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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우희숙/파충류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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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숙
파충류 외 1편
집중된 섹스는 알을 슬게 한다
그들은 제 집을 기억하는지 근육틈새로 똬리를 틀었다
젖산을 빨며 종일 꿈틀거린다
오늘도 따뜻한 물속에 들어가
나는 수중분만을 시도한다
그믐밤 바닷물에 알을 낳는 뱀장어처럼
팔뚝과 엉덩이에 한 차례 고통스런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마침내 꼬물거리던 숱한 새끼들이
살집을 헤집고 삐져나온다
쏜살같이 사라지는 저들
물이 제 색을 풀고 이내 조용하다
불룩했던 곳곳이 평온하다
시끄럽고 뻐근했던 산통도 새벽별처럼 흐릿하다
각질마저 벗겨진
delete된 알집은 또 다시 부풀어 오르고
오래 전 압축된 몸 속 파충류의 흔적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꽃씨
암먹부전나비가 돌 위에 앉아 있다
밤새 손전등하나 없이 돌 속을 뚫고 나온 꽃이
커다란 제 자궁을 들여다본다
감쪽같이 사라진 제 출구를
나비가 날아오른다
탕 소리와 함께 출발한 50미터 달리기 경기처럼
자연스런 이별은 신나는 질주인지도 모른다
바람에
꽃이 날아간
그 사이
그는 눈물 한 점 흘리지 않는다
또 다시 지상으로
떨어지기를
다만 원할 뿐
우희숙 - 2010년 『문학·선』 등단. 시집으로 『도시의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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