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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특선/김서은/가끔 궁금해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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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은
가끔 궁금해 외 4편
내 회색 자전거는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지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마
나의 내부는 너무 뜨거워 사랑해하면서 한 계단 올라가고 지겨워하면서 한 계단
내려오지 그 계단의 회로는 호일에 감겨있어 막 피어나는 음악 같기도 하고
뜨겁게 식어버린 유리창이기도해 나의 창을 기웃거리는 휑한 슬픔들은,
화사하게 웃고 있어도 눈가엔 물기가 고여 있어 비밀의 배후를 파헤칠 수 있을까
제발 바닥보이지 않기를 기도해줘 아무것도 묻지 말아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핫이슈를 찾고 있는 너 말이야 폐달을 밟고 달리는 넌 너무 빠르게 흐르기도 하고 통제
할 수 없는 나의 내부를 휘돌기도 하지 콱 익사시키고 싶었어,
내안의 계단과 내 밖의 계단들 틈새엔 너무 많은 모퉁이들이 있어
쿨 하게 ok 하고도 이내 돌아서기 일쑤지
아- 흐 저것들을 그냥
“이봐요! 도대체 네게 무슨 짓을 한거요 ”
시인.1
그 는 오늘 스칸디나비아로 떠났어, 달랑 검은 가방하나 메고 저 비행기,
스칸디나비아로 날아가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럴지도 모르지
챠도르처럼 어둠을 두르고 있었어
희끗희끗 머리칼 너머로 파도가 몰아 치곤해
이빨을 드러낸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었지
너를 홀딱 벗겨버리고 싶어
난, 무얼 잘못 삼킨 건 아닐까
오만하게 세운 털을 하나하나 뽑아버리고 싶었어
내 속에 한 마리 날 뛰고 있어
현과 현 사이를 거칠게 흔들면서
스칸디나비아에서 날아 왔을까 수취인 불명의 엽서, 엽서는 아직 읽어보지 못 했지 붉은 스탬프가 모질게 찍혀 있었어
비명하나 어둠을 찢고 날아가고 있어
살과 뼈 모조리 뜯어 먹히고 있지
크르릉 거리는 이빨이 빛나고 있었어
난, 무얼 잘못 삼킨 걸 꺼야
털 복숭아리가 될지도 몰라
스카이콩콩을 타는 두발 달린 짐승
내 속에서 덜컹대거든 난,
분명히 무얼 잘못 삼킨 거야
너, 한번 덤벼볼래
시인 .2
당신은 회오리야
그림자도 없이 웅크리고 있어
그림자는 절벽이야
눈 흘기는 머리칼이
얼굴위로 얼굴들이 맴돌고 있어
나뒹구는 녹슨 뼈들이
끝내, *에어리언이 되었을 거 야
텅텅 울리고 있었을 거야
불룩해진 배를 끌어안고
완전한 합체를 꿈꾸는 건 아닐까
허공을 향해 면도날을 날리면서
그때, 날개가 찢어지는
소리를 간헐적으로 들어
소용돌이치면서 곤두박질치면서
밀폐된 가방 속으로
줄줄이 넘어가는 발자국을 보았지
줄 장미같이 붉은 피를 찍어놓았어
회오리치는 낮도깨비 같은 너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니
*짐노패디의 진회색 선율 같은 너
어디 있는 거니?
SOS !
우리들의 천국
벚꽃이 팡팡 터지고 있었다
저녁을 짓고 있었다
4인용 식탁위에 끓는 찌개냄비 속으로
주광색 불빛이 웅크리고 앉았다
앞 동 14층 베란다가
한 여자와, 두 아이를 밀어내고 있었다
저녁 카메라 앵글 속에
아이들의 운동화 두어 켤레 흩어져 있었다
종합장에 써내려 간
찢어진 유서 한 장 팔랑거리면서,
“ 아이들과 나를 놀이동산에 묻어주세요 ”
나는 헝클어진 단어들을
우물우물 삼키고
미처 소화되지 못한 문장들이
검은 외투자락을 끌고 몰려오는 저녁
꽃무늬 벽지에서
마른꽃줄기들이 흘러내리고
그림자를 가둔 창이 새카맣게 부풀고 있었다
“아이들과 나를 놀이동산 묻어주세요”
흰나비들이 허공 속으로 뛰어갔다
일요일
싹둑 머리를 자르고 온 딸아이를 보고 고개를 갸웃, 소파에 길게 누워있던 어제의 남자는 리모콘으로 세계를 콘트롤하는 느슨한 오후 그 남자의 안경 속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창가에 초롱이,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며 꼬리를 뱅뱅 돌리고 “성격 참 이상 하신 거 아세요” 한 옥타브 높은 소리에 순간 팽팽해진 일요일 저녁 난 딸아이의 짧아진 머리를 보며 계속 혀를 끌끌거리고 “엄마는 제가 한 일은 다 못 마땅하시죠 저도 그래요 ”아이가 사라진 문틈으로 중심을 끌어당기며 엎질러지는 빗줄기
시작메모
맨 처음 고고하다고 할까, 울음 을 터트리고 세상에 던져졌을 때
나의 어머니가 내 말캉한 알몸에 포근포근한 베넷저고리를
입혀주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머닌 이만큼 자라서 사랑하는 모국어로 시를 짓는 시인이 된 것을
참 자랑스러워 하신다는 걸 동생에게 전해 듣곤
코끝이 시큰했었다.
시를 쓰면서 난 내 나름대로 언어에 베넷저고리를 입혀 보고 싶었다
누구의 손 때도 묻지 않은,
많은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 그 것이 완전하지 못할지라도
예를 들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을 오렌지 하고 불러도 당신이라는 정체성은
그자리에 있는 것이지 오렌지의 속성으로 변화되는 것 아니지 않는가
당신과 나의 약속위에서 당신은 나의 오렌지가 되는 것이고 또한 그 오렌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한다 할 지라도 그 사랑 또한 영원성은 없을 것 이므로.
나는 나의 그 오렌지를 위하여
오늘도 사랑하는 오렌지야하고 불러주면서 행복해 질 것이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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