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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선
아버지의 가방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자식들이 시골집에 모였다. 아버지의 유품정리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아버지가 떠난 자리를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떠날 때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말이 새삼스러웠다. 시골집에 가면 거실이나 방에 가족들의 사진이 걸려있는 풍경이 정겹다. 아버지의 작품이다. 벽이 콘크리트 벽이라 못을 박기가 힘들었을 법도 한데 정갈하게 자를 잰 듯 나란히 걸어놓았다. 이번에 내려가면서 큰오빠가 부모님 사진을 액자에 담아갔었다. 미소를 가득 머금고 찍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분이 어깨를 마주하고 다정하게 찍은, 조금은 젊은 날의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사진이 마음에 드셨는지 그것을 안방에 걸어 달라고 하셨다. 오빠 둘은 벽에 못 몇 개 박는 것쯤이야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나머지 가족들은 안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사소한 작업이 아님을 알아챘다. 처음에는 둘이서 번갈아 가면서 망치로 박는 것 같더니 급기야 전기드릴을 가져왔다. 집 벽이 무너질 정도의 굉음을 내는 것이 공사 현장을 방불케 했다. 그 모습이 마땅찮았는지 어머니가 보시고는 “너그 아버지는 왼손으로도 망치 몇 번 두드리면 금방이었는데, 됐다마 집 부서지겠다.” 하시며 손사래를 치셨다. 아버지는 왼손잡이셨다. 두 남자는 쉽게 시작한 것이 머쓱했던지 한참을 집안 가득히 소음을 뿌린 후에야 액자 몇 개를 벽에 걸 수 있었다.
가족들의 얘기 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혼자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 한편에는 커다란 창고가 있다. 아버지의 공간이다. 집안에서 여자들의 부엌살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공간에는 아버지의 물건들로 가득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예전에 학교 교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낡은 나무의자였다. 더 이상 잎도 열매도 맺을 수 없어 밑둥치만 남은 그루터기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쉼 없이 달려올 때는 엉덩이 한 번 내려놓을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기력이 떨어져 무언가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아버지에게 하나의 안식처가 되어주지 않았나 싶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닿는 곳 마다 낯설게 다가왔다. 기역자 모양을 한 창고 벽에는 생소한 도구들이 가득 걸려있었다. 하나하나 못을 박아 걸어놓은 것이 꼼꼼한 아버지의 성품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떤 것은 책장을 옮겨 놓은 것처럼 칸칸이 나뉘어져 잘 정돈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철제 연장들은 차갑고 냉철한 모습으로 걸려있었지만, 한창 제 역할을 다할 때의 뜨거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아버지를 닮아있었다. 이제는 주인이 없다는 것을 아는지, 쓰임새를 잃고 녹을 가득 머금은 채 차가움도 뜨거움도 드러내지 못하는 고철로 남아있었다. 언젠가는 아버지가 훌쩍 떠나신 것처럼 녹을 머금은 그것들도 산화되어 사라지겠지 싶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농부셨다. 할아버지의 고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힘겨운 살림살이는 아버지에게 가난이라는 무거운 짐을 남겨 주셨다. 어려서 부터 먹고 사는 일이 급급하다 보니 학교는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무 학력이었다. 어린 시절 그런 아버지가 부끄럽게 생각되어 소심하게도 부모님 학업 란에 무학이 아닌 초졸 이라고 적었던 적도 있었지만 철이 들면서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농사에만 전념하시던 아버지가 언제 부터인가 커다란 가방을 메고 일을 하러 나가시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식들의 학비 부담이 다가오면서였으리라. 돈을 벌어서 논이나 살 것이지 없는 살림에 공부 시킨다고 주위 사람들의 이런저런 말들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개의치 않으시고 자신의 소신대로 자식들이 공부에 뜻이 있는 만큼 지원을 해 주셨다. 힘들어도 배워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았다. 가방 속에는 건설 현장에서나 사용되는 갖가지 도구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어린 내 힘으로는 들 수도 없는 무게였다. 농사를 짓는 것 이상으로 수입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이 되셨는지 어머니에게 모든 농사일이며 집안일을 넘기고 힘든 막노동을 선택하셨다. 타 지역에 공사가 잡혔을 때는 교통과 통신이 원활하지 않던 시골이라 한두 달을 집에 오시지도 못하고 연락도 제대로 취하지 못했을 텐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창고에는 아버지가 쓰시던 회색가방도 입을 다문 채 놓여 있다. 들어줄 이도, 닫혀 진 입을 열어줄 이도 없게 되었다. 아버지의 어깨에 둘러멘 가방은 배우지 못한 한을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으시려 던 간절함이 담겨 쉼 없이 열렸다, 닫혔다 했을 것이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에 나가 어둠을 잔뜩 짊어지고 돌아오는 삶이었지만 힘든 노동의 고통보다 당신 손으로 당당하게 벌어서 가족을 부양함이 더 컸을 것이다. 그것이 의지가 되어 묵묵히 살아오셨으리라. 그러나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자마자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떠나셨다. 자식들에게는 공부하라는 말도, 당신처럼 고달프게 살지 않으려면 배우라는 말도, 일절 하지 않으셨다. 그저 못하나 박는데도 힘보다는 요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그 모습 자체였다. 아버지의 가방 속에 가득 들어 있던 연장들이 글이 되고 책이 될 수는 없겠지만 많은 이야기를 꺼내 자식들에게 전해 주는 것 같다.
값나가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등짐에 지어진 무게만 가득했던 그 가방을 멘 젊은 날의 아버지가 힘든 내색 없이 환하게 웃으시며 “아빠 왔다.” 하고 들어오실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아버지의 낡은 나무의자를 서둘러 내어 주리라.
김용선 – 수필가. 2014년 《한국산문》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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