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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이정오/제비꽃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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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오
제비꽃 외 1편
그 해 봄에도 제비는 왔고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쓰다듬어주던
그녀의 흰 목덜미 아래로
까만 점 하나 생겨나고
점은 점점 자라
총총 박힌 눈썹이 되었다
낮으로는 눈을 감고
밤으로는 눈을 뜨고,
비탈진 언덕에 앉아 실실 웃음을 흘릴 때
그녀의 눈썹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뿌리가 부추기면 앉은 자리도 내어주고
치마를 들어 올릴 것만 같았다
툭툭, 흙을 차던
간혹, 길게 늘어뜨린
발이 사라지고 없다
보라색은 날개가 아니라서
물컹한 줄기가 아니라서
땅바닥에서 더 이상
일어설 수 없는 무릎이 되었다
클라우드 나인(CLOUD9)
그녀는 정기적으로 나를 찾는다
하지만 그녀는 내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냥 육 파랑이라 부른다
그렇게 불러야 그녀에겐 더 맛이 있나보다
그래도 눈치가 빠른 편의점 주인은
아~ 네, 라고 대답하며 나를 그녀에게 건넨다
그녀는 얼른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내 스무 개의 갈비뼈 중 하나를 꺼내어 불을 붙이고는
허공으로 후욱~, 한숨을 뱉어내어 구름을 만든다
그때마다
그녀의 이마 주름이 잠깐 펴졌다가 되돌아간다
이가 없어 움푹 파인 두 볼에 보조개까지 만들며
몇 번 더 나를 태워 구름송이로 날려 보내고
하얀 미소를 짓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
나는 누군가에게 다가가 위로가 되어줄까
마냥 기다리는 그 무엇이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또 아우성소리 들린다
아무튼 그녀는 지금 내 하얀 영혼의 갈비뼈를
자유자재로 주무른다
마음대로 빼내어 구름을 만들어
그녀와 나를 함께 지운다
한동안 익숙해진 이대로 괜찮은데
요즘 일방적으로 내 몸값을 올리려고 술렁댄다
애가 탄다
이정오 - 충남 예산 출생. 2010년 계간 《문장》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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