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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웅
창작시노래 콘서트에 다녀와서
2014년 10월 25일. 그날은 참으로 아름다운 날이었다. 나는 인천시 소재 부평문화사랑방에서 열린 「창작시노래 콘서트」에 초대받아 이명, 강우식, 김동호, 장종권, 김왕노, 박익홍, 남태식, 김영식 작가, 김승기, 고우란, 정민나, 정미소, 박하리, 이외현 시인의 시노래를 들었다. 이 콘서트는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가 주최하고 계간 리토피아, 아라문학,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이 주관했다.
처음엔 기대 반 호기심 반, 사실은 크게 기대하지는 않고 갔었지만, 아니 그래서 그런지, 시음악에 배가 고파서 그런건지, 오랜만에 시에 취하고 음률에 취하고 가수들의 노랫가락에 취했다. 바람결에 흐르는 음표처럼 은은하게 때론 강력하게 가슴에 스며드는 축제의 밤에 감성은 가을비가 내리는 듯 가만 가만 적시고 있었다. 이렇게 젖어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에 이 작품을 준비하고 후원하신 분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 고맙고 달콤했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고맙다는 생각에 이런 저녁이 있는 날을, 누가 후원하고 협찬하는지 궁금했다. 팜플렛을 보니 생각 보다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쓸했다. 관객 모두가 환호하고 기립박수 치고 달콤해하는 이 콘서트에 후원하고 협찬하는 기업들이, 사람들이 생각보다 적었다. 아니 작았다. 나는 콘서트 장에서 2시간 넘게 쉬고 위로를 받았다. 누군가는 녹화한 그 노래를 자기에게도 보내 달라고 했고, 김영옥 가스펠 교수의 노래를 듣더니 자기 교회에 꼭 초청하고 싶다고도 했다. 쫒기는 일상에서, 숙제 같은 삶의 현장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고향 시골집에 온 것 같았다. 고향집에서 나이든 부모님과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아늑했다. 이대로 한 며칠 푹 쉬고 싶었다. 얼마만의 휴식이냐, 얼마만의 영혼의 씻김굿이냐,
여객선 뱃머리가 바다의 등을 가르며 달렸네. 엷게 열리는 바다의 속살이 보였네. 벗겨진 속살 위로 포말이 일었네. 꽃밭이었네. 이랑마다 하얀 꽃들이 수없이 피어나고 있었네. 지나간 순간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고 꽃잎은 서로 부딪치며 부서지고 흩어졌네. 한 점 미련 없이 어깨 위로 쏟아져 내렸네. 꽃비잖아요. 배는 바다를 가르며 달리고 나는 먼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네. 아득히 멀어져간 것들이 떠올랐지만 어느새 포말 속으로 사라지고 하얀 꽃길만 끝이 없었네. 바다 속에 꽃길이 있었네. 그 길을 걷고 있었네.
이명시인의 시노래 ‘매물도 가는 길‘ 전문이다. 감미롭지 않은가! 푸른 바다에서 출렁이는 하얀 파도를 꽃으로 보는 시인, 그 포말들을 꽃밭으로 보는 시인, 아름답지 않은가! 나이 60이 넘어도 시인은 아가처럼 사물을 보는 것이다. 아니 시인의 눈에는 모든 풍경이 꽃밭이요. 바람이요. 꽃비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고 피어오르는 커피 향에서도 감미로운 음률을 느낀다. 보라. 하얀 파도가 튀어 올라 어깨에 쏟아질 때, 이 모습을 보며 꽃비가 내린다고 느끼는 시인은 행복하다. 마음의 눈이 있기에 꽃길을 걷는다. 그리고 그 시를 읽는 독자도 행복하다. 덩달아 꽃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 나도 언제쯤 매물도에 가자. 거기 매물도에 가면서 꽃비를 맞으며 꽃길을 걸어가 보자. 강승민 가수의 노래도 들으면서,
김영옥 가스펠 가수가 부르는 노래는 마치 돌아온 탕자를 위한 노래 같았다. 인생이 뭐, 별거 있어. 하는 사람들에게 그래. 별거 없단다. 너무나 싱겁단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인생이 너무나 별 거 아니기에 뒤 돌아보니 너무 신비스럽고 감사하고 아름다웠다고, 나도 한 때는 세속에 파묻혀 살다가 별거 아닌 삶에서 신앙을 찾게 되고, 갖게 되고, 멀쩡한 이빨 하나 가지지 못한 내가 이제는 이렇게 주님을 찬양하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이제사 삶은 정말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종알종알 아가처럼 노래 부르는 것 같았다. 그 중얼거림이 울림으로 왔다. 울림이 파도를 타고 너울거리자 여기저기서 앵콜이 터졌다. 그래. 산다는 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기에도 짧고,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나 신비 한 거야. 사랑도 부족하고 미움도 풍만하고 신앙심도 옅은 나에게 가스펠 교수이자 캄보디아 시소폰 기독대학 총장인 김영옥 가수의 노래와 구수한 이야기는 맛있는 반찬이었다. 영혼의 양식이었다.
요즈음은 경제가 너무 어렵다보니 사람들 사이에서도 향기가 사라지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살아가기 바쁘고, 생존을 위한 경쟁 때문에 인간성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기계들의 목소리만 크다. 그래서 힘든 탓인지 여기저기서 한숨 섞인 이야기만 두둥실 떠다닌다. 세계에서 자살률 제일 높은 나라, 행복지수도 낮은 나라. 국민 상당수가 스트레스로 중무장을 하고 아침을 맞이하는 요즈음, 거리의 네온사인은 빛나고 몇 건물 지날 때마다 붉은 십자가는 늘어가지만, 그럼에도 피곤한 저녁. 그래선지 교회의 플래카드는 항상 이야기하고 있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허수아비처럼 팔을 벌려 허워이 허워이 노래 부르고 있지. 그러나 참 이상하다. 십자가가 늘어날 때마다 그에 비례하여 시간마다 날마다 해마다 암울한 십자가의 그림자가 길게 바닥으로 눕는다. 가끔은 술의 힘을 빌려 노래 한 곡조를 부르는 이 시대의 군상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낮아지고 작아지고 초라해지지만 기계는 높아지고 거대해지고 그럴수록 사람들은 구석진 곳에서 낙엽처럼 쓸려간다. 가난한 것들끼리 의형제라도 맺을 듯이 한껏 움츠려있다. 국가의 부를 자랑할수록, 과학이 발전할수록 일자리가 사라지는 이율배반의 세계화, 그 와중에서 오늘의 콘서트는 젊고 저녁이 있고 젖음이 있고 충만함이 있었다. 술 없이도 사람이 높아지는 시노래. 그것은 어쩌면 구원이다. 종교보다도 더 사람의 마음을 구원하는 편안한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시노래 콘서트장으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치 그렇게 노래 부르는 것 같았다.
오늘 조그마한 콘서트장에서 조그마한 사람들이 마음이 뭉클하여 돌아들 갔지만, 그 감동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면 싶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시에 취하고 음률에 취했으면 싶다. 조그만한 감동들이 모여 모여서 시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고 큰 바다를 이루었으면 싶다. 그리하여 메말라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꽃향기가 나고 웃음꽃들이 활짝 피었으면 싶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일진 데, 그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순한 것들일 텐데, 오늘 밤 가을비가 내려 가슴을 적셔주었으면 싶다. 이 글이 문자화 되는 날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렸으면 싶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서 이러한 모임들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기업들이 많아졌으면 싶다. 그러다 보면 여기서 저기서 꺄르르 꺄르르 아가들의 웃음이 번지겠지. 그럴거야. 아마도 그럴거야.
이번 출연 가수들을 보면 장태산 나유성 최미례 김애영 진우 김영옥 인원섭 단향 김광주 강승민 강선화님이 있었고, 드럼 쎄션에 김혜진, 도래깨의 타악 퍼포먼스. 비보이 글래스의 공연이 있었으며 김경석 기술감독 외에 많은 스탭들이 수고를 하였다. 나는 수많은 분들의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시노래 행사가 1회용 공연으로 그친다는 게 무척 섭섭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비용, 돈 때문이겠지만 아마도 많은 비용들이 들어갔을 이번 행사가 주민자치센터에서 1회 휘발성으로 끝나고 있다는 게 무척 아쉬웠다. 생각 같아서는 이 시대의 고독하고 아픈 시민들을 위하여 며칠만이라도 연장 공연을 하거나 무대를 넓혔으면 싶었다.
특히, 이러한 노래를 누구보다도 좋아할 것 같은 이 시대의 메마른 가슴들, 젊은이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노인정, 요양원에 계신 분들을 초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비용이 현재 보다 훨씬 많이 들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후원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땅에는 시와 시 노래를 위한 후원자가 그렇게 인색한가. 인색할 수밖에 없는 건가. 그게 문단이 가난해서? 책 읽는 사람이 적어서? 후원도 광고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때만 하는 것인가? 진정 그런 것인가?
박철웅 - 전남 해남 출생. 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 협동조합 유앤아이 이사장.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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