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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소설/김세인/웬 아이가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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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소설
김세인
웬 아이가 울고 있었다
“땡, 땡그르르……!”
사나운 돌개바람이 불어와 세숫대야를 수채 쪽으로 패대기쳤다. 흙먼지가 말려 올리다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나는 흙먼지 세례를 받아서 눈앞이 뿌예졌다. 눈을 비비고 있는데, “딱, 따르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가슴이 사정없이 뛰었다. 소리 나는 쪽을 살펴보니, 웬 스님이 저수지 둑 위에서 눈을 비비고 있었다. 어쩌면 울고 있는 지도 몰랐다. 그쪽엔 원래 무논이 개펄처럼 펼쳐져 있던 곳인데…… 먼지가 너무 지독해서 사물의 경계가 모호했고 정신까지 몽롱해졌다. 펼쳐진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됐다.
“딱, 따르르르…… 딱, 따르르르……!”
바람결을 타고 목탁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목탁소리는 파문을 일으키며 나를 아주 멀고 희미한 기억 속으로 밀어 넣었다.
“형부와 처제가 상피 붙었다네. 애를 낳아 놓고 저수지에 뛰어들었다네. 지나가던 스님이 건져 놓았다네. 아이가 강둑에서 울고 있었다네…….”
“그게 아닐 수도 있지. 처녀가 땡중을 좋아한 거지, 땡중은 산속으로 튀고 아이만 남게 된 거지.”
사람들이 몰려와서 악머구리처럼 함부로 떠들어댔다. 엄마는 쫓기듯 나를 업고 징검다리를 건너서 저수지 쪽으로 갔다. 저수지 둑 위에서 웬 아이가 울고 있었다. 나도 따라 울었다. 엄마가 두려움에 떨면서 나를 내려서 오른쪽 무릎에 올려놓고 웬 아이를 왼쪽 무릎에 올려놓았다. 엄마가 가슴 섶을 풀어헤치고 왼쪽 아이에겐 왼쪽 젖을 오른 쪽 아이에겐 오른 쪽 젖을 먹였다. 웬 아이와 나는 엄마 무릎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반사적으로 서로의 손을 잡았다. 손에서 쥐가 나도록 꼭 잡고, 기를 쓰고 젖 물을 넘겼다. 엄마가 젖가슴을 여밀 때 우리들은 잡은 손을 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나를 먼저 업어 포대기로 단단히 묶고 나서 웬 아이를 안고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복! 복! 복!”
어디선가 멧비둘기울음 같은 곡조가 들려왔다. 엄마가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가거라, 슬픈 영혼아.”
엄마가 웬 아이의 발끝이 엄마 가슴 쪽으로 오도록 똑바로 안아 들더니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웬 아이야. 네 이름은 이제부터 승복이다.”
“그 애의 이름은 승복이라네. 저수지 둑 위에서 울던 간난쟁이라네. 제 에미를 황천길로 보내고 아이는 이름을 얻었다네.”
풍문은 또 다른 풍문을 낳는 습성이 있었다. 저수지에서부터 발생된 풍문은 먹장구름처럼 웬 아이와 내 주변을 덮었다. 엄마는 풍문을 피해, 저수지가 있는 동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이 산골 외딴 집으로 숨어들어 왔다.
저수지가 있는 동네에서 나는 이미 출생신고를 마친 상태였으므로, 승복이는 태어난 제 해를 넘겨서 출생신고를 했다.
“잘 들어. 너는 이제부터 승복이 누나야. 너는 승옥이 동생이고.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지?”
그때부터 나는 나를 잃었다.
내가 앉을 자리와 설 자리에는 언제나 승복이가 있었다. 그때마다 승복이의 눈에서 ‘내 자리에 왜 네가 있는데?’ 하는 표정을 수도 없이 읽었다. 승복이는 말로는 누나라고 하면서 제 기량을 맘껏 발휘하며 무럭무럭 자랐다. 제 또래보다 덩치가 월등히 컸고, 말귀도 잘 알아들었고, 뭐든 앞섰다. 자치기도 제일 멀리 나가고 딱지도 제일 많이 땄다. 사람들은 승복이 나이가 진짜 나이 맞느냐고, 진짜 아들 맞느냐고, 아버지는 왜 한 번도 집에 오지 않느냐고 시비를 걸었다. “애들 아버지는 객지로 돈 벌러 갔다”고 엄마가 말했지만 그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누가 퍼트린 말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아버지가 감방에 갔다는 말도 있고 스님이 되었다는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아버지가 객지로 돈 벌러 갔다고 하는 엄마 말을 믿었다. 엄마는 실제로 아버지가 송금한 돈을 찾으러 읍내 우체국에 다녀온 일이 가끔 있었다. 그날도 엄마는 읍내로 볼일을 보러 나갔다.
나는 일학년이고 오후반이었다. 엄마는 외출을 하면서, 큰언니한테 조퇴를 하고 와서 승복이 점심을 챙겨 주고 집을 보고 있으라고 했고, 큰언니는 작은 언니한테 그 일을 떠맡겼다. 학교를 땡땡이칠 건지 승복이를 데리고 학교에 갈 건지는 작은 언니 기분에 달렸다. 작은 언니가 학교에 가는 쪽을 택한 다면 우리 셋이 나란히 가게 될 것이고, 작은 언니가 땡땡이치는 쪽을 택한 다면 나는 혼자 학교에 가게 될 터였다.
바람은 잦아들고 있었다.
작은 언니가 가마니때기를 한 장 가져다가 사립문 앞에 깔아놓으며 자리를 잡았다.
“너네도 들었지? 목탁 소리…….”
나와 승복이는 서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에 스님 첨 온다. 그치?”
정말 그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엄마가 당부하던 말을 생각해 냈다.
“우리 집 문전에 와서 동냥을 달래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쌀을 한 사발 퍼다 줘. 기왕에 주는 거, 공손하게 줘. 그래야 복 짓는 거야.”
“엄마, 복이 뭐야?”
“불행한 일 없이 만족하며 사는 거."
작은 언니가 물었고, 엄마가 대답해줬다. 이어서 큰언니가 물었다.
“승복이 이름에도 복자가 들어가는데? 음……승복이 복자는 다시 돌아올 복(復)자 인데?”
그 말을 듣자, 내 귓가에 “복! 복! 복!” 하는 환청이 들렸다. 엄마는 깊은 생각을 하며 먼 데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스님이 가까이 왔다. 작은 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는데……?”
스님도 마치 구면이라는 듯이, 작은 언니를 보고 싱긋이 웃었다. 작은 언니가 엉겁결에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나와 승복이도 일어나 목례를 했다.
스님이 우리들 한 사람, 한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른들이 안계신 모양이로구나.”
스님의 말은 점잖고 진중하게 들렸다.
“네, 엄만 장에 가시고 아버진, 아버지는…… 안계십니다, 스님.”
작은 언니가 말했다.
어른들께 말할 땐 ‘~합니다’라고 하는 게 공손한 태도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렇구나. 헌데 넌 왜 학교엘 가지 않았지?”
“남동생을 지키기 위해섭니다.”
“허허, 그래? 재산을 도둑맞을까봐 집을 지키는 건 봤어도 다 큰 아일 지키기 위해 누이가 학교엘 가지 않다니, 넌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냐?”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면 되긴 되는데…….”
스님이 잠시 염주를 굴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방법은 생각해보지 않았니? ……일테면 말이다. 남동생이 없으면 좋겠단 생각, 그러면 홀가분하게 학교에 갈 수 있을 텐데?”
승복이가 겁먹은 표정으로 스님과 작은 언니를 바라보았다. 작은 언니가 승복이를 안아서 토닥여 주었다.
스님은 눈을 지그시 감고는 우리 집을 향하여 염불을 외우기 시작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엄마는 사월 초파일에나 한 번씩 나들이 삼아 절엘 다니지만 겨울밤 잠이 안 올 때면 불경이나 염불을 음송했다. 그날 스님이 음송한 염불도 그 중 하나여서 듣기에 좋았다. 작은 언니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오른쪽 뒤꿈치를 까닥거리자 승복이가 두 손을 포개어 ‘다마’를 흔들었다. 유리구슬 부딪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싸알싸알싸알” 리듬을 탔다. 그 박자에 맞춰 내 고개가 저절로 끄떡거려졌다. 스님이 ‘즉설주왈’에서 한 호흡을 멈췄다가 다시 외울 때, 우리들은 그 호흡을 놓치지 않고 함께 합송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으하……”
스님은 모지사바하에다가 후렴구처럼 ‘으하’를 더 붙였다. 그 소리가 너무나 처량하게 들려서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고 눈물이 났다. 염불을 그렇게 감동적으로 외워줬으니 동냥을 드려야 하겠는데 엄마는 오려면 아직 멀었다.
작은 언니가 물었다.
“스님, 찐 고구마라도 드릴까요?”
스님이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 젓고는 돌아섰다.
“어? 왜 동냥을 안 받아 가지? 땡중인가부다 그치?”
승복이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스님이 가던 걸음을 멈춰 섰다.
“얘야, 동냥이라고 하지 말고 다음부턴 시주라고 하련?”
인자한 표정으로 타일렀다.
“네, 스님.”
작은언니가 냉큼 대답을 하고는 승복이를 발로 찼다. 승복이가 알아듣고 목례를 했다. 스님이 합장을 하면서 목탁을 두드렸다.
“나무아미타불 간셈보살 ……!”
“~간셈보살……!”
“~간셈보살……!”
작은 승복이가 스님의 간셈보살을 따라했다. 나도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여 간셈보살이라고 말했다. 스님이 자드락길로 내려가다 말고 돌아 서서 소릴 질렀다.
“바람이 차구나, 방으로 들어가렴!”
스님이 다시 목탁을 두드렸고 우리들은 일어나 합장을 했다.
“까악, 깍!”
올려다보니 미루나무 우듬지 까치집에서 까딱까딱 움직이는 까치가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하늘이 저수지 물빛처럼 새파래서 나는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까악 까악, 깍깍깍……”
까치의 울음소리가 허공으로 분사되었다. 허공에 떠 있는 저수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작은 언니가 나를 툭 치며 말했다
“반가운 손님이 오려나봐?”
‘손님은 전부 반갑지, 반갑지 않은 손님도 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봉당에서 신발을 찾아 신느라 작은언니와 몸을 부대끼던 큰언니가 퉁바리를 놓았다.
“신발이나 똑바로 신어, 바보야. 까치는 맨 날 울어.”
까치가 계속 울었고, 작은 언니가 큰언니의 몸을 미루나무 쪽으로 돌려 세우며 말했다.
“우리 집 쪽을 보면서 울고 있잖아, 봐봐.”
“학교 끝나거든 냉큼 와. 오늘은 목화를 딸 거야.”
엄마가 구정물을 끼얹듯이 작은 언니의 말을 막았다.
“배추도 묶어야 하고 들깻잎도 따야하고 할 일이 태산이야. 해는 점점 짧아지는데……그러니 학교 끝나는 대로 일찍 들 와!”
목화밭은 우리 집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산골짜기에 있어서, 엄마는 그 밭에 일을 갈 때면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택해서 우리들을 데리고 다녔다.
집 주변에는 보라색 쑥부쟁이가 한창이었다. 작은 언니가 사립을 나서면서 쑥부쟁이를 한 개 꺾어서 뱅글뱅글 돌리며 읊어댔다.
“나마리 동동 파리 동동, 나마리 동동 파리 동동 ……개암 따러 갈사람 여기 붙어라, 개암 따러 갈사람 여기 붙어라…….”
우리 동네에서는 잠자리를 나마리라고 했다. 나마리는 눈이 매우 좋아서 맨손으로 잡기 힘들다. 나마리를 잡기 위해서 들국화나 쑥부쟁이를 꺾어서 뱅글뱅글 돌리면 나마리가 그 위에 앉으려고 자기도 따라서 뱅글뱅글 돌 때도 있었다. 작은 언니는 일하러 가기 싫으니까 어깃장을 놓으려는 심보로 나마리 동동을 읊어댔을 것이다.
나는 목화밭에 끌려가는 게 싫어서 학교에서 좀 놀다 집에 돌아왔다.
마루에는 밥상보가 젖혀진 밥상이 놓여있었다. 반찬그릇 들은 함부로 뒤섞여 있었고 모둠 양재기는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보나마나 작은 언니가 밥을 먹고 그대로 내빼는 바람에, 어느 집 개가 마루로 올라와서 핥아먹었을 터였다.
나는 마루 끝에 벌러덩 누웠다. 배도 고프고 졸음이 쏟아졌다. 아침에 엄마와 작은 언니가 했던 말이 귀에 뱅뱅 돌았다.
“배추도 묶어야 하고 들깻잎도 따야하고 할 일이 태산이야. 해는 점점 짧아지는데…….”
“나마리 동동 파리 동동, 나마리 동동 파리 동동 …….”
마음은 작은 언니 쪽인데 머리에서는 엄마 일을 거들라고 시켰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큰언니가 왔다. 마루의 밥상 꼬라지를 본 큰언니는 부리나케 부엌으로 가더니 고구마와 땅콩을 씻어서 앉혔다. 불은 내가 때도록 시켰고 자기는 밥상을 설거지 하면서 저녁 준비도 해놓았다. 큰언니는 밤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일을 찾아서 해놓은 것이었다. 나와 큰언니가 부엌바닥에 빗자루를 깔고 앉아서 김치를 곁들여 고구마를 먹고 있는데, 큰언니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큰언니가 한 손에는 먹던 고구마를 든 채, 병아리처럼 고개를 쳐들고 입을 벌리고 눈을 껌벅껌벅 하고 있었다. 나는 냉큼 일어나 약솜을 찾아다 큰언니한테 주고 큰언니 손에 들려있는 고구마를 뺏어서 뜨물통에 넣어버렸다. 큰언니는 약솜으로 코를 틀어막고는 찐 고구마 땅콩을 소쿠리에 담아 보자기에 쌌고 주전자에 물도 담아서 부엌에서 나왔다.
큰언니도 마루 기둥에 등을 대고 기대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나도 그 옆에 가서 앉았다.
“언니 괜찮아?”
큰언니가 눈을 감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나, 목화 따러 갈게.”
큰언니가 어깨로 크게 한숨을 쉬면서 내 손을 가져다 만지작만지작 했다. 큰언니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큰언니는 읍에 있는 명문 중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읍에 방을 얻어서 자취를 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집안일을 거들 수 없기 때문에 엄마는 허락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큰언니가 좋은 중학교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엄마를 생각해보면 그 입장도 이해갔다. 큰언니가 나를 돌려 앉혀 놓고 머리를 새로 땋아주었다.
“언니!”
“음?”
“아냐, 암 것도.”
‘난 큰언니가 꼭 읍내 명문 중학교에 갔으면 좋겠다고’
이 말을 혀 밑에 감추고 일어서서 마당으로 나갔다. 큰 언니가 마당으로 내려서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후우! 목화 따기 차암 좋은 날씨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드높았다. 그렇게 근사한 날씨에 목화밭으로 끌려가다니, 내 기분이 땅바닥으로 흘러내리는 것 같았고 큰언니를 따라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엄마는 김장밭에서 배추를 묶고 있었다. 우리가 배추밭둑에 들어서자, 메뚜기들이 콩 타작을 할 때처럼 여기저기로 튀었다. 큰언니와 내가 메뚜기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그 꼴을 보고 엄마가 말했다.
“이렇게 한낮에 메뚜기를 잡으면 그게 잡힌다니? 메뚜기는 이슬이 내릴 때 잡아야 날개가 붙어서 잘 못 나르는 거야. 메뚜기가 니들을 잡겠다고 하겠다. 그나저나, 올해는 메뚜기가 풍년이네…….”
메뚜기는 잡는 것도 재미있지만 볶아서 반찬을 하면 고소하고 아주 맛있다. 큰언니도 도시락 반찬으로 메뚜기 반찬을 제일로 쳤다. 국물이 새지 않아서 그만이라고.
“배추는 이따가 묶고 목화나 따러 가야겠다. ……김장 배추통이 차야 메뚜기도 알이 통통하게 배는 거야.”
배추 밭에서 나온 엄마는 큰언니가 들고 간 소쿠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고는 목화밭 쪽으로 갔다.
나는 연신 메뚜기를 잡아서 손아귀에 우겨 넣으며 흘금 흘금 큰언니 쪽을 보았고 큰언니도 나를 살폈다.
“메뚜기 잡기는 아직 이르대도 그러네, 재들이 …… 어서 안 나오니!”
목화는 내 주먹만 하게 하얗게 벌었다. 엄마는 헌 한복치마로 만든 커다란 보자기를 허리에 둘러 보자기 주머니를 만들어 찼다. 보자기 한쪽 자락을 허리에 묶는다. 밑으로 흘러내린 자락을 접어 올려서 양쪽 허리에 동여맨다. 허리 쪽으로 손을 집어넣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서 주머니가 된다. 엄마는 큰언니와 나에게도 보자기 주머니를 만들어 주었다.
엄마와 큰언니가 양쪽 고랑을 잡아나가면서 따고, 나는 가운데 고랑을 맡아서 땄다. 활짝 피어난 목화솜은 살짝만 잡아당겨도 쏙 빠지지만 덜 벌어지거나 쭈그렁이는 잘 빠지지 않았고 솜 색깔도 오줌이 묻은 것 마냥 누리 틱틱 했다. 나는 활짝 핀 목화솜만 골라가며 땄고 엄마가 뒤 따라 오면서 내가 흘린, 잔챙이 목화를 땄다. 우리가 맡은 고랑을 다 나가지도 않아서 앞앞이 한 주머니씩을 땄다. 엄마는 흡족한 듯이 혼잣소리를 했다.
“올해엔 승복이 이불이나 한 채 마련해 줘야 겠는 걸? 아무리 남매지간이라도, 남녀칠세부동석인데, 이제 이불을 따로 한 채 꾸며 줘야지.”
날씨는 선선하고 바람은 삽상하게 불어왔지만 볕이 따가워서 목이 말랐다. 주전자에 떠다놓은 물은 햇볕에 데워져서 마셔도 갈증이 풀리지 않고 오줌만 마려웠다. 나는 오줌도 눌겸 쉬기도 할 겸해서 밭에서 빠져 나왔다. 큰언니와 엄마도 일손을 멈추고 내 뒤를 따라 나왔다. 우리는 야트막한 바위 뒤로 갔다. 볼일을 보고 나서 나는 바위 위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큰언니도 앞으로 와서 바위에 기대앉았고 엄마도 그 옆에 앉았다. 나는 기지개를 펴며 꺼이, 꺼이 하품을 해댔고 큰언니가 이어받듯이 하품을 해댔다. 그러자 엄마가 나를 꼬드겼다.
“노래나 한 곡 불러보던지.”
엄마는 일에 싫증을 내는 우리들을 붙들어 앉힐 방편으로 종종 노래를 부르게 시켰다. 큰언니 말에 의하면 그건 일종의 노동요였다. 큰언니는 진력내는 일없이 끝까지 남아 엄마 일을 돕는 편이었고, 작은 언니는 일감을 팽개치고 그대로 달아나버리기 일쑤였으므로 대체로 노동요는 내 차지였다. 내가 무슨 노랠 부를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가 노랠 불렀다.
“님이라 부르리까 당신이라고 부르리까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을 참고 사는……울어야만 됩니까”
엄마가 일절을 끝내고 이절을 부르려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데, 난데없는 휘파람 노래 소리가 들렸다. 방금 엄마가 부른 그 노래의 마지막 음절이었다. 우리는 너무나 놀라서 서로 바라보다가 동시에 침입자의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홍으로 물든 산 벚나무 쪽에 모르는 아저씨가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올 때 보니까 행색이 좀 특이했다. 그는 단풍 색깔의 챙이 넓은 모자를 썼으며 멜빵처럼 생긴 가방을 짊어졌고 워커처럼 코가 뭉툭한 가죽 신발을 신었다. 그가 우리 앞으로 다가와 한 쪽 무릎을 꿇어 내 눈 높이에 맞추고 말을 걸었다.
“귀엽게 생겼네? 몇 살?”
“일학년이요.”
나는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그 아저씨가 웃으면서 이번에는 엄마를 향해 고갤 살짝 수그렸다.
“약초 캐는 사람입니다. 놀라셨다면 사과드리죠, ……노래를 너무 잘 하시는 바람에 그만 …….”
약초꾼들은 등에 자루를 메고 앞에는 대부분 보자기 주머니를 차고 다닌다. 얼굴이 아주 새까맣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얼굴과 손이 고왔고 옷차림도 깔끔해 보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아저씨는 약초꾼이 아니다.’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선량한 사람 같아 보이긴 했다. 그가 개암을 한 주먹 꺼내서 내게 주었다. 그러자 큰언니가 답례로 삶은 땅콩 그릇을 내밀었다. 그는 선뜻 손을 못 대고 망설이고 있자, “애가 드리는 거니 드세요.” 라고 엄마가 말했다. 그는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땅콩을 한 주먹 쥐고 발길을 돌렸다. 그는 힘차게 휘파람 노래를 시작했다. 방금 엄마가 불렀던 님이라 부르리까, 곡조였다. 그가 산 벚나무를 한 번 쾅 치면서 꼬리를 감추었고 다홍으로 물든 산 벚나무 이파리가 팔랑팔랑 흩날렸다. 숲 속으로 아주 멋들어진 휘파람 소리가 유성처럼 긴 꼬리를 흘리며 사라지는 걸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도 다홍으로 붉게 물들어 갔다.
가을이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큰언니는 아직 안 오고 우리는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낯선 남자가 거칠게 휘파람을 불며 우리 집 앞을 지나갔다.
작은언니가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야, 저 사람 땅꾼 네 오두막에 산다. 며칠 됐어. 승복이하고 개암 따러 갔다가 봤는데 빨래 빨고 있더라? 근데 상이용사 같아, 할아버지도 아닌데 지팡이를 짚고 다녀.”
그가 가까이 다가 왔다.
“엄마 안 계셔요.”
작은 언니가 말했는데도 그 사람은 지팡이로 사립문을 탕탕 쳤다. 우리들은 너무 놀라서 서로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가 실실 웃으며 땅꾼 네 오두막으로 올라갔다.
“나쁜 사람 같아.”
작은언니가 말했다.
며칠 뒤의 일이었다. 엄마는 김장 무를 뽑으러 갔고 작은 언니와 나는 엄마 마중을 나갔다. 그런데 우리 밭에서 엄마와 어떤 남자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작은언니와 나는 막 뛰어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까 김장 무가 담긴 우리 광주리를 자기 지개에 실으려고 했고 엄마가 그걸 못하게 하자 무 광주리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작은 언니와 내가 달려가다가 말고 그 자리에서 으앙! 하고 울어버렸다. 땅꾼이 기겁을 하고 자기 집 쪽으로 내뺐다.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난 뒤의 일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승복이가 뒤에서 “누나 같이 가!” 하고 불렀다. 나는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잠시 서서 승복이를 기다렸다가 함께 왔다. 우리가 사립문에 들어서는데, 부엌문 앞에서 땅꾼과 엄마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땅꾼이 팔을 벌리고 서서 엄마가 가려는 방향을 막았고 엄마는 당황해서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승복이가 돌멩이를 주워서 던졌다. 돌멩이는 부엌문짝에 맞고 튕겨서 땅꾼의 무릎을 맞혔다. 땅꾼이 화난 얼굴로 자기 집으로 가버렸다.
엄마가 승복이 손을 붙잡고 말했다.
“잘 했어, 아주 잘 했어”
첫눈 내리는 날 우리 집에는 낯선 곳으로부터 편지 한 장이 배달되었다. 보낸 사람 이름이 씌어있긴 했지만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큰언니가 봉투를 뜯어서 읽어 내려갔다. 그 사람은 바로 가짜 약초꾼이었다. 그 뒤 간간이 편지가 왔고 엄마는 몰래 혼자 보고 아궁이에 태워서 흔적을 없애버렸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이제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큰언니는 그렇게도 소원하던 읍내의 명문 여중에 1등으로 붙어서 입학금이 해결 되었다. 뿐만 아니라, 육학년 때 담임선생님 댁에서 학교를 다니도록 편리를 봐주기로 했다. 승복이도 우리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승복이는 나 보다도, 또래 애들보다도 월등히 컸다. 우리 반 애들이 꼬치꼬치 물었다.
“진짜 네 동생 맞아?”
“니네 식구들은 전부 키가 작은 편인데 잰 왜 저렇게 커?”
나는 승복이가 짐스럽고 불편했다. 앞으로 학교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걱정되었다.
큰언니가 짐을 싸서 나가던 날이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고 엄마한테 말했다.
“승복이도 언니가 있는 집에 가서 그쪽 학교 다니면 안 될까? 애들이 자꾸 물어봐, 내 친동생 맞냐……”
엄마가 다시 한 번만 그딴 소리 했다가는 내쫓아 버린다고 하면서 나를 마구 때렸다. 내가 울자, 작은 언니와 승복이도 따라 울었고 큰언니도 불안하고 슬픈 얼굴로 집을 떠났다.
가짜 약초꾼한테서는 정기적으로 편지가 왔고 땅꾼은 노골적으로 엄마한테 접근했다. 땅꾼은 생선 냄새를 맡은 고양이처럼 점점 더 엄마 주변을 맴돌아서 우리는 점점 불안했다.
음침한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왔다. 엄마가 우리들의 봄옷을 장만하러 장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엄마는 승복이만 달고 다니지 말고 승옥이도 좀 챙기라고 당부 했지만 작은 언니는 여전히 승복이만 데리고 나가버렸다. 해질 무렵이 되자 땅꾼이 오면 어쩌나 불안해졌다. 무섭기도 했고 작은 언니를 골려 주고 싶어져서 쌀 항아리를 열어보았다. 겨우내 우리 식구가 퍼 먹은 쌀 항아리는 내가 들어가기 딱 맞을 만큼 쌀이 줄어 있었다. 나는 쌀 항아리에 들어가 짚방석 뚜껑을 닫은 다음 태아처럼 웅크리고 들어앉았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이었고 그들은 무언가를 가져다 우리 마루에 내려놓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얼 가져다 놓았을까, 궁금한 마음에 나는 방석을 밀어내고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섰다. 그들이 깜짝 놀라서 나를 바라봤다. 그들은 새 재봉틀을 들어다 우리 방에다 설치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재봉틀 장사인 것 같았는데 나머지 한 사람은 아무래도 그때 왔던 그 스님 같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나는 인사를 했다. 그 스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들은 금방 돌아갔지만 나는 골치가 아파졌다.
“칠칠이 뼁끼칠 팔팔이 곰베팔!”
“칠칠이 뼁끼칠 팔팔이 곰베팔!”
작은 언니와 승복이가 가짜 구구단을 외우며 들어섰고 그 뒤에는 엄마도 함께 오고 있었다.
나는 재봉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서던 엄마가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당황해 했다.
“우와, 우리도 재봉틀 생겼네?”
“근데 이거 어디서 났어? 엄마 오늘 이거 사러 간 거야?”
작은 언니와 승복이가 물었다.
“음. 아버지가 돈 부쳐 줘서 산거야.”
엄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엄마는 장짐도 풀지 않고 서둘러 저녁을 지었다. 작은 언니는 방 소제를 하고 나는 부엌에서 엄마를 도왔다. 엄마와 내가 저녁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와 보니 장짐이 풀어헤쳐져 있었다. 작은언니와 승복이가 밥을 먹다 말고 자꾸 상 밑을 내려다보았다. 가만히 보니 둘 다 새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승복이 것보다 내 운동화가 훨씬 더 낡았는데도 엄마는 내 것은 사오지 않았다. 큰언니 몫으로는 새로 나온, 보자기만한 생리대를 준비해 두었고 엄마는 머리를 지저 붙였다. 나만 국물도 없었다. 저수지에서 울고 있던 아이는 어쩌면 승복이가 아니라 내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이 들었다.
저녁 설거지를 마친 엄마는 다른 날보다 사립문 단속을 더 단단히 하고 들어왔다. 방문 고리를 걸어 잠그고 그 위에 숟갈총을 끼워 두었다. 그러고도 불안했던지 댓돌 위에 아버지 신발과 승복이 신발을 나란히 올려놓으라고 시켰다. 집에 남자가 없는 걸 알면 얕보고 도둑이 들어온다고. 엄마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땅꾼이었을 것이었다.
나는 잘 때, 이불을 머리 위에 뒤집어쓰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서 일어나려고 내가 막 이불을 걷어내려는데 덜그덕 덜그덕 하고 재봉틀 소리가 났다. 나는 가슴이 덜커덕 내려앉았다. 땅꾼 인가? 하다가 다시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지지난 장날에 우리 동네 어떤 집이 재봉틀을 새로 사왔는데 바로 그 다음날 도둑맞은 일이 있었다. 그 도둑이 재봉틀 대가릴 빼 가려고 우리 집에 온 것 같았다. 엄마가 돌아눕는 기척이 났다. 도둑도 그 소릴 들었는지 가만히 있었다. 엄마 쪽에서 기척이 없자 또다시 덜그덕 거렸다. 재봉틀대가리가 잘 빠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줌보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난 죽어라고 참았다. 이 일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엄마는 원래 겁이 많고, 만약 큰언니가 옆에서 잔다면 우리 둘이 힘을 합하여 도둑에게 이불을 뒤집어씌우고 다듬이 방망이로 두들겨 패서 잡을 수가 있겠는데……. 작은 언니가 겁이 없긴 하지만 워낙 잠버릇이 심했다. 한번은 엄마 얼굴이 요강인 줄 알고 엉덩이를 까면서 오줌을 눈 적도 있고 화로에 앉다가 화로를 깬 적도 있었다. 작은 언니를 설 건드렸다간 어떤 화를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일이었다. 초조 불안에 떨다보니 오줌이 쌀 것처럼 마려웠다. 팽팽한 긴장감이 방안에 고였다. 숨이 막혀버릴 것만 같았고 나는 오줌을 조금 지렸다. 갑자기 이불이 홱 젖혀지면서 엄마가 일어났다. 나도 이때다 하고 윗몸을 일으켰다.
“이런, 이런 내참 어이가 없어서……!”
엄마가 혀를 끌끌 찼다. 작은 언니 때문이었다. 분명히 내 오른쪽에서 머리를 맞대고 나란히 자고 있었는데 작은 언니가 재봉틀 속으로 들어가 재봉틀 발판을 베고 자고 있었다. 돌아눕거나 움직일 때마다 덜그덕 덜그덕 했던 거였다.
이튿날 집에는 등기 우편이 배달되었다. 보낸 사람 이름은 한자로 쓰여 있었고 엄마가, “너희 아버지이시다.” 그랬다. 엄마는 그 편지를 받은 후 지독한 몸살감기로 알아 누웠다. 우리에게 보여 주지 않아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엄마가 바라는 쪽이 아니라는 건 눈치 챌 수 있었다.
봄 방학을 맞아 모처럼 만에 큰언니가 왔다. 뒷산엔 연두색 새 잎이 새뜻하게 돋아났고 맑은 향기가 집안까지 들어왔다. 좋은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기한이 끝나서 이튿날 새벽이면 큰언니는 이제 읍내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스님이 온 건, 엄마가 막 저녁 준비를 마쳤을 때였다. 스님은 염불도 외우지 않고 목탁도 두드리지 않고 헛기침 몇 번으로 방문을 알렸다. 엄마가 나가서 목례를 했고 우리들도 나가서 합장을 했다. 엄마가 승복이를 보며,
“방으로 뫼셔라.”
라고 말했다. 승복이가 댓돌로 내려 설 때 스님은 이미 봉당으로 올라서는 중이었다. 스님과 승복이가 봉당에 나란히 서 있을 때, 내 머릿속으로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 이분이 우리 아버지시구나!’
큰언니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눈을 감았다.
엄마와 큰언니가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승복이와 겸상으로 스님 상을 차렸고 나머지 우리 식구들은 두리반 상에서 따로 먹었다. 그런데 승복이와 스님은 오랫동안 겸상을 해온 사람들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식사를 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이상한 일은 또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 스님이 일어서자 승복이도 일어섰다. 엄마가 윗방에서 승복 색깔의 보자기에 싼 짐을 승복의 품에 안겨 주면서 옷매무시를 고쳐 준 다음 등을 떼밀었다. 승복이 목례를 하면서 앞서서 마루로 나왔고 스님도 그 뒤를 따랐다. 스님이 신발을 신고 마당에 내려섰을 때 엄마는 봉당에 선 채로 합장을 하며 배웅을 마쳤고 큰언니는 사립문까지 따라 나갔다. 나는 마루 끝에 그대로 서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 보았다. 스님을 따라 가던 승복이가 산 벚나무 숲 속으로 들어가다 말고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작은 언니는 기절할 듯이 사립문에 주저앉아 울었다. 나는 다리가 풀려서 마루 끝에 쪼그리고 앉아버렸다. 엄마가 먼저 방으로 들어갔고 큰언니도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작은 언니는 목이 쉬도록 저녁 내내 울고 있었고,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요강단지처럼 마루 끝에 있었다. 밤이 이슥해지자 달이 떠올랐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 때마다, 마당에 검은 그림자가 비쳤다. 어떻게 보면 쥐새끼 같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나뭇잎 같기도 했다. 작은 언니가 콜록콜록 기침을 해서 내가 가마니때기를 가져다주었다. 작은 언니가 나를 가마니때기 안으로 끌어들였다. 마당에는 우리의 그림자가 비쳤다.
“부처님 같다, 그치?”
작은 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합장을 했다.
“간셈보살!”
“간셈보살!”
우리는 둘이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누웠다.
새벽에 일어나보니 윗방이 휑하니 비었고 윗목엔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작은언니는 밥상보도 열어보지 않아서 나도 아침을 굶고 학교에 갔다. 쉬는 시간에 승복이 짝꿍이 우리 교실에 와서 승복이가 왜 학교에 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책보를 싸가지고 집으로 와버렸다. 열이 나고 골이 너무 아파서 심하게 앓았다. 엄마는 다 저녁때가 되어서 돌아왔다. 장에 다녀온 듯 했다. 엄마가 저녁을 지어 왔지만 나는 저녁 생각이 없어서 그대로 누워 있었다. 엄마가 한숨을 쉬며 나가더니 미음을 쑤어왔다. 엄마가 나를 안아서 어깨에 내 머리를 받치고 한 손으로 미음을 떠 넣어 주었다. 내 생애 처음이었다, 엄마가 나만을 위해서 음식을 해준 게 말이다. 그게 서러워서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내 몸에서는 열이 심하게 났다. 엄마는 묵은 솜을 가져다 티겁지를 고르며 우리들의 동태를 살폈다. 나는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엄마는 우리들 곁에서 재봉틀을 돌렸다. 엄마가 햇 목화솜을 넣어 승복을 두 벌 지어 놓았을 때, 작은 언니가 내게 속삭였다.
“엄마가 절에 갈 건가봐. 우리도 승복이 보러 가자.”
내 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복받쳐 올랐다. 나는 울고 있는 내가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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