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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
주스가 죽이 되는 까닭
나로서는 아침밥을 먹는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대부분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에는 그 부담스러움이 더해서 거의 아침밥을 먹지 않고 학교에 다녔다. 그러다보니 친정 엄마는 이런 나에게 무엇이라도 먹여보려고 많이 애썼던 것 같다. 어쩌다 입맛 당기는 날에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 달라고 엄마에게 부탁하면 금세 만들어 내놓는 것만 봐도 그랬다. 게다가 만들어 내놓는 음식에는 갖가지 부재료들을 잔뜩 넣어 나를 짜증스럽게 했던 기억도 편식이 심한 나에게 무엇이라도 먹여보고자 했던 엄마의 애타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엄마의 그런 마음을 알 리 없는 그 때 나는,
" 이게 뭐야? 뭘 좀 먹을 수 있게 해줘야지!“
하고 엄마에게 못된 소리를 했다. 엄마들은 성질 못된 딸아이를 키울 때,
'시집가서 너 같은 딸 낳아봐라'. 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엄마도 그랬을까?
속상한 친정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입 짧은 딸아이를 키우면서 눈물바람 하는 날이 많았다. 차려주지 않으면 먹을 게 있어도 찾아먹지 못하고 엄마를 찾는 아이, 학교 급식이 못마땅해서 몇 해나 도시락을 싸주어야 하는 아이 때문에 이래저래 힘이 들었다. 이렇게 먹는 것으로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딸아이가 나에게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 달라고 할 때가 있다. 떡볶이를 만들어 달라거나, 호두 주스를 만들어 달라거나, 샐러드를 도시락 반찬으로 꼭 넣어달라는 부탁을 할 때이다. 이럴 때면 내 마음은 설레기까지 한다.
딸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아침, 딸아이가 호두주스를 만들어 달라고 할 때였다. 우유에 호두, 검은 깨, 잣과 검정콩을 볶아 만든 가루를 넣고 단맛을 더하려고 바나나를 넣고 주스를 만들어 딸아이에게 내밀었다. 딸아이는 그것을 보자마자 싫은 내색을 했다. 아이가 원하는 호두주스는 우유에 호두와 바나나만 넣어 만든 주스인데 좀 더 챙겨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주스가 아니라 죽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렇게 해 놓으면 어떻게 먹으라는 거예요?"
짜증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딸아이가 따갑게 한 마디를 했다. 만들어 놓은 주스에는 겨우 입을 갖다 대는 시늉만 하고 나가버렸다. 그 순간 내 욕심이 지나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먹여 보려하는 내 마음을 딸아이가 몰라주는 것 같아 내 마음도 좋지 않았다.
그때서야 친정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가 내게 내밀었던 음식도 그랬다. 밥을 주면서도 공기 가득히, 국을 주면서도 대접 가득히 채워주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렇게나 많이 주면 어떻게 다 먹으라는 거냐며 투덜댔다. 내가 많이 먹어주길 바라는 친정 엄마의 마음이 밥그릇에, 국그릇에 가득 담겨 있었다는 것을 딸아이가 내 마음을 몰라주는 서운함으로 알게 되었다.
지금도 친정엄마는 때를 정해 놓고 반찬이 될 만한 것들을 택배로 보낸다. 받아보면 무엇이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잔뜩 담겨있다. 냉장실도 냉동실도 한계가 있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엄마가 보내주는 반찬거리는 종류도 다양하고 양도 많다. 냉장실이며 냉동실에 정리하는 것이 귀찮아 잘 먹겠다며 고마워하는 인사보다 너무 많다는 불만을 먼저 표현한다. 그래도 친정 엄마는 자주 챙겨 먹으라는 말로 오히려 내 불만을 다독인다.
딸아이 민서를 불러놓고 친정 엄마가 보내준 반찬들을 정리하던 날이었다.
"할머니는 왜 이렇게 많이 보내주시는 걸까?"
하고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해주셨던 음식도 그랬어. 적당히 넣어서 적당한 양으로 만들어 주시면 좋겠는데 온갖 걸 다 넣어서 먹기 힘들게 해주신 거 있지? 정말 짜증나고 마음에 안 들었어.”
“…….”
“그런데 민서야. 어느 날 엄마도 네가 먹을 음식을 외할머니처럼 만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그러면서 외할머니의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된 거 있지? 외할머니 는 엄마가 좀 더 몸에 좋은 것들을 좀 더 많이 먹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러셨 다는 걸. 그게 다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는 거.”
민서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나도 조금이라도 몸에 좋은 걸 네가 먹어줬음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것저것 넣어서 만들다 보니 먹기 부담스러운 이상한 모양새의 음식을 만들게 되어 결국 너를 짜증나게 한 거지. 너를 사랑해서 더 좋은 걸 주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네가 잘 먹을 수 없게 만들어 버렸지.”
딸아이가 알아들었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민서야, 주스가 죽이 되는 까닭은 사랑 때문이었어. 적당히 조절하려해도 자꾸 넘치기만 하는 사랑……. 외할머니도 엄마도 그 사랑을 세련되게 조절하지 못하 는 바보 엄마인 셈이지.”
“…….”
“…….”
김미정 - 2008년에 <열무김치를 담그며>라는 시로 「독서신문」에 추천. 「작가와 문학」동인으로 활동하며 「경기문협」회원으로 활동,소수의 작품을 발표. 동인지로「몸이 시에게 말을 걸 때>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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