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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시집속의 시/허문태/비우는 꿈―이성필 시집 『한밤의 넌픽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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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79회 작성일 20-01-2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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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시집속의 시/허문태/비우는 꿈―이성필 시집 『한밤의 넌픽션』 중에서


허문태


비우는 꿈
―이성필 시집 『한밤의 넌픽션』 중에서



넘어진 것은 넘어져 있다
넘어진 채로 있다
넘어진 것은 일으켜 세워 놓아도
넘어졌던 것으로 넘어져 있다


기억이 새롭다 날마다 새롭다
세월이 깊을수록
기억은 더욱 새롭다
넘어진 채로의 기억


넘어지지 않고 일어설 수는 없다
일어서 있음은 넘어졌었음을 전제로 하기에


어느 날 넘어졌었음을 벌떡 일으켜 세운다
기억을 문득 일으켜 세운다


그러나 바람 같은 생각이 날 넘어뜨린다
바람 같은 생각이 날 쓰러뜨린다


누구나 꿈, 즉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이 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꿈인 사람도 있고, 메이저리거나 프리미어리거가 꿈인 사람도 있다. 또한 의사가 꿈인 사람도 있고 과학자가 꿈인 사람도 있다. 철부지 어릴 때는 대통령이 꿈인 사람도 있고 구멍가게 주인이 꿈인 사람도 있었다. 누구나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온갖 시련과 고통을 감수하며 밤낮으로 노력한다. 그리고 꿈을 이루었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하고 행복해 한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해 절망하고 좌절하는 때도 허다하게 많다. 나이 먹어가며 거대했던 꿈은 차츰 작아지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한 꿈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꿈은 선택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닥치는 필수 항목이다. 그러나 그 현실적인 꿈도 모두가 다 이루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아파트에 사는 것들이 오직 꿈이 되어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살아간다. 현실적인 꿈의 노예가 되어 휴식과 자유도 없이 고되게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그 꿈 중에 하나가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게 오르는 전세값을 마련하지 못해 변두리로 이사를 하거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월세로 전락하는 비참함에 직면해야 한다. 먹는 것과 입는 것을 줄이고 아끼며 밤새워 일을 해도 내집 마련의 꿈은 요원하다. 그래서 가끔은 어리석고 헛된 엉뚱한 꿈을 꿀 때가 있다.
이성필 시인도 살면서 많은 시련과 좌절을 경험한 것 같다. 꿈을 이루기 위해 용맹이 현실과 맞섰지만 만만한 현실이 아니다. 쓰러지고 넘어지는 것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그리고 다시 일어나 새롭게 시작한 것이 또한 한두 번이었겠는가?
“넘어져 있는 것은 넘어져 있다”라고 할 때 화자는 넘어져 있지 않다. 화자는 일어서 있는 것이다. 넘어져 있을 때는 넘어져 있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넘어진 것은 일으켜 세워 놓아도/넘어졌던 것으로 넘어져 있다” 는 넘어진 방법으로 세우면 넘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롭게 세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새롭게 세우는 방법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넘어진다”는 것은 넘어지는 것이 아니고 일어서기 위함이라는 것임을 알았을 때  마침내 다시는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꿈도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 비운다는 것은 채우기 위함이다. 헛되고 어리석은 꿈은 비워내고 영혼을 살리는 꿈으로 채워야 한다. 브라질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소설 「순례자」에서 “인간은 결코 꿈을 멈출 수 없다. 육체는 음식을 먹고 사는 것처럼 영혼은 꿈을 먹고 산다.” 라고 했다. 그리고 꿈을 포기한 사람에 대해 말한다. “꿈을 포기하면, 얼마 동안은 평온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꿈들이 우리 안에서 썩어가면서 우리의 존재를 감염시키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잔인해지게 되고, 마침내는 그 잔인성을 자기 자신에게 들이대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죽어서 썩어버린 꿈들 때문에 더는 숨쉴 수도 없게 되고, 일요일 한낮의 끔찍한 평화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해줄 죽음을 바라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죽지 않고 풍요로워지려면 싱싱한 꿈을 풍족하게 제공해야 한다. 헛된 꿈, 어리석은 꿈, 엉뚱한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 이성필 시인도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어리석고 헛된 꿈을 꾸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곧 후회 하였을 것이다. “일으켜 세워도 넘어졌던 것으로 넘어졌”기 때문이다. 이성필 시인은 이제 어리석고 헛된 꿈을 꾸지 않는다.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면서 어리석고 헛된 꿈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어리석고 헛된 꿈은 비우면 현실도피나 무능이 될 뿐이고, 채우면 욕심이나 시뻘건 욕망이 되기 때문이다. 어리석고 헛된 꿈은 성취하여도 영혼의 갈증으로 목이 타기 때문이다.
“비우는 꿈”을 꾸는 것이다.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꿈”을 꾸는 것이다. 어리석고 헛된 꿈을 비우면 영혼이 싱그럽고 풍성해지는 꿈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어리석고 헛된 꿈을 비우면 비울수록 그 자리에 맑은 영혼이 채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길가에 활짝 핀 민들레꽃만 보아도 보름달처럼 마음이 환해지고, 가족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하루하루가 늘 설레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바람 같은 생각이 날 넘어뜨린다
바람 같은 생각이 날 쓰러뜨린다”
아! 어쩌랴 나약한 인간아! 그래서 사랑스런 인간아!





*허문태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달을 끌고가는 사내』.  《아라문학》 부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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