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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이태규/풍경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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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풍경1 외 1편
한 아이가 토방 댓돌에
걸터앉아서 피리를 분다
한쪽 무릎은 곧추세우고
바지를 말아 올린 한쪽 다리는 쭉 뻗은 채
두 손가락은 피리 위에서 팔랑 거린다
황토마당의 바둑고양이는
머리를 치켜들고 앉아
피리소리에 턱을 끄떡이고
돌멩이 너머에 매달린 봉숭아꽃은
피리 장단에 맞춰 춤을 춘다
맑은 하늘을 가로지르던
흰구름손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시기심 많은 바람이 이내
고운 머릿결을 흩트려 놓는다
아이에게 등 기댄 누렁이의
코고는 소리와 피리의 합주소리
고즈넉한 시골집은
하나의 풍경으로 넉넉하다
도시의 비둘기
도시에 사는 비둘기는
발가락 하나쯤은 버려야 행세를 하지
발가락이 모자라면
서슴없이 발목을 내놓아야해
잘려나간 발목이 아물기도 전에
깨진 유리조각이 섞인 오물 속에서 먹이를 찾지
남들의 눈치나 체면 따위는
버린 지 오래
안중에 둔다는 것 자체가 사치야
날카롭게 모난 도시의 선을
곡예 하는 것에 비하면
눈 내린 차가운 골목길을 파헤쳐
먹이를 찾는 일쯤은 식은 죽이지
잘려나간 발톱과 찢긴 부리로
파헤침에 몰두하지 않으면
언제든 도시의 제물이기를 각오해야해
무심코 둥근 선을 그리며
도심으로 날아든 산비둘기 한 마리
이내 不角山 쪽으로 날아가지
둥근 선으로는 한시도
버틸 수 없는 도시·도시의 하루
이태규- 2001년 문학공간 신인상. 시집『쥐악상추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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