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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숙
화사함 뒤에 숨겨진 고요한 서정성
-이영미 작가의 '보랏빛 나르샤'-
이영미 작가는 10년의 세월동안 한결같이 수채화 작업을 해 왔다.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꽃을 주제로 하여 수채와 작업을 10년간 지속하는 일은 단 한 가지의 주제와 표현방법의 작품이므로 커다란 인내와 자기성찰을 필요로 한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같은 패턴이지만 그들의 고민을 격하게 공감하게 된다. 작가들은 대중적이고 지속적으로 판매가 가능한 작품을 할 것인지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로 그림을 이어나갈 것인지 고민한다. 그러한 고민들은 대다수의 작가들이 하는 일반적인 생각들이다. 한편으로 콜렉터들이 원하는 작품 스타일로 자주 바꾸어 가야하는지 혹은 자신만의 일관된 스타일을 고수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고민 끝에 현실의 벽 앞에서 붓을 꺾는 작가들도 있고 때로는 본인만의 스타일을 살리지 못하고 여러 소재의 그림을 그리다가 뚜렷한 그림 철학을 형성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 버리는 경우도 있다.
특히 한국인의 정서상 유화를 비교적 작품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수채화를 10년을 이어온 작가는 그녀만의 일관된 소신과 깊은 철학이 작품에 담겨있다고 본다. 수채화는 유화나 아크릴화와는 달리 수정이 불가능하므로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작업이다. 작품을 하기위한 정확한 계획과 동시에 추진력과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긴 시간과 내공은 필수적이고 거기에 덧붙여 다작을 해야만 비로소 수채화 본연의 작품성이 살게 된다. 아이디어나 주제가 참신하고 좋더라도 프로답게 표현을 해 낼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수채화이다. 물의 성질도 알아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수채화로서 그림을 망치게 된다. 시간의 투자와 다작의 차이는 수채화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로 그 차이가 극과 극을 달린다. 앞서 언급한 바 아크릴이나 유화는 덧칠을 하여 수정이 가능하지만 수채화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하는 오랜 시간과 다작만이 고차원적인 실력과 비례한다. 결과적으로 수채화로서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워야하고 욕심도 버려야 한다.
그녀는 최근 '보랏빛 나르샤'를 주제로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제 8회 서해 미술대전에서 '보랏빛 나르샤 - 꿈, 사랑, 향기' 작품으로 대상을 받음으로서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꽃을 그리던 어느 날 전시회를 열게 되었고 지인의 선물로 보라색의 꽃 한 다발을 받게 되었다. 꽃다발 속에 감추어진 보라색 꽃잎들은 하늘로 비상하듯 춤추고 있었고 거기서 꿈과 사랑과 향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우연히 받은 꽃다발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하게 된 것이 '보랏빛 나르샤'이다. 보라색은 파랑과 빨강이 겹친 색이다. 우아함과 화려함, 때로는 고독과 추함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고귀한 색으로 여겨 왕실에서 주로 사용되던 색이다. 보라색은 품위와 고상함, 그리고 예술감과 신앙심을 보여주는 신비롭고 개성 있는 색이다. '나르샤'는 '날아 오르다'를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다. 세상을 보랏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이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행복한 비상을 꿈꾸고 있다.
이영미 작가는 겸손함과 작가정신으로 작품 하나하나 세부적인 부분까지 정성을 다하여 작업을 한다. 스케치를 한 후 주제를 채색한다. 주제가 마를 때 까지 기다렸다가 종이에 물이 듬뿍 스미게끔 하고 난 뒤 물감으로 바탕을 채색해 준다. 물이 스미게 해 놓고 칠을 하는 기법을 번지기 기법이라고 한다. 붓이 닿은 부분을 중심으로 물감을 자연스레 번지게 하는 이 기법은 작품의 주제에 까지 스며들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신중을 기해야 하는 고도의 숙련된 작업이다.
- 보랏빛 나르샤 시리즈-
수채화 작업은 언제나 설레임을 준다. 어린 시절 대부분이 접해본 미술 도구이기 때문에 친숙함과 추억이 깃들어 있다. 때로는 우아하고 때로는 예쁜 색색의 물감을 파레트에 곱게 곱게 짜 두고서 부끄러운 소녀마냥 그림그리기를 고대하며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린다. 깨끗한 물과 함께 한 움큼 물감을 머금은 탄력 있는 붓은 새하얀 도화지 위를 지나간다. 겹겹이 쌓아올려진 저마다 아름다움을 지닌 색깔들이 맑고 투명하게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을 이룬다. 맑고 깨끗함, 이것이 수채화의 묘미가 아닐까?
사람들이 그림을 찾는 이유는 작품 속 아름다움을 통해서 작품과 정서적인 교감을 느끼고 싶어서이다. 같은 연유에서 이영미 작가는 아름다움을 찾아서 언젠가 예쁜 꽃을 그렸는데 많은 시간이 흐르고 보니 어느덧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있었노라고 말한다. 작가의 그림 속에서 화사하게 만개한 꽃들은 인생의 회환을 안다는 듯 작품을 감상하는 이와 깊은 내면의 대화를 나눈다. 기쁠 때 보는 그림은 마치 화사한 색상들로 구성된 꽃들이 기쁨을 함께하고자 하는 듯 건강하고 싱싱한 웃음을 보내며 슬플 때 보는 그림은 축 처진 가락의 구슬픈 피리소리를 내 듯 아픈 마음을 보듬어 준다. 때로는 밤에 보는 그림은 너무나 깨끗하여 고요하고 서정적이게 느껴지며 마음 깊은 곳을 스르륵 쓰다듬어 준다. 외로울 때 보는 그림은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더욱이 외롭게 보여 너희들도 마치 이 깊은 외로움들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듯하다. 이영미 작가의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삶을 그리고 있다. 그 삶을 그림속의 예쁜 꽃처럼.
이영미 작가의 작품은 화사하지만 보는 이의 내면에 따라 더욱 더 화사하게 보이기도, 혹은 외롭게 보이기도, 서정적으로 보여 지기도 한다. 그림을 배우던 시절에 자주 듣던 '작품 속에 인생이 담겨있다'라는 주관적이고 두루뭉술한 사실은 이영미 작가의 그림을 보고서 비로소 뚜렷하게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어 작품에 혼이 스며있다. 그렇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정서적인 교감이 가능한 것이다. 작가가 들려주는 인생의 이야기는 삶의 행복을 염원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때문에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기분 좋은 에너지가 샘솟는다.
온갖 열정을 쏟아 붓기도 하고
기다림에 지쳐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때론 행복에 겨워 마냥 웃음 짓는 것
그것이 사랑인 것이다.
너무나 화려하고 예쁜 색채를 지닌 여신, 꽃
화려함과 달리 약한 생명인 것이 꽃
그 속엔 기다림, 행복, 열정, 소망, 축복……이
담겨져 있다.
인생의 아름다움이 있기에
나는 꽃을 좋아하며 꽃을 그리려 한다.
2010. 작가노트 중에서
그녀의 그림은 인생과도 닮았다. 우리네 인생은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의 기쁨, 슬픔, 외로움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이다. 그 속에서 실낱같은 행복이라는 희망을 부여안고 살아간다. 인생은 한 송이의 꽃이다. 인생이란 꽃은 매혹적인 향기를 뿜으며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지만 꺾여져 버리면 그만인 아주 약한 생명인 것. 즐겁고 행복하고 화려한 것이 인생이지만 한편으로는 외롭고 힘들고 어려움에 무너져 건들면 부러질 듯 약한 것도 인생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때로는 절망적이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나고서 돌이켜 보면 그래도 행복한 과거를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이 더 많은 것도 인생이다. 꽃이 인생이라면 그래서 아름답게 표현된 것이다. 작품 속 꽃들은 언제나 화사하게 피어있다. 그림속의 꽃들은 시들지 않는다. 이 시들지 않는 꽃처럼 언제나 빛나는 인생이 되기를 염원한다.
구본숙 - 수성대학교 출강, 한국시각예술협동조합이사. 2012 대한민국무궁화 미술대전 공예부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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