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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신작특선/박경순/후포아침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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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18회 작성일 20-01-2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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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신작특선/박경순/후포아침 외 4편


박경순


후포아침



매일 아침
가슴까지 물들이는
일출을 보겠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욕심일까


해는
늘 구름 속에서
제 모습을 내보이지 않고


이제 막,
오징어를 잡아 온
어부의 바쁜 손 아래
덕장은
오랜 그리움을 던져버리고
출렁거린다


아버지가 걱정스런
아들은
멀리서
안부 묻는 편지를 쓰고


갈매기는
연신 모래사장에서
다가올 겨울바다를
걱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각자 반환점을 가지고 산다



이쯤에서 몸을 틀어야 한다
우리에게
각자 삶의 길이가 정해져 있듯
너무 멀리 가지 말아야 한다


녹이 슨 오징어 덕장 사이로
송홧가루가 내려앉고
나의 반환점은
바람이 불적마다 풀썩이는,
물가자미 말리는
금음항* 어디쯤


수고한 사람들의 땀방울로
어둠 밀어내고
새벽이 오듯


이제
미련 없이 반환점을 돌아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
정갈한 마음으로
저 태양을 맞아야 한다


* 경북 울진군 후포면 금음3리에 있는 어항.





삼협 마을, 복사꽃에 반하다



복사꽃 활짝 핀
삼협 마을* 언덕에 서니
나는 자꾸 눈물이 나왔다


언덕을 오르는 수고로움 없이
어찌 저 물길 따라 흐르는
오십천을 품을 수 있으리


고백할 적마다
얼굴 붉히는
사랑하는 당신처럼
끝도 없는
저 붉은 또 하나의 바다가
여기 출렁거리고


뜨거운 햇살 온몸에 받아
내 다시 알찬 열매 되어
잊지 않고
당신 찾아오리니


흔적도 없이
지나가는 세월
내년에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내 눈물은
그래도 멈출 수 있으련만


* 삼협 마을 : 경북 영덕군 삼화리의 마을이름, 봄이 되면 복사꽃으로 유명함.





축산 바다



아침 그물 놓으러
바다로 나간 남편은
끝내 살아오지 못하고
빈 배만 먼저 왔다


축산항* 떠나
사랑하는 아내 위해
그물 던졌던
바다는,
아무런 진실도 알리지 않은 채
숨을 죽였다


내 일처럼
선뜻 나선 50척 고마운 어선들
그 애타는 마음
알까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살아서 만날 수 있었을 것을
비상 출동한
봄 바다에
그대 살리지 못한
울음소리만 가득하다


* 경북 영덕군 축산면 축산리에 있는 항구.





불영사 가을



이별을
미리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
슬픔을 덜어주기는 할까


저 눈물 나도록
가슴 저민,
찬란한 눈부심


이제 떠나야 할 때
모든 것은
가고
또 오는 것


한번쯤은 잠시
뒤돌아 보고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


떨어진다는 것이
잊혀진다는 것이
새털같이
가벼워지는 일





■시작메모


나는 가끔 타임머신을 타고 먼 여행을 한 기분이 든다. 6년 만에 돌아온 인천에서의 일상들이 낯설다. 길을 나서면 만나는 푸른 동해바다. 매일 아침 가슴 가득 들어왔던 새파란 바다가 생각난다. 후포리의 아침. 바닷가 모래사장에서도 갯메꽃이 핀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던 5월 봄날. 매일 매일 가슴 졸였던 시간들이 이제 귀중한 기억 속에 남아있다. 후포와 삼협마을과 금음항과 불영사를 내 기억의 창고에 잘 보관하고 싶다. 그리고 바람 없는 바다를 기원한다.





*박경순 1991년 《詩와 意識》으로 등단. 《한국수필》 신인상. 시집 『새는 앉아 또 하나의 詩를 쓰고』,  『이제 창문 내는 일만 남았다』,  『바다에 남겨 놓은 것들』. 인천예총 예술상. 인천문학상. 여성1호상. 전국성인시낭송대회  최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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