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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박영석/혹, 선암사에 가시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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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2,289회 작성일 15-07-0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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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 선암사에 가시면 외 1

 

 

오래 살아 속이 텅 빈 것들을 한 번 보라

 

칸막이가 없는 옛날 화장실에 들러

가랑이 아래로 개울물 흘러가는 것을 보라

 

텅 빈 몸으로 붉은 꽃을 보시하고 있는

한 오백년쯤 된 동백도 보라

검푸른 이파리가 독경처럼 번들거리는 것

천년쯤은 됨직한 시커먼 굴참나무가 울퉁불퉁

속을 비운 한 죽음을 보라

죽음의 껍질은 얼마나 단단한가

그것을 배경으로 한 판 웃는 사람은 잠간

얼마나 환한가

 

언제부터 그렇게 누웠는지

왜 눕게 되었는지

자신도 모를 구백 살 늙은 노송의 기이한 생을 보라

 

좌는 청죽 숲 우는 솔 숲

앞은 계곡 뒤는 몇 길 벼랑인

어둑한 산문을 내려오다가

 

길이 보이지 않을 땐 가만히 서서 흑청색 하늘을 보라

뒤쪽으로 빠르게 번지는 먹물을 보라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는 바위

점점 무거워지는 계곡물 소리

 

그 사이로, 텅 빈 범종소리가

성큼성큼 어둠을 건너 산을 내려가는 것을 보라

 

 

 

 

시골국수

 

 

안양 지나 삼막사 삼거리에 국수집이 신장개업 했었지요. 아무 때나 갈 수 있다기에 우리도 간 거지요. 미리 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나는 무심한 척 컵에 물을 따라 홀짝거리며 탁자를 세어보았는데, 글쎄 마흔 셋인지 마흔 넷인지 자꾸 헷갈렸어요. 너무 시끄럽게 사람들이 떠들었지만 그도 그르려니 했어요. 우리는 덤으로 붉은 시루떡과 돼지고기 수육을 먹었고요 그 다음에는 왕만두를 먹었고요 또 그 다음에는 매밀 막국수를 먹었는데요, 봉평 매밀이라 하니 문득 물레방앗간이 생각나 혼자 희죽 웃었지요. 아마 주인은 국수 맛이 좋아서 웃는 거라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나는 속으로 장돌뱅이 허생원과 왼손잡이 동이와 매밀꽃 흐드러진 달빛길을 따라 찰랑찰랑 다음 장으로 가는데요. 배는 부르고 은근히 속도 따스해져 그저 빙그레 웃었지요. 늙은 나귀처럼요.

 

 

박영석- 2004<동양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공이 오고 있다. 현상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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