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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김영주/눈을 지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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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3,298회 작성일 15-07-1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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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영주

눈을 지나다

 

 

팔당대교 나들목에서 6번 국도로 접어든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되며 빚어냈을 풍광이 양 옆구리에 들러붙는다.

홍천 72km 양평 28km

초록색 바탕의 표지판을 채운 흰 글자가 선명하다. 아랫입술로 바람을 만들며 창문을 내린다. 칠월의 바람이 후덥지근하다.

곧은 길 멀리 철 구조물에 매달린 무인카메라가 보인다. 성마르게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는다. 몸통이 한껏 뒤로 쏠린다. 파블로프의 개가 환생하셨나? 아내는 잊을 만하면 날아드는 교통범칙금 통지서를 내 턱밑으로 들이밀며, 무인카메라에 유난스럽게 반응하는 이유를 따져 묻곤 했었다. 욕구불만의 전위적 표현이냐며 놀리기까지 했다. 안차게 무인카메라를 지난다.

옷매무새를 살핀다. 옷장 귀퉁이에서 꺼낸 검정양복이 후줄근하다. 넥타이를 풀어 옆자리에 던져놓고 창문을 닫는다.

어제 퇴근길에 부서 회식이 있었다. 모두들 조만간 시행될 인사이동을 안주 삼아 잔을 비워나갔다. 한 차장님이 진급대상 영순위인 거야 천하가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김 과장이 혀 꼬부라지는 소리를 내자 모두들 질세라 건배를 청해왔다. 김 과장의 호들갑이 싫지 않았다. 나는 따라주는 대로 잔을 비웠고 단란주점을 거쳐 포장마차까지의 계산 일체를 책임졌다.

콧노래를 부르며 현관문을 열었다. 전화기의 응답기 불빛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아들 녀석이 메시지를 남겼나 싶어 진둥한둥 재생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낯선 목소리가 종일 사람 발소리라곤 담지 못한 거실을 흔들었다. 잘못 걸려온 전화겠거니, 지움 버튼으로 팔을 뻗었다. 저는 박성수라고, , 영 자 길 자 되시는. 버튼에 두었던 손가락을 어째야 할지 난감했다. 아버님이 오늘 오후 일곱 시경에 뇌출혈로……. 미처 소화되지 못한 알코올 성분이 뇌혈관을 포위해 나갔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버지의 부음이었다. 산소 공급을 위해 뇌로 파견됐던 적혈구들이 방향을 잃고 허우적댔다. 적혈구를 전멸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알코올 성분이 필요했다. 장식장을 뒤졌다. 언제 마시다 두었는지 모르는 양주병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밥그릇 그득 따라 마시고는 거실 바닥에 군드러졌다.

다른 날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거실 바닥에 꼼짝 않고 누워 아버지의 부음을 모른 척 할 명분을 찾아보았다. 예산 집행에 관한 국회결산심의는 두 주전에 마무리되었고, 내년도 예산 편성을 위해 밤샘근무에 시달려야 하는 연말도 아니었다. 마땅한 핑계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 더는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정기 인사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이십 년 넘게 입에 올려본 적 없는 아버지 때문에 구설수에라도 오르게 된다면? 경조 휴가를 신청해야할지 월차로 처리하고 말지 결정이 쉽지 않았다. 거실을 뱅뱅 돌며 날짜를 짚어보았다. 다행히도 삼우제는 휴무일인 토요일이 될 터였다. 찬물만 연신 들이키며 출근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는 김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다음 주에나 출근이 가능하겠다고, 사흘만 월차 처리를 해놓으라고, 필요하면 언제든 휴대폰으로 연락하라고 일렀다. 차장님이 월차를 다 내시고, 해가 서쪽에서 뜨겠습니다. 김 과장이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참석 여부와 관계없이 아내에게만큼은 부음을 전해야하는 게 아닐까 주춤거리며 캐나다와의 시차를 계산해보았다.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얼굴 한 번 마주한 적 없는 시아버지였다.

실뚱머룩하니 도로 위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강물을 양분 삼아 곡식을 키우고 새들과 풀벌레를 살찌운 들을 지난다. 중앙선 철로를 거머쥔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을 지난다.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노닥거리는 아낙네들 같은, 아기자기한 마을을 지난다. 길녘마다에서 맞닥뜨리는 무인카메라가 발목을 압박한다. 고개를 끄숙이는 것으로 무인카메라로 집중되려는 시신경을 분산시킨다.

44번 국도로 접어든다. 어느 결에 산세가 높고 가파르다. 발목이 묵지근하다. 군용 헬기 여러 대가 머리 위를 지나쳐 고개 너머로 사라진다. 완전군장으로 야간행군을 수 없이 했던 고개다. 강원도. 무궁화의 고장 홍천입니다. 큼지막한 표지판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십여 년을 한계령을 넘고 미시령을 넘을 엄두도 낼 수 없게 만들던, 아내의 성화에 설악산을 찾을 때조차 영동고속도로를 고집하게 만들던 곳이다. 아버지의 재혼 소식을 듣고도 발길 한 번 하지 않았던 곳이다. 핸들을 잡은 손목이 시큰거린다. 차체가 휘청한다. 달려오던 덤프트럭이 클랙슨과 함께 상향등을 쏘아댄다. 등줄기가 쭈뼛 선다.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다.

사관학교 과정을 수료하고 앞으로는 홍천강이, 뒤편 멀리로는 오성산 산자락이 드리워진 대대 규모의 보병부대에 배치되었다. 대대 문짝부터 부수고 들어가라. 생도 시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얘기였다. 그러나 부임 첫날부터 나는 소대장으로서의 자질 부족을 들키고 말았다. 소대원들은 내 명령보다는 분대장이나 하사관들의 지시에 비중을 두는 듯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국방부 시계는 미적대는 일없이 돌아가 주었고, 나는 바로 선 밥풀떼기 계급장을 들여다보며, 마침 부근의 기갑부대로 전출되어 온 아버지를 떠올리며, 얼굴마담에 불과한 소대장 역할에 충실했다.

16××부대, 77××부대…… 부대 담장이 도로변을 도배하다시피 하더니 홍천 읍내가 한눈에 담긴다. 세태를 따라잡느라 애쓴 티가 역력한, 반듯하니 키를 높인 건물들이 제법 눈에 잡힌다.

홍천강 둑길로 접어든다. 둑 아래 강물은 바닥을 드러내고, 정오를 넘긴 강변의 풀들이 탈모증에 시달리는 중년의 뒤통수처럼 낯간지러워 보인다.

 

흙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낸 병원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차 십 여대도 제대로 소화해 낼 것 같지 않은데 빈자리가 쉬 눈에 띈다. 조악스럽게 그어진 라인에 맞춰 주차를 시키려니 뒤통수가 근질거린다. 넥타이를 매며 흰 페인트칠이 된 건물로 다가간다. 세월 탓인지 잿빛이라고 우겨도 무난할 듯싶다.

장례식장 입구

표지판에 그려진 화살표가 땅으로 내리꽂힐 듯 위태로워 보인다. 건물 입구에 쭈그려있던 상복차림의 남자가 벌떡 일어선다.

-박성수입니다.

허리까지 굽혀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스물을 갓 넘긴 듯 앳되다.

-안 오시나 싶어…….

성수가 말끝을 흐리며 앞 서 걷는다.

통로 양편으로 늘어선 영좌들을 지난다. 걸쭉한 육개장 냄새가 비위를 건드린다. 벌건 얼굴로 화투치기에 여념이 없는 남자들과 머리고기를 호도깝스레 먹어대는 아낙들 그리고 서로의 어깨에 의지해 졸고 있는 상주들…… 문도, 벽도 하다못해 칸막이조차 없는 분향소가 시장통만큼이나 어수선하다.

-어머니, 대호 형님 오셨습니다.

성수가 거친 자리를 지키던 봉화 댁을 낮게 부른다. 봉화 댁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하며 자리에서 비켜선다. 본 적 없는 봉화 댁에게 딱히 건넬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고개를 수그려 인사를 대신한다. 봉화 댁도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린다. 몇 안 되는 문상객들의 수군거림에 떠밀려 분향소로 오른다. 향을 피우려다 영정 속의 아버지와 눈이 마주친다. 절하는 내내 고개를 들지 못한다.

-염을 시작한답니다.

성수가 절을 마치고 물러서는 내게 귀엣말을 건넨다. 성수를 따라 통로 끝, 염습실로 향한다.

방 정 중앙을 차지한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로 수의가 펼쳐져 있다. 성수와 봉화 댁과 나란히 벽 앞에 선다. 알코올 냄새가 콧구멍을 간질인다. 잰 기침을 삼키며 방안을 둘러본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시체보존용 캐비닛, 물기 가시지 않은 시멘트 바닥, 대걸레를 빨 때나 씀직한 투박한 세면대와 창고(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쓰인, 세면대 옆으로 난 쪽문까지 방안의 모든 것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수의, 상복, 두건, 행전, 향과 양초 등, 진열장 속 장례용품도 겨우 구색만 갖춰놓은 듯 하다.

졸업가운을 갓 벗은 사회초년생과 그의 이모쯤으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캐비닛에서 꺼내온 주검을 수의 위에 누이더니 양편으로 갈라서 목례를 올린다. 굶주림에 떠밀려 하사관을 지원했던 아버지가 테이블에 꿈쩍 않고 누워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덩이가 치밀더니 호흡이 가빠진다. 주먹을 쥐며, 염사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한다.

남자가 주검을 기울여 받쳐 들자 여자가 등과 팔, 배와 다리를 알코올 솜으로 닦아나간다. 꼼꼼하면서도 차분한 손놀림이 갓 태어난 아기를 씻기는 엄마와 다를 게 없다. 걸음걸음 서둘거나 흐트러짐이 없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 한 뜸 한 뜸 박음질처럼 정갈하다. 백지로 싼 주검에게 수의를 입히는 모습이 배냇저고리를 입히듯 신중하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지금 같은 호강을 누려본 적이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목구멍에 걸쳐있던 덩이가 풀어져 내린다. 호흡이 편해진다.

수순을 마친 여자가 삼베에 싸인 주검을 향해 허리를 조아린다. 모로 누운 밥풀떼기 계급장을 위해서라면 흙구덩이도 기꺼웠을 아버지라곤 믿기지 않는다. 그저 제 몫의 생을 알뜰히 마감한 생명체에 불과할 따름이다. 주먹 쥔 손에 힘이 풀린다.

-마지막 인사들 하시지요.

돌아서는 여자의 눈가가 축축하게 젖어있다. 육신 저문 영혼들을 인도하는 바리의 모습이 저랬을까. 직업적 일과이련만 제 피붙이에게 하듯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가슴 밑바닥을 치고 올라온 덩이를 풀어 내리고, 더께로 내려앉은 원망을 사소한 감정쯤으로 치부할 수 있게 해준 것 또한 무심히 봐지지 않는다.

봉화 댁과 성수가 테이블로 달려든다. 그들을 따라 앞으로 나선다. 여자가 몸을 틀어 자리를 내어준다. 가운 주머니에 달린 이름표로 시선이 가는 걸 어쩌지 못한다. 실장 오순정. 얼마만큼의 공백이 있었을까. 머릿속이 씻부셔낸 바가지처럼 비워진다. 주춤 뒤로 물러서다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여자의 동공이 출렁, 요동친다. 다시 얼마쯤의 공백이 있었고, 여자가 턱을 조아려 짧은 목례를 건넨다. . . . 봉화 댁과 성수의 곡소리가 우주 저 편에서 날아든 속삭임처럼 아득해진다. 여자가 이내 몸을 돌려 아버지의 코와 귀 그리고 입을 솜으로 막는다. 명주 천으로 얼굴을 덮은 다음, 머리와 발, 몸통에 열두 가닥의 멧베를 묶는 일에 열중한다.

관 뚜껑을 닫는 염사들의 동작에 맞춰 봉화 댁과 성수가 곡소리를 높인다. 각목으로 흠신 두들겨 맞은 이등병 걸음새로 염습실을 나선다. 쓴 물이 목구멍을 타넘는다. 영좌들을 지나쳐 건물 밖으로 나서며 담배를 피워 문다.

 

어정뜨게 관리실 문을 민다. 마호가니 책상이 비어있다. 책상 너머로 고개를 들이민다. 키 낮은 탁자와 일인용 소파 넷이 보인다. 색상과 디자인이 부대 앞 독수리다방에나 어울림직 할 만큼 구닥다리다.

-들어오세요.

씁씁한 목소리가 날 붙든다.

-한 중위님?

문으로 다가서던 순정이 먼저 아는 체를 건넨다. 경계근무 중 방뇨를 하다가 들킨 이등병 꼬락서니가 된다. 매시근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잖아도 분향소에 들러볼 참이었는데, 저 알아보시겠어요?

순정이 고개를 모로 튼다. 내 기억 세포에 남겨져있는 순정은 스물 즈음의 대학생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질끈 동여맨 머리와 돌봐준 적 없어 보이는 차림새. 생기발랄함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던 순정을 떠올리기엔 아무래도 세월이 길고 깊다. 나는 대답을 피한 채 사방을 두리번댄다. 군데군데 녹이 슨 철제 캐비닛이며 얼굴 하나 간신히 담길만한 창문, ‘까꼬뽀꼬 미용실이라고 쓰인 벽걸이용 거울 역시 야무지고 기운차던 순정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한영길 님이 아버님 되세요?

순정이 서둘러 말머리를 돌린다.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기가 쉽지 않다.

-장례절차를 상담하러 오셨던 젊은 분하고는.

순정의 목소리가 조심스럽다. 순정에게 진실만을 말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렇다고 순정을 무안케 할 권리 또한 없을 것이다.

-아버님이 늘그막에 재혼하시는 바람에 성이 다른 동생을 얻게 됐습니다.

아버지 얘기를 더는 보태고 싶지 않아 말끝에 힘을 준다.

-바람 좀 쐴까요.

순정이 책상으로 다가가 수화기를 집어 든다. 나는 책상 위, 벽에 걸린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보는 것으로 머쓱함을 때운다. 순정이 황 선생이라고 칭한 상대방에게 잠깐 자릴 비우겠다며, 내일 오전에 쓰일 관과 수의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이른다.

-잠깐만요.

문을 나서던 순정이 바로 옆 입관실로 들어간다. 한참이 지나서야 나오는 순정의 눈가가 불그레하다.

순정을 따라 휘적휘적 걷는다. 길 끄트머리를 막고 선 삼층 건물이 보인다. 세월을 켜켜이 뒤집어쓴 것이 병원건물과 다를 게 없다.

-직원용 숙소예요.

내 속내를 거니채기라도 한 듯 순정이 걸음을 늦춘다.

-저래 뵈도 내 차롄 꿈도 못 꾸는 걸요.

순정이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나와 어깨를 맞춘다. 순정에게 숙식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묻는다.

-입관실에 딸린 창고를 개조해 쓰고 있어요.

순정의 걸음에 눌린 내 발소리가 땅 밑으로 가라앉는다. 순정이 보폭을 좁히며 내 근황에 대해 두서없이 물어댄다. 따다바리기가 성가셔 무색치 않을 정도로만 대꾸한다.

-휴게실이 있긴 한데 예가 더 편할 것 같아서요.

순정이 건물 옆 풀밭으로 들어간다. 숙소를 짓고 남은 땅인 듯, 잡촌지 잔디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풀대들이 다투듯 솟아 있다. 단풍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싸리와 철쭉 등이 설핏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구색만 갖춰 심어놓은 티가 역력하다.

-저리로 앉으실래요.

순정이 싸리 잎 무성한 곳을 가리킨다. 바위라고까진 할 수 없지만 제법 큼지막한 돌이 싸리 잎을 등받이 삼아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 두 사람이 앉기에는 좁은 듯 보인다.

-예가 편하겠네요.

건물 벽에 기대선다. 냉기가 등골을 타고 번져나간다. 순정이 돌 위에 걸터앉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정말 곱지요.

중천을 넘어선 햇살이 순정의 볼에 부딪치며 산산이 부서진다. 햇살이 이토록 누추한 곳으로 순정을 불러낸 걸까. 꾹꾹 눌렀던 의구심이 목구멍을 비집는다.

-여긴 어쩌다가.

결국 속엣 말을 드러내고 만다. 순정이 다리를 모으며 숨을 길게 내쉰다.

-천석 씬 이 곳 햇살을 좋아했어요. 홍천 강 너머 노을도 그렇고요.

순정이 오랫동안 묵히고 삭혀뒀던 이름을 끄집어낸다. 눈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순정을 따라 하늘을 본다.

한 해가 저물어가던 때였다. 토요일 오후를 죽이기 위해 부대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추위에 쫓겨 독수리다방을 찾았다. 충성. 김 일병이 입으로 가져가던 찻잔을 놓으며 일어섰다. 김 일병과 마주 앉아 있던 순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순정입니다. 김 일병의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순정이 악수를 청해왔다. 얼결에 순정의 손을 잡았다. 온 몸의 터럭이 우르르 일어섰다. 시선처리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김 일병의 옆자리를 차고앉았다.

서남쪽의 땅 끝에 위치한 마을에서 어릴 적부터 오누이처럼 지냈다는, 서울로 나란히 유학 가서도 하루도 거르는 일없이 서로를 챙겼다는 김 일병과 순정. 은연중에 나누는 눈빛만으로도 순정은 분명 김 일병의 여자였다. 하지만 나는 월요일이다 싶으면 토요일을 손꼽게 되었고, 김 일병이 위병소를 나선다 싶으면 BOQ에 틀어박힌 채 시계 초침만 헤아리곤 했다. 몽정으로 축축해진 팬티를 갈아입을 때면 손길만큼이나 마음도 허허로웠다.

-태풍이 남서해안을 강타한 뒤였어요. 천석 씨 아버님이 바람에 쓰러진 벼를 세우다가 쓰러지셨어요. 평소 빈혈이 심했던 분인데 과로까지 겹쳤던 거지요. 어머님이 극구 말리셨지만 제가 편지로 사정을 알렸어요.

순정의 목소리가 물기 머금은 기타 줄을 튕기는 것 같다. 담배를 꺼내 문다. 순정이 손을 내민다. 담배에 불을 붙여 순정에게 건넨다.

-천석 씨한테서 휴가를 신청해뒀다는 답장이 왔어요. 천석 씨 본 지도 오래된 데다 마침 학기도 끝났고 해서 서둘러 고향으로 내려갔지요. 온 집안이 잔치 분위기였어요. 아버님이 자리를 털고 앉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입대하고는 큰아들을 보지 못했었거든요. 동생 인석 씨는 양은냄비만큼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고요. 그랬는데, 사망통지서가 첨부된 뼛가루만 왔으니. 아버님이 덜컥 세상을 버리시데요.

순정이 성마르게 연기를 빨아들인다. 꿈에서라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이미지들이 꾸물꾸물 기지개를 켠다. 새 담배에 불을 붙여보지만 라이터돌이 손에서 연신 미끄러진다.

-이상한 일이잖아요. 휴가를 앞둔 사람이 자살한다는 게. 내가 아는 천석 씬 목숨을 함부로 할 만큼 독한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릴 적부터 수제비로 끼닐 때워 그런지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사실 일병 달고부터 사람이 달라진 거 같긴 했어요. 쾌활하다거나 적극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면회 온 날더러 먼 길 힘들여오지 말란 말이 고작이니. 한 달 넘어 보는 얼굴색은 갈수록 초췌해있고, 훈련 중에 다쳤다지만 온 몸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기 일쑤고.

호흡이 엉키는지 순정이 잔기침을 삼킨다.

-기억나세요? 봄이었는데, 저희와 나들이 갔던.

목을 길게 빼 올려다보는 순정의 눈이 내린천을 유영하는 열목어처럼 열에 뜰 떠 있다. 나는 있는 힘껏 담배를 빨아댄다. 담배 끝에 달려있던 불꽃이 진저리를 친다.

대학재학 중에 입대한 김 일병은 이등병 딱지를 떼자마자 대대 행정실의 작전병으로 차출되었다. 당연히 훈련에서 제외될 때가 많았고, 야간점호 때가 되서야 막사로 들어오는 경우도 잦았다. 성미가 별스러워 분대원들에게 총구를 겨누기 일쑤이던 분대장 임 하사가 김 일병을 못살게 구는 듯 했다. 임 하사를 등에 업은 몇몇이 얼차려를 가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김 일병은 소대원들을 베돌았고, 어깨나 허벅지에 피멍이 잡히는 일도 흔했다. 그렇지만 순정을 앞세워, 일개 소대원에 불과한 김 일병에 대해 따따부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익을 대로 익은 봄이 자리를 뜨려 할 즈음이었다. 순정이 BOQ까지 찾아와 함께 나들이 가자고 졸랐다. 순정이 굳이 나를 끼워 넣으려는 속내를 모르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순정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순정과 말을 나누고 웃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수는 없었다. 못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들장미와 개싸리의 붉고 흰 꽃잎이 어우러진 홍천 강변은 들꽃천국이었다. 순정과 김 일병 그리고 나는 다투듯 감탄사를 터트렸다. 노을에 잠긴 강변을 배경 삼아 사진도 찍었다. 그런 와중에 순정은 나와 단 둘이 있을 기회를 만들려고 악착을 떨었고, 김 일병은 어떻게든 나한테서 순정을 떨어뜨리려 조바심쳤다. 나는 풀대를 꺾으며, 물가의 자갈을 집어던지며 그 모두를 모른 체 했다.

-중위님이라면 짚이는 게 있을까 싶어 같이 가자고 졸랐던 건데. 그런데 중위님한테 말이라도 걸라치면 천석 씨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중위님은 중위님대로 날 따돌리려고만 들고. 그날 밤, 반겨주지도 않는 사람 보자고 한나절 꼬박을 버스에 시달리는 게 쉬운 줄 아느냐며 한바탕 난리를 쳤지요. 천석 씬 그래도 미안탄 말밖엔 않고. 다시는 면회를 가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시신이라도 고이 보내주지, 누구 맘대로…… 염치불구 중위님을 찾을 밖에요. 나중에야 중위님이 전출되었다는 걸 알았어요. 한 가닥 남아있던 기대마저 접으려니 왜 그리도 억울하던지. 서럽긴 또 왜 그리 서럽고요. 오죽했으면 중위님 면전에 똥바가질 들이붓는 꿈까지 꿨을까요. 중위님이 무슨 상관이라고.

세월이라는 처방전이 무색하리만큼 순정이 힘겹게 말을 잇는다. 입술을 비틀던 아버지의 웃음이 정수리를 희롱한다. 뒤통수를 벽으로 젖힌다. 시멘트의 질감이 싫지 않다.

중대주번사령을 명받은 날이었다. 피엑스 앞을 지나다 보름달대여섯 봉지를 사들고 나오던 김 일병과 마주쳤다. 임 하사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겁니다. 근무 교대 때 임 하사와 나눠먹을 참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박 상병에게는 사전 허락을 받아둘 거라고 했다. 한껏 들뜬 김 일병의 어깨를 투닥여주며 대공 초소 야간경계근무 편성표를 기억해보았다. 24:00 ~ 02:00 임상수 최창호 02:00 ~ 04:00 박철영 김천석. 임 하사가 보름달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긴 했지만 굳이 시시비비를 따질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밤이 깊도록 상황실에 틀어박혀 있자니 사지가 뒤틀렸다. ‘보름달을 나누고 있을 김 일병과 임 하사가 궁금하기도 했다. 얼추 시간 맞춰 중대 상황실을 나섰다. 누가 물으면 순찰 중이라고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산 정상에 위치한 초소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급했다. 하지만 앞산 산마루에 걸린 달빛 덕분에 그다지 힘에 부치지 않았다. ‘보름달봉지가 내딛던 발길에 뭉개졌다. 길옆 숲으로 몸을 낮추며 귀를 세웠다. 초소로부터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함과 비명소리가 뒤섞인 듯 했다. 육중한 무언가가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갈참나무를 움켜잡으며 눈을 치켜떴다. 바로 위, 비탈을 짚고 바둥거리던 김 일병과 눈이 마주쳤다. 달빛을 업은 눈언저리가 어둡고 깊었다. 통증이 몸을 뚫고 지나갔다. 등짝이 욱신거리더니, 영산홍 꽃잎이 작달비가 되어 눈 속으로 쏟아졌다. 김 일병이 고개를 뒤틀며 입술을 달싹였다.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들리지 않았다. 가슴이고 팔다리고 요동쳐대는 통에 옴짝할 수도 없었다. 턱을 움츠려 바닥으로 엎드렸다. 웃자란 풀대들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몸 구석구석에서 찢어질 듯 붉은 꽃물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김 일병이 팔을 뻗는가 싶더니 한 순간, 그가 있던 자리에 달빛만 가득했다. 오줌을 질금거리며 산비탈을 굴렀다.

신열에 들떠있던 중에 김 일병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임 하사와 박 상병, 최 이병 모두 자살이라고 증언했다. 혼자 몰래 먹을 욕심이었는지 빵을 허리춤에 잔뜩 숨겨왔다고 했고, 임무교대 중에 들통이 나자 빵을 짓뭉개며 난동을 부리더라고 했다. 그들은 또, 느닷없이 임 하사의 총을 뺏어 제 머리에 겨누더라며 말리고 자시고 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했다. 피엑스 앞에서 마주친 김 일병의 표정이 눈에 밟히는 게 왠지 불편했다.

수없이 망설이다, 도림 대밭을 파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소리쳤다는 복두장이의 심정으로 아버지를 찾아갔다. 맥없이 굴다 내 꼴 나지 마라. 열에 들떠 휘청대는 내 꼴에 아버지는 코웃음부터 쳤다. 맥없이? 드잡이도 마다않을 작정으로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십 수 년째 어깨를 벗어나지 못한 상사 계급장이 내 팔을 가로막았다. 행정하사관 시절 분실한 대외비서류에 발목이 잡혀 준위진급 심사에서 수없이 탈락되던 설움이 내 가슴을 떼밀었다. 니 앞가림이나 잘 하셔. 아버지가 입술을 비틀며 웃음을 흘렸다. 내 허튼 수작에 짓뭉개진 영산홍 꽃잎들이 반란처럼 솟구쳤다. 무릎 아래가 잘려나간 것 같았다. 하루라도 빨리 군 울타리를 벗어나는 길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쥐었던 주먹을 풀었다.

임 하사 등의 증언을 뒤집을 만한 증거도, 증인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 또한 소대장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밖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김 일병의 사물함은 지체 없이 비워졌고, 새로 입소한 이등병의 물건들로 채워졌다.

-천석 씨 어머니는 국방부로, 사단본부로, 부대로 뛰어다니셨어요.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냐시며 유골상자를 품에서 놓지 못하셨고요. 그런데 여기 가면 저기로 가봐라, 저기로 가보면 우린 모르는 일이다, 발뺌만 해대는데. 군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적도 여러 번이었어요. 무단침입이라나 공무집행 방해라나. 깡촌에 살던 촌부가 그리 돌아다니자니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어요. 인석 씨가 집안 살림이며 농사일을 도맡아야했어요. 결국 학교도 그만 뒀지요. 나 역시 천석 씨의 사인을 인정할 수가 없었어요. 공부를 중단하고 천석 씨 어머님을 따라다녔지요. 하나밖에 없는 딸이…… 울 엄마 아버지, 아마 나 때문에 일찍 돌아가셨을 거예요.

담배를 비벼 끄는 순정의 손끝이 흐느적댄다. 문산 행 버스에 오르며 피워댔던 담배 맛이 이랬을까. 담배를 발끝으로 짓이긴다.

순정이 만나줄 것을 청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위병소 앞에 버티고 서서 나를 찾아댔다. 소대원들 모두가 김 일병으로 보였다. 공기가 모조리 빠져나간 듯 호흡이 가빴다. 임 하사와 박 상병, 최 이병을 사단장 발밑에 내동댕이치는 꿈에 시달렸다. 전출 신청서를 냈고, 문산 근처의 수색대로 전출이 됐다. 훈련과 규칙이 엄격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부대였다. 순정이 지키고 서있는 위병소만 아니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남겨진 의무복무 기간을 지워나가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전역을 했고, 사단장의 추천으로 국영방송국 사무직에 특별채용이 되었다. 군인들이 판치는 시절 덕분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지만 시치밀 뗐다. 아버지는 자식을 통해서나마 이루려했던 장교로의 진입이 좌절된 것을 못 견뎌하는 눈치였다. 결국 상사 계급장을 떼지 못한 채 전역했고, 당신을 마지막으로 담아주었던 부대 앞에 세탁소를 차렸다. 들고나는 군인들에게 시비나 붙이며 하루하루를 견디다 재혼도 했다. 아버지야 남은 삶을 어찌 채우든 내 알 바 아니었다.

-천석 씨 어머님이 쓰러지셨어요. 울화병이라는데, 정신분열 증세까지 보이는가 싶더니 유골을 품에 안은 채 세상을 놔버리셨어요. 동네 어른들이 나서서 전통 염으로 갈무리해 드렸어요. 향탕으로 망자의 몸을 씻긴 다음 수의를 입히고 연지와 곤지도 찍어줬어요. 새로 시집보내는 거라나요. 머리카락과 손발톱을 잘라 베로 만든 조발랑에 넣었고요. 입에는 불린 쌀과 구슬 그리고 엽전 세 개를 넣어드렸지요. 반합이라고, 배곯지 말고 편한 길 가라는 배려라네요. 코와 입, 귀를 고치솜으로 막고 눈은 명목으로, 귀는 명주로 지은 덮개를 씌워드렸어요. 편에 이어 엄과 악수, 풀솜을 턱밑에 매어주는 보공을 마치고서야 횡포와 장포로 시신을 감쌌어요.

순정이 한 마디 한 마디 서둘지 않는다. 뛰어넘지도 않는다.

-소렴에 이어 대렴 그리고 명주나 광목으로 관을 싸는 추의까지, 경건한 향연 같았어요. 어떻게 살았든 또 어떻게 죽었든,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이를 위해 남아있는 이들이 베풀어주는 향연 말이에요. 관에 누운 어머님을 봤어요. 그토록 편한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어요. 어떻게 죽었는지 알 길 없는 천석 씨, 저리 곱게 단장시켜 편한 길 가게 해줄 수만 있어도…… 가슴이 문드러질 것처럼 아프데요.

그때 그 자리를 지키는 듯 순정이 호흡까지도 정성을 다한다. 행여 방해가 될까 싶어 침을 넘길 수도 없다.

-천석 씨와 함께 홍천강에 뿌려드리고, 돌아가시면서 신신당부하셨거든요, 사십구재까지 마친 뒤였을 거예요. 인석 씨가 절 찾아왔어요. 형한테 편진 왜 보냈냐고 악을 쓰데요. 나 때문에 형이 죽은 거라고, 아버지 어머니도…… 어깃장을 놓더라고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인을 밝혀내고 말 거라면서, 다시는 자기네 집일에 관여 말라는 거예요. 날 보는 것만으로도 미칠 거 같다나요. 어깃장인 줄 알겠는데, 그 심정이 어떨지. 막무가내로 우길 수만은 없더라고요. 그러마 했지요. 몇 날 며칠을 열에 들 떠 지냈는지 몰라요.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관에 누운 어머니가 천정을 빙빙 도는데, 그러다 천석 씨로 변했다가, 하늘을 뒤덮은 먹장구름처럼 와르르 쏟아지다가. 천석 씨한테 덤벼들어 왜, 어떻게 죽은 거냐 꺽꺽거리기도 하고. 아무한테도 말 안할 테니 나한테만 일러달라고 귓속말을 건네다, 무슨 사람이 대꾸도 없냐고 성질을 부리다가.

호흡이 가쁜지 순정이 턱을 바닥으로 떨군다. 발바닥이 근질거린다. 뭉개진 담배꽁초를 걷어차 보지만 헛발질에 그치고 만다.

-하루는 꿈인 양, 발악인 양, 내 손으로 천석 씨를 향탕으로 씻긴 다음 수의를 입히고…… 횡포와 장포로 감싸주고…… 그날 모처럼 깊은 잠을 잤던 거 같아요.

허물어지려는 순정의 어깨를 타고 햇살 자락들이 넘실거린다. 눈살을 있는 대로 찌푸려 튕겨져 나온 짜투리 햇살을 따돌린다.

-읍내 장의사를 찾아가 허드렛일부터 배워나갔어요. 주변 사람들이 수근거리대요. 제 정신이 아니라느니, 죽은 사람 혼백이 씌었다느니, 험한 말까지 들어야 했어요. 요즘은 장례지도과가 여럿 생긴 데다 여자 염사도 흔해졌지만 그 시절이야. 천석 씨 생각만 했어요. 염하는 이들 모두 천석 씨려니, 이 세상 짐일랑 말끔히 털어내고 다른 세상으로 편한 걸음 내딛으라는 간절함을 담아 몸을 씻기고, 옷을 입히고, 꽃신을 신기고.

순정의 목소리가 햇살에 녹아들며 자디잘게 흔들린다.

-염을 할 때만큼은 아픔도 슬픔도 느낄 겨를이 없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목포로 광주로 그러다가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까지 가게 됐고요. 장례지도학 석사학위도 받게 됐어요.

순정이 허리를 잔뜩 구부리며 얼굴을 감싸 쥔다. 에구붓한 등이 나비가 되지 못한 애벌레처럼 허망해 보인다. 내 지난 세월이야말로 꼭두각시놀음에 불과했던 건 아닐까, 자괴심이 스멀거린다. 참았던 침을 삼키며 담배꽁초를 냅다 걷어찬다.

언제까지나 유신사관생도라는 비웃음을 꼬리표처럼 달고 살순 없었다. 남들보다 먼저 출근을 했다. 점심시간을 허술하게 흘리지도 않았다. 삼 년의 독학 끝에 야간대학에 입학했고, 과 수석도 놓치지 않았다. 결혼을 했고 아들도 낳았다. 그렇지만 불량품 신세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을 늦출 수는 없었다. 휴일에도 출근을 서둘렀고, 윗사람과의 술자리도 빠지지 않았다. 해가 보태질수록 아내의 불만은 이스트를 과다하게 넣은 빵처럼 부풀어갔다. 있으나마나한 아빠하고 사느니. 아내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 녀석을 외삼촌 네가 살고 있는 캐나다로 유학 보냈고, 뒷바라지나 해야겠다며 지난 해 슬그머니 친정식구들 곁으로 가버렸다.

-이상하지요. 그러면서도 천석 씨가 어떻게 죽어갔는지는 알아야겠다는 누망은 조금도 사그라질 줄 모르는 거예요. 그날이…… 천석 씨 기일이었는데, 인석 씨한테 전화가 왔어요. 인석 씨나 나나 일부러라도 연락을 피하고 살았거든요. 농사일까지 팽개치고 군가협 주변을 맴돌고 있다면서 대뜸 꺽 꺽 목을 놓아 울더라고요. 형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아야 죽어도 죽을 거 아니냐면서, 딱 죽었음 싶다나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르면서 한참을 달랬던 거 같아요. 그런데, 그러면서 나 역시도 남은 생을 저당 잡혀도 기꺼울 거 같은 게, 더 늦기 전에 천석 씨 곁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인석 씨 말처럼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고 죽어도 죽어야겠다는. 두려울 게 뭐 있겠냐는. 마침 이 병원에서 장례지도사 구인광고를 냈더라고요. 앞뒤 안 가리고 지원할 밖에요. 강산이 두 번 바뀌고서야 천석 씨를 거둬 간 이곳으로 올 수 있었던 거지요.

순정이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쉰다. 치열한 전투를 끝낸 병사의 숨소리와 다르지 않다.

-자릴 너무 오래 비웠네요.

순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운 주머니를 뒤진다.

-이곳에 오느라 정리를 하다보니, 강변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진즉 드렸어야 했는데.

순정이 사진 한 장을 내민다. 벽에 두었던 머리를 떼 내며 바지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인화지 모서리가 손톱 밑을 찌른다.

-따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는지요.

순정의 목소리에 거침이 없다. 내 심사를 헤아려 달랠 속셈으로 순정을 찾아간 게 아니다. 아버지를 갈무리해 준 것까지 모른 척 할 수 없었을 뿐이다. 차라리 똥바가지를 들이붓지. 그랬더라면 세월을 핑계 삼아, 화인처럼 각인된 치부를 토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몸을 관통하는 통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도 같다. 순정은 그러나 제 이야기를 눈비음삼아 자신이 짊어진 소금 짐을 떠넘기려하고 있다. 대답을 대신해 순정에게 손을 내민다.

-발인 때 뵐게요.

체증을 덜어낸 순정의 눈이 더없이 헐거워 보인다. 걸음을 서두는 뒷모습을 지켜보고 싶지 않다. 나뭇잎을 희롱하던 햇살이 온데간데없다.

일분일초도 홍천에 더 머물 자신이 없다. 순정이 앉았던 돌에 걸터앉으며 휴대폰을 켠다. 음성 메시지 알림음이 울린다. 차장님, 아니지 이젠 부장님이시지. 김 과장이 장난기를 주체 못하는 악동처럼 군다. 인사부 동기한테 들은 얘긴데요. 조금 전에 인사발령이 마무리됐답니다. 공식적인 발푠 내주 월요일이고요. 김 과장의 목소리가 놔버린 풍선 마냥 자유분방하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처리돼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일러둘까 망설인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한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몸을 앙당그리며 눈꺼풀을 놓아준다. 손톱 밑이 거슬린다.

 

해가 길찬 산허리에 바짝 기대어 있다. 성수를 따로 불러내 회사에 일이 생겨 당장 서울로 가야할 것 같다고 둘러댔다. 있으나마나한 나보다는 자네가 빈소를 지켜야 문상객들도 편하지 않겠냐는 변명도 보탰다. 성수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면서도 돈 봉투를 건네는 팔을 붙잡지는 않았다. 상황을 보고 다시 들르든지 하겠다는 헛말을 흘리며 주차장으로 향하는 뒤통수가 따가웠다. 전조등을 켠 군용트럭 여러 대가 나를 앞지른다. 서울 99km 양평 46km. 두어 시간이면 족할 길이 막막키만 하다.

내리막 끝머리에 무인카메라가 달려있다. 적을 따돌리려다가 아군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기분이다. 액셀러레이터에 둔 발끝을 쭈뼛거리며 눈을 지릅뜬다. 해를 등에 진 렌즈가 비웃 듯 나를 쏘아본다.

간지럼 같은, 꾹꾹 누른 울음소리를 찾아 안방 문을 열었다. 양손을 뒤로 묶인 채 벽 모서리에 처박힌 엄마 그리고 안테나처럼 생긴 지휘봉으로 엄마 뱃살을 비틀어대는 아버지의 등. 커튼 틈을 비집고 들어온 달빛에 드러난 안방 풍경은 일곱 살짜리 눈에 담기엔 힘에 부쳤다. 앓아누워서도 긴팔 블라우스와 발목까지 뒤덮는 치마를 벗을 줄 모르던, 젖 냄새가 그리워 품으로 파고드는 나를 무릎베개로만 다독거리던, 팬티 한 장 걸치지 못한 엄마가 낯설기만 했다. 아버지의 낮잠을 피해 뒷산에 올랐다 심심풀이 삼아 짓뭉개버린 영산홍 때문이었을까. 생채기며 피멍으로 목 아래 어느 한 곳 성한 데라곤 없는 알몸이 설움을 이기지 못해 찢어질 듯 붉은 영산홍 꽃잎으로 뒤덮인 것 같았다. 내 허튼 수작에 짓뭉개진 꽃잎들을 떼 주고 싶었다. 크르렁거리는 널찍한 등을 밀치며 엄마에게 달려들었다. 우두머리로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을 침범당한 짐승이 그럴까. 턱살이 심하게 일그러지더니, 아버지가 내 등짝을 냅다 걷어찼다. 엄마 허벅지 사이로 꼬꾸라졌다. 발길질이 이어졌다. 지휘봉이 날아들었다. 엄마가 등을 옹그려 나를 감싸려 몸부림쳤지만 통제능력을 상실한 발길질과 매질을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엄마 얼굴이 이마 위로 겹쳐졌다. 머리카락 낭자한, 땀인지 눈물인지를 줄줄거리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켜켜이 어두운 버캐 같은……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관통하는 통증이었다. 주춤하던 알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영산홍 꽃잎들이 허물어져 내렸다.

-모른 체 하지.

달싹이는 입술에서 검붉은 꽃물이 묻어날 것 같았다.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을 거란 예감에 시달리다 어느 결에 정신을 잃었다. 다음 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정신이 들었고, 엄마가 목을 매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 놓아 울 수조차 없었다. 어른들 틈에 끼어 강물에 뿌려지는 엄마를 지켜보았을 뿐이다. 아버지는 그날 밤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을 입 가득 문 사람처럼 나를 불편해했고, 여차하면 주변사람 아무한테나 주먹질을 해댔다. 엄마 살아생전, 남들 앞에선 큰소리 한 번 낼 줄 모르던 아버지였다. 모른 체 하지. 엄마가 흘리고 간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 알 것 같았다. 여봐란 듯 바로 선 밥풀떼기 계급장을 달고 말테다고 결심했다.

따로 시간 좀 내달라고? 더없이 헐겁던 눈을 밀치며 있는 힘껏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는다. 발바닥이 저릿하다. 진둥한둥 담배를 피워 문다. 연기가 훑어 내린 내장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어서 오십시오. 경기도 양평군입니다. 오롯이 서있던 표지판까지 합세해 등을 떠민다.

터널이 보인다. 석 대의 견인차가 꽁무니가 빠지도록 달려간다. 차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브레이크 등을 켠다. 애오라지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얹는다. 차간거리가 좁혀지면서 비상등 불빛이 도로를 메운다. 사이렌을 울리며 경찰 차 두 대가 달려가더니 석 대의 구급차가 그 뒤를 따른다. 내처 달리려던 욕망이 혼비백산 도망친다. 고개를 있는 대로 수그리며 기어를 P 위치로 옮기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운다. 인화지 모서리가 오른쪽 허벅지를 찌른다. 주머니에 든 사진을 꺼낸다.

군복 차림의 두 젊은이가 강 너머 노을을 배경삼아 어깨를 걸고 서있다. 암띠게 웃고 있는 중위계급장의 젊은이가 낯설다. 산 정상의 대공초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나는 모른다. 고함과 비명소리가 뒤섞인 소음이 내가 들은 전부다. 아주 잠깐 마주친 김 일병의 눈이 내가 본 전부다. 굳이 시비를 가린다면 한 순간, 기억을 관통하는 통증에 떠밀려 산비탈을 굴렀을 뿐이다.

-오줌까지 질금거리던 심정을 알기나 해?

일등병 모자를 눌러 쓴 젊은이를 향해 목청을 돋운다.

-이제껏 내가 얼마나 아등바등 살았는데. 아들 녀석 유학비용도 날로 부담인 거 모르지?

차안에 갇힌 목소리가 우왕좌왕 어쩔 줄을 모른다. 사진을 움켜쥐며 꼼짝 않는 브레이크 등을 노려본다. 점멸 하는 비상등 불빛을 따라 표지판의 숫자들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턱을 끌어당기며 목울대로만 간신히 웃는다.

용문 터널 못미처에서 시작된 정체는 양평을 지나면서 풀리는 듯 보이더니 퇴근시간과 맞물린 6번 국도는 정체와 지체를 반복하며 어둠에 익숙해져 갔다. 어둠 멀리로 팔당대교가 보인다. 차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속도를 높인다. 아버지를 갈무리하던 순정을 마저 털어내며, 질세라 속도를 높인다. 이십 년도 훨씬 지난 일 따위로 병목지점을 겨우 벗어난 앞날을 저당 잡힐 순 없잖아? 사진을 되알지게 비튼다. 손바닥에서 전달된 통증이 심장을 압박한다. 창문을 연다. 열기를 미처 삭이지 못한 강바람이 후끈하다. 손아귀를 풀려는 찰나, 어둠에 갇혀있던 직육면체 금속체가 앞 유리께로 덤벼든다. 서천꽃밭을 건너가던 어머니의 눈이든, 김 일병의 눈이든, 더는 겁날 게 없다.

모른 체 했을 뿐이라고. 알아?

어둡고 깊은 렌즈로 이마를 바투 세운다.

차마 토해내지 못한 이미지들이 뒤엉키며 지어낸……

고형화된 침묵이 아우성친다. 어찔하다. 차체가 휘청하더니 사방에서 클랙슨 소리가 날아든다. 핸들을 바로 잡으며 렌즈를 치 떠본다.

현실을 부대낄 용기가 없어 차라리 외면하고 만.

내 눈이다. 귓불이 달아오르며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다. 어깨를 젖혀 호흡을 다듬는다.

중위 계급장의 젊은이에게 어깨를 맡긴 젊은이를 내던질 수가 없다. 순정의 모습을 내던질 수가 없다. 진실이 무엇이든 그 다음은 순정의 몫으로 남겨두면 그만이다. 액셀러레이터 페달에 얹었던 발을 떼며 서둘러 창문을 닫는다. 헛손질에 지친 강바람이 줄행랑을 친다. 찢어질 듯 붉은 영산홍 꽃잎이 바람에 업혀 강 저편으로 멀어진다. 아버지에게 이곳 짐일랑 훌훌 벗고 마지막 길 편안하시라고, 어머니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귀엣말이라도 건네야겠다. 브레이크로 옮겨가는 발목을 재촉한다. 비상등을 켜고, 핸들을 있는 대로 돌리며 중앙선을 넘는다. 마주 달려오던 차들이 클랙슨을 울려댄다. 급히 핸들을 푼다. 느닷없는 백팔십도 회전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차체가 간신히 제자리를 찾는다.

홍천 72km 양평 28km

초록색 바탕의 표지판을 채운 흰 글자가 선명하다. 자유분방하던 김 과장 목소리를 떨쳐낸다. 아들 녀석의 무덤덤한 얼굴을, 아내를 떨쳐낸다. 오롯이 순정만을 담은 채 마음이 앞서 홍천으로 달린다.

곧은 길 멀리 철 구조물에 매달린 무인카메라가 보인다. 천천히 그리고 깊숙이, 앞 유리로 턱을 붙여 카메라 렌즈와 눈을 맞춘다. 내 눈과 눈을 맞춘다.

김 일병의 눈과 마주친 찰나, 순정을 독차지한 그에게 품었던 일말의 감정까지도 게워내야 하는 거 아냐?

내 눈이 내 눈을 파고들며 속닥인다. 헛기침으로 대꾸하며 액셀러레이터 페달에 힘을 싣는다. 무인카메라를 지난다.

 

 

김영주 - 1959년 서울 출생. 건국대 대학원 화학과를 졸업하였고 2003문학사상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였다. 장편소설 떠다니는 사람들자산 정약전, 책쾌』『세렝게티 소시지나무가 있으며 동화선생님, 길이 사라졌어요순이, 빨간수염 연대기, 운영전, 가나 오투암의 여왕 페기린 바텔스, 광대 달문, 공저못다 이룬 꿈도 아름답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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