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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김종호/푸줏간 저울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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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1,664회 작성일 15-07-0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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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푸줏간 저울 외 1

 

 

저렇게 송아지 울음 같은 하현달 가뭇없이 떠가는 밤엔 내 스스로 야속해서 이제 그만 차가운 달빛 속에 죽은 듯 눕고 싶은데

 

육십 촉 붉은 전등 아래 터 잡고 앉아 평생 서러움만 달며 살았는데, 뙤약볕 아래 풀풀 날리는 산나리꽃 향기 갈피갈피 쟁여 넣은 뼛속까지 일껏 헤아리며 살았는데, 어허, 말버둥 치다 사위어가던 죽음의 배후에 내가 버티고 앉아 있었다니,

 

풀숲에 두고 온 희망이며 노래며 혼신의 힘으로 바라보던 막막한 하늘 돌아보니, 허어, 그렁그렁한 눈물자국과 선혈 낭자한 내 그림자밖에 없다니,

 

나 이제 그만 숨 멈추고

까무룩, 눕고, 싶은데

 

 

 

 

그들은, 아직 농성중이다

이명5

 

 

그들이 천막을 친 때가 2003년 정초였으니 햇수로 따지면 십삼 년째다. 그들은 떼를 지어 달팽이관이며 눈자위며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며 판을 벌인다. 바람처럼 왔다가 흔적 없이 떠날 줄 알았던 애초의 관망은 뼛속까지 휘감아 도는 노랫소리에 묻힌 지 하마 오래다.

 

거울보기가 점점 두려워진다. 언제부턴가 거울이 보여 주는 것은 남기고 싶은 뒷모습이 아니다. 무거운 안개 속 매미껍질 달라붙은 흙빛 나무들 불협화음의 음계에 휘말리면서 속수무책 말라가는 이 도시의 변두리 풍경이다. 그들의 요구사항은 집요하다. 기억을 버리고 침묵을 버리고 세간의 소리 들으라 한다. 한눈팔지 않고 걸어온 지난날의 어리석음은 훨훨 벗어던지라 한다.

 

눈이 점점 흐릿해지고 이따금 뿌리 쪽이 캄캄하게 흔들리는 걸 보면 그들은 지금 내 기억의 관다발에 혀를 들이미는 중일 것이다. 그들에겐 수액이 밥일 터, 엄동설한에 매미소리가 이렇게 무성할 수가 있다니!

 

 

김종호 - 1982강원일보신춘문예() 등단. 1992조선일보신춘문예(동시) 등단. 시집둥근 섬. 저서바람빛의 시학. 춘천교육대학교, 한라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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