 너무 멀었어요 엄마가 죽었어요 나는 네 발로 기었다가 걸어갔다가 누군가의 손을 잡았어요 나는 아빠의 후배를 예쁜 이모라고 불렀어요 선생님, 제 엄마예요. 예쁘죠 얘들아, 우리 엄마야, 이모는 왜 이리 이쁠까요 세상의 모든 이모, 이모들 엄마가 죽었어요 엄마인지 이모인지 이들은 나의 최초의 여자 나에게 밥을 해주고 싶어하는 여자 나는 이모랑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갔어요 이모가 웃으며 나를 안아주었어요 나는 몸을 비틀었어요 그날부터 난 예쁜 이모의 껌딱지가 되기로 했어요 입안에 넣고 불면 부풀어 오르는 껌 입천장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는 껌 입안에서 혀처럼 굴러다니는 껌 둥글게 말았다가 삼켜버리는 껌 이빨이 아프도록 씹다가 씹다가 목구멍에 철썩 달라붙은 껌 껌딱지 엄마가 죽었어요 몸 속에서 이모가 연신 웃어요 단물이 그리워지는 밤 내 음경에서 빠져나온 별들이 밤하늘에 팡팡 축포를 쏴 올려요 창문 밖에서 누군가 발끝으로 걸어가고 있어요 발바닥과 바닥 사이 아무 것도 없는데

 

 

 

 

해부학교실

    

 

냉장고는 짐승들의 뼈들로 가득 찼다

사골국이 되기 전의 소들, 등뼈찜이 되기 전의 돼지들,

오징어 튀김이 되기 전의 오징어들, 생선찜이 되기 전의 가오리들,

팔다리들이 칼을 들이밀어도 갈라지지 않는다

아가리들은 다물어지지 않는다

동맥 끝에 엉겨 있는 무수한 핏덩어리들

 

비닐봉지 안에서 살아서 꿈틀거리는 손들이

나를 만진다

나는 얼음을 부수고 얼어붙은 영혼들을

분리하려고 애를 쓴다

 

어제 죽은 친구는 어디에 있을까

어제 죽은 어머니 뼈는 다 삭았을까

뼈를 버린 소들은 하늘을 날고 있을까

 

이중에 하나는 문어였고, 하나는 오징어였고, 하나는 돼지 등뼈였고, 하나는 내장이었고,

하나는 먹다 남은 고깃덩어리였다

등뼈는 누가 내 몸 안에 쑤셔 넣은 칼 같고

생선 아가리는 살이 흘러내리는 구멍 같고

눈알은 안구 없는 시선 같고

팔다리를 들고 누워 있는 여자 같은데

문어 대가리를 찾는데 다리가 만져진다

가오리를 찾는데 돼지 등뼈가 만져진다

 

나는 이 뒤틀린 형상들 앞에서

눈을 감고 팔과 허벅지를 더듬는다

등뼈에서 살이 흘러내린다

냉장고 뒤편에서 환한 빛이 새어나온다

 

한밤중 무슨 신호처럼 눈을 뜨고 있는

나의 냉장고를 열고

칼로 저미고 짓이기고 으깨고 난도질 하는 자는 누구인가

 

텔레비전에서는 냉장고를 통째로 옮겨 놓고

쉐프들이 나와 요리 대결을 벌인다

삶고 끓이고 볶고 으깨고 식욕을 자극한다

고깃덩어리가 한 밤 놀이의 재료들이다

요리가 예술로 보여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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