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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구본숙/나무가 존재하는 밤의 풍경 외 1편 - 내용 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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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숙
나무가 존재하는 밤의 풍경
이흥렬의 작품은 푸른색의 빛과 나무와 그리고 밤으로 조명된다. 그는 중앙대학교 사진학교 및 이태리의 유럽 디자인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귀국 후 몇 차례의 개인전을 통하여 다양한 작품세계를 펼치다 점차 작품의 주제는 '푸른 나무'로 집약된다. 초기의 작품은 누드, 꽃 등이지만 현재 그의 작품에는 지난 3년간 국내 곳곳의 나무를 찾아 헤메이며 작업한 '푸른 나무' 에 대한 집약된 노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를 통해서 그가 가지는 푸른색은 성실과 신뢰를 상징하기도 한다. 작품에 대한 그의 태도가 마치 대지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언제나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묵묵함과 강인함을 연상케 한다.
나무에 대한 애착을 품고서 숲이 펼쳐진 곳에서 작업실을 가졌던 3년 전 어느 날, 그 일대가 아파트 신축공사로 인해 나무와 녹지대가 사라질 위기에 있었다. 그의 작은 소망으로 숲과 나무는 보전되었고 이후로 나무를 주제로 한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의 나무는 독립적이고 신령스러우며 정겨운 멋이 있다. 마을이나 야트막한 언덕에 홀로 있는 나무가 많다. 느티나무, 팽나무, 아카시아 등 수종에 따라 제각각의 매력을 뿜어낸다. 별과 달, 조명의 조력까지 받아 그 모양과 개성을 더욱 빛나게 한다.
작품에 나타난 나무는 꽃을 피우고 때로는 열매를 맺는 과정을 반복하며 무한한 세월의 흐름 속에 있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영속적으로 흐르고 그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무는 자연스럽게 변화 하지만 인간이 지정해 놓은 시간의 기점으로 우리는 변화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사진의 나무는 언젠가는 시간의 흘러감에 의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겠지만 그의 셔터에는 나무의 일대기 가운데 한 순간이 포착된다.
그가 갖는 나무라는 주제는 아카데믹 하지만 작품의 기법은 독특하다. 이것은 그가 작가로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 나아가고 있으며 비교적 흔한 주제로의 "나무"와 사파이어 빛의 강렬한 푸른색을 통하여 관객과 소통을 원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라이트 페인팅(light painting) 이라는 기법을 이용하여 어둠속에서 피사체에 특정시간동안 빛을 가해 마치 그림을 그리듯 사진을 촬영한다. 작품속의 푸른 옷을 입은 나무는 그 자체로 주인공처럼 보여 진다. 이때 우리는 익숙하게 보고자 하는 욕망을 거두고 라이트 페인팅 기법 - 작가에게는 나무에 대한 배려, 혹은 나무중심적인 기법 - 을 통해 생생한 자연의 숨결을 음미한다.
주제로의 나무는 기억과 추억을 되새긴다. 이 작가의 어린시절 가난했던 기억,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린 나무에 얽힌 사연들이 드러난다. 유년시절 그의 아버지가 사과 과수원에서 일했으나 혹독한 가난에 그토록 먹고 싶었던 사과를 먹지 못했던 기억, 지금은 사과 과수원의 주인인 그의 아버지. 아버지의 과수원에서 사과를 베어물며 그는 어린시절을 회상한다. 설익은 풋사과의 맛.
유년시절을 거쳐 중년의 기억은 작업실 근처의 숲과 나무를 지킬 수 있었던 희망과 용기이다. 오랜시간 나무에 대한 그의 기억에 기쁨, 슬픔, 그리움, 번뇌‧‧‧ 얽혀진 감정들을 더해 가슴속에 부여안고서 실낱같은 희망을 사진 속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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