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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김광기/게으른 오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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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
게으른 오후 외 1편
찌뿌듯한 날씨에서 몸 밖의 것들을 생각하다가
안과 밖, 이쪽과 저쪽 사이에 있을 법한 가벼운 것과
그 가벼움이 간단하게 끝나는 것쯤에서 다시 멈추다.
늘 이분법적으로 갈라놓는 이쪽과 저쪽 가운데
이쪽에도 저쪽이 있고 멀게만 느껴지던
관조의 저쪽 가운데에도 이쪽의 삶이 있겠다.
지금 지탱하는 이쪽의 삶 속에 과연
어느 정도의 저쪽이 개입되어 있는 것인가.
누구는 건강 진단하러 갔다가 저쪽선고를 받아 오고
누구는 이쪽 삶을 연장했다는 일화들을 떠올리며
누구나 두려워하는 저쪽에는 어떤 비밀들이 있는지,
게을러서 소가 되었다는 사람이 다시 사람이 될 수 있었듯
우리의 저쪽도 이와 같아서 어쩌면 이쪽의 절정이
저쪽으로 가는 오르가즘은 아닌 것인가 하는 것 따위,
파르르 떨리는 그 알 수 없는 사경 같은
기껏해야 팔분이라는 이쪽과 저쪽의 경계인데
경험삼아 한 번 다녀올 수 없는 안타까운 오후이다.
광교산 자락
그대, 아직도 이렇게 눈에 선한 것은
함께 했던 잔상들, 아직 털어내지 못한 것 때문
지는 것이 더 아름다운 가을하늘 속에
오색찬란한 머리를 풀고
늘 사색에 잠긴 것 같은
그 품속에, 한없이 달려가 안기고만 싶었는데
안타까운 시간만 가고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만 있네.
지난 시절들이 이렇게 선명한데
쏜살같던 세월이 안개 속에 빠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네.
숲길도 그렇고 이따금 들리는 물소리도 그렇고
광채도 부처의 가르침도 경이롭기만 하지만
그대 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네.
김광기- 1995년 시집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를 내고 월간문학과 다층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호두껍질 데칼코마니 등, 시론집 존재와 시간의 메타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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