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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고영섭/대면 對面, 미소 사리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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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섭
대면 對面, 미소 사리 외 1편
-경주 마하보디선원장 냐냐로까(慧照)*스님 입멸에 붙여
경주시 내남면 박달리에서
덮지 않은 관 속의 홍가사 속에
누워 있는 한 비구의 장엄한 입멸
우리는 보았네 최초의 주검
갑오년 새해의 첫 법회에서
절망과의 대면에서 앞으로 나갈
광명의 발견을 강조한 그는
죽음을 정면으로 대면하면서
저 극한의 고통을 벗어버리고
관 속에 남겨둔 육신 밖으로
은은히 밀어 올린 평온의 미소
자신과의 대면으로 피워낸 사리!
내 들숨의 일어남과 사라짐 사이
그 위에서 솟아났다 꺼졌다 하는
우리들의 슬픔 너머 기쁨과 경이
한겨울에 활짝 핀 동백 한 송이.
* 냐냐로까 (이호종, 慧照, 1949.5.10 ~ 2014.1.20). 스님은 고려대 재료공학과와 단국대 대학원 도예학과에서 재료와 도예를 만나 도예가로서 미의 본질을 추구하다가 예술의 허구성을 발견하고 불교를 만나 수행하였다. 이후 미얀마의 수도 양곤 외곽에 있는 빤디따라마센터의 우 판디따 사야도와 따따마란디센터의 우 쿤달라 사야도 문하에서 출가하여 정진한 뒤 경주시 내남면 박달 2리에 마하보디선원을 개원하고 (사)한국테라와다불교 교단의 정착에 정열을 바쳤다. 한국테라와다불교 교단의 운영위원장으로서 초기불교 수행의 대중화를 위해 담마스쿨을 개최하였고, 마하보디선원에서는 매월 정기법회와 초보수행 및 집중수행 프로그램과 청소년명상캠프 등을 운영하다가 2014년 1월 20일에 법랍 21세, 세수 66세로 입적하였다
단골
-뉴욕의 이스트할렘 모퉁이의 라오스 이탈리아 식당*에서
구두 뒤축이 한 쪽으로 닳아 쏠리듯
늘 월요일이면 찾아가는 그 집
기껏해야 좌석 마흔 개의 소박한 식당이지만
전 세계에서 최고로 인기가 있는 그곳은
특정한 날에 특정한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는 곳
단골 손님에게 우선권이 있어
예약전화를 걸면 이미 사십 오년 치의 예약이 꽉 찼다는
자동응답이 나오는 곳
아무리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을 찾아가야
단골 자격이 생기는 곳
라오스의 월요일 테이블에 앉아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아는 단골들이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끼는 밥 한 끼를 대접받는 곳!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은
라오스의 월요일 테이블에 앉아
내 시의 단골들을 만나는 일
내 시의 단골들의 마음을 사는 일.
*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기자였던 딕 샤프의 소개로 널리 알려진 식당.
고영섭- 1998년 ≪문학과 창작≫으로 등단. 시집 몸이라는 화두, 흐르는 물의 선정, 황금똥에 대한 삼매, 바람과 달빛 아래 흘러간 시. 평론집 한 젊은 문학자의 초상. 동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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