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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최동문/탈레스, 물 혹은 4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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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2,178회 작성일 15-07-0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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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문

탈레스, 물 혹은 4계 외 1

 

 

#2.

비 내리는 옹기 뚜껑에 먹구름 내려왔다.

붉은 잉크 가득 찬 만년필로

항아리 배를 두드린다.

나는 물을 어깨에 메고 땅에게 엎드렸다.

어깨에서 강줄기 하나가 내려와

지금 낮은 바다로 장마와 함께 놀며 가고 있다.

 

#4.

겨울잠으로 위장이 텅 비었다.

밖에는 척척 눈 오는 소리.

뱃속에 눈이 녹아내린다.

깨어 눈 깨어 보니,

그 사이 뽑힌 머리카락들

방바닥에서 웃자라고 있다.

 

#1.

어제는 봄, 눈 녹아 홈통으로

찰박찰박 흘렀는데

오늘은 비긋자, 낙숫물 소리.

목련나무 뿌리 아래

물길이 꿈틀거리고 있다.

젖은 흙길이 좌우로 봄꽃을 거느리고

꽃밭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3.

비는 온몸이 혀다.

단풍잎 잎마다 혀가 붉다.

단풍의 혀가 비의 혀를 받아

두 혀가 한 몸으로 가을바람에 떨린다.

그 혀에 앉은 노을도 혀다.

 

비의 가을은 흙을 맛보고

온몸을 부수며 죽었다, 부활한다.

 

다시 난 비의 마음은 맑고 둥글고

그 성질은 차고 곧아서

들고 나는 호흡에 숨겨두어도

스승의 자리에서 도망가지 않는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예스는 성탄 전날 자전거를 타고 통장에서 찾은 지폐를 품고 천사의 집을 찾았다.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옷을 하나씩 입혀주라고. 예스의 부모는 외면했고, 예스의 형제들은 반대했다. 잠자는 예스의 방에 예스의 형제들이 들어와 예스를 차에 태웠다. 예스는 산타마리아종합병원 응급실입구에 내렸고, 전직 특전사 출신인 보호사 둘이 예스를 끌고 갔다. 예스는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간호사가 달려와 예스의 엉덩이에 주사를 놓기 전까지. 예스의 눈동자는 풀렸고 바퀴를 단 침대가 예스를 싣고 깊은 병동으로 들어갔다. 철문이 쾅 닫혔다.

 

예스는 맥이 풀렸다. 힘이 죽었다. 돌아온 정신에 공포가 왔다. 일인용 보호실이다. 난동을 부리면 그곳에 감금한다. 예스의 손목과 발목은 천으로 꽉 묶어놓아 피멍이 일었다. 사타구니는 축축했다. 예스는 죄를 생각했다. 착하게 사랑한 죄?! 일인용 보호실에는 시간이 없는 독방이 살고 있었다. 그해 병동의 밤은 겨울이었다. 그래도 피는 통한다. 밤새 발가락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하얀 옷을 입은 간호사가 약을 주면 예스는 약을 먹고 물을 마시고 보호사에게 입을 벌려 약이 식도로 넘어갔음을 보였다. 약은 약의 이름을 가진 독이다. 그것은 죽음이 아닌가? 깨어있는 것을 잠들게 한다. 예스는 약을 먹고 간식을 시키기 전에 화장실에 가서 약을 토해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예스는 어제 묶인 천이 풀린 손목을 만진다. 허공을 손으로 잡으니 발바닥에 쥐가 와서 아프다. 작은 유리창 밖에서 슬리퍼 지나는 소리가 들린다. 간호사들이 들어와 주사기를 들이댄다. 치료검사를 위해 피를 뽑겠단다. 예스는 말한다. 나의 몸과 마음에 손대지 마라. 나는 너희를 모른다. 침대는 실랑이로, 땀내로 자욱하다. 예스의 기도는 밤의 벽을 피와 땀으로 적셨다.

 

예스는 이제부터는 서로의 이름과 성을 외우는 시절은 버려야 한다고 했다. 환자 옷을 입은 사람들은 그 겨울을 온통 눈 뭉치듯 뭉쳐서 다음 해 봄까지 의사와 간호사와 보호사들을 하나씩 죽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모두 죽였다. 수북한 열쇠로 닫힌 철문을 열었다. 보호자들이 갖다놓은 옷으로 갈아입고, 보호자들이 갖다놓은 돈을 찾아 의사와 간호사와 보호사들의 자가용을 타고 새벽 속으로 떠났다. 첫걸음 속에서 예스를 괴롭히던 공포도 떠났다. 예스를 가둔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예스는 비로소 예스가 되었다.

 

최동문- 경북 경주 출생. 1996<<현대시>>로 등단. 시집 <<아름다운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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