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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특선/정무현(기재)/나비와 꽃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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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현
나비와 꽃 외 4편
팔랑거린다.
치마폭은 중심에서 벗어나고 연신 허공을 갈지자로 그린다.
겁도 없이 세상을 감싸 안는다며
바람을 거스르고 높이를 거스른다.
제멋대로인 앙탈이다.
목을 쭉 빼고 바라보는 풀 속의 나
멋있어한다.
사지는 박혔지만 미혹의 촉을 날리는 재주는 있다.
니가 앙탈이면 나는 미혹
니가 팔랑대면 나는 한들한들
너를 맞이하련다.
갈라진 치마를 몸으로 부여잡고
허공을 딛는 것이 숙명인 줄 몰랐더라면 우린 어찌 반겼을까
너에게 가져다 준 분방한 사랑은
부활을 만들고자
세상을 감싸 안기에 언제든지 너를 맞이한다.
혈통이 달라 애벌레로 자라온 시간
씨앗을 부풀리며 서로 세상을 휘저을 거라 꿈을 꿨지
꿈은 대를 이을 거라며 항상 여유로운 건 닮았다.
갈지자 너풀대는 모습에 함께 할 준비를 했어.
갈지자
그건 나를 위한 몸짓이야.
초등학교 교실
새벽마다 모이는 교실
어제의 사연 산더미이니
연신 조잘조잘, 짹짹.
한쪽에서 소리 내면 다른 쪽에서 소리 내고
한쪽에서 이야기하면 다른 쪽에서 받아 친다.
가끔가다 굵직한 소리 철이 늦은 소리다.
새벽은 그들이 사는 법을 배우는 장터
파는 물건, 사는 물건 호객을 하고 장단이 절로다.
지식을 파는 젊은이
경험을 파는 노인
족제비 같은 모사꾼
허공을 가르는 매 눈
허수아비 알아보기
새로서 살아야 하는 지식이니
버릴 것 없고 신기하다.
수업에 열중이니 몸마저 달아올라
연바람 위문에 장터는 더욱 신명이다.
고마운 맘 가지 손 흔드니 햇살마저 찰랑댄다.
장이 없는 날은 비오는 날
수업은 없고 학생들은 간데없다.
소리가 사라진 어느 날
비가 오나 열어본 창문으로 낮이 들이닥치니
낮이면 이들의 소리도 사라지는 걸 그때야 알았다.
깡시장이다.
부산한 소리가 사라지는 때가 궁금하다.
베개
죽어서도 함께하는. 삼신할미 봉황이며 꽃이며 복이며 품고서 포근하게 머리 받치고 뒤집어 둥글게 가슴을 떠안는다. 다 갖고 싶어, 정녕 내 품을 벗어나지 못해 핏줄 따라 한 몸. 언제라도 삼가르고 삼줄치면 삼신할미 제 할일 했다는 홀가분에 떠나도 보고 싶고, 평시 눈길 주지 않는 마음 서운하여 골탕 먹이듯 목침으로 뎅굴뎅굴 심술도 부려보지만 늙은 머리엔 이게 더 좋다는 소박 없는 보살핌이 감사. 사람의 가장 중요한 것이 위에도 하나 있고 아래에도 하나 있지, 아래의 하나를 위해 언젠가는 다시 기저귀로 되돌아오겠지만 위에 하나 평생을 한 번도 내침을 당한 적이 없다. 삼신할미 힘이다.
개니까
개똥밭에 개들이 모였다.
폼 나는 개들이 폼 나게 똥을 싼다.
개똥이 사방에 가득하니
우두머리개 기름진 밭 만들자 한다.
개들 환호한다. 컹컹 캥캥 깽깽
이전 우두머리개 열 받는다.
우두머리 복위 기회 영영 사라지나
따까리 불러 음모를 꾸민다.
우두머리개 눈치 채고 회의를 열어
따까리 하루 한 끼로 식사제한
이전 우두머리 나는 모르는 일
보란 듯이 폼 나게 똥을 싼다.
이전 우두머리 다시 따까리 불러 음모를 꾸민다.
따까리 영원히 추방되니
이전 우두머리 나는 모르는 일
보란 듯이 폼 나게 똥을 싼다.
우두머리 모르는 체 다시 껴안으니
이전 우두머리 다시 음모의 기회 찾는다.
그 사이
개똥밭은 기름지고 단내나는 참외가 주렁주렁 열린다.
강아지풀
절벽보다 가파른 이층에 자리한 베란다
두개의 화분에
방울토마토 줄기 사라지더니 강아지풀이 자리 잡았다.
모기다리 같은 목을 쭉 빼고 강아지 꼬리형상의 얼굴
지나가는 발걸음소리에도 꼬리를 흔든다.
무슨 오기로
이곳까지 올라왔는지 힘든 내색 없이
자리 잡은 폼새가 어색하지는 않다.
사람을 잘 따르기로서니
주인의 빈 마음 채울 수나 있는지
하늘대는 눈웃음이 반갑기는 하다.
칠월 땡볕은 땅을 쩍쩍 갈라놓는데
벌써 분가까지 하였구나.
시작메모
계절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계절은 항상 봄부터 시작한다. 사실은 겨울부터 시작이다. 엄밀히 말하면 어디서부터 시작인지 모르는 게 맞을 것이다. 항상 새초롬히 연록잎이 목을 가누면서 애처롭지도 않게 알을 깨고 나오듯 나온다. 가지에는 애채가 몰록 싹을 틔워 하루자체가 놀라게 만든다. 금방이더라. 사방은 꽃이 피어나고 바람은 이 꽃 저 꽃 올라타니 신바람이 되었다. 때를 맞춰 장단을 맞추듯 나비는 휘휘 허공을 젓는다. 봄은 이렇게 삽시에 자신을 알리고 햇살이 더 데워져야 한다고 성화다. 생명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래서 봄은 나에게 각별하게 다가온다. 이때쯤이면 으레 알맞게 비는 조금 뿌려주고 밭에는 종다리가 적당한 높이에서 쟁기질에 흥을 이어준다. 이럴 때는 누구든지 아지랑이를 신기해하며 꿈을 만들어본다. 꿈은 지독히도 단순하다. 농사 허드렛일 돕는 것이 힘드니 빨리 학교로 갔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노는 날은 즐겁지가 않다. 교실에는 보고 싶은 명순이도 있고 예쁜 여선생님도 계시고 항상 미소를 머금은 남자선생님도 계셨다. 그러나 그 선생님들은 언제인가부터 보이지 않고 나는 선생님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행복한 학교는 이제 도시에서 참새떼들이 매일 아침 내 집 뒤에서 시끄럽게 조잘대는 소리로 고향을 듬성듬성 풀어놓기도 한다. 그 소리는 아주 익숙한 소리라서 당연한 소리로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비가 오나? 모처럼의 휴일을 감긴 눈으로 늘어지게 몸을 풀어놓았더니 소리가 궁금해졌다. 창문을 여니 한낮이다. 새들은 분주하게 낮에 맞추어 해야 할 일을 찾아가 버린 것이다.
휴식을 지탱해주는 것은 베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동반자다. 어쩌다 약이 오르면 애꿎게 베개에게 높이가 안 맞는다. 불편하다는 둥 화풀이로 발에다 깔아뭉개도 보지만 내가 나를 이어주는 대를 잇는 삼신할미 짓이 최고의 선물인데 배가 불러도 너무 불렸다고 자책하게 된다. 어차피 베개에서 시작되고 베게에서 마감되는 인생. 베개를 베고 귓속노래를 부르며 잠을 청한다. 깨어있는 세상은 언제나 혼돈이다. 어차피 공평이나 정의가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개니까’ 라고 존엄을 잃을 수는 없다. 아무리 버텨도 주변은 허물어지고 주저앉기를 바라지만 그 혼돈 속에서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 또한 일종의 오기다. 주변에 개보다 못한 부류가 득시글거리고 개중에는 부끄러워하거나 계면쩍어하지 않고 당당하게 태연한 모습을 하고 있는 해리성 정체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지 않다는 데에 있다. 이게 사회병질증후군으로 번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결국은 부정은 무너지고 결실은 개똥밭에 참으로 탐스러운 참외가 주렁주렁 달리는 것이다. 인고의 감내가 크면 클수록 더욱 달콤한 참외가 결실을 맺는다. 힘든 결실을 거두면 참으로 대견스러운 일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된다. 길을 걸을 때마다 그렇게 흔하게 개풀처럼 깔려있던 강아지풀이 눈에 들어온다. 신기하게도 2층 베란다까지 어이 고단한 몸을 디밀었는지는 모르겠다. 자세히 보니 고단한 건 강아지풀이 아니다. 강아지풀은 여전히 살랑대며 꼬리를 흔들고 가느다란 목줄대를 빳빳하게 자존심으로 꽂아 척박한 동글이흙을 믿고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다. 강아지풀의 끈질긴 생명력은 이미 분가까지 하였다. 내가 몰랐던 것을 강아지풀은 시름없이 보여주고 있다. 몇 수의 타령이 잠시나마 오롯이 애인이 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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