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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특선/강문출/13번째 퀴즈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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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특선
강문출
13번째 퀴즈 외 4편
영원히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12번째 내 물음에 대한 그녀의 말은
마리아처럼 인자했으나 단호했다
12개의 건반으로 신들린 듯 연주하고
12시간 동안 세레나데를 부르면 답을 얻을 것이라 믿었던
내 생각은 진부했다
12라는 숫자의 마력은 이미 최후의 만찬에서 끝났다
당신이 원하는 답에 대해 나는
유다처럼 논리적 고민에만 매달려있었던 건 아닐까
그러나 모든 노력이 허망과 갈망 사이를 오갈 때
당신의 영원은
쉬이 패배하지 않는 패자부활전이므로
긍정이 긍정을 반성하지 않을 때
해답은 늘 논리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포기는 긍정보다 비루하다
해답이 없다 이것이 유일한 해답은 아닐 것이다*
* 거투르드 스타인의 말을 변용하다.
가만히 뒤돌아 걷다
언짢은 마음으로 나와 연못에 돌을 던졌다
전에는 경쾌하게 가라앉던 돌이
우당탕, 구르다 멈췄다
얼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무관하게 얼어붙은 세상
젖어들 곳 하나 없다
무능이 낳은
저 조급한 한철
들어가 돌을 치우기엔 얼음이 너무 얇아
패병(敗兵)처럼 가만히 뒤돌아 걷다
부자
인적 드문 호숫가를 한 부자가 나란히 걷고 있다 닮은 두 어깨가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볍다 아버지가 아들의 그림자에 업혀가고 있다 가다서다, 가다서다 하며 풍경을 채록하고 있다 어느 객이 있어 이 모습을 한 앵글에 채집하고 있다 웃음을 머금은 서쪽 뺨이 붉다 윤슬이 눈밭을 휘돌아온 바람결에 차다 산마루를 넘어가던 태양이 호수에다 비단이불을 깔아주고 있다 오늘밤은 물의 요정도 춥지 않겠다 어느 큰 부자도 저 부자를 당하진 못 하겠다
가을장마
벚나무 매미들이 떼 지어 운다 내가 가까이 가는 데도 사람들이 가까이 가는 데도 꿈쩍도 않고 운다
차바퀴 안쪽에 앉은 고양이들이 나를 빤히 본다 내가 가까이 가는 데도 사람들이 가까이 가는 데도 꿈쩍도 않고 물끄러미 본다
언제부터 저랬을까
무너지는 지붕에서
침몰하는 배에서
속수무책을 보았을까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저만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인간, 저만 빠져나가려고 바동대는 인간, 인간 아닌 인간을 보았기 때문일까
입씨름이나 하는 사이 수상한 가을장마가 찾아와 매미들은 벌써 떠났고 고양이들도 젖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해법을 찾지 못한 인간들만 속절없이 젖고 있다
하루의 장례
체력을 몽땅 쏟아 꽃대봉에 오르다
올라온 길 내려다보니
손금 같다
길의 선택은
내 몫이라 생각했는데
손바닥 안이다
야호, 외쳐나 보는데
어느 허공도
꿈쩍없다
없는 소리를 찾아
하릴없이
왔던 길로 되돌아 걷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생각을 끌어안고
이유를 따지지 않기로 한다
한 자 또 한 자
그늘의 깊이를 쓰고 있는 산은
수의인 듯 그늘을 끌어당겨
한 길 또 한 길
하루의 장례를 치루고 있다
시작메모
낯설음과 새로움에 대하여
80년대부터 시작된 ‘낯설게 하기’는 이제 우리 시단(詩壇)의 주류를 이루었다. 낯설음이란 새로움을 위한 필연적 과정으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낯설음에 머물다보니 많은 작가들이 내용도 없는 몽환적(夢幻的) 글쓰기에 함몰되어 스스로를 패러디(parody)하고 있다. 지금쯤은 이런 작가들이 몽환적 ‘낯설게 하기’의 무한반복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찾는 일에 정진해야 할 때이다.
형식주의자인 쉬클로프스키의 ‘낯설게 하기’는 새로운 형식의 창조에 따라 새로운 경험의 환기와 새로운 감각의 회복을 의미하였다. 이 말은 낯설음에서 시작하여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두 낱말을 모두 포용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 시단은 지나치게 몽환적 글쓰기 즉 ‘낯설게 하기’에만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럼 낯설음과 새로움의 차이는 무엇인가? 사전적 해석에 따르면 낯설다는 것은 “전에 본 기억이 없어 익숙하지 아니하다.”라는 뜻이고, “새롭다는 것은 전과 달리 생생하고 산뜻하게 느껴지는 맛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말의 뜻은 부정과 긍정 즉 감동이 있고 없음의 차이일 것이다.
시작(詩作)에 있어 ‘낯설게 하기’조차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다보니 시인들이 몽환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이는 예술 작품을 예술가들이 자신의 무의식 세계를 드러내는 징후라고 말했던 프로이드의 이론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내용도 없이 너무 많은 이미지를 나열한 글쓰기는 소통의 부재와 부회(附會)만을 강요하게 될 뿐이다.
그럼 낯설음을 어떻게 새로움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이것은 리얼리티(reality)의 문제다. 모든 몽환적 글쓰기도 그 기저(基底)에는 리얼리티가 있어야 한다. 예술가는 혁명가이고 혁명은 기존의 틀을 배격하고 새로운 틀을 창출하는 데 그 목표가 있는데, 기존의 틀에 대한 진솔한 체험이 없다면 모든 발버둥이 연목구어(緣木求魚)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왜 새로움을 강조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옥타비오 파스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는 순환적 시간을 부정한다. 즉 현대에는 사물들이 단 한 번만 존재하며 다시 돌아오는 일이란 없다.”라고 하였다. 일부 과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하는 만큼 시간이 생겨난다고 하였다. 몽환도 결국은 과거의 잔영이다. 혁명을 꿈꾸는 시인들이 무궁무진 생겨나는 새로움을 간과하고 계속 몽환에 사로잡혀 있다면 과연 혁명은 누가 이룰 것인가.
강문출 - 2011년 《시사사》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타래가 놀고 있다』. 일성산업 대표(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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