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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조명/정미소/사랑의 빛과 달콤함, 그리고 찾아 온 고통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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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2,674회 작성일 15-07-0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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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조명 / 이외현의 시 읽기

정미소

사랑의 빛과 달콤함, 그리고 찾아 온 고통의 그림자

 

 

이 외현의 시, 실연하다를 읽으며 슈만의 연가곡시인의 사랑이 떠올랐다. ‘시인의 사랑은 슈만이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여서 만든 가곡집이다. 하인리히하이네는 숙부의 딸인 아마리에로를 사랑하다가 처절하게 실연당한다. 슈만은 스승의 딸인 클라라를 사랑하여 법정 소송까지 벌였다. 모두가 아프고 고통스러운 사랑이었다. 하이네는 너는 한 떨기 꽃과 같이’ ‘나는 꿈속에서 울고있었네의 시를 통하여 그대가 나를 버리고 떠난 꿈을 꾼 때문에 흘러넘치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고 하였다. 이외현은 꽃을 사랑하는 달이 되어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린다.

 

오밤중, 탱자 울타리 넘어 꽃 따러 갔지

. 따기도 전에 가시에 찔려 아팠지

해가 없는 밤이면 꽃은 잠을 자지

달은 오므린 꽃잎에게 속삭였지

열어 봐

제발 좀 열어 봐

꽃은 못들은 체 고요하기만 하지

서성이던 달은 눈이 퉁퉁 붓도록 울지

꽃이 뿌옇게 보일 때까지 혼자 울지

별들이 슬픈 달을 감싸며 위로하지

해를 향해 꽃잎 열어 활짝 웃는 꽃 바라보며

낮달은 구름속에서 또 숨죽여 울지

칠흙의 밤, 달은 흐린 빛을 내려놓고

산꼭대기에서 꺽, , 목놓아 울지

천년동안, 폭포같이 울었지.

                                                     

< , 실연하다 >

 

사랑의 어원은 상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며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그것이 로미오와 쥴리엣처럼 첫눈에 반한 사랑이든, 카사노바와 돈후안처럼 유희하는 사랑이든, 마더테레사의 아가페적 사랑이든, 이외현의 짝사랑이든. 사랑은 설레며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꽃을 사랑하는 달과 해를 사랑하는 꽃은 삼각관계여서 아프다. 짝사랑은 데이트비용이 들지 않아서 경제적이라고 하지만, 생각에서 떨쳐버리려고해도 마음대로 되지않는다. 그 사람의 눈에 띄려고 무작정 대문 앞에서 밤을 새운다. 슬픈 사랑노래는 다 내 마음 같다. 그 사람의 결혼소식을 축하하면서 나는 운다. 산꼭대기에서 폭포같이 우는 달에게 이루어 지지 않은 사랑이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위로한다.

 

빌딩숲이 자정에 도시를 떠나는 기차를 따라 정동진에 간다

어둠을 벗어나 철커덕철커덕 철길을 밟으며 해를 보러간다

도시의 달은 알콜에 취해 눈빛이 흔들리고 초첨이 흐리다

스멀스멀 밤안개가 홑이불 덮어주며 기침하는 달을 가린다

 

새벽의 정동진역, 메뉴판의 안주같은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그 사이에 달은 벌써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달 대신 촉촉한 이슬에 바다는 소주가 된다

메뉴판의 글짜들이 첨벙첨벙 바다에 뛰어든다

 

새벽기차는 철길이 없는 바다로 길을 낸다

안주가 이슬을 마신다 이슬이 안주를 먹는다

기차와 이슬과 안주가 서로를 먹고 마신다

파도가 갈지자로 출렁이며 모래위를 뒹군다

 

부침개가 먹고 싶은 날 정동진에 가면

바다가보이는 갈매기횟집 통유리창너머로

프라이팬에 쟁반같이 둥근 해를 부쳐내는

아주머니가 있다, 없다.

 

< 정동진에 가면 있다, 없다 >

 

실연의 상처를 다독거리기에는 여행만큼 좋은 것이 없다. 청량리역에서 정동진으로 가는 비둘기호 기차는 느리다. 철거덕 철거덕거리며 바다로 길을 내는 바퀴소리를 들으며 실연한 자존심을 애써 포장한다. 채이기 전에 내가 먼저 차야지, 가슴보다 머리가 앞서는 사랑은 비겁한 사랑이라고 여긴다. 뒷좌석에서 통기타소리가 들린다. 탐존슨의 딜라일라. 노랫말을 떠올린다. 밤 깊은 골목길 그대 창문을 바라보네 / 창문에 비치는 희미한 두 그림자 / 그대여 날 두고 누구와 사랑을 속삭이나 / 애타는 이 가슴 달랠 길 없네. 노랫말이 가슴을 적신다. 내 마음도 몰라주는 그가 밉다. 새벽의 정동진역에 힘든 사랑을 내린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모래밭을 걸으며 뒹굴며 뿌옇게 들어서는 수평선을 응답없는 사랑처럼 바라본다. 뻥 뚫린 가슴에 쉼 없이 바람이 들이친다. 사랑이라는 아픈 터널을 빠져나와 혼자 비틀거리는 바닷가, 갈매기횟집 통유리창가에서 참이슬에 파도를 섞는다. 파도에 이슬을 섞는다. 이것은 집착일까? 정신병일까? 내가 말하기 전에 내 마음을 먼저 알아줄 수는 없는 걸까?

 

세렝게티 아침 햇살아래 소의 뿔 염소의 수염

말의 꼬리를 가진 동물이 풀을 뜯고 있다 누다

누 안에는 누가 살까?

 

건기가되면 누 떼는 지축을 흔들고

먼지바람 일으키며 세렝게티 초원을

떠나서 마사이마라를 향해간다

수백만 마리의 누 떼가 마라강을 건너갈 때

세렝게티 먹이사슬 강자들도 덩달아 바빠진다

억센 이빨을 가진 악어

돌기 갑옷으로 무장하고

잡풀에 숨어서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대열에서 이탈한 누를 응시한다

낌새를 차린 누, 꼬리 철썩이며 무리로 뛰어간다

, 뛰는 말이다

 

마라강의 거센 물살이 발목을 잡아챈다

미끄러져 일어나려고 애쓸수록 물살이 발목을 휘감아

수 십만 마리의 누를 자빠뜨린다

대머리독수리들, 숨이 끓어진 누 몸통에 내려않는다

물살을 이불삼아 흰 수염 출렁이며 누 길게 누워있다

, 늙은 염소다

 

어렵사리 강을 건넌 누 앞에 막아선 바위절벽

가파른 절벽을 후들거리며 한발 한발 내딛는다사자는 인내심을 갖고 올라오는 누를 기다린다

겁에 질린 누 이판사판 뿔로 사자를 공격한다

, 성난 소다

 

먼 길 소의 뿔, 염소의 수염, 말의 꼬리 다 내어주고

꿈결에도 어른대는 너를 찾아 목숨 걸고 누가 왔다.

 

< 누가왔다 >

 

치열한 사랑, 목숨 건 사랑. 사랑이란 절망적일수록 더 불타오른다. 하이네가 죽음을 맞이하기 8개월 전, 악보를 가지고 병상으로 심부름을 온 어린 아가씨 카미라와 사랑에 빠진다. 하이네는내생에 단 한번 만이라도 그대를이라는 연시를 써서 카미라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카미라는 하이네의 병상을 드나들며 책을 읽어주고, 손을 잡아주며 깊은사랑에 빠진다. 가능하다면 하이네에게 장기라도 떼어주지 않았을까? 하이네는 숨 가쁜 병상에서 카미라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극한의 고통을 견딘다. 시간이 부족한 사랑,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랑. 먼지바람 일으키며 마라강의 거센 물살을 가르며 가파른 바위 절벽을 넘어 꿈결에도 어른대는 너를 찾아서 목숨 거는 사랑이 그립다.

 

티티카카호수 어딘가에 바람의 유배지가 있다

호수에 배를 띄우고 갈대의 흔들림을 따라간다

 

은행나무의 말매미, 감전된 듯 부르르 떨며 자지러진다

욕조를 나와 뱅뱅돌며 바람의 뒤를 캐다가

작은방과 주방사이의 문턱에 길게 눕는다

몰딩을 경계로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하며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방으로 발이 들락날락한다

방에있는 다리를 티티카카호수로 길게 뻗었을 때

설산을 흐르는 차가운 바람입술이 살갗을 스친다

발가락을 간질이며 가랑이사이로 파고든다

박하향내 나는 유두를 가볍게 깨물고

콧등을 토도독 더듬다가 눈두덩을 핥고는

머리카락에 두어번 입 맞추더니 이내 사라진다

아쉬움에 눈을 감고 바람의 혀끝을 되짚어간다

혀가 터치하는 감각들이 정전기처럼 일어나며

부풀어 오르다가 푹 꺼지며 이내 말랑해진다

 

플라타너스 잔등에 목 쉰 매미울음소리 여전하다

태양의 섬에 누워 입술허물을 잘근잘근 씹다가

소문 늦은 귀를 데우는 바람난 유령의 후끈한 속말에

걸친 허물 훌렁 벗고 티티카카호수의 인공 섬이된다.

 

< 티티카카, 태양의 섬에 누워 >

 

말매미는 짧은 며칠을 울기위해 땅속에서 긴 시간을 보낸다. 목쉬도록 울어서 짝을 만나면 종족보존을하고 이내 삶을 놓는다. 은행나무에서 부르르 감전된 말매미가 욕조에 누워 티티카카호수의 바람의 유배지로 다리를 뻗는다. 바람의 촉감이 달콤하다. 한 마리, 보잘것없는 유충에서 눈을 뜨고 세상을 향해 다리를 펴고 생존의 나무를 기어오르며 먹이사슬의 눈을 속여야 살아남았다. 결박된 삶의 시간을 읽었던 걸까, 말매미가 안절부절하며 안방과 거실의 경계를 넘어 장미를 백합을 비둘기를 사랑했던 하이네의 이마에 두어 번 입 맞추더니 이내 푹 꺼진다. 섬이다.

 

비 저리 내리는데 이른 새벽부터 어디가신다요

파도가 뒤집은 놀음판 화투장같은 비 들이치는데

조반도 안자시고 어딜 급히 가신다요

술 마시면 개 되는 아랫방 주씨 밤새 고래 고래잡고

지 마누라 패는 매 타작소리 정적을 찢는 신 새벽

빗금으로 치는 회초리 꽃잎 덩달아 하릴없이 지고

퉁 퉁 불은 개울물 두리둥실 꽃배타고 떠내려가는데

근데 아부지는 어딜 그리 말도 없이 간다요

아부지 가신 길에 밥알 같은 꽃잎들 떨어져

지게지고 다시 오실 길을 밝혀주는데

 

집 나가신 울아부지

장맛비에 꽃잎 씻겨나가 길을 잃었나

같이 갔던 꽃비만 되돌아와

팔랑팔랑 저리도 환하게 내리누나.

 

< 어디가신다요 >

 

한 사람의 부재는 그리움이다. 그와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할 수없는 안타까움에 목이 마르다. 저녁 산책길에 길가 가로등에 붙어있는가족을 찾습니다라는 포스터가 떠오른다. 치매라는 병 때문인지, 단순하게 길을 잃은 것인지, 사고를 당한 것인지. 이 외현시인의 집 나간 아버지는 하이네처럼 천국으로 거처를 옮기셨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생애 마지막인 이 슬픈 가을에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홀로 꽃배타고 말없이 사라지신 아버지. 사랑의 달콤한 근심과 아프고 쓸쓸한 기억을 뒤로하며 천국의 집에서 묵묵부담인 아버지를 기다리는 시인의 아픔이 명치에 걸린다.

 

마트 주변에서 그녀와 가끔 마주친다

떡이 진 머리에 피부가 온통 구릿빛인 그녀

제 발보다 한참 큰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닌다

배시시한 입술에는 늘 담배꽃초가 물려있다

냄새가 눈과 코를 바비시켜 시야가 아리다

헐렁한 조끼 안으로 가슴보다 더 나온 똥배

오랜만에 봤더니 어디다 부렸는지 홀쭉하다

마트 화장실에서 딸을 낳았다는 소문이 돈다

여름이 우스워 우스꽝스럽게 웃는 그녀

주르르 빠진 앞니사이로 담배를 빠는 볼따구니가

장죽 뻐끔거리다가 양은 재털이에 탕 탕

태질하며 딸, 그까짓 것들 뭣에 쓴다냐

손자 머리 쓰다듬으며 우물거리던

영락없는 쭈그렁바가지 우리 할매다.

 

< 마트, 그녀 >

 

우수와 경칩 춘분의 절기에는 거지가 누더기 옷을 벗어 빨래를 한다는 말이있다. 내가 자라던 동네에도 떡이 진 머리를 하고 배가 남산만 한 그녀가 살았다. 그녀는 누더기를 숄처럼 두르고 마트의 주변을 서성거렸다. 어느 날 배가 홀쭉해진 그녀를 두고 소문이 난무했다. 그녀가 둑방에서 낳은 아들이 마트의 정육점사장을 닮았다는 둥, 철물점 사장을 닮았다는 둥. 혼잣말 하며 히죽히죽 웃는 그녀를 골목에서 마주쳤을 때 무작정 달아났다. 오싹하던 공포의 시간을 넘어 그녀의 안부가 궁금하다.

 

이외현의 시는 덤덤하게 아프다. 사랑의 시작과 실연의 아픔, 지나간 청춘에 대한 허망함과 쓸쓸함을 티티카카호수로 가는 갈대의 흔들림으로 노래한다. 시인의 사랑은 평범할 수 없다. 한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들 낳고 딸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시인의 사랑이 아니다. 시인의 사랑은 아파야 한다. 슈만과 클라라처럼 하인리히하이네처럼. 응답없는 사랑을 위해 고통의 작두를 맨발로 걸어야 한다. 티티카카호수에서 정동진의 바다까지 열정적이고 순수한 사랑이 눈부시게 길을 내기 바란다.‘아름다운 가을에/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그대의 눈을 쳐다보노라면/나는 내 영혼을 던져넣으리/눈부신 아침에 나 울었네.’슈만의 연가곡시인의 사랑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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