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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신작시/박태건/걸어가는 사람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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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신작시/박태건/걸어가는 사람들 외 1편
박태건
걸어가는 사람들 외 1편
─미륵사지 석탑
걸어 왔네
익산 금마 미륵산 아래
미륵사의 가장 깊은 곳
심주석에 새겨진 천 년 전의 먹줄을 보러
걸어가기 위해 걸어 왔네
백 개의 강, 천 개의 우물이 있던 곳
세상의 궁벽진 곳으로 밀리고 밀려
비탈길 따라 고구마를 심으며
가난한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을 생각했네
달의 연못을 메우고
천년목을 다듬어
내 눈에 절 하나 지었네
허망한 기억은 탑 날개
풍탁 소리로 잡아매고
차마 말 못한 기원은 탑 아래
심주석의 먹줄로 남겨놓았네
익산 금마의 미륵사는
지상에 내려앉은
하느님의 새,
지상의 이정표 같은 미륵사 탑
절절한 기억을 기억하기 위해
어깨 무너뜨린 자세로
천 년을 넘게 빈 터를 지키고 서 있었네
구름의 변명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 하는 것은
떠나보내는 것
바람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
작은 새 한 마리도 앉지 못 할
가벼움의 경지를 배우는 것
여름날 쿵쿵쿵, 다가오는 우레의 발소리에
서툰 빗방울 소리로 후두둑,
사라지는 것
세상 어딘가 뿌리내린 초록들에게
마음 주지 않을 것 그리하여
흘러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
가령 하느님이 기다란 새끼손톱 끝으로 쓱,
그어놓은 신작로라던가
앞만 보고 가는 사람의 등과
소실점으로 남은 마음을
무심히 바라보는 것
그러다 파란 하늘이 견딜 수 없으면
잘 닦인 유리창에 한 문장을
약지손가락으로 썼다가
지워버리는 것
내 안에 있던 불꽃을 생각하지 않을 것
구름의 숙소를 궁금해 하지 않을 것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
*박태건 1995년<전북일보>, 《시와반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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