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특집2/우리시대의 향토시인, 정승열/대표시 잠복 외 5편/신작시 달맞이꽃 외 2편/시론 서정시 업그레이드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2,284회 작성일 15-07-08 14:16

본문

대표시

정승열

잠복 외 5

 

 

()을 실처럼 뽑아 나뭇가지에

여기 저기 걸쳐 두고

졸음이 몰려드는 눈을 흘기며

기다린다.

옛날 소녀차림으로 그녀가 혹 지난다면

망설임 없이 확 잡아채리라

 

그때는 너무 망설이다가

그녀가 딴 놈에게 날아가 버렸지

추억으로 벋어간 길

늙어 쭈그러진 손으로 거미줄을 치며

저 안에서 해맑게 웃으며 걸어 나올

옛 소녀를

숨죽여 기다린다.

 

 

 

 

벽지

 

 

담쟁이를 박제하여

방벽에 벽지로 바른 게 잘못이었다.

새로 이사 온 집이 쓸쓸해서

그럴듯한 숲을 꾸민다는,

그래서 원시(原始)에 살아보겠다는

유치한 꿈으로

담쟁이를 발랐던 거였다.

 

그날부터

밤이 되면 벽에 숭숭 구멍이 뚫리고

냉기가 집안을 돌아다니는데,

안방 침실까지 헛기침 한번 없이

밀정처럼 들락거리는데

웬 죄가 많아서

마음은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어

비명도 못 지르고 떨기만 했다.

 

나는 원시의 숲이 이렇게 음산하고 무거운 줄을 몰랐다

나뭇잎 사이사이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살기가

한숨도 못 자게 만들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서둘러 우리 가족을 지킬 무기를 찾아 들었다.

서가에 꽂혀 있는 묵직한 책을 집어 들었지만

그거로는 놈의 머리에 생채기조차 낼 수 없는데 실망했다.

 

후레쉬를 켜들고 전화기를 들어 올렸지만

그걸 던져 봤자 민첩한 놈의 동작을

반에 반도 못 쫓아갈 거라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대학까지 나온 내가 놈에게는

먹잇감 이전에 장난감에 불구하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추위에 벌벌 떨며

난방 계기를 있는 대로 올렸다.

아무리 난방 온도를 올리고

집안 식구들이 덥다고 야단해도

나는 춥다

 

 

 

 

정서진(正西津)

 

 

지는 해 노을이

해안에 눈처럼 내리고 있다.

 

흰 눈을 뒤집어쓰고 비스듬히 누운 나무에

금빛이 내려앉으면

맨살의 허벅지가 드러나고

나무는 솟구치는 열기로

몸을 뒤챈다.

 

바다를 바라보는 서쪽 땅 끝에서

나무는

막 화장을 마치고

이제부터 붉은 춤을 출 것이다.

 

다리를 비트는 선율

걸그릅 소녀의 파닥이는

율동

 

바람 한 자락에

살갗이 부서져 내리며

분분히 날리는 노을

 

이 순간

수많은 별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별이 될 것이다

지구는.

 

 

 

 

찻잔

 

 

늘 향기를 담고

점잖은 미소를 머금어야 어울리는

둥글고 부드러운 찻잔의 감촉 속에

독하게 내 뿜는

날카로운 분노가 숨어 있는 줄을 몰랐다.

 

겉으로 착한 척을 잘하는 내 심성 속

음흉한 이기심을 오늘

찻잔이 눈치 챈 듯하다

 

내 손길을 거부하고

스스로 낙하하여

바닥에 머리를 깨치며

뒤집어 날카로운 비수를 빼들고

부르르 떠는 모습이

 

 

 

초야(初夜)

 

 

신부를 자리에 누이고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주위를 둘러본다.

 

누구 엿보는 사람은 없는지

침 묻혀 창호지에 구멍 낸 곳은 없는지

 

찬바람이 스밀라 이불자락을 다독이며

촛불을 끄는 사이

 

신부는 눈을 꼭 감고

숨이 턱턱 막히는 긴

기다림의 봉우리를 터뜨려

향기를 이불자락에 편다

 

서툴게 일을 치르고 나면

부엌이나 헛간에서 수군거리는

웃음소리도 듣지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질 것이다.

 

둘이 손을 꼭 잡고

먼 길 여행을 떠나는 꿈속으로

 

 

 

 

물의 사랑

 

 

나는 늘 그대가 우러르는 산봉우리보다는

조금 낮은 곳에

골짜구니를 만들거나

그대의 언덕 보다는 더 아래에서

개울로 흐르거나

그대가 가꾸는 텃밭보다는 좀 더 아래

논에서 헤엄치거나

그대가 집 지은 앞마당보다는 더 아래

우물 속에서 삽니다

그렇다고 늘 아랫것으로 만만히 보진 마세요

사랑이 늘 흐르다가도

배신으로 상처를 입고 두 눈이 퉁퉁 불면

싸늘한 비수가 되듯이

그대 앞에서

말없이 고분고분 아래로만 흐르던 나도

꼴이 역겨워 사랑이 식으면

누구도 함부로 오르지 못하는

산꼭대기 봉우리에 하얗게 앉아

차가운 칼날을 벼를 줄 안답니다

 

 

 

 

신작시

달맞이 꽃 외 2

 

 

달빛 아래 허리춤을 내리고

희멀건 허벅지로 춤 한번 추고나면

이리들 야단이다 시인은

눈물을 찔끔거리며 가엽단다 뽀얀 얼굴이

어둠에서 익은 달뜬 유혹의 목소리가

너무 앳되어 안스럽단다

꿈길에 들어서는 달밤이란 무대에 알몸으로

우유빛 안개를 휘감고 서면

나는 낮에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별이다

 

 

 

 

민들레 홀씨

 

 

오늘 밤에는 한번 걸어보는 거야

민들레는

한낮동안 바람에게 얻어맞아

얼얼한 얼굴과 사람들이 밟아 짓이겨진

너덜한 잎을 추스리며

오늘 밤에는 저들 인간처럼 한번 걸어보는 거야

 

사람이 많은 대낮보다 아무래도

깜깜한 밤길이 제격이야 우리 민들레는

걷는 연습이 필요하거든

땅에 깊이 박힌 발을 뽑아내야 해

여린 살점 몇 개는 떨어져 나갈지 몰라

발톱이 빠질지도 몰라

 

그래도 사람 발길은 피할 수 있겠지

어둠 속에서 막다드린 사람에겐

걷는민들레가

모두 꿈속이야기라고 속이면 돼

 

긴 담장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옛날 토담들은

금방 샛길로 들어설 수 있었는데

요즘 인간들의 담은 너무 높고 길어

 

자동차 길은 위험해

너구리가

자동차에 튕겨

길가에 처박힌 적이 있었지

 

철조망이 쳐진 강이 가장 낙심이야

강을 건너면 밥 한술 있을 것 같아

몰래 도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밤새 총 맞는 꿈이 무서워

 

매번 실망하고 돌아올 때마다

낙심의 칼로 걷는다는 꿈을

깎고 또 깎았어

 

너무 작아진 한 톨 꿈을 들고

독한 마음으로 외쳤지

 

이젠 대낮도 사람도 무섭지 않아.

그냥 내딛을 거야.

허공이라도 좋아

 

민들레 드디어 하늘을 날다.

 

 

 

 

빙하기

 

 

그것은 온 도시와 마을을 한꺼번에 얼려버린 것이 아니라

저 멀리 산골짜기나 외진 바닷가에서부터 천천히 얼려 온 것이다.

그래서 그 옛날 공룡들이 전전긍긍하다 서서히 멸종되어 간 것이다

 

밤이면 도시가 온통 화산으로 연신 폭발하고 있을 때

하늘이 노숙하는 저녁 해를 들판에 내다 버렸다

나무들이 부르르 떨기 시작하며 말문을 닫았다

 

누구도 손을 들고 질문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대를 이을 아이를 더 나야 하는지 몰라

우물쭈물 하다가 하나씩만 낳기로 했다.

아무도 얼음덩이를 보지는 못했지만 몰려드는 추위 때문에

서둘러 짐을 싸들고 농촌을 떠났다.

농촌에는 옛날에 써둔 전설 몇 편과 노인들만 남았다.

마을에는 빈집이 늘고 온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누구도 이 냉기가 도시로 향하고 있는지를 몰랐다.

누구도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도 질문하지 못했다.

 

 

 

 

시론

서정시 업그레이드

 

 

1. 현대시의 반성

얼마 전부터 한국 시단에는 초현실적인 무의미의 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문장이 파괴되고 의미가 뒤틀리고 이미지가 몇 겹 중첩되다보면 감각을 정리하기도 숨차다. 그런데 이게 우리 현대시의 대세이고 주류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시들이 종종 조명을 받고 각종 문학상 수상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서정시와는 거리가 멀었던 이런 시가 어느덧 서정시 안에도 파고들어 서정시가 비틀거리고 있다. 물론 서정시 자체가 어떤 양식이나 표현방법을 고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어떻게 표현하든 정서를 울구어내면 서정시로 보아주는 아주 넓은 개념이긴 하다. 그러나 문제는 독자가 읽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는 서정시라면 무언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 아닐까. 독자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같이 시를 쓰는 시인들 초차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면 시간을 두고 곱씹고 분석해야 어렴프시 짐작이 가는 시라면, 과연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서정시가 될 수 있을까

 

2. 초현주의, 무의식 시, 무의미 시 들의 해석

나도 한 때는 잘 모르면서도 이런 시를 잘 소화하고 이해하는 양 주석을 붙이고 해설을 해본 적이 있다. 무의식을 언어로 통제 없이 쏟아낸 시는 누구의 이론을 갖다 붙여도 결국 시인의 상상력을 복원하기 전에는 해독불가이다. 그런데 이런 시를 쓰는 시인들이 정말 자기의 무의식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한 시인이 얼마나 될까. 혹시 시인이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상상력과 무의식에 적합한 언어를 찾을 생각이 없이(본인이 충분히 인지하는 것을 포기한 채) 언어선택 자체를 자동기술법에다 맡겼다면, 우리가 보통 비아냥거리는 말로 쓴 사람도 모르는 시가 생산된다는 말이다.

여기에 편승해서 요즘 서정시를 비틀거리게 만드는 난해시가 또 있다. 마치 여러 사람의 시 중에서 감칠맛 나는 표현들을 무작위로 뽑아내어 한꺼번에 믹서기에 돌려서 국수다발처럼 뽑아낸 듯한 난해시들 말이다. 이 역시 이미지나 의미의 중첩과 꼬임이 심해 일반 독자들이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이런 시들을 용케 이해하고 해석을 붙여줄 사람은 우리나라 비평가들 밖에 없는 것 같다.

 

3. 서정시 복원

이제 서정시를 다시 한 번 추스르고 멀어진 독자에게 다가갈 길을 우리 시인들이 찾아야 할 때이다. 내가 만약 국민이 읽을 만한 현대시 100선을 뽑는다면 나는 결단코 쓴 사람도 모르는 시국수발같은 난해시는 포함시킬 생각이 없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신서정시 운동이라든지 단시운동이라든지 이런 움직임이 우리 시단에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들 모두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시인들의 몸부림이 아닌가 여겨진다.

 

4. 맺음말

시인이 새로운 표현이나 새로운 표현방법을 찾아내는 노력을 나무라자는 뜻은 아니다. 그건 어떤 시인이든 평생을 두고 노력해야 하는 사명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시를 지으며 한시도 자기 자신과 독자를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우리 시인인 것도 또한 사명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시를 지을 때 그 앞에 비평가나 특정부류를 놓지 말고, 독자(정 없으면 자기 자신)를 앉쳐 놓고 그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우리 서정시의 본 모습이 아닐까. 그럴 생각이 없다면 아예 새로운 시영역으로 묶어서 서정시 밖으로 나가주었으면 한다.

 

 

정승열(丁承烈)약력

 

출생 : 1947년 인천 생

데뷔 : 1979시문학으로 데뷔

경력 :

내항문학회 창설멤버(1973)

1977시문학주최 대학생시집공모전에 으로 당선

인천문인협회 이사, 시분과위원장, 부지회장을 거침

인천문인협회 지회장 지냄

시문학회 회원

새얼백일장 심사위원

인천광역시 문화상 수상

인천예총 예술인상 수상

삼산중학교 교장 역임.

새얼문화재단 운영위원

시집 :

○ 『새가 날개를 퍼덕여도 숲은 공간을 주지 않았다.

○ 『단풍

○ 『단풍 2.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