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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김기산/항금리 산길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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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산
항금리* 산길 외 1편
도심의 시름 지고 가던
앵자봉 끝자락 묵은 텃밭
잡초 우거진 양달에
어지러운 속도 내려놓았다
이른 새벽 낯선 새들이 잠을 깨우고
산길 안개가 계곡을 움직이는 곳
젖은 풀잎에 바짓단 적시며
가쁜 숨소리 하루씩 돌려가는
그물에 바람 걸리는 삶
가끔 속 때 벗은 사람들과
찬 술 한잔이 게으른 나의 하루 품삯이 될까
이제 빠름의 족쇄에 마음 덧날 일 없고
쉼 없이 모이고 흩어지는 산 구름에
아슬아슬하게 살아온 먼 꼬부랑길 내려다보니
또 하루 은자隱者의 산빛에 묻힌다
밤이면 개울 물 소리 마루까지 들이고
옆집 강아지 달 보고 컹컹 짖는 소리
내 안에 모아 가두니
가슴 굳은 살 빠지는 소리
내 하루하루가 환하게 스러지는 날들이다
* 항금리는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에 있는 산속 마을.
사람이라서 미안하다
어두운 새벽
소가 소리를 내어 운다
식구들 따라 잠이 들고
잠이 깨던 나이든 소
부리망 쓰고 걷던 들과 밭
그 많은 발자국을 되새김질 하며
골목길로 끌려 나간다
몇 겁의 생을 건너와
짚더미에 떨어질 때부터 한 가족이었으니
기다리는 트럭 앞에서
할아버지 산소를 올려다보고
산울림 같은 소리를 내어 운다
빈 외양간 바라보는 할머니
인간들에게 뼈 한 조각까지
다 내어주고 돌아가는 소에게
이제 부처가 사랑하는
너의 종족이 모여 사는 곳
그곳으로 가라
인간들 세상 다 잊고
미안하다
오늘 사람이라서 미안하다.
김기산- 시집『노을을 베끼다』. 성균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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