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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박병두/지동에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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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1,916회 작성일 15-07-07 11:25

본문

박병두

지동에서 외 1

 

 

내가 머물렀던 곳들은 하나같이

빗물에 젖은 시멘트 푸대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잔뜩 분 바른 나이 든 여자가

질질 울고 난 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여기 머무르던 빛과 뜨거움은

몇 사람의 가슴에 두레박 없는 우물만 남기고

 

부활을 기다리는 고집장이에게

돌아오지 않아, 라고 말하고 싶어서

 

소주집을 찾아 가는 중인데

노란 머리 삐끼들이 자꾸 앞을 막는다.

 

 

 

 

정신병원에서

 

 

친구들의 가난이 네 불안의

핵심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일평생 땅과 건물을 사고 파는 일에

몰두한 네 아버지가 소유한

빌딩과 가옥 수십 채

그건 단지 묘기였을 뿐

네 잘못은 아니었지만

 

통기타를 튕기고

시를 쓰던 네가

친구 조심하라 이르는 아버지 밑으로

들어간 것은 분명

불안과 공포의 시작이었다

 

세무사와 은행원을 열심히 사귀며

돈세탁 요령과

상속세 덜 내는 방법을

연구중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시쓰기를 포기하고

수술실에 아내를 두고 찾아온

친구의 주먹을 부르르 떨게 한 것도

네 잘못은 아니었지만

 

소설을 쓰려고

우리들 중 하나가 골방에 박힐 때

네 이야기가 그 글 속에 들어갈까봐

시작된 두통과 불면 만큼은

네가 선택한 일이 분명해 보인다

 

네 어머니 빈소에 친구들

오지 않고 사촌과

동창생 하나 없었다는 소문도 들었다

역시 네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젊은 날 읽은 시집을

버리지 않고

밤마다 그놈의

통기타를 집어 든 것은

네 잘못이었다

 

버려다오

장식도 되지 못하는 시집들을

통기타의 목쉰 소리를 버려다오

네게는 영혼을 풀무질하는

소품이 어울리지 않아야 한다

 

나는 네가 쾌유하길 진정으로 바란다

네가 아니더라도

골프장 회원권과

토지와 건물은 쉴 사이 없이

거래될 것이다

네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시를 읽을 것이며

무명 가수의 노래를 들을 것이다

 

가난한 친구를 두려워하는 네가

초라한 나를 만나면 병이 또 도져

몸부림을 칠까봐 울부짖을까봐

면회 신청도 하지 못한 채

줄담배 연기 속에서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잎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박병두- 1964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 1985T.V방송 드라마 데뷔 후, 1992월간문학.현대시학.열린시학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해남 가는 길,그림자밟기, 고산문학상, 이육사문학상, 전태일문학상, 에거사 크리스티상 등을 수상했으며,수원영화협회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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