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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기획탐방/정미소/소래습지, 기억의 파랑이 모성의 손을 내미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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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49회 작성일 20-01-2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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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기획탐방/정미소/소래습지, 기억의 파랑이 모성의 손을 내미는 땅


정미소


소래습지, 기억의 파랑이 모성의 손을 내미는 땅



퇴행성 갯벌인 인천 소래 염생습지에 들어서는 날은 폭염이었다. 한낮의 기온이 섭씨 34.5도를 가리키는 푹푹 찌는 무더위를 손부채질 하며, 막비시동인들과 함께 첫 탐방장소를 ‘소래습지생태공원전시관’으로 정하고 걸음을 옮겼다. 전시관으로 향하는 길의 가장자리에 빨갛게 핀 해당화가 의전행사를 여는 듯 무리지어 우리들을 반겼다. 초등학교시절엔 바닷가에 가면 흔하게 피어있는 꽃이 해당화였는데, 요즘엔 보기 드문 꽃이어서 반가웠다. 소래생태공원 전시관의 첫머리에 들어서니 ‘소금과 소래염전’의 역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래염전은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인 1900년대부터 염전으로 개발되어, 태양열과 자연 풍력을 이용한 한국 최초 천일제염의 개척지였다고 한다. 일본은 이렇게 생산된 천일염을 소래포구를 통하여 경인선 협괘열차나 배를 이용하여 인천항으로 운반해 본국으로 보냈다고 한다. 이 소금은 생필품만이 아닌 일제의 전쟁을 위한 화약제조용 군수품으로도 쓰여졌다고 하니, 누구를 해치기 위한 소금이었는지 그 뒷맛이 씁쓸했다. 염전은 지금은 폐허로 남아서 과거의 명성을 고스란히 증명할 뿐이었다. 일행은 소래생태공원에 관한 영상물이 마련된 영상실로 발길을 옮겼다. 인천과 습지, 인천의 갯벌, 소래습지 생태공원과 소래갯벌, 세계환경협약에 의한 청정인천의 개발목표와 현재 조성중인 녹색도시의 현황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일행은 생태전시관을 나와서 동, 서, 남, 북으로 끝없이 펼쳐진 소래갯벌의 아득한 소실점을 바라보았다. 갯벌의 주변으로 병풍처럼 들어선 고층 아파트와 고압선 철탑에 대해 안타까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래갯벌은 늙은 어머니의 검버섯 핀, 탄력 잃은 쓸쓸한 몸뚱이처럼 아무렇게나 누워있었다. 폐신廢身의 몰골에도 생명을 잉태하여 젖줄을 대고, 조석의 끼니를 용왕님께 빌었던 모성의 기억만이 유효한 것 같았다. 이른 아침, 마른 자궁으로 흘러든 약간의 바닷물을 운명처럼 끌어안아 먹이사슬의 덫을 놓았다. 덕분에 이곳에 서식하는 조류와 어패류들의 끼니는 넉넉해 보였다. 괭이갈매기, 붉은머리오목눈이, 개개비, 천연기념물인 저어새와 왜가리, 가마우지, 논병아리, 백로와 물총새가 마음 놓고 배를 불릴 수 있는 소래갯벌은 철새들의 쉼터이자 하룻밤 묵어가는 민박이기도 하다. 소래갯벌의 역사는 무려 8,000년이나 된다. 아주 미세한 입자의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펄 갯벌이, 퇴행성 갯벌이 된 이유는 소래포구 주변의 도시개발정책에 따라 육상화로 매립되면서부터였다. 조수가 드나드는 수로의 폭이 좁아짐에 따라 바닷물이 갯골까지는 하루 2차례 겨우 드나들고, 그나마 갯골 위까지는 한 달에 2~3회 만조수위일 때 조금 잠기는 정도라고 한다. 폭염이 달구는 늙은 갯벌의 만성건조증이 8,000년의 파랑 많은 인생을 굽이굽이 건너온 가감 없는 모성과 닮아서 가슴이 아렸다. 그 옛날 소래갯벌은 인천바다로부터 내장 깊숙한 곳까지 갯골을 형성한 수도권 유일의 내만갯골로써 세계에서 보기 드문 사행성(뱀이 움직이는 형태) 갯골이었다.
도보로만 가능한 소염교를 건너서 염전관찰데크에서 염전을 살펴보았다. 염전은 일정한 넓이의 면적을 고르게 막아서 바닷물을 가두었던 흔적에 물끼만 가득했다. 왜가리 두 마리가 이끼 속으로 부리를 콕 콕 쪼으며 천적으로부터의 불안은 잠시 잊고 있었다. 드문드문 놓여있는 빨간 지붕의 소금창고는 가래질을 놓으니 사는 재미를 잃었는지 입에 자물통을 채웠다. 뼈조차 삭아 내린 수차가 물 빠진 수로에서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제1쉼터에서 잠시 쉬어가자고 제안한 것은 뜻밖에도 장종권 선생님이셨다. 담배가 고팠던 낌새다. 일행은 배낭에 준비하여 온 음식을 풀었다. 평소에도 품성이 넉넉한 박하리 선생의 가방에서 냉커피가 나와 일행의 갈증 난 목을 시원하게 적셔주었다. 캔 맥주 한 캔을 단숨에 들이킨 트림이 민망하게도 컸다. 쉼터 곁 야트막한 표지판에 쓰여 있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눈 비온 뒤, 산책길이 다소 질퍽이는 것은 살아있는 습지생태공원의 참모습입니다.


습지는 세월이 가도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아야 습지다운 것이다. 습지 위에 아스팔트를 덮어 도보에 편한 길을 만든다면 습지를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질퍽거리는 산책로를 따라 풍차가 손짓하는 갈대 군락지로 이동하였다. 소래갯벌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염생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주변의 장아산과 장수천이 서로 내통하여 갯벌 깊이 해수와 담수, 그리고 기수습지를 만들어 육상식물과 해양식물이 뿌리를 내리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을 만든 셈이다. 습지의 유형에는 염수습지(바닷물이 드나들지 않는 폐염전 지역)와 기수습지(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역으로 기수역이라고 함.) 그리고 담수습지(민물지역으로 갈대와 부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음.)가 있는데, 소래습지는 이 모두를 품고 있다는 점이었다.
풍차가 바람을 불러들이는 허리춤으로 초록빛 삘기가 배경이 되어, 인증샷을 남기라고 호객 하고 있었다. 일행은 나란히, 또는 삼삼오오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삘기와 갈대와 억새는 모양이 서로 비슷한 것 같지만 엄연히 다르다. 삘기는 띠풀의 어린 새순을 일컫는 말이며, 벼이삭처럼 대의 꽃이 피기 전에 풀잎 속에 싸여있는 달착지근한 순이다. 갈대는 주로 산이나 들에 피고, 억새는 강가에 모여서 핀다. 염수습지의 주변으로 퉁퉁마디와 해홍나물, 나문재, 칠면초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조금 더 걸으니 기수습지의 중심에 강피와 갯는쟁이, 천일사초, 세모고랭이, 그리고 삘기가 폭염의 햇살을 견디며 물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습지를 둘러 싼 가장자리에는 갈대군락이 미끈한 허리를 일으켜 대를 키우고 있었다. 담수습지의 쉼터에 앉아서 부들과 갈대가 어울려 바람의 방향에 순순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 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에서 바람의 역할을 떠올렸다. 산에서 들로, 들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골목으로. 씨앗을 실어 나르기도 하고, 분진물을 털어내기도 하고, 황사를 몰고 오기도 하지만 바람은 살아 있음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들과 갈대처럼 자연에게 순응하며 흔들리는 아름다움을 편안하게 바라보았다.
소래습지의 첫머리에서 남, 동쪽의 갯골과 갯벌, 조류관찰데크, 북문의 재생물 연못에서 서문 쪽으로 난 둘레길을 돌아보는 시간은 약 2시간 30분이 걸렸다. 서문의 갯벌관찰대에서 꼬막과 바지락, 칠게와 농게의 활동을 볼 수 있을까 하여 망원경의 줌을 당겼지만, 한낮의 갯벌은 고요하기만 하였다. 살아있는 갯벌과 염생 습지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갯벌은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완충기능의 역할로써,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거름망이 되어준다. 약 10억의 인구가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수생물자원의 보고이며, 자연재해를 줄여주는 기후조절의 기능을 수반한다. 경제적인 가치로 보면 어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밀물과 썰물이 사시사철 드나드는 갯벌의 풍부한 산소와 유기물질들이 어패류의 먹이섭취와 번식장소로서 용이하다. 이제 갯벌은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떠나 철새를 관찰하고, 바지락을 캐 보며 체험의 장소로 자리매김하였다. 인천광역시에서는 인천의 갯벌과 갯벌의 생태에 큰 관심을 가지고, 무분별한 개발지상주의에서 자연환경의 소중함을 우선시 한다고 한다. 인간에 의해 훼손된 자연은 결국 인간을 훼손시킨다. 그 옛날, 소래염전의 북적거리는 인파와 소래포구의 살아 숨 쉬는 갯내가 물씬 그립다. 일행은 둘레길을 마무리하며 갯벌체험샤워장에서 발을 씻고 족욕장에 둘러앉았다. 족욕장에는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따뜻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퇴행성 갯벌의 쓸쓸한 몸뚱어리가 한때, 모성으로 살았던 피의 근성을 불러 체험장이 되며 동식물들에게는 생명의 젖줄이 되어주고 있었다.
지칠 줄 모르는 폭염이 주차장까지 따라와서 후끈한 혓바닥을 내밀었다. 갈증만큼 허기도 몰려와서 일행은 소래포구 종합어시장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래포구 재래 어시장은 2017년 3월 화재로 전소되어, 안타깝게도 분위기가 많이 삭막하였다. 인천시에서는 소래어시장을 현대화하는 정비구역으로 정하고 상인조합과 기본협약체결을 한 상태이다. 종합어시장으로 들어서는 길에 ‘소래역사관’이 추억을 불러들였다. 역사관 앞에 검은 협괘열차1량이 전시품으로 발이 묶여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수인선 협괘열차를 타고 소래역에 내려, 꽃게탕과 왕새우튀김을 먹으며 철로 길을 걸었던 청춘의 한때가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일행은 회쎈타가 들어선 건물의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어둑한 골목 안, 새우젓갈냄새가 밴 재래횟집이 아니라, 청결하고 밝은 장소가 어색하여 잠깐 침묵이 흘렀다. 폭염 속의 탐방을 마무리하며, 장종권 선생님의 말씀을 위로처럼 들었다. “소래습지생태공원과 소래포구 종합어시장을 랜트마크로 재정비하는 일은 현실입니다. 조금은 더디어도 역사의 숨결을 잘 살려, 동식물이 공생하는 살아있는 인천의 허파와도 같은 쉼터가 되기를 바래봅시다.”





*정미소 2011년 《문학과 창작》으로 등단. 시집 『구상나무 광배』, 『벼락의 꼬리』. 《아라문학》 부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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