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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고명자/타인의 입술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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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자
타인의 입술 외 1편
이별 예식을 치르러 갈 땐 핑크 우산을 든다지
먼 길로 돌아서가려고 하이힐을 신는다지
부음과 부름 사이
한숨처럼 내가 걸어가네
무덤가 꽃은 수명을 다한다는 말을 몰라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슬픔에게로 문상을 가네
느닷없이 불려 왔네
노래를 부르다 말고
꽃보다 더 화사하게 핑크를 들고
그 아이가 걷던 빗길을 대신 걸어서 왔네
그 아이를 껴입고 온 것도 아닌데
젊은 여자가 날 붙들고 펑펑 우네
우산을 확 빼앗아가네
핑크 봉분 앞에서 함께 비를 맞았네
가장 따뜻한 색깔의 죽음 이었네
도무지 따뜻해지지 않는 죽음 이었네
강아지풀
오른뺨과 왼뺨이 어긋나버렸구나
바닥모를 네 눈동자에서 불꽃이 치솟는구나
너 댓 뺨이나 길어진 모가지로도 아직 닿지 못하였으니
손가락으로 칭칭 감아 흔들어도 끊어지지 않는 사랑
잔느, 두더지마저 네 신발을 물고 땅 속으로 숨어버렸다
벼랑이 꿈보다 황홀할 때 있다만
제발, 다가서지 말으렴 얼음처럼 으깨지겠다
연한 풀도 독이 오르면 절정이라는데
모진 네 사랑에 찬물을 끼얹을게
다가선 만큼 아득해지는 불모지에서
챙 넓은 모자를 잃는 것과 사랑을 잃는 것
최후의 햇볕이 기어코 네 어깨를 치고 가겠구나
고명자 - 2005년 《시와 정신》으로 등단. 시집 『술병들의 묘지』.전국계간지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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