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아라시/김주혜/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김주혜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외 1편
6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왕오천축국전
유리상자 안, 땀에 쩐 옷자락 30cm를 만나고 온 날
꿈길에서 혜초의 바튼 기침소리를 들었다
바람에게 기러기에게 흰구름에게
고국소식 물으며
돌고 돌아 이제야 소원을 풀었건만
단돈 은전 오백 냥에 간직해온
프랑스인에게 고마움을 전하기에
아직 내 가슴은 작다
30cm만 보라고 한들,
혜초가 적은 그 숱한 이야기를 모를까
나는 보았다
가려진 그 너머에 쓰인 스님의 화두를
땀과 눈물이 그린 발자국을
‘마오쩌둥의 얼음두상’* 처럼
고작 108개 유리잔의 물로 사라질
너와 나 그리고 모든 이념들에게
고향에 등불은 정녕 없는 것일까.
*김아타의 작품
아침 신문
아침에 눈 뜨면 신문 보기가 겁이 난다.
연평도 앞바다가
놀란 가슴을 달래기도 전에
먼 바다에선
애꿎은 갈매기가 가슴을 다치고
잠잠하던 바다가 분노하고 대지가 갈라진다
해치가, 스핑크스가 눈 부릅뜨고 지켜도
조류독감이니 미세먼지니 프로포폴이니
듣도 보도 못한
철렁한 단어들이 질펀한 아침이 무섭다
우리 아이들 어쩌나
벌거숭이 붉은 산이었을망정
맑은 물과 신선한 바람이 불던 이 땅에
붉은 물이 흐르고, 황토 바람이 분다
가슴에 작은 시냇물 하나 흐르지 않는
우리 아이들 어쩌나
모래 왕국의 투탕카멘이 웃는다
영원히 눈 감지 못하는 이유를 알겠느냐고
아무래도 이 아침,
고사떡 들고 이집 저집 돌던 시절이 생각나
우리 아이들에게 떡심부름이나 보내야겠다.
김주혜- 서울출생. 1990년 《민족과 문학》으로 등단. 시집 『때때로 산이 되어』, 『아버지별』, 『연꽃마을 별똥별』.
- 이전글아라시/이보숙/구름판화 외 1편 15.07.06
- 다음글신작시/김용균/동막 갯뻘에서 외 1편 15.07.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