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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이기영/봄비는 내려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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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봄비는 내려서 외 1편
하루 종일 비가 온다
비는 멈출 마음이 없는지
젖은 채 하루를 보낸다
비는 하루 종일 내려서
소문처럼 속수무책으로 번지고
바닥이 있어 수직을 알게 되는
비의 씨앗들은
강가 물버들 어린 연두로 오고
비닐하우스 찢긴 틈새 냉이꽃으로 오고
알뿌리 수선화의 영근 꽃으로도 온다
한적한 둑길 개나리는 왜 일찍 꽃피는지
철로변에 살던 미옥이네 아이들은 왜 많은지
낡은 의자들은 왜 자꾸 버려지는지
알 필요 없이
비는 작정하고 찰지게 온다
옥외계단
곧 철거될 건물 외벽에 걸려있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녹슨 계단이 있다
신경은 모두 손상되었으나 감각만은
꿋꿋하게 살아남아 버티고 있는 통증처럼
점점 완강해져서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처럼
숨길 수 없는 사연 줄줄 흘리고 있다
장대비 견디고 있다
살면 살수록 포기는 많아지는데
왜 근심은 더 느는 것일까
처음부터 한 발짝도 들이지 못하고 밀려나
자기 최면으로 헐벗은 현실을
속이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견딤보다 훨씬 잔인했을 것이다
언제 철거되는지도 모르게 철거될 것이고
허공에 매달려 있던 때처럼
팔다리는 오래 저릴 것이다
층층마다 열 수 있는 문, 바깥에는
옥상조차 갈 수 없는
잊혀진 열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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