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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소설/유시연/당신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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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소설
유시연
당신의 하루
대천이라니.
순간적으로 은주는 난감했다. 큰맘 먹고 혼자 사는 노인에게 봄바람이나 쐬어줄까 해서 제의한 것인데 한술 더 떠 앞집 노인이 대천으로 가잔다. 속이 탔다. 요 근방 길을 뚜루루 꿴다고 해서 동행을 제의했는데 이제 와서 못 간다고 할 수 없어 은주는 속이 탔다. 경솔한 언행을 후회한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앞집 노인과는 일면식도 없었으나 첫눈에도 이모가 말하던, 친자매처럼 허물없이 지낸다는 할머니라는 것을 단박 알아챘고 은주는 망설임 없이 인사를 한 터였다. 그녀 역시 이물감 없이 오래 전부터 은주를 안다는 듯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 냥반이 이질녀여? 인물이 훠언하게 생겼구먼.”
뽀글뽀글한 파마머리를 한 앞집 노인은 이모네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집에 산다. 초록색 가죽상의와 밤색 스판바지를 입은 뽀글파마 할머니의 패션 감각이 눈에 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자 두 손을 덥석 잡더니 오래 못 만난 친지 대하듯 다감한 말투로 멀리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고맙다고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그녀의 나이를 어림짐작해보았다. 이모 말로는 일곱 살 아래라 하였는데 아무리 봐도 고희 연세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이순을 막 지난 젊은 아주머니 같았다. 조금 후 골목 끝에서 분홍 스웨터를 입은 노인이 호미와 바구니를 들고 나타나더니 호기심이 가득한 눈동자를 굴리며 은주 일행을 훑어본다.
“워디 가능겨.”
“나물 뜯으러 갈라했는데 지난 밤 이질녀가 오는 바람에 못가게 되었네 그랴. 같이 바람이나 쐬고 오지 뭐.”
“옆방 새댁이 고추장 담가 달랬는데 워쪄.”
“고추장 담가 달래? 얼매나.”
“햇고추 삼십 근 빻아 놓았댜. 심들어 죽겄어. 내가 청년인 줄 아나봐. 늙은이인데.”
“그러게 고추장은 뭐하러 많이 한댜."
“가을에 시아버지 칠순이 있대나.”
“갈껴 안 갈껴?”
“나 옷갈아 입고 와야 하는디.”
고추장 타령하던 노인이 금세 표정을 바꿔 은주를 쳐다보고는 가고는 싶은디, 그러고는 망설인다. 이모에게 들으니 집에서 반찬을 만들어 팔아 용돈으로 쓴다고 했다. 미리 주문이 들어오면 반찬을 만들어주는데 솜씨가 있어서 단골고객이 꾸준히 는다고, 김장철에는 김장김치 주문만으로도 벅차다고 했다.
승용차가 출발하려는 찰나 분홍스웨터 할머니가 잠깐 기다리라며 얼른 집에 들어갔다 나오겠다며 골목 끝 파란 철대문을 향해 달려간다. 시동을 켠 채로 기다리다가 다시 껐다. 이십여 분이 지났을까. 분홍스웨터 할머니가 손을 흔들며 나오는데 베이지색 바바리에 체크무늬 동그란 모자를 쓰고 있다. 작은 손가방은 어깨에 사선으로 둘러매고 꼭 끼는 누비바지에 앵클부츠를 신었다. 왼손에는 담배 한 개비가 들려 있다. 뽀글파마 할머니가 빨리 타라고 시간이 없다고 하자 쪼깨 기다리라며 담배를 맛나게 빤다. 연기를 후욱 불며 두 모금 더 빨더니 뒷좌석에 오른다.
“모자를 잊어버릴뻔 했잖여.”
“아따 살결 좀 타면 어뗘. 새색시 시집가려는 것도 아니구.”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볕에는 딸을 내보낸다고 하잖여.”
“그라게, 무신 심뽀인가 몰러.”
“그나저나 담배 끊었다 하잖았어?”
“그 맛난 걸 없애면 과부가 무신 재미로 사나.”
“그건 그랴.”
“얼마나 산다고 먹고 싶은 걸 못 먹어.”
“이질녀라 했어? 이렇게 고마울 데가.”
“고맙긴요.”
“그래도 젊은 사람이 그러기가 쉽지 않지.”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해서인가 노인들은 수다를 떨다가 까르르 웃다가 조용해졌다가 금세 코를 곤다. 멀리 산허리쯤에 연기가 피어오른다. 둥글고 긴 굴뚝이 있는 것으로보아 화장터이거나 쓰레기 소각장일 것이다.
지난밤 이모에게 안부전화를 한 게 발단이었다. 망할 년, 가까운 곳에 내 집 놔두고 절에서 묵어? 이모는 못내 서운한 듯 구시렁거렸다. 보따리 싸갖고 당장 오라고 성화를 하는 바람에 대충 손가방만 챙겨들고 밤길 시오리를 달려 이모집에 온 터였다. 이 년 전인가 대학생 손자와 함께 사는 이모를 만난 적이 있어서 일부러 연락을 안 하려다가 안부전화를 한 거였다.
“그러니까 시방 니가 절밥을 먹고 있다고?”
“네.”
“절 안에서 잔다고?”
“네.”
“춥지는 않고?”
“네.”
“무신 재미로 혼자 지내는지 원.”
이모도 혼자 지내잖아요, 소리가 목젖까지 올라왔으나 꿀꺽 삼켰다. 영감님 돌아가신지 십 년. 이모는 전처 아들 내외와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다.
“내 자식이나 넘의 자식이나 사람은 다 똑같아.”
“그렇지.”
“성규가 며칠 전에 찾아와서는 냉장고며 텔레비전을 부려놓고는 세상을 떠돌아다니겠다며 가버렸어.”
“죽기 전에 세상구경 실컷 하는 팔자도 좋은 팔자여.”
“그러게 좋은 게 꼭 옳다고 할 수 없지만서두 맨날 촌구석에 처박혀 있다 죽은 영혼이 젤 불쌍혀.”
“이 좋은 봄날 꽃구경 가는 우리 팔자가 젤 좋은 팔자여.”
성규라는 사람은 초등학교 사학년 때 만나 이모가 삼 년동안 밥을 해준 아들이다. 이모는 그 아들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빼놓지 않았다.
“그 넘이 광천인가 어디에 와있다는데 어찌 사나 몰러.”
“아, 광천이면 코앞인데 뭔 걱정이래 시방.”
이모가 혼잣소리로 중얼거리자 귀밝은 뽀글파마 할머니가 냉큼 대꾸를 한다.
“그러게 말여.”
“이참에 한 번 댕겨오든가.”
“그럴까 그럼.”
뽀글파마 할머니와 이모 대화를 듣다보니 어째 모양새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은주 혼자인데 자기네끼리 간다만다 다 결정해버렸다.
“그럼 긴 말 필요없시유. 대천 갔다가 생선이나 쪼깨 사고 광천 들르지 뭐. 안 그래여?”
체크무늬모자 할머니가 돌아본다. 노인들은 쉴새없이 수다를 떤다. 소풍가는 유치원생과 같아 조금은 들떠서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들녘에는 봄햇살과 꽃들이 서로 겨루기를 하듯 화사함이 넘쳐나고 아지랑이가 들판 끝에서부터 가물가물 피어오른다. 낙엽을 긁어모아 태우거나 밭두렁을 태우는 연기가 차 창 밖으로 치솟는 게 보였다.
“넌 그래 여직 혼자 다니냐.”
드디어 이모 입에서 그 말이 떨어졌다. 어째 이번에는 그냥 조용히 넘어가나 했더니 그 새 못참고 참견이다. 이모를 만나면 그래서 늘 불편하다. 누군 뭐 혼자 지내고 싶어서 노인네 모시고 볕 좋은 봄날 하루를 자외선 흠뻑 맞아가며 나돌아다닐까. 은주는 잠깐이지만 승근을 떠올렸다. 은주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큰일을 기획하고 실행하여 공모자가 된 사람이었다. 만난 지 일 년만에 승근을 따라 그의 집에 인사를 갔고 그날 그의 모친을 처음 보았는데 목주름에 비해 동안인 얼굴이 호기심 많은 여중생 피부처럼 탄력 있어서 놀랐다. 주기적으로 피부마사지를 받았구나 싶은 얼굴이었다. 예상과 한참 다른 집의 규모에 내심 속으로 은근히 위축되어 있던 터라 승근 모친의 상냥한 미소에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잘 꾸며진 넓은 잔디밭, 소나무가 휘어진 정원, 긴 복도를 걸어가며 본 열두 개의 커다란 대리석 둥근 기둥은 신전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서른 개가 넘는 방이 있다는 사실에 은주는 집의 규모보다 승근이 왜 이런 것까지 포기해가며 자신을 만나려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그때 은주는 승근 모친이 심하게 반대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음 약한 승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냈다. 승근은 어머니가 반대하면 세상 끝까지 도망쳐서 둘만의 에덴을 만들자고 했고 은주는 그의 말에 불안해졌다. 평탄한 길을 버리고 고생바가지가 훤한 가시밭길을 기꺼이 선택하려는 그가 무모하게까지 느껴졌다. 두 사람은 은주의 원룸오피스텔에서 이마를 맞대고 고민했다.
“속도위반하면 엄마가 숙이고 들어올 거야.”
“내가 너보다 서너 살이나 연상인데 오죽 못났으면…그건 아니다.”
“아, 생각났다. 혼인신고부터 하자.”
“괜찮을까.”
“그럼, 서류는 백 마디 말보다 강력한 효과가 있지.”
“…….”
승근모친의 미소가 훌륭한 위장술이었다는 걸 뒤에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원룸 복도에 찾아온 그녀의 비서가 내민 누런 봉투에는 국내에서도 알아주는 법무법인의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승근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따, 저게 뭐랴.”
“뭐가 있댜.”
“산에 등불이 환하네.”
“난 또 뭐라고 봄이면 해마다 꽃이 만발하는데 뭐, 다 자연의 조화지.”
“늘 봐도 새롭네.”
“그랴, 저 꽃은 늙지도 않아.”
“부러워?”
“그렇다는 거지.”
“그나저나 이질녀는 몇 살이여?”
“저요?”
꽃 이야기를 하다 말고 노인들 초점이 은주에게 옮겨진다. 난감한 순간이다.
“쟈가 올해 서른아홉 살이지 아마.”
그 사이에 이모가 냉큼 끼어든다.
“아직 한창이네. 좋은 때로구먼.”
“애인 없어?”
“왜? 소개시켜 줄려구?”
“글씨, 친정 오라버니에게 셋째가 있긴 한데 한번 갔다 왔어.”
“한번 갔다 오다니, 그게 뭔 말이여.”
“아 이혼했단 말이지.”
뽀글파마 할머니가 의문을 표시하자 베이지 코트를 입은 체크무늬모자 할머니가 소리를 냅다 지르는 바람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세상 많이 좋아졌어. 신랑이 병신이거나 고자를 만나도 그냥 나죽었소, 하고 사는 줄 알았지 우리 세대는.”
“그나저나 자식은 없구?”
“아들 하나 있는데 지에미가 키운댜.”
“요즘엔 숭도 아녀. 살다가 서로 안 맞으면 참지 말고 갈라서야지 안 그래여?”
노인네들 대화가 어째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은주는 노인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아서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언제부터 노인들이 이혼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정도로 개방적인 사회가 되었을까. 은주는 속으로 씁쓸해졌다. 나이를 말하면 젊다고 해놓고는 중매를 선다는 게 이혼남이나 홀아비를 소개해주는 데는 이골이 났다. 친척들도 대놓고 이혼남을 입에 올려서 은주는 곤혹스러웠다. 서른 초반까지만 해도 중매가 줄을 이었는데 이제는 지인들도 중매를 하지 않았다. 어쩌다 중매가 들어와도 애 딸린 이혼남에 홀아비를 소개한다. 이모는 애가 딸리지 않은 이혼남을 소개할 때는 봉 잡은 듯이 덥석 잡으라고 하는데 마치 총각을 소개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정색을 한다.
“그래도 지 맘 먹은 대루 놀러가고 싶을 때 놀러 가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유롭게 사는 것도 좋은 팔자여.”
“그건 그랴.”
조금 전까지 결혼을 종용하던 노인들은 다시 마음이 바뀌어 원점으로 돌아온다. 사방에서 꽃들이 피어나니 노인들 마음도 싱숭생숭 종잡을 수 없는 모양이다. 언제 내려 오는 겨? 이모는 안부전화를 할 때마다 은주에게 물었다. 드물기는 하지만 이모가 전화를 걸어올 때도 있다. 그런 날은 분명 바람 불고 꽃잎 날리는 봄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비 오는 날 진한 원두커피가 생각나듯이 이모도 꽃향기 날리는 봄날이면 마음이 심란스러운가 보았다. 햇살이 점점 짙어지고 앞 창 유리에 반사되는 빛이 봄의 깊이를 느끼게 하지만 그늘도 짙었다. 수분이 부족한 마른가지, 타들어가는 풀포기, 풀썩풀썩 일어나는 먼지로 인해 거리는 온통 부연 모래먼지로 가득했다.
은주는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조용히 절에서 낮잠이나 잘 걸 그랬다고 괜스레 후회를 해본다.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어 절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데 단체가 아닌 개인 신청도 받아줘서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덜컥 이모에게 연락하는 바람에 이웃 노인들에게까지 엮이게 된 지금의 자신을 원망하면서 은주는 천천히 운전을 한다. 그러고보니 아침에 커피 한 잔 어쩌고 하다가 잊어버리고 그냥 나왔더니 목이 마르다.
“서방님은 여태 소식 없대?”
“없시유.”
“자네 팔자나 내 팔자나 휴우.”
“차라리 속시언히 뒈져뿌렸으면 싶잖여. 그 인간이 내 호적에 올라있으니 면사무소에서 당최 도와주고 싶어도 안된다 하잖여.”
“그러게 말여.”
“웬쑤야 웬쑤.”
“어딘가 살아 있으면 마음이 든든할 것 같은디 죽어버리면 허전햐. 마음 귀퉁이가 무너져서 사는 재미가 없시유.”
“아따 형님은 알뜰살뜰 영감님이 보살펴줬으니 죽어서도 아쉽지유. 나는 죽어서도 볼까 겁나구먼.”
앞집 뽀글파마 할머니는 남편이 부도 내고 잠적한 지 삼십 년이 지났다. 어쩌다 딸을 통해 소식을 전해오기는 하는데 그쪽 소식을 전혀 모르고 일방적으로 연락을 해 온 터여서 그야말로 생과부로 살아오며 딸 하나를 키워 혼례를 시켰다. 딸의 결혼식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은 남편을 원망하며 뽀글파마 할머니는 이모 집에 소주를 들고 와서 새벽까지 넋두리를 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쓰러져 잠들었다 깨어난 뒤 이모가 끓여주는 해장국을 먹고는 신랑보다 낫다고 두 손을 덥석 잡았다며 이모는 두고두고 그 이야기를 한다. 이모는 징그럽게 왜 그러느냐고 눈을 흘기면서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뽀글파마 할머니를 보고는 세월이 무상함을 절감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멀리 산중턱 굴뚝에서 연기가 치솟아오른다. 화장터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먼 들판 끝에서 아지랑이가 너울거리고 나비가 살랑대는 봄은 살아 있는 것들의 욕망과 강렬한 삶의 희구를 부추긴다. 산자락에는 벚꽃과 산수유와 배꽃이 피어 봄햇살을 즐기고 있다. 화창한 봄날 화장터라니. 생명과 죽음이 함께 한다는 건 인생의 아이러니이면서 의외로 빛과 그림자처럼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보인다.
노인들은 잠들었는지 다시 잠잠하다. 코고는 소리 요란하게 들리고 뒤척이는 기척이 나더니 체크무늬모자 할머니가 은주가 들으라는 듯 구시렁댄다.
“담배 한 대 빨고 싶은디 참아야되것지?”
“창문 열고 피우세요.”
“그럴까 그럼.”
체크무늬모자 할머니가 은주의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라이터 불을 붙여 담배를 핀다. 담배를 흡입했다가 내뱉으며 내는 소리가 꼭 아가미로 숨을 쉬는 물고기의 호흡같이 들려서 은주는 거울을 통해 체크무늬모자 할머니를 쳐다본다.
“담배를 참 멋있게 피우시네요. 언제부터 피셨어요?”
“시집오기 전부터 담배를 했는디 시집와서 시어머니 몰래 장독대 옆에서 피다가 어린 시누이에게 들켰지 뭐여. 시누이가 호들갑을 떨며 시어머니에게 일러바치자 그 노인네 시누이를 쥐어박잖여. 어디 가서 두 번 다시 그런 소리 하면 다리몽댕이를 분질러놓겠다고 야단치는 것을 보고 시어머니가 보통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시유.”
“그 시대에 새댁이 담배 피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네요.”
“나중에는 시어머니와 마주 앉아 담배질을 했구먼.”
“거 괜찮은 집안인데요. 그런 시어머니라면 당장 시집갈 텐데…….”
“에이, 괜히 빈말이지. 이질녀만한 색시가 워디 부족해서 시집을 못갔것어. 안갔지, 안그려?”
체크무늬모자 할머니와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뽀글파마 할머니가 기침을 한다. 체크무늬모자 할머니가 피던 담배를 창문 밖으로 내던지고는 창을 닫는다.
“예민하기는, 이 좋은 걸 좀 배워봐.”
“아따 그 좋은 거 형님이나 많이 잡슈.”
“그랴, 나 혼자 실컷 먹고 일찍 저 세상 간 영감님 따라갈 껴.”
“무신 말을 못하것슈.”
“자네는 꼭 말에 가시가 있구먼.”
두 노인이 티격태격 하는 사이 이모가 졸린 눈을 비비며 고개를 뒤로 돌려 왜 또 그랴, 하자 잠잠해진다. 두 노인은 각자 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앉아 있다. 분위기가 싸늘하다.
대천시내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생선 파는 곳으로 갔더니 규모가 큰 현대식 시장이 있다. 높다란 지붕을 씌운 투명 유리 천장 아래 펼쳐진 생선시장은 사람들로 혼잡하다. 한 생을 집안 살림만 해온 노인들이라 물 좋은 생선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가격을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하며 뽀글파마 할머니가 열심히 가격 흥정을 하는동안 체크무늬모자 할머니는 밖에서 담배를 한 대 꼬나물고 물건 값 너무 깎는다고 궁시렁댄다.
“한 대 필려?”
“네에.”
체크무늬모자 할머니가 건네는 담배를 받아들자 라이터 불을 켜준다. 평소 담배를 안 피지만 노인네가 하도 맛나게 피워서 받아든 터다. 초봄의 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든다. 옹송그리고 서서 둘이 담배 연기를 뿜어댄다. 그러고보니 체크무늬모자 할머니 손목에 팔찌가 채워져 있다. 은팔찌다. 손녀딸이 사줬다며 자랑을 한다. 체크무늬모자 할머니 패션 감각이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뽀글파마 할머니가 마른 생선과 물 좋은 고등어를 사는 동안 정작 반찬을 만들어 팔며 한 생을 보냈다는 체크무늬모자 할머니는 아무것도 살 생각을 안 하고 담배만 줄창 피워댄다.
“무신 값을 저리 깎는댜? 몇 푼이나 남긴다고.”
체크무늬모자 할머니가 그러거나 말거나 뽀글파마 할머니는 생선을 파는 가게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여기저기 기웃대며 생선값을 물어보고 만져보고 하는 사이 체크무늬모자 할머니가 밖으로 나가버린다.
“후딱 사서 갈 생각을 안 허고, 만지고 또 만져놓고는 다른 가게로 가곤 하네. 하이고오 속 터져.”
체크무늬모자 할머니가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해댄다. 그러거나 말거나 뽀글파마 할머니의 시장 순례는 언제 끝이 날 지 알 수가 없다. 이모가 점심 먹고 다시 천천히 둘러보자고 겨우 달래서 뽀글파마 할머니를 데리고 나온다.
시장 안에 있는 칼국수 집에 들러 점심을 먹고 미리 계산을 했더니 자기네들이 사야하는데 은주가 계산을 했다고 미안해한다. 점심을 먹고 나니 노인들이 하루치 노동을 끝낸 듯 서두르는 기색이라고는 없다. 출발하자고 조르는 사람도 없고 시장이나 골목을 기웃대며 뭔가 아쉬움을 남겨 놓은 듯한 발걸음이다. 이모는 포목점 앞을 서성인다. 한 때 양장점을 했던 이모는 지금도 돋보기를 걸치고 옷을 만들어 입는다. 여름에는 값싼 모시를 사서 이웃 노인들 적삼을 만들어 나누어준다. 젊었을 적 솜씨를 뽐내고 싶어 하는 이모의 바지런함은 노인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하지만 막상 오래된 옷을 고쳐준다고 하면 다들 기피한다.
“아, 그깟 옷값이 얼매나 한다고 구질구질하게 살어? 시장에 가서 사 입고 말지. 요즘 유행하는 걸로.”
“그려.”
이모 집에 놀러 왔던 두 노인은 돋보기를 쓰고 공업용 재봉틀을 돌리는 이모를 대단하다고 하면서도 막상 옷을 고쳐준다는 말에는 정색을 하고 거절한다. 포목점을 기웃거리던 이모가 인조견을 한 필 사들고 오자 체크무늬모자를 쓴 노인이 담배를 물고 연기를 불어 올리고 있다.
“이 노인네는 워디 간겨? 빨랑 가야지.”
“멸치 산 게 물이 안 좋다고 다시 시장에 갔어.”
“대충 허지 까다롭기는. 아, 그러니까 영감이 안 돌아오지. 다 무신 이유가 있는겨.”
“아 글씨 멸치가 물이 안 좋아 다시 갔다니까.”
“갈라 서는 부부들은 다 똑 같혀. 어느 한쪽 잘못이 아녀. 톱니바퀴가 잘 맞물리며 돌아가듯이 둘 다 똑같혀.”
“무신 말을 고렇게 정 없이 하는겨?”
뽀글파마 할머니가 어느 사이 다가와 체크무늬모자 할머니를 노려보고 섰다.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데 투명 비닐에 들어 있는 멸치가 비쭉이 나와 있다.
“언제 왔댜.”
이모가 묻는 말에는 대꾸를 안하고 뽀글파마 할머니는 볼을 실룩거리며 화난 표정을 짓고 있다.
“사별이 무슨 벼슬이여? 평생 금실 좋게 살다가 영감 먼저 보냈다고 생이별한 내 처지를 함부로 비꼴 수 있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따 그 성질 좀 죽여.”
“내 몇 번 참았는데 남의 아픔에 대해 함부로 주둥이를 나불거리는 게 아녀.”
“누가 뭐랴.”
“다 사정이 있는 거여. 말 못할 사정이…….”
뽀글파마 할머니가 휙 돌아서서 가버린다. 이모가 안절부절 못하더니 뒤쫓아간다. 체크무늬모자 할머니가 다시 담배를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여 물고는 은주에게도 권한다. 담배를 받아들고 시장 귀퉁이에 서서 연기를 불어올리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꾸 힐끔거린다. 체크무늬모자 할머니는 속이 편치 않은지 거참, 거참 하며 말을 아낀다.
노인들은 쉽게 싸우고 쉽게 삐치고 쉽게 화해한다. 이모 집에 다니러 왔던 앞전에도 두 노인이 다투어서 이모가 뜯어말리느라고 막걸리를 사온 적이 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뽀글파마 할머니와 이모가 나타나고 체크무늬모자 할머니 표정이 환해진다. 차에 시동을 걸자 체크무늬모자 할머니가 잠시 기다리라며 시장 안으로 바삐 걸어간다. 조금 후 체크무늬모자 할머니가 빨간 사과 두 알을 양손에 쥐고 나타나 뽀글파마 할머니에게 내민다.
"받을껴, 안 받을껴?"
사과 두 알을 받으며 뽀글파마 할머니가 눈을 흘긴다.
돌아오는 길에 광천시장에 들러 미역이며 다시마를 사고는 정작 한때 이모 아들이었던 ‘그 넘’ 이야기는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이모와 그 아들 이야기는 이모에게 지나간 시절의 블랙홀이다. 이모의 두 번째 남자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열한 살 소년은 이모가 끓여주는 국을 정말 맛있게 먹더라고 이모는 말끝마다 그 아들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 놈이 에미 없이 자라서 즈애비가 제대로 밥을 해줬겠어, 국을 끓여줬겠어, 내가 끓여준 시금치된장국을 먹으며 얼마나 행복한 표정을 짓는지, 니가 그때 걔 얼굴을 봤어야 해.”
이모는 끼니 때마다 국을 정성스레 끓여서 상에 올렸다고, 종류를 바꾸어가며 아들을 위해 국을 끓여주었다고 지난 시간을 회상하곤 한다. 그 아들이 허겁지겁 걸신 들린듯이,(이모 표현에 따르면)국을 맛나게 먹어서 평생 아들에게 국을 끓여줘야겠다고 결심했노라는 이야기를 벌써 여러 번 되풀이해서 들려줬다. 무국, 시금치국, 배춧국, 황태국, 오이국, 미역국, 감잣국, 쇠고깃국, 냉이국…… 이모가 손가락을 꼽아가며 국 이야기를 할 때 인연이 따로 있는가보다 싶었다. 그렇게 가슴으로 만난 아들에게 지극정성을 쏟았건만 두 번째 남자에게 여자가 생겼고, 가끔씩 외박을 하던 남자가 어느 날은 아예 집을 나가버려서 이모는 그 아들과 한동안 지냈다며, 그 와중에도 아들에게 따뜻한 밥을 해주고 국을 끓여주었는데 하루는 남자가 아들을 데려가더니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고, 남자 손에 이끌려가며 아들은 멀뚱멀뚱 이모를 쳐다보다가 엄마, 하고 부르고는 그걸로 끝이라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라는 게 그처럼 허망하더라며 이모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모, 그 아들인가 하는 분, 광천인가 산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긴 하다만 뭐 집에 있을라나.”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나보죠?”
“가끔 안부 전화가 와.”
“친자식보다도 낫네요.”
이모가 과거를 회상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가 혼잣소리로 중얼거린다.
“손버릇이 좀 나빴어. 즈 애비 주머니에서 돈을 훔쳐내는 걸 몇 번이나 보고서도 말을 안하고 눈감아주었더니 나더러 엄마, 엄마, 잘 따랐지. 내 돈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즈 애비 돈 갖다 쓰는데 내가 뭐라 하겠냐.”
“차암, 이모도 보살이 따로 없네.”
“오십년 전 이야기인데 까마득히 잊고 살다가 어느 날 그 애가 나를 찾아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성규라는 그 아들 말이에요?”
“그랴, 오십년 만에 날 보더니 대뜸 엄마, 그러잖아.”
“모자상봉이 눈물겹네."
“환갑 지나서 머리가 허옇게 센 놈이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데 감개가 무량하더라만. 글쎄 그 놈이 자기가 너무 어려서 엄마와 헤어졌다며, 즈 애비가 살아 있었으면 당장이라도 나를 모시고 갔을 거라며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내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사람은 다 똑같혀. 성규가 엄마라고 자꾸 찾아오는데 그기 뭔 인연인지 지랄인지 모르겄어.”
“외로운가 봐요.”
“외롭기야 하겄지.”
“글씨, 올해가 지 환갑인데 나보러 미역국 좀 끓여달랴.”
“…….”
“그기 자꾸 엄마, 엄마 찾아쌌는데 부담스러워. 영감 떠난지가 언젠데.”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던 게지요.”
“그러게 말이야. 오지마라 할 수도 없구. 봉사 시집가듯 그냥 따라갈밖에.”
“잘 산대요?”
“몰골을 보니 고생을 꽤 한 것 같더라. 마누라와는 일찍 헤어지고 평생 장사꾼으로 떠돌아다녔다지 아마.”
“자꾸 연락을 하는 걸 보면 이모를 정말 엄마라고 생각하나 보네.”
“명절이나 생일, 무슨 때 되면 과일이며 내복, 생선을 사서 택배로 부쳐주는데 받으면서두 찜찜하구먼.”
“고마운 아들이네요.”
“지나 나나 한때의 시절 인연으로 만난 게지.”
가만히 듣고 있던 뽀글파마 할머니가 눈을 뜨고는 한 마디 거든다.
“남보다 낫네요. 형님은 무슨 복을 타고 나서 늘그막에 남의 자식한테 효도 받으며 호사를 누리는지 몰러.”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는 뱁이여.”
체크무늬모자 할머니가 질세라 툭 내뱉는다. 돌연 한숨소리가 길게 새어나온다.
“살아 있으니 만나는 것이여. 아우님도 집나간 영감 돌아오면 너그럽게 받아줘.”
“절대, 못 받아들여요. 그 인간이 나를 찾아왔으면 벌써 왔지요. 자식을 같이 나눈 사이인데 나한테 딸년을 맡기고는 소식도 없다는 게 괘씸해서 젊어서는 잠을 못 잤슈.”
이모 말에 뽀글파마 할머니가 정색을 하고 말한다.
“젊은 여자하고 살림 차렸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보네.”
체크무늬모자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이 위력이 센 탓인지 돌연 차안 공기가 싸늘해지며 침묵이 감돈다. 이모가 난감한 표정으로 뽀글파마 할머니 눈치를 보다가 사태를 수습한다.
“남자들은 집 나가면 남의 남자라고 하대. 무슨 짓을 못하고 살까. 원래 그런 족속이니까 지 자식도 나몰라라 하지. 그러니 애시 당초 본마누라에게 절개를 지킬 거라는 걸 기대하는 사람이 불쌍하지.”
“그건 그랴.”
이모 말에 체크무늬모자 할머니가 원군을 만난 듯 반색을 한다. 체크무늬모자 할머니는 먼저 죽은 영감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새색시 시절에 어여쁨 받던 자랑을 늘어놓는다고 이모가 은근히 질투를 내보인 적이 있다. 세 노인이 워낙 지척에 살아서 이모 집에 두세 번만 오면 노인들의 가계뿐만 아니라 인생사를 모두 궬 수 있는데 이제는 너무 많이 알아서 이모에게 안부전화를 할 때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해 노인들의 근황을 묻게 되고 그러다보면 시시콜콜한 내막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유난히 금슬이 좋았다고 자랑하는 체크무늬모자 할머니에게도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결혼 삼 년만에 첫 아이를 잉태한 후 새신랑이 참외 한 개를 사와서 시어머니 몰래 먹으라고 주는데 이불 속에서 깨물어먹다가 체했다는 이야기를 할 때만 하여도 괜찮았다. 두 번째 딸을 낳자 시어머니가 아들을 새장가 들인다고 신붓감을 물색해서 맞선을 보게 한 일이 있었다. 맞선을 보고 온 신랑이 머리 싸매고 드러누운 신부에게 하는 말이 너무 걱정 하덜 말어, 그냥 한 번 봤응게, 하더라나. 체크무늬모자 할머니는 그 이야기를 할 때 마른 눈물을 닦으며 목이 메이는지 의기소침해 있다가 신랑이 두 번째 선을 보러 나가던 날 큰 아이 손잡고 둘째 딸을 등에 업고 선보는 장소를 알아내어 찾아갔더니 신붓감이 놀라서 도망을 쳐버렸다는 이야기를 할 때에는 통쾌한 듯 웃어댔다. 아들을 못 낳는다고 며느리를 집에 두고 새며느리를 들이려한 시어머니는 말년에 병석에 누워 체크무늬모자 할머니의 수발을 받았다. 체크무늬모자 할머니는 두고두고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시어머니를 자극했다는데 결국 시절이 어두워서 뭘 몰라 그랬다는 변명을 토해내게 만들었다고 자랑삼아 말했다.
“그래서 형님은 성규인가 하는 그 아덜 미역국 끓여주기로 했슈?”
“오면 끓여줘야겠지. 안 오면 말고.”
“난 미역국에도 멸치젖을 넣어.”
“비린내가 안 나남.”
“전혀.”
“거 참, 입맛이 희안햐.”
“나물무침에도 멸치 젖을 살짝살짝 넣어야 혀. 짭짜롬해야 밥이 넘어가.”
“섬 태생 아니랄까봐.”
“어디 섬이랬지?”
“안면도.”
“많이 변했어. 관광지다 뭐다 해서.”
“그랴, 엄청 변했구먼.”
“휴우, 가는 세월을 누가 말려.”
“세상이 요지경이여. 눈이 확확 뒤집힐 정도라니께.”
“그러게, 늙으면 죽어야 혀.”
“시방, 죽는다는 말이 왜 나와?”
“그게 그렇잖여.”
노인들의 수다는 끝이 없고 화제는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다. 은주는 하품을 하며 백미러로 노인들을 훔쳐보고는 한 마디 한다.
“김장 젓갈은 언제가 좋아요?”
“왜? 김장하게?”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
“여름에 와 봐, 햇젓갈 담근 것 나올 때니께.”
“혼자 살면서 을매나 먹는다고 쟈가 이상한 소릴 다혀.”
은주는 그냥 한 번 던져 본 말이었다. 수면에 흔들리는 나뭇잎마냥 가볍게 오고 가다가도 언쟁이 붙는 노인들의 아슬아슬한 틈새에 잠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화제를 돌리려고 한 의도밖에 없는데 다시 대화가 진지해지기 시작한다. 피곤이 몰려온다. 잠시 한눈 판 사이 은주는 낯 선 길로 접어들었는지 내비가 계속 경고신호를 보낸다.
승용차를 돌리려고 길을 따라 달리는데 길은 산길로 끝없이 뻗어 있다. 깊은 산중에 현대식 삼층 건물이 여러 채 있다. 자세히 보니 요양원이다. 요양원은 깨끗하고 조용하다.
“늙어 이런 데 오면 딱 좋겠구먼.”
“그러게.”
“공기 좋고, 깨끗하고.”
“영혼이 있기는 한 걸까.”
“있다잖여. 그러니께 착허게 살아야 헌다고 하질 않혀.”
“죽으면 다 끝날 것만 같혀.”
“아 쪼깨 살다 보믄 알게 될 텐데 뭔 고민이랴 시방.”
“그냥 그렇다는 거지. 누가 워쪄.”
“화장터에서 육신을 태울 때 이천도라 그려.”
“을매나 뜨겁겠어.”
“죽은 귀신이 뜨거운지 차가운지 어찌 알아.”
“에휴, 난 이천도의 불구덩이에 던져지긴 싫어. 그냥 땅속에 파묻으면 썩어 없어질 텐데 왜 불에 태우고 그랴.”
“살아 있는 세상 일도 모르는데 죽은 뒤 일을 어찌 알아.”
“그래두 귀신이 없다 말 못햐.”
“내 올케 친정이 조부 기일에 맞춰 합동제사를 올렸는디, 다른 조상이 나타나 부엌으로 들어오더니 배고프다 그러더랴. 그래서 국수를 말아줬더니 먹더래. 올케 친정 집안이 다 망했댜.”
“무섭네. 그러고보면 귀신이 있긴 있나벼.”
“…….”
“새댁 시절이 어제 같은디 세월이 후딱 간 걸 보믄 허망햐.”
“그랴.”
“좋은 세상인디.”
“그랴.”
노인들은 지그시 눈을 반쯤 감고 차창 밖 풍경을 내다보며 한 목소리를 내더니 침묵에 빠져든다. 산자락을 깎아 터를 다져서 그 위에 지어진 건물은 깨끗해보였다. 사람들이 나무 의자에 앉아 먼 들판을 바라보거나 삼삼오오 모여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낯 선 차량을 보고 호기심을 드러낸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무표정하다. 방금 전 뽀글파마 할머니와 체크무늬모자 할머니가 다투던 사실과 대조되는 풍경이다. 두 노인은 삶의 혈기가 왕성하다.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할수록 싸움도 하는 법이다.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무덤덤한 표정은 삶의 애착이라고는 모르는 듯 고요한 적막 속에 물기 빠진 나무처럼 앉아 있다. 깨끗한 외관의 벽면과 유리창에 저녁 햇살이 넘실댄다. 지는 해가 유리에 반사되어 튕겨져 나와 눈이 부셨다. 붉은 저녁노을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대며 메마른 사람들의 표정을 훑고 지나간다. 노인들은 정작 밖의 건물을 내다보면서도 아무 말 안하고 각자 생각에 잠겨 있다.
마지막으로 승근에게 전화왔을 때 그의 목소리는 술에 취해 흔들렸다. 미안하다. 끅, 우리 엄마 성질대로 하는 사람인 거 어려서부터 봐왔어. 사람을 시켜 너를 죽일지도 몰라…… 끅,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야, 난 엄마가 무서워. 형이 교통사고로 가고 나서 이 집안에서 나는 엄마의 마지막 희망이야…… 듣고 있니. 너는 씩씩하잖아…… 그 다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너는 씩씩하잖아…… 은주는 승근의 마지막 말이 자꾸 걸렸다. 한때 세상 끝까지라도 도망쳐서 살고자 했던 연인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이었다. 추억과 기쁨의 물결로 출렁이던 시간이 과거의 그림자로 사라져간 사실이 우울해서 은주는 한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휴가를 내어 절에서 홈스테이를 신청한 후 법당에서 매일 백팔 배를 하면서도 은주는 허공을 걷는 듯 마음이 허청거렸다.
꽃이 피어나는 만큼 다른 쪽에서는 꽃이 졌다. 봄볕을 못견뎌 꽃이 피기만 한다면 세상은 꽃들로 뒤덮이겠지. 온통 꽃으로 뒤덮인 세상은 얼마나 헛헛할까. 다른 것들로 채워진 세상에서 봄날의 하루만큼, 아주 잠깐 꽃이 피는 걸 허용할 때 그 꽃들을 찬탄할 여유가 있는 것이겠지. 짧은 계절을 흔들고 지나간 봄꽃처럼 그건 바람이 몰고 온 회오리 같은 거였다고. 은주는 지나간 자신의 한때 사랑이 봄날 하루 같다고 생각했다.
요양원 옆 기다란 굴뚝은 쓰레기 소각장이다. 고속도로에서 보았던 그 굴뚝이다. 다시 길을 찾아 나오며 오던 길과는 다른, 낯설다는 느낌이 든다.
티격태격 다투던 노인들이 잠잠해서 운전석 거울로 뒷자리를 살펴보니 세 노인이 서로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다.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다. 노인들에게는 피곤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노인들은 저물어가는 대기의 고즈넉한 분위기 속으로 고요히 잠겨들고 있다. 멀리 산자락에 흰 꽃나무가 저녁햇살을 받아 더욱 환하게 타오른다.
유시연- 2003년 《동서문학》신인상 당선. 소설집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오후 4시의 기억』장편소설『부용꽃 여름』,『바우덕이전』,『공녀, 난아』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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