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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소설/마린/4월은 잔인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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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1,685회 작성일 15-07-0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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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소설

마린

4월은 잔인한 달

    

 

윤 여사로부터 편지를 받은 건 연말의 들썽거리는 분위기가 가라앉고 시무식을 마친 일 월 초순이었다. 사춘기 소녀들이나 사용할 것 같은 자잘한 꽃무늬 편지봉투를 우편함에서 발견했을 때 나는 잠시 당황스러웠다. 실로 십 수 년 만에 받아보는 손 편지여서 그것은 먼 과거로부터 날아온 초청장처럼 어리둥절한 느낌마저 주었다. 그녀가 내 주소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도 좀 의외였다. 봉투와 한 벌인 편지지에는 글씨에 서툰 초등학생이 꼭꼭 눌러쓴 것 같은 글씨체로 보고 싶다는 네 글자가 첫 줄에 쓰여 있었고, 부탁할 것이 있으니 방문을 바란다는 내용이 다음 줄에 간결하게 적혀있었다. 편지를 거듭 읽었지만 아무런 작정도 서지 않았다. 선뜻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짧은 편지가 완벽히 무시되지도 않았다. 나는 미결 서류를 제쳐두듯 책상 왼 쪽 구석에 편지를 밀쳐두었다.

 

그즈음 나는 막연한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울의 원인을 짚어보자면 하나같이 사소하고 하잘 것 없는 이유들만 떠올랐다. 생리주기가 불규칙해졌다든가 손등에서 노인들의 검버섯 같은 피부착색을 발견했다든가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하기가 죽도록 싫어서 결근의 이유를 찾곤 한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일조량을 늘린다거나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파스타에 와인을 마신다거나 기분전환을 위해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간다거나 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보단 좀 더 강한 항생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한 작품을 끝낸 감독이 다른 작품을 구상하듯 나는 내 인생에서 한 시기가 끝났음을 느끼고 있었고 다른 생을 구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릴 때처럼 부모나 선생님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해줬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문제가 뚜렷하지 않으니 해결책도 막연했다.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친구들에게 이런 하소연을 하면 사치스러운 고민이라는 지청구를 들을 게 뻔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사실 친구들은 나날을 살아내느라 나름대로 너무들 바빴다. 바쁘다는 건 현대인의 삶의 조건이기도 했고, 한편으론 이런 고민들을 외면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컴퓨터 모니터 속의 서류더미에 파묻혀 씨름하다 문득 고개를 들면, 지루한 업무에 찌들어 초점이 사라진 멍한 얼굴들이 마주보고 있거나 수그린 머리통이 보였다. 비듬이 수북한 어깨, 점심시간에 떨어졌을 반찬 국물이 얼룩진 옷소매를 미처 눈치 채지 못한 동료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것은 내 얼굴이기도 했다.

기관장이 바뀌고 귀가 시간은 조금씩 더 늦어졌다. 지나치게 열심인 기관장의 늦은 퇴근 때문에 모두들 전전긍긍했다. 모이면 넌더리가 난다고 지긋지긋해 했지만 아무도 드러내놓고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고 직장을 떠나지도 않았다. 정년과 노후 가 보장된 직장이었으므로 근무 연수가 늘어나기만을 바라며 꾸역꾸역 맛없는 음식을 삼키듯 출근하고 박봉을 견디고 있었다. 사람들은 철밥통이라고 비아냥거리듯 말하지만 실은 유리처럼 허약한 일상이었다.

 

겨울은 그 어느 해보다 길었다. 11월과 함께 시작된 겨울은 다음 해 3월이 다 가도록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온이 얼마 이하이거나 낮의 길이가 몇 시간 이하면 겨울이라 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체감하는 겨울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대책 없이 춥고 쓸쓸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오는 십여 분간의 가로수 길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 길게 느껴졌다. 따뜻하게 난방이 된 집안에서도 춥다는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겨울은 더디 갔다. 아파트의 화단가를 지날 때면 작년에 보았던 크로커스의 뾰족한 싹이나 진보랏빛 제비꽃을 떠올리며 괜스레 언 땅에 눈길을 주었지만 어떤 자취도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의 모든 기대와 희망을 배반하고 겨울은 어느 날 한 계절을 훌쩍 건너뛰어 다음 주자에게 바통터치를 하고야 말리라는 의혹이 믿음처럼 자라나기 시작했다. 인간이 자연에게 가하는 온갖 가공할만한 폭력에 비하면 그 정도의 복수쯤이야 감수해야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여느 때처럼 그달치의 생리가 시작되었다. 생명을 만들지 못한 난자의 눈물 같은 거라고 시니컬하게 생각했다. 하루 정도 혈흔이 비치지 않아 이젠 정말 끝났나보다 하고 생리대를 치우면 기다리고 있었던 듯 붉은 덩어리가 물컥 쏟아져 내려 속옷은 물론 겉옷까지 물들이는 낭패를 서너 번 겪고 보니 생리대를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소변을 보고나면 변기 안은 선홍색 물감을 섞은 듯 황홀한 빛깔로 흔들렸다.

 

토요일에는 대학 동창 민의 결혼식이 있었다. 끝날 듯 말듯하던 생리는 여전히 긴 장마의 뒤끝처럼 계속되는 중이었다.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으려던 생각을 포기하고 모직 바지에 검정색 겨울 코트를 걸치고 머플러로 목 언저리를 꼭꼭 동여맸다. 아랫도리가 생리대에 쓸린 상처로 따끔거렸다. 생리가 끝날 때쯤 되면 늘 있는 일이었다. 여름철의 불쾌감에 비하면 그래도 견딜만했다. 이렇게 생리 기간이 길어진 게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게는 모른다. 기간은 길어졌고 간격은 터무니없이 짧아져서 한 달에 두 번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수십 번을 망설인 끝에 찾아간 산부인과 의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폐경에 대한 일종의 전조증상 이지요. 이러다 차츰 불규칙해지고 마침내 메노포즈. 특별한 질환이 있는 건 아니니 다행이지 뭐.

그는 마치 거대한 종양덩어리라도 발견하길 기대했다가 실망한 사람 같기도 했다. 난 아직 결혼도 않했다구요. 쏘아붙이려다 속으로 꿀꺽 삼켰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폐경은 50 플러스, 마이너스 5라는데 이건 좀 너무 빠르지 않나요?

빠르다면 빠르지만 조기 폐경이 드문 일은 아니지. 이십대에도 오는데.

의사는 더 이상 얘기할 의욕도 없다는 듯 의자에 등을 기대며 하품이라도 할 기세였다. 그로서는 날마다 이보다 더 심각한 환자들을 대할 테니 이쯤이야 하품꺼리 일수도 있겠지, 생각하면서도 역시 불쾌했다.

더 이상 애를 낳을 것도 아닌데 이것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

여자들은 지긋지긋해 하다가도 이걸 한 번이라도 거르면 또 안절부절못했다.

한 살 더 먹기 전에 식을 올리고야 말리라던 민의 노력은 결국 해를 넘겨 결실을 맺었다. 지인의 별장 정원에서 이루어진 초봄의 결혼식은 예상과 기대대로 남달랐다. 날씨는 견딜 수 있을 만큼 추웠고 추위를 견디느라 긴장된 사람들의 얼굴은 어쩐지 금욕적으로 보여서 아름다웠다. 마당 곳곳에 온풍기를 틀어놓았지만 온기는 대기 중으로 자취 없이 사라졌다. 나이든 신부는 새파랗게 언 입술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렀다. 신부보다 몇 살 어린 신랑은 신부 뺨에 수줍게 입맞춤을 했다. 몇 팀의 축가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실내에 차려진 뷔페 테이블로 갔다. 빈속에 와인을 따라 마셨다.

그래, 술이라도 마셔야지, 어쩌겠냐? 그래도 몸 생각은 해야지.

넓적하게 슬라이스한 토마토에 치즈를 얹은 샐러드를 접시에 담아 들고 따라오며 신이 끌탕을 쳤다. 얼마 전 이혼을 한 신은 내 걱정을 늘어놓았다. 이혼을 할망정 결혼을 해보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었다.

뒤풀이 자리에서 신랑 친구들은 말끝마다 누님들운운하며 노골적으로 깐죽거렸다. 미혼인 민의 직장 후배들에게 뒤풀이 자리를 넘기고 식장을 빠져나왔다. 민은 모든 결혼식 일정을 직접 기획하고 추진했다. 한복 자락을 펄럭이며 각종 집기 임대료나 뷔페 음식 값을 손수 정산하는 장면은 과연 남달랐다. 마흔에 결혼하는 신부는 결혼식도 일상이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 역시 저런 결혼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막 연애를, 보다 정확히 말하면 불륜을 시작한 김과 이혼 후 짧은 첫 연애를 마치고 술과 공허에 찌든 신 사이에서 연애라면 화석이나 다름없는 나는 극지방과 적도를 오가는 심정으로 차를 마시고 저녁을 먹었다. 이게 막 사십대에 든 내 친구들의 초상이었다. 막 연애를 시작한 김은 고사 직전에 수혈을 받은 나무처럼 불균형한 열기를 뿜어냈고 다시 싱글이 된 신은 몹시 공허하고 메말라 보여 제각기 안쓰러웠다. 어제 저녁에 올라왔던 반찬을 오늘 아침과 점심에 다시 먹는 것 같은 기시감과 식상함이 엄습했다. 우리가 친구로 지내온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이런 풍경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 시니컬한 나 자신도 그다지 맘에 들지는 않았다. 요컨대 모든 게 지루했다.

러브홀릭, 알코홀릭, 워커홀릭, 쇼퍼홀릭, 요컨대 모든 홀릭은 자신,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대면하기를 두려워하는 거야.

지루함을 털어내려는 듯, 혹은 화제를 바꾸고 싶다는 안간힘으로 내가 운을 뗐다.

그건 그래. 사실 운동이나 건강 혹은 젊음 중독도 그 못지않게 심각해. 운동을 안 하거나 젊고 아름답지 않거나 건강하지 않은 게 죄는 아니잖아. 그놈의 힐링 타령, 섹시 타령, 정말 지긋지긋해. 아줌마들은 물론 할머니들까지 어떻게든 젊고 섹시하게 보이려고 난리라니까. 대체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니?

실연으로 피폐해진 신이 말했다.

에이, 이 나라만 그럴까? 그건 아마 세계적인 현상이지 싶은데.

김이 뭐 어떠냐는 듯 대꾸했다.

우리 구청 문화 강좌에 제법 유명하다는 작가를 초대했거든. 작가와의 대화 같은 거 말이지. 나도 궁금해서 일부러 시간 내서 가봤거든. 근데 그 작가, 두 시간 내내 자기 마라톤 하는 얘기만 하는 거야. 사실 거기 온 사람들이 그 사람 운동 중독 얘기 들으러 간 건 아닐 텐데 말이지. 마침내 족저근막염에 걸리면서 멈추게 되었대나 뭐래나. 암튼 좀 적당히들 하면서 살 순 없는 건가? 난 매사에 너무 열심인 사람들이 젤 무서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이 반박했다.

네가 늘 그런 식이니까 연애를 못하는 거야. 누가 공무원 아니랄까봐. 좀 적당히가 다 뭐니? 열심히 해야지.

그 와중에도 김과 신은 합심해서 민마저 짝을 찾아갔으니 너 어쩔래? 제발 연애라도 해라. 따위의 잔소리를 틈틈이 늘어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친구들의 탄식이 집에까지 따라오는 것 같았다.

연애 따위는 문제가 아니란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 인생 제 2막을 시작하고 싶다는 얘기 따위는 하지 않았다. 13일 째 계속되고 있는 생리에 대해서는 더더욱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보나마나 결혼이 2막이라고 악머구리처럼 떠들어댈 테고, 폐경과 출산을 이어 붙여서 다시 결혼 타령으로 돌아갈 게 뻔했다.

 

드라이클리닝을 맡기지 못하고 차일피일 겨울 외투를 입고 다녔다. 초봄의 추위는 한 겨울 추위보다 오히려 혹독한 구석이 있다. 신경을 건드린 달까. 그 날은 바람이 심했다. 검은색 모직 코트에 온몸을 감싸고 출근했다. 멋쟁이 미스 양은 넓적다리가 훤하게 드러난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목례와 함께 오우, 하며 탄성을 질렀다. 그녀의 감탄사가 뭘 의미하는지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다음 주에 전근 오는 부서장이 인사차 왔는데 젠장, 빌어먹을, 하필, 케이였다. 십오 년 전 수습기간에 만났던 그는 내게 첫사랑이었다. 모든 첫사랑이 그렇듯 얼토당토않은 이유들로 오해하고 싸우고 헤어졌던 그였다. 그가 부서장이 되어 다음 주부터 출근한단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한 이런 날이 올 거라고 막연히 상상한 적도 있었지만 현실이 될 거라곤 차마 믿지 않았다. 부서원들과 수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그는 딱히 알은체하지 않았다. , 무시하겠다? 나는 돌연한 전의를 느끼며 중얼거렸다. 그는 그럭저럭 아주 망가졌다는 비평은 듣지 않을 만큼 늙어있었다. 그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였을지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는 한 때 나와 입을 맞추었다는 사실을 새삼 놀라워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심란하기 짝이 없는 봄이었다.

 

책상 한 귀퉁이에 던져두었던 윤 여사의 편지를 세 번째로 펼쳐보면서 나는 비로소 한 번은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와 나 사이에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녀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차츰 들었다.

아버지가 윤 여사를 우리 형제들에게 소개 하던 날 나는 단번에 그녀를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녀와 아버지의 오랜 인연에 넌더리와 질투 비슷한 감정도 느꼈다.

예닐곱 무렵의 내 손을 잡고 아버지는 동네 산책을 나갔다. 긴 산책로가 나있는 공원에서 여자를 만났다. 그냥 자연스럽게 길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버지와 여자는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두어 뼘만큼 떨어져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아버지가 준 돈으로 한 블록쯤 떨어져있는 공원 매점에서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사서 먹으며 근처를 맴돌며 놀았다.

두 번째 기억은 내가 여자중학교에 입학해 처음으로 교복을 입게 되었을 때로 건너뛴다. 엄마는 막 하교한 나를 앞세워 여자의 집을 찾아 나섰다. 동년배처럼 보이던 두 여인은 어색하게 집 앞 놀이터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자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엄마는 조금 앙칼지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여자에게 뭔가를 주장했다. 그리고 이따금 먼 산을 바라보았다.

이제 엄마가 돌아가시고 재회한 그들은 재혼을 원했다. 두 오빠는 반대했다. 복잡한 가족사를 우리에게 물려줄 셈이냐며 작은 오빠는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큰 오빠도 올케 언니들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사시는 건 반대하지 않지만 결혼까지는 좀 부담스럽다고 했다. 나는 오빠들에게 이 여자가 그 여자라고 이르지 않았지만 나 역시 아버지의 재혼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순순히 결혼이 뭐가 중요하냐고 말했다. 그녀와 아버지에게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 따위는 없었지만 우리는 그때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십여 년 만에 재회한 그녀를 나는 이번에는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여전히 예전 아버지의 집 근처에 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평생 아버지 근처를 벗어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재개발이 머잖아 보이는 5층짜리 저층아파트에는 당연히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무거운 과일 바구니를 들고 오층 계단을 오르는 기분이 묘했다. 반가운 듯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했다. 윤 여사는 아버지의 마지막 10년을 함께했다. 그녀를 새어머니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어머니라 불러본 적도 없지만, 아버지는 그녀 덕분에 행복한 말년을 보냈다. 그 점에서 나는 그분께 일말의 부채감을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의 일주기에 그녀가 왔었다. 오빠들이나 새 언니들이 반기지 않는다는 걸 눈치 챘는지 그 이후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간단히 우리 앞에서 사라졌다. 그녀를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살아도 될 만큼 상관없는 사람일까, 새삼 의문이 들었다.

오층 현관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뭔가가 문짝을 긁어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한 뼘 쯤 열려있는 문을 밀어 열고 집 안에 들어섰다. 잡종견 한 마리가 나를 올려다보며 서있었다. 반기지도 그렇다고 짖어대며 배척하지도 않았다. 집안에는 음식 냄새가 구수하게 퍼져있었다. 앞치마에 손을 문지르며 다가오는 그녀를 보고 나는 아, 소리를 가만히 삼켰다. 그동안 그녀는 말 그대로 할머니가 되어있었다. 염색도 파마도 하지 않은 백발은 머리숱이 한 움큼도 되지 않았다. 지방질이 빠져나가 백번쯤 구운 크루아상처럼 바삭해진 그녀의 얼굴에 희미한 홍조가 돌았다.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는데 당시에 나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녀가 내게 예고 없는 편지를 보냈듯 어느 토요일 나도 예고 없이 주소 쪽지만을 들고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그녀로부터 편지를 받은 지 한 달이 훌쩍 지난 뒤였다. 그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던 듯, 혹은 퇴근한 나이찬 딸자식을 위해 저녁밥을 차려주는 노모처럼 당연하고도 자연스레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기역자로 굽은 허리에 굼뜬 몸놀림으로 차려주는 노인의 밥을 거저 앉아 받아먹기가 뭣해서 좀 도와줄라치면 그녀는 극구 사양했다. 그녀가 아버지와 함께 살 때처럼, 그녀는 아버지의 자식인 나를 몹시 어려워했고 극진히 환대했다. 문득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 형제들은 명절이나 아버지의 생신 혹은 엄마 제삿날 아버지 집에서 모였고 그밖엔 각자 시간 나는 대로 형편 되는대로 너무 무심하다 싶지 않을 만큼의 터울을 두고 아버지를 방문했다. 그때마다 그녀가 아버지 옆에 있어 주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속으로 감사했다. 나중엔 집에 갈 때마다 아버지 선물보다 그녀에게 줄 선물에 대해 좀 더 신경을 썼고 그녀에게 용돈이 든 봉투를 넌지시 건네기도 했다.

그녀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열댓 평 남짓한 집안을 둘러보았다. 낡은 집이었지만 정갈하고 훈훈했다. 좁은 베란다에 화초가 가득했다. 가만 보니 아버지 집에 있었던 늙은 고무나무도 보였다. 나는 그만 감격에 겨워 소리를 질렀다. 마치 죽은 아버지를 만난 것 같았다. 그것 말고도 고무나무 화분이 여러 개 보였다.

가지가 휘어져서 힘에 부쳐 보이면 잘라서 뿌리를 내렸어. 그냥 죽게 버려둘 순 없잖아.

윤 여사가 손놀림을 멈추지 않은 채 이따금 내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

호박전, 취나물, 꽃게탕, 순무 섞박지, 모두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이었다. 밥을 먹는데 초인종 소리도 없이 현관문이 빼곰히 열리더니 교복 차림의 여자 아이가 들어섰다. 여긴 주로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무단침입 시스템이군, 험한 세상인데. 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여학생 교복을 입었지만 아이는 참 작았다. 교복 속에 아이가 감싸여있는 것 같았다. 있는 집 아이들은 처음부터 교복을 몸에 꼭 맞게 맞춰 입고 나중에 키가 자라면 새로 맞춘다던 친구 말이 떠올랐다. 교복을 서너 치수는 더 크게 해 입은 저 아이는 그러니까 없는 집 아이인건가?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미래 왔구나. 어여 들어와. 밥 먹어.

여사가 말했다. 아이는 현관에 그대로 선 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 내 딸이야. 아니, 내 친구 딸.

여사는 내 눈길을 의식한 듯 말을 정정하며 밥과 국을 내왔다. 아이는 내 앞자리에 앉아서 여전히 날 바라보았다. 도전하는 듯도 하고, 경계하는 듯도 했다. 눈빛이 묘했다. 파란 눈의 동양인이었다.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무슨 색소 결핍이래. 위층 사는 아인데. 가여운 아이다. 이래저래. 부모는 이따금 오고 애만 혼자 지내. 부모라고 돈벌이에 바빠서 아이를 돌보질 않으니. 도대체 요즘 젊은 사람들이란…….돈이 자식보다 더 소중하니.

아이가 가고 난 후 윤 여사가 말했다. 그리고 말끝에 개를 돌봐주었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한 일주일 쯤 지방의 친척집에 다녀올 거라고 했다. 왜 하필 저예요? 묻지 못했다. 그녀도 설명하지 않았다. 데리고 가도 좋고, 여의치 않으면 매일 한 번씩 집에 와서 산책이나 시켜주고, 먹이 주고 그러면 돼. 훈련이 잘 되어서 번거로울 건 없을 거라고 했다. 난 거절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핑계를 대라면 뭐든 만들 수 있었다. 가타부타 대답을 못하는 내 속을 환히 들여다본 듯 윤 여사가 덧붙였다.

너 개 썩 좋아하진 않는 거 알아. 하지만 넌 책임감이 있잖아. 뭔가 약속하면 꼭 지킬 거라는 걸 알아. 그래서 네게 부탁하는 거야. 늙은 데다 한 쪽 다리를 다친 적이 있어서 몸은 좀 불편하지만 순하고 똑똑한 녀석이야. 녀석 나이가 사람으로 치자면 내 언니뻘일 게야. 버려진 걸 데려다 키웠는데 이젠 내가 녀석 없으면 못살지. 봄에 데려와서 봄이라고 불러.

 

나는 퇴근 후 윤 여사의 집으로 가서 봄이를 돌보았다. 봄이는 정해진 변기에 정갈하게 볼 일을 보았고 마치 노인처럼 조금 밖에 먹지 않았다. 잠을 많이 잤고 언제나 눈가에는 눈곱이 끼어있고, 침이 흘러내렸다. 잿빛 털은 목욕을 시켜줘도 윤이 나지 않았다. 사람하고 똑같았다. 어떻게 해도 늙음의 추레함을 막을 수는 없었다. 봄이를 데리고 빌라 주변을 느릿느릿 산책하다 저녁거리를 사서 윤 여사의 집에 돌아와 한 끼 때우기도 했다. 봄이를 상대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 봄이는 마치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이따금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한숨을 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가끔은 지루한 듯 하품을 하기도 했다. 이상하게 이 일이 귀찮거나 성가시지 않았다.

나흘 째 되는 날도 봄이를 데리고 현관을 나섰다. 밖은 벌써 어둑했다. 퇴근 하자마자 달려와도 언제나 일곱 시가 넘었다. 녀석이 종일 갇혀있었다고 생각하면 절로 서두르게 됐다. 계단 센서 등에 불이 들어오자 5층과 옥상 사이 계단참에 누군가 앉아있는 게 보였다. 그 아이 미래였다. 아이는 고개를 두 무릎사이에 숙이고 있었다. 봄이가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아이는 고개를 들고 봄이를 당겨 안았다.

할머니가 봄이를 왜 나한테 안 맡기셨을까요? 내가 더 친한데.

아이는 봄이 얼굴에 이마를 부비며 말했다.

글쎄. 그러게.

산책하게요? 아이는 따라나설 태도였다.

너 학원은? 저녁은 먹었니?

난 약간 귀찮기도 해서 되물었다.

아직요.

아이는 내내 조잘대며 따라왔다.

우리 엄마도 파란 눈이에요. 나처럼.

아이는 묻지도 않는 말을 대수롭지 않은 듯 했다.

그래서 요리를 배웠대요.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려고. 난 미국에 갈 거예요. 그래서 영어공부만 하고 있어요. 엄마나 아빠가 알면 멘붕일 테지만. 난 수학 시간에도 영어공부만 해요. 미국 가서 살 거예요. 엄마, 아빠가 아무리 기다려도 난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라면 먹을래?

산책에서 돌아와 아이에게 물었다.

계란도 넣어주세요.

아이는 끊임없이 종알거리면서 덧붙였다. 마치 온종일 가슴 속에 모아놓았던 말을 호흡하듯 내보내는 것 같았다. 아이는 베란다에 나가 화분에 물을 주었다. 일주일 정도면 그새 화초들이 어떻게 될 것도 아닐 텐데. 나는 생각하며 아이가 하는 양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으로 흙을 만져보고 흙 속으로 손가락을 찔러 넣어본 후 흙이 메말랐다 싶으면 물을 주는 모양이었다. 베란다 한편에 연탄 화덕이 있었다. 한겨울에는 연탄불을 피운다고 역시 아이는 묻지 않는데도 종알거리듯 설명했다. 대단치도 않은 화분에 정성을 들이는 윤 여사가 눈에 선했다.

라면을 먹고 나자 아이는 냉동고에서 얼려놓은 딸기를 꺼냈다. 믹서에 딸기와 우유를 넣고 갈아 딸기우유 두 잔을 순식간에 만들어냈다. 손놀림이 익숙했다.

라면이나 국수를 먹으면 할머니는 이렇게 딸기우유나 바나나 우유를 만들어 주셨거든요.

아이는 두 잔을 채우고 남은 것은 봄이의 식기에 알뜰히 부어냈다. 딸기 우유를 마시며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고 있는 아이를 처음으로 찬찬히 바라보았다. 금발머리만 얹는다면 어린 날의 미쉘 파이퍼가 저렇지 않을까 싶었다. 그녀의 눈은 정말 지중해의 물 빛깔처럼 푸르고 예뻤다. 그런데 어색했다. 관습이 된 시각 탓일 거였다.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어느새 아이가 나를 빤히 마주보고 있었다. 왜요? 하고 묻는 시선 같기도 하고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애들이 나보고 호빗이래요.

내 생각을 들여다 본 것처럼 아이가 말했다.

호빗? 반지의 제왕 말이니?

제가 좀 작잖아요. 게다가 눈도 이렇고.

아이는 담담했다. 그런 소리와 그런 시선에 수없이 노출되며 자랐을 터였다.

그건 완전 칭찬인데. 호빗은 작지만 용감하잖아. 나라도 구했고. 그의 눈도 정말 예뻤지. 너처럼.

~.

말꼬리를 늘이는 아이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맴돌았다.

나이 먹으면, 그러니까 언니만큼 나이 들면 살기가 좀 편해질까요?

아이가 툭 던지듯 말했다.

언니?

아줌마라 불리는 게 이미 더 익숙했다.

할머니가 아직 결혼 안했으니까 언니라 부르랬어요.

아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 친구 중엔 고등학생 딸도 있어. 그냥 아줌마라 그래. 피차 어색하잖아.

난 괜찮은데.

나도 괜찮아. 그나저나 지금 살기가 좀 편해지냐고 물었니? 글쎄다. 나도 네 나이 땐 서른 살 넘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그런 걱정 했더랬다. 근데 말야.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말야. 난 내 인생에서 사실 지금이 젤 좋아. 다섯 살 때보단 열 살 때가 더 좋았고, 십대 보단 이십 대가 더 나았어. 내가 지금 딱 마흔 인데 말이지. 지난 삼십대보단 지금이 그리고 앞으로가 더 좋을 거 같아. 무슨 대단한 성공을 해서는 아니고 그냥 조금씩 세상하고 타협하게 돼서랄까? 아니, 조금은 배짱이 생겨서 랄까. 살기 편해지고 잔재미도 늘었다고나 할까. 뭐 그런 거지. 시시하지?

, 대박. 정말요?

아이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렇다니까. 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노래에도 있잖아.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어쩌고 하는.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 점점 좋아질 거야. 뭐든.

정말요?

아이는 진지한 눈빛이 되었다. 순간 아이의 외로움이 사무치게 내게 느껴졌다. 낯선 여자에게 저토록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아이에게 나빠질 거라는 말 따위는 절대 할 수 없었고, 그래서는 안 되었다.

내가 요즘에 <몽유병자들>이란 오래된 소설을 읽고 있는데 말이지. 거기 이런 말이 나온다. 들어봐. 존재 없는 이 세계, 휴식 없는 이 세계,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서만 균형을 찾을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는 이 세계, 이 세계의 광포함은 인간의 거짓 능동성이 되어버렸다. 인간을 무 속으로 내던지는 능동성. , 더 이상 철학을 할 수 없는 시대의 체념보다 더 깊은 체념이 존재할까? 철학은 탐미적인 유희나 부르주아의 소일거리가 되어버렸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숫자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나는 여기까지 말하고 긴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열을 내며 말해본 건 오랜만이었다. 아이는 호기심이 어린 눈빛으로 입을 다물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말이야, 1931년에 출간된 소설이거든. 어때? 놀랍지 않니? 오늘자 신문 칼럼난에 실린 글이라 해도 손색이 없지? 인간이란 조건이 달라지지 않는 한 기계문명이 제아무리 발전했다 해도 세상은 과거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비슷해. 세계는 언제나 몽유병자들로 소란스럽지만. 그러니 겁내지마.

맘에 들어요.

뭐가?

이 세계에 관한 얘기도. 나이 들수록 살기가 수월해진다는 얘기도, 다요.

 

그날이 아이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 윤 여사와 약속한 일주일 중 아직 이틀 이 남았지만 월말이라 일이 많았고 주말엔 구청 행사가 있었다. 남은 이틀은 아이에게 봄이를 부탁하고 윤 여사 집에 가지 않았다. 그 후 일주일이 훌쩍 지나고도 그녀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지만 나 역시 이런저런 일에 쫓겨 연락해보기를 차일피일 미루었다. 한번 전화 했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윤 여사가 돌아왔을 거라고 편히 생각했다. 한번쯤 전화조차 해주지 않는 그녀에 대해 석연치 않은 느낌이 남았지만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윤 여사의 조카란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고 병원 중환자실을 찾았을 때 그녀는 명백히 죽어가고 있었다. 다량의 진통제와 영양주사로 연명하는 육신은 마를 대로 말라서 한줌 정수만 남아있는 듯했다. 눈빛은 맑고 차분했다. 긴 겨울이 지나는 동안 윤 여사는 줄곧 4월을 기다렸다. 그녀는 사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4월이 오면 마치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순처럼 그녀도 소생할 수 있으리라 희망했는지도 모른다.

4월이 오면 어쩐지 일어날 수 있을 거 같아. 4월이 오면. 꽃들이 피어나면.

그리고는 뭔가를 기다리듯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눈빛이었다. 성치 않은 발음으로 그녀가 그런 말을 할 때면 나는 끝까지 듣지 않고도 수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 역시 그 외엔 그녀를 위해 달리 해 줄 것이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그녀 역시 자신이 곧 죽게 될 거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언제나 그녀의 늙은 개 봄이와 베란다에 키우는 화초들과 옥상 화단에 파종할 꽃씨들을 걱정했다. 모든 걱정들은 부질없는 것이었지만 그런 걱정들을 빼고 나면 사실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카란 남자는 오랜만에 맑은 정신이 돌아오셨다고 말했다. 아마 마지막일 것 같다고도 했다. 그리고 사흘 후 윤 여사의 부고를 받았다.

 

윤 여사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슬퍼한 건 미래였다. 미래는 자신이 봄이를 키우겠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조차 아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의 전화를 받고 퇴근 후 윤 여사의 집에 갔을 때는 이미 집은 비어 있었다. 서비스업체에서 나온 사람들이 짐을 모두 정리해서 트럭에 싣거나 쓰레기로 처리한 뒤였다. 그녀가 사용하던 가재도구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베란다에 가득했던 화분들도. 그들은 짐을 모두 트럭에 싣고 막 떠나려던 참이었다.

이거 다 어디로 가요?

버릴 건 버리고 팔 건 팔고. 그건 왜요?

남자는 명함 한 장을 주었다. 사후처리대행 서비스라고 적혀있었다.

늙은 개 한 마리 있었을 텐데요. 개는요?

경비실에 가보슈. 여학생 하나가 개 한 마리 끌고 왔다 갔다 하며 참견 하드만.

경비실 문 앞에 봄이가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봄이는 오늘따라 눈곱이 덕지덕지 끼어 더 추레해보였다.

개 데리고 온 아이는요?

? 갔지. 제 엄마가 데려가던데. 애는 개를 데려가겠다고 떼쓰고 애 엄마는 안 된다고 난리고. 한참 승강이하다 결국 여기 맡기고 갔어요. 잠깐은 맡아줘도 여기선 못 키워요. 어서 데려가쇼.

경비원이 재촉하듯 말했다. 제 엄마에게 간 미래는 지금보단 행복해질 거라고 믿기로 했다. 그게 마지막일 줄 알았더라면 계란라면보다 더 근사한 음식을 해주었을 텐데 후회가 남았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어디선가 다시 만날지. 그 애를 못 알아보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

 

윤여사의 일주일간의 나들이는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한 거였다. 그녀는 조카를 만나 자신의 장례식을 부탁하고 대행업체에 집 정리를 맡겼으며 봄이는 내게 맡겼다. 어떤 기분으로 그런 일들을 했을지 지금의 나로선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나는 사표를 썼다. 케이에게 결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할 만한 결심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주변에 누구도, 아니 단 한 사람도 나의 사직을 지지하지 않았다. 지지자가 단 한 사람만 있었어도 나는 그 일을 좀 후회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후회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미래에게 말했듯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그만두는 상상을 천 번도 더 했는데 막상 그만두고 보니 그만두는 일은 생각보다 시시했다. 빅뱅 같은 걸 기대한 건 아니지만 천지개벽은커녕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평소보다 30분쯤 늦게 일어나도 서두르거나 씻지 않아도 된다는 것 빼고는.

무직자로서의 첫날, 밖에는 더디 오는 봄을 재촉하는 듯한 비가 소리도 없이 내리고 있었고, 나는 온종일 비오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는 당장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를 하게 되겠지만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었다. 계획하거나 예상한 대로 되는 건 사실 별로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서 재미있는 인생이기도 하므로. 내가 공무원이 되었을 때 친구들은, 공무원과는 가장 안 어울리는 네가 공무원이라니, 하며 놀랐고, 얼마못가 자진탈락 할 거라 점쳤으나, 나는 이렇게 오래 그곳에서 밥벌이를 했다. 이번엔 모두들, 얘는 정년퇴직까지 갈 거라고 이구동성이었으나 그들의 예상을 배반하듯 나는 사표를 냈다. 그게 지금일 거라고는 나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비가 오고 나서도 여전히 날은 추웠다. 식목일이라고 어린 묘목을 심었다간 모두 얼어 죽을 판이었다. 옷을 단단히 껴입고 봄이를 데리고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봄이가 힘들어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했다. 봄이는 나들이가 기꺼워 헉헉거리면서도 이따금 꼬리를 흔들었다. 야트막한 야산에 조성한 공원의 정상에 간이 무대와 계단식 관람석이 있었다. 공원을 감싸듯 타원으로 난 산책로에 저녁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일렬종대로 걷고 있었다. 산책로에 늘어선 벚나무에는 꽃망울도 보이지 않았다. 관람석 꼭대기까지 갔을 때 얼굴에 뭔가 찬 것이 스쳤다. 희끗희끗 스러지는 그것은 가느다란 눈발이었다. 눈발은 점점이 흩날리다가 땅에 닿기가 무섭게 녹아버렸다. 어스레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봄이도 고개를 들고 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몇 차례 짖어댔다.

 

누군가가 그토록 기다리던 4월이었다.

 

마린- 2007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2013년 소설집 아메리칸 앨리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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