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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평/백인덕/다시 생각하는 시적 현실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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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덕
다시 생각하는 시적 현실의 의미
1.
아마도, 『아라문학』 여름호를 준비했던 지난 4월과 5월은 ‘세월호 참사’의 시기였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전국적인 애도의 물결이 소용돌이 쳤고, 노란 리본이 온 거리를 뒤덮었다. 인천지역은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고, 필자가 살고 있는 안산지역은 가장 큰 피해지역이다. 이 땅의 최고 권력자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를 가르면서, ‘국가개조론’을 들고 나왔지만, 반신반의하는 국민들의 의혹을 일거에 걷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쨌든 심난한 4월과 5월, 왜 이땅의 그 기간은 늘 역사의 격랑이 이는 지 알 수 없지만, 그 애도의 기간이 ‘현실 인식’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시는 언어의 구조물이다. 이 불변의 정의는 우리의 ‘몸’이 하루, 하루 겪어야 하는 현실을 시로 오롯이 모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한때, ‘반영이론’이 문학적 논의의 중심이었던 적이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인물과 사건’이 중심이 되는 서사문학에 더 가까운 것일 뿐, 어차피 고백적이고 내면적인 시라는 장르와는 얼마간 거리가 있었다. 따라서 이번에는 소략하나마 ‘시적 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말해 시적 현실은 시안에 놓여 진 사물들과 시적 언술의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다시 말하면 시적 현실은 시안에서 시적 주체와 대상간의 관계 맺기 방식에서 드러난다. 이때 시적 현실이라는 명제는 소재주의적 명제가 아니라 방법론적 명제가 된다. 그러기에 시적 현실은 시인에 의해 창조된다. 시적 현실은 누구에게서나 다르게 정의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존재의 의의가 있다. 시적 현실 속에 내재한 규칙은 본질은 아니지만 실존한다. 아울러 시적 현실은 현실이라고 명명되고 규정된 하나의 구조물이며, 시의 존재태이다.
시적 현실은 또한 한 시인에 의해서 창조되는 다양한 의미 구조일 수도 있고, 다수의 시인들에 의해 창조된 유사한 의미 구조일 수도 있다. 이 점은 우리가 시를 이른바 ‘시대정신’과 관련하여 언급하게 되는 이유를 밝혀준다. 시인 각자는 개별적인 작품을 통하여 그 순간의 시적 현실을 창조하게 되지만. 그것은 곧바로 사회, 문화적 맥락 안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어 내게 된다. 이 글에서는 ‘시대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몇 시인들의 작품을 통해 시적 현실의 구성 요소를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동지섣달 긴긴밤에
무를 놋숟가락으로 갉아 먹으며
가슴 시원해 하던 할머니.
하늘 가득 눈꽃이 피는
겨울 어스름 저녁이면 무 구덩이에서
무 하나를 꺼내 오셔서
채국을 잘하셨다.
특히 정월 대보름
액 땜 막이 약밥을 해 먹으면
무 채국은 통과의례였다.
채에 무를 썰고
냄비에 참기름을 두른 다음
달달 볶고 끓여서
고소하고 시원하게 만든 무 채국.
지난 한 해의 온갖
속상하는 일들 속 시원히
소화 잘 되라고 해선지
무 하나로
세상살이 쓰린 속 씻어내려고
찬 음식을 더욱 차게
살얼음이 지도록 얼려 먹었다.
엄동설한답게 찬 무 채국
시원하게 먹고서는
동장군도 벌벌 떨 사람이 되자.
세상살이 파도를 넘으러
나는, 나는 바다로 간다.
-강우식, 「무 채국」 전문
시 창작의 기본 바탕으로서 ‘기억의 힘’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사실 시는 체험 그 자체가 아니라 체험의 기억이다. 기억은 시간의 여과작용을 통하여 무질서한 체험들에 질서를 부여하고 통일시켜 체험을 하나의 뚜렷한 이미지로 재생시킨다.
강우식의 「무 채국」은 앞의 설명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동지섣달 긴긴밤에/무를 놋숟가락으로 갉아 먹으며/가슴 시원해 하던 할머니”는 이 시의 바탕인 기억이 시인의 구체적인 경험임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보통 시대의 질곡을 한 몸에 받은 존재로서 ‘할머니’가 등장했기에 뒤이어 “무 하나로/세상살이 쓰린 속 씻어내려고/찬 음식을 더욱 차게/살얼음이 지도록 얼려 먹었다”는 표현이 가능해진다. 바로 이 기억들은 현재의 체험과 정서에 끊임없이 상호 침투하면서 새롭게 의미화 된다. 이는 시인의 “엄동설한 찬 무 채국/시원하게 먹고서는/동장군도 벌벌 떨 사람이 되자.”는 각오로 표출된다. ‘무 채국’을 간절하게 다시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시인이 바로 “세상살이 파도를 넘”어 ‘바다’로 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아름드리 큰 소나무로 살아남은
옛 무덤의 흙더미를 밀어버릴 거다.
둥근 알 껍질도 예쁘지만
터져 부서져버린 알 껍질보다는
커다랗게 자라 하늘로 굽어 오른 소나무가 보기 좋으니,
살이 어떻고 뼈가 어떻고
사라진 흔적마저 사라지는 것이
차라리 소나무를 더욱 힘차게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물어볼 것이다.
너의 살은 무엇이며 너의 뼈는 무엇이냐고
물음이 다할 때까지 물어보아
물음의 흔적이 사라질 때까지.
아마도 찬란한 햇살에 솔잎들이
암기처럼 빛날 것이다.
-윤종대, 「굴착기」 전문
기억은 과거체험을 현재 속에서 새롭게 의미화하며 재창조함으로써 세계와의 합일성 또는 일체감을 꿈꾸는 시 정신을 일구어낸다. 하지만 ‘현대시’가 부정의 정신에 기초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마땅히 기억해야 할 것으로 남은 ‘과거’, 또는 당위의 세계는 시인들의 시 정신의 확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윤종대 시인은 “옛 무덤의 흙더미를 밀어버릴” 것이라고 호언한다. 그 이유는 무덤가에 ‘아름드리 큰 소나무’가 자라났기 때문이다. 또한 “커다랗게 자라 하늘로 굽어 오른 소나무가 보기 좋”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그의 현실 인식은 말 그대로 생생한 삶, “아마도 찬란한 햇살에 솔잎들이/암기처럼 빛”나는 오늘을 더 소중히 여긴다고 보인다.
2.
시적 현실의 근간에는 시적 주체와 대상의 관계 맺기가 있다. 그런데 이 대상은 대부분 ‘사물’이고, 사물은 어떤 본질보다는 ‘사실’이라는 즉 ‘사건’이라는 의미적 층위에서 오히려 결정된다. 다시 말해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 의해 그 의미가 결정되고 만다는 것이다.
심청이 삼킨 바다
피난민 삼킨 바다
흑청색黑淸色 무서운
심연인 줄로만 알았더니
남색藍色 바다
아리아리 스리스리
빛의 바다이네
난파한 어선이
어초魚樵가 되는 곳
바다-알 산실産室이다
고기들의 부화장이다
생미역 비린내
햇살에 묻어 오고
갈매기 소리
파도소리에 섞여
해풍 타고 날아온다
-김동호, 「남빛 바다」 전문
이 작품에서 시인은 “심청이 삼킨 바다/피난민 삼킨 바다”를 보고 있다. 전자는 이야기 속 ‘사실’이고 후자는 역사적 ‘사실’이다. 인당수가 정확하게 어디냐는 알 수 없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인당수를 놓고 경기도 옹진군과 충남 당진군이 서로 자기 지역이라고 다투고 있다고 한다. 후자는 ‘용당포(浦)’를 가리키는데, 이는 김종삼 시인의 시 「민간인」에 “1947년 봄/심야/황해도 해주의 바다/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라고 자세하게 나와 있다. 아마 김동호 시인은 연평도 어디쯤을 다녀오신 모양이다.
그러나 시인이 정작 강조하는 것은 이런 ‘사실’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이 바다를 ‘흑청색’으로 보라고 강요하고 있지만, 시인의 눈에는 그저 ‘남색’일 뿐이다. 또한 그곳은 자기희생이나 억울한 희생의 터가 아니라 오히려 “고기들의 부화장”이다. 이처럼 강요된 사실의 압력을 벗어나는 것 또한 시인의 시적 현실을 공고히 하는 한 방식이 된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즐거운 합창을 하고
소년은 그 노래의
가사를 알지 못하지
처음부터 지금까지
소년이었던 소년
피 묻은 옷을 벗고
맑은 물에 발을 씻고
무럭무럭 자라도
공장에는 갈 수 없다네
출발하는 지하철에 오르지 않고
아무도 없는 플랫폼에서
먼 곳만 바라보며
춤을 추는 소년
날 때부터 지금까지
소년이었던 소년은
변두리의 변두리
낡은 월세방에서
자라지 않는 소년인 채로
조금씩 늙어간다네
-오채운, 「소년이었던 소년」 전문
강한 개성으로 ‘사실’의 압력을 거부하고 개인의 의미 구조로서 시적 현실을 창조하는 시인이 있는 반면, 보다 ‘시대정신’에 충실하며 공동체적 감성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오채운 시인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즐거운 합창을 하고/소년은 그 노래의/가사를 알지 못하지”라는 부분에서 그저 ‘소년이었던 소년’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즐거운 합창’에 ‘가사’를 알지 못해 끼어들지 못한다는 것은 소년이 전혀 즐겁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소년이었던 소년’이란 제목이 암시하듯 육체적 성숙과는 상관없는 사회적, 경제적 미성숙을 중의적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소외된 계층, “변두리의 변두리/낡은 월세방에서/자라지 않는 소년인 채로/조금씩 늙어”가는 모든 이들이 또한 이 땅에 우리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는 존재임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쩌면 시적 현실이 개인적 선택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신화를 깨지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자세일지도 모른다.
그녀들은 크로아티아로 떠나고
나는 여기 남았다
그녀들이 두브로브니크 거리를 걸을 때 나는
사립학교 화장실에서 변기청소를 한다
그녀들이 붉은 기와지붕과 아드리아해를 내려다보며 파스타를
먹을 때
나는 화장실 뒤 비좁은 휴게실에서
붉은 라면을 먹는다
모래알 같은 하루다
-권순, 「두브로브니크의 밤」
권순 시인은 ‘그녀들/나’의 대비를 통해 엄연한 사실로서, 상황에 포위된 오늘의 현실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녀들이 두브로브니크 거리를 걸을 때 나는/사립학교 화장실에서 변기청소를 한다”는 구절은 이 땅의 빈부격차라는 엄연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 작품 전반에 걸친 이런 대비의 나열은 일견 ‘모순의 자각’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의미를 갖는다. 다만, 시적 화자의 시적 자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3.
끝으로 기억이나 사실 만큼 중요한 환경, 특히 지리적 배경이 시적 현실의 구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살펴본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거기 태어나 자랐고 살고 있을 뿐이라는 식의 사고는 다른 데는 몰라도 시 창작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성장의 배경으로서의 자연적 환경은 시어의 질감과 결을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다. 또한 이렇게 결정된 시어들이 결국 그의 작품 세계를 구성하게 된다.
객기를 부리는 취객처럼
거품을 물고 파도가 출렁이는 것을 보니
바다가 봄을 산란 중인가 보다
바닷가 집에 매화도 만개했고
텃밭을 일구는 노부부의 사랑도
봄볕처럼 주거니 받거니
발음이 자꾸 헛나간 노부부의 타박처럼
철새들 타박타박 티격태격 아웅다웅
고깃배 몇 척 지나가고
노을이 각혈하듯 쏟아내고 있는
건너 목포대교에도 네온이 휘황하다
압해대교도 휘황하다
몇 십 년을 살아온 섬
섬은 여전히 섬이다
꿈꾸는 섬이다
-박선우, 「압해대교」
이번에 접한 박선우 시인의 작품은 ‘압해도’의 풍경과 그에 대한 시인의 애틋한 소회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서둘러 ‘압해대교’를 검색하니, 목포와 신안군 압해도를 연결하는 연륙교라고 한다. 이제 다리로 연결되었지만, 시인은 “몇 십 년을 살아온 섬/섬은 여전히 섬이다”라고 주장한다. 아마도 시인은 비록 ‘꿈꾸는 섬’이라 했지만, 역으로 시인의 꿈이 다 담긴 곳이기 때문에, 혹은 ‘섬’으로 남겨두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목포 여객터미널에서 도초도를 거쳐
우이도 선착장에 도착하면 낙타등 같은
신안의 모래사막을 만나게 된다
낙타 무리가 세월을 건넜을 것 같은
오랜 시간의 알갱이 모래사막에 빠져
소의 풍경 소리만 듣고 살았을 것 같은
우이도 사람들의 우직한 심성을 엿보며
소의 귀를 닮은 섬의 비경을
아주 천천히 바라본다
-윤인자, 「스토리가 있는 섬 신안島-우이도」 부분
익히 알려진 바대로 윤인자 시인은 『스토리가 있는 섬 신안島』를 출간한 바 있다. 그 후속작업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소의 귀를 닮은 섬” ‘우이도’를 깔끔한 이미지로 소개하고 있다. 박선우, 윤인자 두 시인의 애향심은 또한 시인들의 시적 현실을 밝고 건강하게 형성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가 인간의 삶을 다룬다는 점, 인간이 처한 상황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궁극적으로 언어를 통해 이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는 현실과 실재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 ‘몸’ 없는 ‘정신’은 없다.
백인덕-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오래된 약』, 『단단함에 대하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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