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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오대교/가난한 시인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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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교
가난한 시인 외 1편
오랜만에 인세가 왔다
몽땅 찾아 재래시장으로 간다
천 원짜리 잔치국수를 후루룩 먹고
커피 자판기에 동전을 넣는다
손자에게 줄 왕찐빵을 하나 사고
다섯 개 들이 라면 한 봉지도 산다
마지막으로 문방구에 들러
모나미 153 볼펜을 200원에 산다
내일 또 국수를 먹고 커피를 마실 만큼
돈이 남았다
한 손에 왕찐빵과 라면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볼펜을 또각대며 집으로 향한다
이 볼펜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 또 인세가 올까?
볼펜 다리가 후들거린다
콩 고르는 날
메주콩을 밥상에 부어 놓고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돈살라먼 못난 것들을 잘 골라내야 한다”
할머니께서 돋보기를 쓰시며 첫말을 던지셨다
“음, 요 녀석은 팔불출인데도 귄있네”
아버지께서 찌그러진 것 하나를 들고 웃으셨다
“아이고, 이 무녀리 짠하다 짠해”
어머니께선 끝내 혀를 쯧쯧 차셨다
“젤 잘난 것 하나만 고르면 안 되나?”
고모는 반질반질한 콩알 하나를 들고 중얼거렸다
“이 녀석아 이건 나처럼 멀쩡하잖아”
노총각 삼촌은 내가 골라낸 콩을 보며 핀잔을 놓았다
“관둬라. 하루아침에 보이겠느냐?”
할아버지께서 넌지시 말씀하셨다
“잘난 것 못난 것을 어떻게 한눈에 알아봐요?”
나는 화등잔같이 눈을 뜨며 할아버지께 물었다
“눈대중이란다”
“그것을 어떻게 믿어요?”
“어른이 되면 자연 알아보게 된단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실 때 나는 아고똥했다
오대교 – 2009년 《시와사람》으로 등단. 시집 『윽신윽신 뛰어나 보세』, 『새물내』. 수상: 시와창작문학상, 전국계간지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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