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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세계/권월자/영화『전국 노래자랑』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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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2,319회 작성일 15-07-0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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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월자

영화 전국 노래자랑을 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에 대해 설명하면서 카타르시스에 대해 말했는데, ‘카타르시스우리가 비극의 주인공들을 바라보며 공포와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인간은 비록 남의 일이더라도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며 다른 이의 공포와 고통 등을 공감하는데,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인간은 더욱 인간다워질 수 있다. 김춘수 시인은 <>이라는 시를 통해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는데, 이 역시 인간은 서로 소통해야 더 인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영화는 사우나이다. 우리는 몸의 독소인 땀을 배출하기 위해 사우나를 찾곤 하는데, 사우나에서는 생면부지의 다른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알몸으로 땀을 흘린다. 사우나라는 같은 공간에서 땀을 흘리는 것이니만큼 모두 같은 처지이므로, 낯선 사람이더라도 이질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보는 순간, 나는 영화의 주인공과 내가 사우나를 같이 하는 듯하다. 영화에 흠뻑 빠져들다 보면, 영화 속의 주인공이 곧 내가 되어 주인공이 즐겁거나 기쁠 때는 나 역시 들뜬 기분으로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슬픔에 가득 잠기다 끝내 눈물을 줄줄 흘리고야 만다. 어느 쪽이든 영화가 끝나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한 기분이 드는 것이 마치 사우나를 한 듯한 느낌이다.

얼마 전 본 영화는 내게 특별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 영화는 바로 <전국노래자랑>이다. 매주 일요일 낮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긴 대한민국 최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발상이 우선 흥미를 끌었다. 동료들과 영화를 보는 내내 집중하게 되었는데, 전국 팔도에서 몰린 수많은 참가자의 사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다음 내용은 무엇일지 궁금해지고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국 노래자랑>의 역사 그 자체인 송해 씨의 특별출연이 나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는 TV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직업의식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진실하게 드러내놓는 분이기 때문이다. 마치 사우나에서 자신의 알몸을 허물없이 보여주듯, 그분은 각 지역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쁨과 슬픔 등의 감정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나누고 있다.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주변 자연환경과 사람들, 특산물, 애환, 기쁨, 웃음, 사랑 등을 찾아내어 자연스럽게 전해준다. 이런 그의 모습이 사우나에서 만날 수 있는 동네 이웃 같아서 좋다.

출연자들은 누구나 어김없이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떨리는 목소리, 시원한 가창력을 가진 목소리 등등 출연자마다 똑같은 모습은 없지만 단 한 가지는 똑같다. 누구나 열정으로 노래 부르고 즐거운 마음으로 무대를 내려온다는 사실이다. 역할을 하시는 분이 바로 송해 씨이다. 송해 씨의 우스꽝스럽고 다양한 표정과 더불어 어눌하게, 혹은 템포를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짙은 인간애가 담긴 특유의 말주머니로 관중들을 박장대소하게 한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진행해도 <전국노래자랑>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근심, 걱정 다 내려놓고 웃게 해주신다. 웃다 보면 눈물까지 줄줄 흐를 때도 있다. 곧잘 분위기에 맞춰 덩실덩실 춤도 추시면서 무대와 관중이 즐거워서 혼연일체가 된다.

나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살면서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웃음이 되고 진정 따뜻한 사랑을 전해주고 나로 인해 힘을 얻어 세상 살맛난다고 느끼게 하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웃을 일을 만들고 분위기를 조성하고 즐거워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날마다 웃을 일만 있겠는가? 그러니까 내려놓아야겠지. 무슨 일이든 잘해보려는 욕심을. 나 아니면 아무도 이 일을 못할 거야 하는 자만심을. 정말 잘해 보려는데 다른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맞춰주질 않으면 괜스레 화가 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사정이 있을 터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마음이 쓸데없는 생각들로 일그러질 때, 나는 사우나를 찾거나 영화관을 찾곤 한다.

누군가 말하기를 이 세상에는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다만 내가 이해하기 싫어서 이해 안 하는 것일 뿐. 바로 그 이치를 나는 사우나에서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깨달은 것이다. <전국노래자랑>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땀을 흘리는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삶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꿈은 무엇일까? 세상 모든 별에 그 생명이 있듯이, 우리의 삶에도 시작과 끝이 있다. 살아 있는 동안 하루를 살아도 최선을 다한다면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 김인권은 국민가수의 꿈을 꾸지만, 현실은 미용실을 하는 부인에게 구박받은 주인공 봉남역을 맡았다. 부부가 사랑할 때는 남편의 그 꿈이 소중하고 멋지게 보였지만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그토록 소중하게 보이던 꿈이 철없는 짓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변질한다. 그러다 봉남은 전국노래자랑에 참가하여 멋진 춤과 노래 실력을 선보인다. 밤하늘에 자신의 불빛을 환히 비추는 별처럼, 자신의 꿈을 당당히 이룬 것이다. 봉남은 부인에게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인 노래를 멋지게 선사했다. 부인도 옛날 순수했던 사랑의 시절에 소망하던 일들을 떠올리고 남편의 변함없는 사랑에 감동하게 된다. 그 장면에서 나도 감동했다. 나 역시 내가 꿈꾸던 일이 무엇이었던가 생각해 보면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일이었다. 아이들과 만나는 일조차 숨이 멎을 정도로 떨리고 가슴 벅찼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면서 학교에 가면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따뜻하게 말해주고 친절하게 잘 가르치리라 다짐하곤 했었다. 그러나 그 꿈은 이내 산산이 부서지곤 했다. 금세 굳은 표정으로 엄하게 꾸짖고 있는 나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내가 싫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다. 내가 요것밖에는 안 되나? 하는 자괴감 때문에…….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시장 어귀에 있는 극장에 들어가 흑백 화면에, 성우가 들려주는 실감나는 대사에 상상의 나래를 펴고 꿈결 같은 행복을 맛보곤 했다. 남자 성우가 이 역할, 저 역할 넘나들며 명랑하기도 하다가, 흐느끼기도 하고 속삭이기도 하며, 화면의 주인공과 꼭 어울리는 목소리로 대사를 읊을라치면 나도 이다음에 멋진 변사가 되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변사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순간순간 꿈을 꾸며 살 수 있었으니 행복했다.

지금도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무엇을 보든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면 개운해지기 때문이다. 마치 땀을 적절히 흘리게 하는 사우나를 기분 좋게 마친 기분이다. 사우나를 마치면 우리는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몸속의 독소인 땀이 배출되어서 그런 것이기도 하겠지만, 마음속의 땀까지 배출되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우나를 마치고 밖으로 나서면 세상 모든 것이 환해 보이곤 한다. 거리의 가로수와 빌딩 사이로 비치는 햇살까지 환하게 느껴진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나는 사우나를 찾고, 사우나 같은 영화를 찾는 것이다. 영화 <전국노래자랑>은 언제나 일요일 한낮을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송해 씨를 닮고 싶어 하던 추억 속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의미 있는 영화였다.


권월자- 2014열린시학으로 수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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