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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김영자/꽃폭풍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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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자
꽃폭풍 외 1편
폭풍이 몰려왔다 휘몰아왔다
한 사흘 몰아치더니 꽃천지 꽃사태다
시간을 나누어 피더니만
어인 일로 한꺼번에 몰려왔는지
꽃에 취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데
친구는 꽃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하고
키 큰 이 시인은 무섭다고 했다
정신이 번쩍 났다
사이사이에 무슨 일이 일었을까
꽃들의 웅성거림
모든 꽃들이 한순간에 나를 바라보며
너는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꽃들은 모두 허공에 앉아 있었다
분명한 것은 곧 떠날 것이라는 것과
막다른 길이 너무 팽팽해졌다는 것이다
백화제방百花齊放을 읊조리며
불길한 마음을 내려 보내려고
올려다보니 오래 된 공중에서 꽃잎들은
푸른 방울토마토처럼 내려오고 있다
가벼운 것이 좋다
날이 갈수록 가벼운 것이 좋아진다 가벼워진다는 것은 무릎의 각도를 펴고 바람을 쐬는 일 조금씩 더 무게를 덜어내며 무게와 무게 사이로 물길을 내는 일이다
물들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차곡차곡 챙겨 넣어두었던 계단 아래 창고 속에서 탈출하는 아침 펑퍼짐하고 가장 가벼운 옷을 고르면서 색깔도 맵시도 다 버리니 매달릴 일도 없어 잠시 누워있다 일어나기도 하고 그대로 다시 누울 수 있으니 좋다
살 안에서 살 밖으로 살 밖에서 살 안으로 드나들 수 있으니 묶인 것들을 적시고 적신 것들을 다시 풀어 햇살에 내어 놓으니 아침이 솜털처럼 웃는다 향낭香囊이다
김영자- 1997년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 시집 『양파의 날개』, 『낙타뼈에 뜬 달』, 『전어비늘 속의 잠』 외. 서울시인상, 한국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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