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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장순/헌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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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2,152회 작성일 15-07-0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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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

헌 우산

 

 

내 친구 비는 언제쯤 올까?’

현관문 앞에 아무렇게나 처박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으려니 내 신세가 처량합니다. 그래도 낙천적이고 쾌활한 성격인 나는 기죽지 않습니다.

이제 비의 계절이 시작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도 잊고 있던 우리들을 다시 찾을 겁니다. 우리가 없으면 사람들은 비들의 수다에 흠뻑 젖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면 우리들은 몸에 날개를 답니다. 비의 계절이 온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비들의 수다가 지금도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비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느라 이렇게 기다려도 오지 않는 걸까요? 오늘 같은 날은 비들과 한바탕 신나게 수다를 떨고 싶은데 말이에요.

오늘은 정말 이상합니다.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아주머니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바라보던 아주머니가 혀를 쯧쯧 걷어찹니다.

비도 오지 않는 화창한 날인데 아주머니가 내게 눈길을 주다니 심상치가 않습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안 되겠다. 녹이 너무 슬었네.”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녹이라니요? 그럴 리가 없어요.”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몸이 근질거리고 개운치 않더니 녹이 슬려고 그랬었나 봅니다. 그동안 너무 자만하고 게으름만 피웠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도 비들과 수다 떨기에는 아직도 건강한 편이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의 생각은 내 생각과는 달랐던 모양입니다.

한순간 아주머니의 표정이 냉랭해졌습니다. 아주머니가 그렇게까지 매정할 줄은 몰랐습니다. 밝고 다정하시던 아주머니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주머니의 얼굴 표정으로 보아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너무해요.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나는 쓰레기통에 매정하게 내동댕이쳐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울고 애원을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굳게 닫힌 현관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금방이라도 문이 열리고 아주머니가 다시 나와 나를 데리고 들어갈 것 같은데 그건 내 바람일 뿐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세요? 왜 저를 이렇게 슬프게 만드는 거죠? 아줌마가 미워요. 전 아직 쓸 만해요. 아직 일을 할 수 있어요. 어떻게 제게 이럴 수 있는 거죠?”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한가롭기 만한 오후 갑자기 벌어진 일에 나는 울먹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주머니를 부르고 또 불러도 아주머니는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쫓겨나던 친구들의 마음이 어땠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느림보 컴퓨터, 절름발이 의자, 헛기침만 해대던 청소기, 욕쟁이 세탁기. 그 친구들은 지금 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아주머니가 원망스럽습니다. 나는 졸지에 쓰레기가 되어버린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 모든 책임을 내게 떠넘긴 아주머니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쓰레기가 되어버린 나로서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다른 쓰레기들과 뒤섞여 쓰레기장으로 실려 가야 한다니 겁이 났습니다. 서러워서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버려진 설움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 받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그 많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태어나서 우산이라는 이름을 달고 상점에 진열되어 있었을 때처럼 즐거웠던 적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버려지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마음씨 고운 주인을 만나서 행복한 나날을 보낼 줄 알았는데. 비들과 지칠 것 같지 않은 수다를 영원히 떨 줄 알았는데. 모두 내 욕심이었습니다. 처음 태어나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람들은 더 이상 나를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이제 나는 우산이 아닙니다. 폐품인 셈이지요. 죽마고우인 비들도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겁니다. 이슬비, 가랑비, 소나기, 여우비.

비들이 정말 보고 싶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비들을 불러 봅니다. 하지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합니다.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이젠 희망도 없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의 할아버지가 나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보자. 그 녀석 참 야무지게 생겼구나.”

할아버지의 따듯한 손길에 얼어붙어 있던 내 가슴이 순식간에 녹아 내렸습니다. 그리고 한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손길은 침울해 있던 내게 다시금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집에는 나처럼 버림받은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상점에서 헤어졌던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 거기에요. 거기가 무척 가려웠어요.”

할아버지는 녹이 슬어 간지럽던 내 몸 구석구석을 정성껏 닦아주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나는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습니다. 할아버지도 덩달아 흥이 나던지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이렇게 닦아 놓으니까 새 것 같구나.”

그래요, 할아버지. 그런데 아주머니는 제가 너무 지저분하데요. 그래서 보기 싫었나 봐요. 할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아마도 전 일반 쓰레기들과 뒤섞여서 다시는 비들을 만날 수 없었을 거예요. 정말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날아갈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시 비들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합니다.

할아버지, 저두요. 저도 아파요.”

다른 친구가 할아버지를 향해 보챕니다. 친구는 팔이 부러져서 많이 아파 보였습니다. 그래도 친구는 걱정하지 않는 눈치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아픈 상처를 감쪽같이 치료해 주실 거거든요. 할아버지의 손이 닿을 때마다 친구들은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너는 옷이 찢어졌구나. 조금만 기다리렴.”

할아버지께서 찢어진 친구의 옷을 바늘로 정성스럽게 꿰매 주셨습니다. 친구는 새 옷을 입은 것처럼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손길은 꼼꼼하고 부드럽습니다. 할아버지의 손은 약손입니다.

할아버지가 있는 한 우리는 버림받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는 우리들을 보살펴 주시는 수호신입니다.

할아버지의 바다와도 같은 넓은 마음은 우리들을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할아버지는 우리들의 상처 받은 몸과 마음을 말끔히 치료해 주시는 의사선생님입니다.

할아버지의 변하지 않는 사랑을 받으며 우리는 비들과의 만남을 기다립니다. 비를 만나면 할아버지의 따듯한 마음씨를 자랑을 할 겁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그날이 왔습니다.

갑자기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먹구름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비가 울 것만 같았습니다. 들뜬 우리들은 비가 오기를 기다리며 재잘대기 시작했습니다. 버려질 뻔했던 우리가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다시 태어나 처음으로 맞이하는 외출이거든요.

얼마 후 우리는 할아버지를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우리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합니다.

할아버지 어딜 가는 거죠?”

할아버지는 말없이 걷기만 하셨습니다.

설마 할아버지께서 우리를 버리려고 그러시는 건 아니겠지?”

겁 많은 친구가 말했습니다. 또 버려질까봐 그것이 걱정인 모양입니다.

어떡해!”

아니야, 아니야. 할아버지는 그럴 분이 아니야.”

나는 할아버지를 믿습니다. 무심하고 소홀하던 아주머니보다는 백배 더 좋으니까요.

할아버지가 향한 곳은 지하철역 역무실 앞이었습니다. 역무원 아저씨가 할아버지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우리들을 역무실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습니다.

부탁한다, 얘들아.”

그 말을 남기고 할아버지가 돌아섰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저만치 걸어가시던 할아버지가 뒤돌아서서 살며시 인자한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가셨습니다.

<우산을 빌려 드립니다.>

할아버지의 정감 있는 글씨입니다.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주시는 고마운 분입니다. 우리도 할아버지의 기대에 보답할 겁니다.

드디어 비가 오는 모양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나설 차례입니다.

안녕, 친구야.”

우리 꼭 다시 만나자.”

그래, 친구들아.”

친구들이 하나 둘 씩 떠나갑니다. 우리들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눕니다. 친구들과 헤어지는데도 슬프지가 않습니다. 슬프기보다는 입가에 미소만 가득합니다.

나도 아저씨를 따라 비를 마중 나갑니다. 비들은 수다쟁이입니다. 만날 때부터 헤어질 때까지 쉬지 않고 수다를 떠니까요. 그래도 나는 비와의 수다가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수다를 시기하듯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습니다.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성질 사나운 바람의 질투에 내 옷이 그만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에이, 이런 걸 우산이라고…….”

아저씨가 홧김에 나를 내동댕이치곤 후다닥 달려갑니다.

아야!”

눈물이 핑그르르 돕니다. 너무합니다. 필요로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매정하게 걷어차다니, 아저씨도 아주머니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서글펐습니다. 몸이 아픈 것보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몰라주는 아저씨가 미워서 눈물이 납니다.

이제는 정말 쓰레기장으로 가야 할 처지인가 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심한 발걸음에 차이면서 희망도 물거품이 되어 갑니다. 만신창이가 되어 서글피 울다가 겨우 잠이 듭니다.

많이 아픕니다. 너무 아파서 눈물조차 흘릴 수가 없습니다. 비들도 물러간 지 오래입니다.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날씨는 화창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우울합니다.

친구들은 무사히 할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갔을까요? 설마 저처럼 버려지지는 않았겠죠? 걱정입니다.

불쌍해라. 누군가 했더니 너였구나. 걱정하지 말거라. 이 할아비가 아프지 않게 해줄게.”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의 따듯한 손길에 나는 다시금 용기를 냅니다. 하찮은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할아버지가 정말 고맙습니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는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돌아갑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손은 약손이에요.”

할아버지가 아픈 상처를 보듬어주시면 나는 노래를 부릅니다. 길가에 버려지더라도 이젠 겁내지 않을 겁니다. 할아버지의 따듯한 손길은 변함이 없을 테니까요.

 

장순- 시집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바쁘면 환절기에 만나자. 에세이집 내 머릿속의 또 다른 나. 장편소설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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