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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김응규/익사 이야기 - 쥐꼬리 풍덩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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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규
익사 이야기 외 1편
-쥐꼬리 풍덩-
첫 번째 생쥐가 물로 뛰어들었어.
냄비에 물이 끓기 시작한다 수십의 죽어가는 영혼들이 아우성을 친다 단단하게 굳은 라면사리가 구명보트처럼 띄워진다 거품들이 짐승같이 엉겨 붙고 사리는 맥없이 풀린다 물이 잠잠해지고 붉어진다
두 번째 생쥐가 첫 번째 꼬리 물고 풍덩
세 번째 생쥐가 두 번째 꼬리 물고 풍덩
꼬리 물고 풍덩 꼬리 물고 풍덩
풍덩 풍덩 쥐꼬리 풍덩 했지.
공기가 먹먹하다 예각을 띤 시계바늘이 가슴을 콕콕 찌르지만 곧 종이배처럼 물렁해진다 숨을 멈추고 책상 위에 쌓여있는 책들은 표지만 동공에 박힐 것 같다 교통카드를 들고 밖으로 나가서 숨만 쉬고 들어온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과자봉지를 뜯자 쏟아졌다 과자를 주우려고 허리를 굽혔는데 꿈 속에 나온 것 같다
여기에는 어제가 있고 강 건너에는 내일이 있다고
첫 번째는 이미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갔는데
앞 생쥐 꼬리가 바로 앞에 있으니까
그래도 풍덩 풍덩 쥐꼬리 풍덩 했지.
며칠째 같은 모습으로 물결치는 이불 위에 몸을 누인다 시간은 흐르고 눈은 끔뻑일 때마다 풍덩풍덩 소리를 낸다 숨이 막히는 것이 취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을 할 때마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계속 뻐끔뻐끔 거리는 것 같다 눈을 감으니 바닥이 일렁거리고 울렁거린다 길지도 않은 꽁무니를 어디에선가 빼고 싶은 기분이다 눈을 뜨니 잠잠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어서 꼬리 물고 풍덩, 꼬리 물고 풍덩하는 소리가 일주일째 계속 되었어.
나중에는 고을 원님이 듣기 싫으니 그만 해 달라고 애원을 해도 선비는 풍덩풍덩하는 소리를 끊임없이 외워댔지…….
*쥐꼬리 풍덩: 옛날이야기. 어느 마을의 원님이 지혜로운 사위를 얻기 위해 자신이 질릴 만큼 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 딸을 주겠다는 방을 붙였다. 마침 그 방을 본 어떤 선비가 쥐꼬리 풍덩 이야기를 일주일 넘게 하여 원님의 딸을 얻었다고 한다.
네 번째 별의 실업가
내 반도 못 산 어린애에게 쓸모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세탁기 안에 들어가 내 몸을 세제로 푹 재워놓았다 죽어있던 이름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 살덩이를 털어내는 겨울나무처럼 한없이 새하얀 눈밭만 응시했다
똑딱거리던 발걸음이 피아니시시모로 변했다 평생 내 삶을 관리해오던 시계가 고장 난 것이다 시계공은 무언가 중요하지 않은 부품이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시시한 견적이 나왔다
일기를 대신하던 수첩을 넘겼다 글씨가 번져있었다 좀 더 깨끗하기를 기대했는데 실망이었다 오억 백 육십 이만 이천 칠백 삼십 일 개의 별들이 이 안에 있었던 것 같은데 날아가지 못하고 전부 죽어버린 걸까
수첩을 뒤적이다 빠져버린 시계 부품을 찾았다
스스로 잘못 살지는 않았으나 후회스럽다고 말하며 조용히 세탁기 안으로 들어갔다 태어나지 못하고 죽어버린 이름들을 보듬어 주며 그 몫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용도실에 숨소리 하나 울리지 않았다 오늘 죽고 내일 아침 다시 태어나기로 약속했다
* 어린왕자가 네 번째로 들른 별에는 실업가가 살고 있었다. 그는 별을 세고 소유하는 일을 했다. 어린왕자는 별을 어디에 쓸 수 있는지 실업가에게 묻지만 실업가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 어린왕자를 만났을 때 그가 소유하고 있던 별의 수.
김응규 – 2013년 대산 대학 문학상을 통해 등단. 2014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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