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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하병연/산천 매실농원-매화꽃 피는 계절은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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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병연
글루미 선데이 외 1편
- 매화꽃 피는 계절은
작은 배를 타고 너에게 가려고 발을 들여 놓았다
매화꽃 피는 계절은 지상의 꽃이 부끄럼 없이 음부(陰部)를 여는 시기
이런 날에는 골짜기 속 깊이 웅크리고 있던 짐승들을 풀어 놓아도 좋으리
나를 허물어버리고 삶이 권하는 희열(喜悅)에 고달픈 몸을 내달려야 하리
물이 넘쳐흐르지 않는 배는 공중으로 떨어져 나온 살비듬 같은 것
흘러가다 보면 매화꽃은 만개(滿開)하여 쾌락에 부들부들 떨리는 법이지
작은 배 뒤로 잔물결이 소용돌이 쳐야 그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지
그 섬에 발을 내디딜 쯤에는 흰 꽃잎 한 잎, 한 잎씩 천천히 떨구어 내어야하리
그리고는 흔들리는 배를 물 속 깊이 가라앉혀야 하리
내 속에 들어앉은 신음소리가 매화향기로 쏟아져나와도 열반(涅槃)한 눈은 꼭 감아야하리
그러다가 꽃잎이란 꽃잎 다 떨구어 낸 자리에 열락(悅樂)부처가 들어앉아 좁쌀만한 매실을 주렁주렁 매달면 그 새끼들을 데려다 키워야하리
매화꽃 피는 계절은 물이 넘쳐흘러 작은 배가 젖어드는 시절이니
산청매실농원
- 매화나무에서 매실나무로
이제 나는 매화나무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없네
그 많았던 벌들은 어디론가 가 버리고
매화꽃잎 흩날리네
매화나무에서 매실나무로
生의 문이 막 열리는 순간이네
갓난 애기의 손을 잡고 있는 어미처럼
山땅이 꽃잎을 자기 맨몸 위에
가만히 올려놓네
아래로만 떨어지는 게
슬퍼할 일 아니라고
가만가만 다독이네
꽃잎이란 꽃잎 다 떨구어낸 자리에
연두의 유두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네
꽃 피는 시절은 가버리고
매화나무는 매실나무로 살아가겠네
이 山中에 새들이 노래하네
이 山中에 햇빛이 들이차네
수없이 떨어진 꽃잎이
매실나무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고 있네
아, 어머니
앳된 육남매를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고
내 몸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오시네
하병연∙2003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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