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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소설/김세인/없다 있으니까, 있다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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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3,399회 작성일 15-07-0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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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있으니까, 있다 없으니까

김세인

 

1.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무릎을 꾹꾹 눌러 보던 동례 씨는 재운 아기 포대기 덮어주듯, 걷어 올린 환의를 살며시 내린다. 무릎은 통증도 없고 보기에도 상태가 양호하지만 퇴원하라는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는 맘을 놓을 수가 없다. 며칠 전에도 옆 침상의 할머니가 퇴원한다며 보따릴 다 싸놓았다가 다시 푸는 경우를 봤다. 병원에서 그만 나가라고 하면 나가고, 더 있으라면 더 있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지, 무릎관절이 닳아 병원에 들어온 늙은이들이 무슨 힘이 있어야 말이지 하는 생각을 풀어내던 동례 씨, 깜짝 놀라 아! 하고 입을 벌린다. 베개를 만져본다. 없다, 통장이……! 베갯잇 사에 넣고 옷핀으로 찔러 간수해왔었는데 없다. 통장을 마지막으로 본 게 정확히 언제인지 그것이 기억나지도 않는다. 엑스레이 찍으러 갈 때 막내며느리한테 잠시 맡겼다가 받아서 다시 베갯잇 사이에 넣고 그리고, 그리고……그만이다. 기억, 그 경을 칠 녀석이 농간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병원에 처음 올 때처럼 무릎이 부어있어서 동례 씨는 기분이 언짢았다. 그런데다 그날따라 문병객이 유난히 많았고 손 전화도 덩달아 울어대는 통에 동례 씨는 심신이 매우 지친 상태로 물리 치료를 받았다. 치료가 끝나고 병실로 들어가 넉장거리로 누워 할랑할랑 숨을 고르고 있는데, 웬 남자가 다가와 능글맞게 실실 거리는 게 아닌가, 그것도 잠옷 바람으로 말이다. 동례 씨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는 표정을 온 얼굴에 담아 따져 물었다.

“시방 뭐하자는 수작 이쥬?”

“수작은, 할무니가 거는 거 같은 데유?”

병실에 웃음 폭탄이 뻐엉! 터졌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누굴 희롱 하고 자빠졌나, 이 인사가? 하고 째려보던 동례 씨는 아차 싶었다. 방금 그 남자의 옷이 잠옷이 아니고 자신과 같은 환자복이며 침상에 누워 있는 사람은 모두 남자 환자들뿐이었던 것이다. 삼층으로 가야할 걸 이층으로 가는 실수를 한데다가, 기억이 바람 난 서방처럼 들락날락하더니 이젠 ‘착시현상’이라는 새 각시까지 끼고 들어와 희롱하고 있으니 이를 장차 어찌해야 옳을지 동례 씨는 변변한 사과도 하지 못한 채 병실을 빠져나오기에 급급했다.

혹시 사물함에 넣어두었나 한번 찾아보고 싶은데, 그 앞엔 보호자용 침대가 있고 침대 위엔 큰딸, 종심이 자고 있다. 동례 씨는 벽 쪽으로 돌아누우며 콧방귀를 뀐다. 자식노릇 한답시고 내려와 쪽잠을 자고 있다마는, 이혼하고 혼자 사는 딸내미를 보고 있으면 한여름에도 발이 시린 게 부모 맘이란 걸 제깟 게 알기나 하냐? 작년에 무릎관절 수술을 하고 달포 간이나 입원해 있을 때도 막내 편에 위로금만 부치고는 내려와 보지 않더니 올핸 무슨 맘으로 내려 왔나 하던 동례 씨에게 삼년 전의 일이 복병처럼 와락 달려든다. 종심이 집을 계약했는데 잔금 치를 돈이 부족하다며 이천만원을 빌려달라고 내려왔다. 농사도 먹을 만큼 짓는데다가 동례 씨가 동네 골프장에 청소부로 다녔기 때문에 집에는 늘 모갯돈이 있었다. 종심이 돈을 빌리러 오면 남편은 군말 없이 돈을 마련해 주었다. 이자를 쳐서 기한 내에 갚긴 했지만 동례 씨는 그게 늘 못마땅했다. 기본적으로 자식하고 돈 거래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되고, 그렇다고 딸한테 돈을 몇 천만 원씩이나 그냥 준다는 건 더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싶은 거였다. 남편이 죽고 모든 경제권을 틀어쥔 동례 씨는 종심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자 종심은 막내가 근무하는 농협으로 찾아가 친정 땅을 담보로 하여 대출을 해달라고 했고 막내도 제 큰누나의 부탁을 외면했다. 종심은 그때, 아버지가 살아서 송장처럼 윗방에 누워만 계셨어도 집안 분위기가 이렇지는 않을 텐데, 참 막막하다고 울면서 돌아갔다. 동례 씨는 마음도 다잡을 겸 이튿날 농협에 가서 이천만 원을 따로 떼어 정기예금으로 묶어 두었다. 그 이천만 원짜리 정기예금 통장은 동례 씨가 입원하기 며칠 전에 검은 비닐봉지에 둘둘 말아 교자상 다리에 꽂아두었다. 지난 일을 되작거리던 동례 씨의 머릿속이 갑자기 급회전하고 있다. 종심은 필경 돈을 빌리러 왔을 것이다. 그러다 베갯머리에 있는 통장을 주웠을지도 모른다. 아니지, 주운 게 아니라 베개를 뒤져 통장을 꺼냈을 수도 있다, 동례 씨가 통장을 거기다 두는 걸 식구들은 다 아니까. 흥정을 하기 위해 일단 그걸 압수 했는지도? 그랬다면 필시 도장을 찾으러 집에 들를 텐데, 도장을 찾는 답시고 뒤지다가, 뒤지다가 교자상 밑에 이천만원 정기예금 통장마저 발견하는 날엔? 당시 여윳돈 이천만 원이 있었으면서도 박절하게 거절했다는 걸 아는 날엔? 원망을 넘어 앙심을 품으며 노루 뼈 우리듯 재탕 삼탕 우려먹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기에다가, 보통 예금 통장에도 적잖은 돈이 입금되어 있는 걸 알게 되는 날엔……. 가만, 그 돈을 모으는데 제까짓 게 한 게 뭐가 있다고 열을 받아 받길, 출가외인 주제에. 동례 씨는 부아가 치민다. 누운 상태 그대로 빈 페트병을 집어서 팔을 침대 아래로 뻗어 탁, 친다.

“얘?”

어깨쯤이려니 했는데 정통으로 머릴 맞은 것 같다. 종심이 맞은 쪽 머리를 문지르면서 부스스 일어난다. 동례 씨의 휴대폰을 건네주면서, 막내며느리한테 몇 시에 올 건지 전화 해보란다. 바로 그 심부름을 시키려고 종심을 깨운 것인데 그만 선수를 빼앗겨버린 동례 씨는 휴대폰을 뺏듯이 낚아채며 이른다.

“가서 닝게루 빼 달라 그래구 와.”

“엄마가 해. 혼자 밥 해 드시려면 다리 힘을 길러야 하잖아.”

종심이 휠체어에 걸린 쇳대에다 링거 튜브를 걸어놓는 걸보며 동례 씨는 콜 벨을 길게 누른다. 호출 받은 간호사가 들어와 링거를 빼준다. 복도에 배식 리어카가 들어온다. 종심이 식사를 가지러 간 사이, 동례 씨는 재빨리 사물함을 뒤져보지만 통장은 없다. 그렇다면 정말로 종심의 손으로 넘어갔다고 볼 수밖엔 없다. 종심은 태연하게 침대 발치에 접혀있는 식판을 펴놓는다. 동례 씨가 식판 앞에 앉자 종심이 수저를 쥐어 주고 자신은 젓가락을 집어 든다.

“난 바로 올라갈 거야.”

‘누가 붙잡냐? ……아니지, 통장은 내놓고 가야지 이것아.’

“정신 똑바로 챙겨. 앉았다 일어설 때, 계단 오를 때, 특히 화장실에 들고 날 때 제발 조심 좀 하라구요. 또 넘어져서 병원에 오지 말고.”

“쳇, 내 걱정 말고 너나 잘하세요.”

동례 씨는 별명이 코미디언이다. 유행어도 동네서 제일 먼저 따라하는 것으로 호가 나있고 역대 대통령의 말버릇이나 특유의 제스처를 흉내 내어 <찾아다니는 내 고향 소식> 프로에도 나온 적 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젠 옛말이 되었다. 기억이 바람난 서방 꼴인 데다가 몸이 점점 굼떠서 등신이 되어가고 있다. 방금도 농담에 집중하느라 어묵볶음을 떨어뜨렸다. 종심이 그걸 집어서 수저에 올려주며 잔소리 한마디 더 얹는다.

“이렇게 흘리지 좀 말라고요.”

동례 씨는 갑자기 종심의 말이 노여워져서 수저를 놔버린다. 종심은 개의치 않고 김에 밥을 싸서 동례 씨 손에 들려주고는 물을 대령하고 있다. 권에 못 이겨 먹다보니 동례 씨 혼자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종심은 냉장고에서 굳은 식빵을 꺼내어 떼어 먹는다. 목이 메는지 주먹으로 가슴을 친다. 문밖에 나서면 먹을 만한 해장국밥집이 있으니 가서 한 그릇 먹고 오라고 하고 싶은데, 동례 씨는 지금 수중에 가진 돈이 없다. 입원할 때 가져온 돈은 물론이고 문병객들이 주고 간 돈까지 몽땅 막내며느리한테 맡겼다. 자식도 음식처럼 궁합이 맞는 애가 따로 있는 모양인지, 오남매를 품에 품어 기를 적부터 유독 막내한테 끌렸다. 운이 좋게도 막내는 읍내 농협에 다니고 있어서 동례 씨는 모든 걸 그 애한테 의존하며 산다. 큰아들은 든든한 정기예금이고 막내아들은 보통예금 통장이나 진배없다. 맏이인 종심이 힘이 되던 시절도 있긴 했지만 그건 애들이 어릴 적 이야기이고 이젠 딸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손자도 유독 막내 손자가 애틋하다. 그저 막내에 식구와 잘 지내고 싶어서 동례 씨는 재촉 전화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로 한다.

수간호사가 들어와 퇴원하라는 통보를 전해준다. 동례 씨는 출옥허가를 받은 기분이다. 막내며느리가 어서 와야 퇴원을 할 텐데, 그 애는 잘 나가다가도 수틀리면 제 멋대로 행동하는 통에, 동례 씨는 가끔 이렇게 황소 뒷발에 채이듯 허걱 하고 나가 떨어져 은결이 들 때가 있다. 퇴원침상을 치우라는 연락을 받은 모양인지, 청소 아줌마가 명패를 확인하며 얼쩡거리고 있는데도 종심은 아까부터 노트에 뭔가를 끼적거리고 있는 중이다. 책도 한권 못낸 주제에 작가랍시고 적기는 만날 뭘 저렇게 적어 쌌는지, 상황파악 좀 하라는 말이 목구멍을 치받고 올라오는 걸 애써 누르며 동례 씨는 떠본다.

“너, 돈 읎자?”

종심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신주단지 위하듯 하는 노트북 가방을 메고 일어서더니 발을 굴러 바지 주름을 펴고는 밖으로 나간다. 동례 씨는 화장실 가는 척 일어서서 종심의 뒤를 좇는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일층에 내린다. 종심이 번호표를 뽑아 들고 대기 의자에 앉는다. 동례 씨는 황새 모가지처럼 목을 늘여 뺀 채 병원 현관문을 내다보지만 막내며느리는 아직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다. 종심이 번호표를 쥐고 창구 쪽으로 간다. 동례씨도 옆에 따라 붙는다. 병원비는 칠십 만원이 나왔다. 종심은 가뿐하게 해결하고 영수증을 받아 챙긴다. 화투짝만한 카드 한 장으로 깔끔하게 처리 하는 게 동례 씨는 신기하다. 신기한 노릇은 또 있다. 그간 물리치료실을 고자 처갓집 드나들 듯 무시로 드나들면서 안면을 텄지만 원무과 직원이 저렇게 엉덩이까지 들고 납죽 인사하는 건 처음 본다. 사이다 병 밑바닥 같이 두꺼운 안경을 쓴데다, 서울서 한 사십년 살아서 서울 말씨를 쓰는 딸내미가 겉바람에 좀 있어 보여서 그런가보다.

짐을 가지러 병실에 올라가보니 간병인이 와 있다. 동례 씨는 입원하여 처음 열흘간은 간병인이 상주해있는 6인 병실에 있었다. 하루에 이만 원씩 열흘이면 이십만 원이며 간병비는 병원 측하고는 상관없으므로 현찰로 내란다. 동례 씨는 여기서 또 발목을 잡히나보다 하고 있는데, 종심이 지갑을 열더니 오만 원 권으로 가뿐하게 해결한다. 병실 사람들은 멋도 모르면서, 큰따님이 아주 점잖고 효성스럽다고 칭송이지만 동례 씨는 아무래도 종심이 통장을 주운 게 아니라 훔쳤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종심은 짐을 모두 동례 씨가 탔던 빈 휠체어에 싣는다. 모녀는 로비로 내려간다. 의자에 짐을 부려놓은 종심은 자판기 율무차를 한잔 빼서 동례 씨에게 들려주고는 빈 휠체어를 자져다 두러 병실로 올라간다. 동례 씨는 짐을 지키고 앉아 율무차를 마신다. 왜 집에 안 가냐고 묻는 사람에, 입원 하러 왔냐고 뒷북치는 사람에, 예수 믿어야 구원 받는다며 교회 나오라고 주보를 주는 사람에 왜 그렇게 남의 일에 간섭들을 하는지, 동례 씨는 부아가 끓어 넘친다. 체면이고 뭐고 그냥 택시 타고 갈 생각으로 화장실엘 들렸다 나오는데 종심이 내려오고 막내며느리도 온다.

“많이 기다리셨에요?”

딸이었다면 냅다 등짝부터 한 대 갈겨 주었을 테지만 동례 씨는 쩝, 입맛 한번 다시는 걸로 퉁 치고는 일어선다. 수술한 다리가 시큰거리고 이번에 말썽을 일으킨 다리도 후덜덜 떨린다. 이 몸으로 어떻게 장을 봐다 조석끼니를 끓여먹을지 동례 씨는 가슴이 답답해진다. 종심은 마뜩찮은 표정만 짓고 있고, 며느리가 다가와 동례 씨를 부축하면서 불친절한 목소리로 지껄인다.

“그러게 병원에 더 계시라니깐.”

오냐, 니가 빨리 안 온 게 그 뜻이었구나, 동례 씨는 감 잡는다. 급하게 오줌이 마렵다. 정신이 무언가로부터 압박을 받으면 두부자루에서 순물 흘러나오듯 오줌소태가 나는 이 증상은 아무래도 고질병으로 굳은 모양이다. 작년에 무릎 수술을 하고 퇴원하면서 동례 씨는 막내네로 갔었다. 날마다 새로운 반찬이 상에 오르긴 하는데 동례 씨는 도통 입맛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막내가 속초까지 가서 대게를 사왔다. 물 좋을 때 쪄 먹는다며 밤중에 삶았다. 모처럼 만에 구미가 당긴 동례 씨는 어서 부르기만을 학수고대하며 문밖 상황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들, 손자, 며느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 먹자!”

“할머니도 드려야지.”

“할머닌 원래 야식 안 드시잖아.”

병원생활로 근기가 다 빠져버린 데다가 막내 네서도 변변한 식사를 하지 못한 동례 씨의 몸은 게 냄새에 회가 동할 듯 심한 식욕을 보였다. 염치 불구하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막내네 가족의 대화가 동례 씨의 발목을 잡아 눌렀다.

“더 먹어도 돼, 아빠?”

“그만 먹어, 남은 건 할머니 거잖아.”

“입맛당길 때 많이 먹어, 그래야 키가 크지. 할머닌 낼, 냉동실에 있는 거 쪄 드릴 거야.” 그때 너무나도 급한 요의를 느꼈다. 식은땀이 나도록 괄약근을 조이며 동례 씨는 별렀다. 날이 새면 당장 내 집으로 가련다. 잠을 설쳐서 그런가,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다리가 심하게 아팠다. 살림은커녕 화장실 출입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동례 씨는 한 며칠 더 머물러야지 하고 마음을 돌렸다. 그런데 아침상을 받고 보니 대개는 국물도 없고 젓가락 갈 만한 반찬도 없어서 입매시늉만 하고는 숟갈을 놓으며 동례 씨는 집으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식구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며느리 차를 타고 고개를 넘어오는데 불현 듯 옛 생각이 떠올랐다. 그 고개는 장에 갔다 늦으면 엄마 보고 싶다고 마중을 나오던 어린 시절의 막내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냉동실에 넣어 뒀다는 대게를 챙겨 주지 않은 것이 새삼 서운해지면서 서러움이 복받쳤고 참을 수 없을 만큼 오줌이 마려웠다. 동례 씨는 차를 세우게 했다. 풀숲에 가서 오줌을 누는데 머릿속으로 드는 생각이 있었다. 너무 서럽거나 노여우면 울어야 하는데 그걸 참으니까 오줌이 되는 구나.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눈물보다 오줌이 더 많아지는 이치가 이런 거였구나. 그나마 오줌을 속 시원히 눌 수가 있어서 다행이구나.

두부자루에서 순물 흘러나오듯 오줌이 마려워서 동례 씨는 다시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변기에 앉은 김에 동례 씨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본다. 큰 아들이 평소엔 제 집에 와 있으라고는 하지만 그건 말뿐이다. 막상 자리보존 하고 여러 날 앓아눕거나 병원에 입원하면 잘 와보지도 않고, 오더라도 침대 끝에 잠깐 엉덩이만 붙였다가는 이내 가버린다. 큰며느리도 그 나물에 그 밥으로 아들보다 날 것도 없지만 그나마도 뒤늦게 공부한다고 제 친정 식구들이 있는 캐나다에 가서는 여권 문제로 가끔씩 들어왔다 갈 뿐 시댁 일에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 지 여러 해 됐다. 그러니 이번에도 좋으나 싫으나 막내네로 가야 할 것 같은데 동례 씨는 아직 아무런 언질도 받은 바 없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두고 볼 수밖에 없다.

병원문밖에 나서자마자 계단이다.

‘아, 태초에 누가 이 웬수같은 계단을 만들었단 말이냐!’

동례 씨는 장난감 빼앗긴 어린애처럼 두 다릴 뻗고 앉아 오줌을 설설 싸면서 떼쓰고 싶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막내며느리가 도로 병원에 입원시킬지도 모른다. 지팡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종심이 지팡이를 사다줄까, 물었을 때 병신취급 받는 것 같아서 대꾸도 하지 않은 게 몹시 후회된다. 이를 갈듯이 힘을 주며 계단을 디딘다. 한쪽 다리를 내려놓고 난 다음 나머지 한쪽 다리를 마저 끌어다 옮겨 놓는 식으로 층계 세 칸을 내려서는 걸 종심이 지켜보다가 제 가슴을 친다. 고개를 제처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토해내고는 입을 벌리고 있다. 마치 하늘에서 답이 뚝 떨어지면 그걸 받아먹으려는 듯이. 며느리가 다가와 동례 씨를 차 뒤 칸에 밀어 넣고는 호칭 생략한 채 종심 쪽으로 눈길을 주며 “점심 드시고 가세요” 라고 말한다. 종심은 가방끈만 한번 추스르다 놓곤 그만이다.

“형님 묵밥 좋아하시잖아요. 병원비도 계산해 드려야 하고.”

종심이 무표정한 얼굴로 조수석에 올라탄다.

“가차운 데루 가서 아무거나 한 끼 때워. 얘 차부까지 태워다 줘야 잖어 또.”

며느리는 대꾸가 없고 무안해진 동례 씨는 애무한 딸을 갈군다.

“넌, 혼자 몸띵이에 뭐 하느라구 그 흔한 차두 한대 못 끌구 댕긴다니.”

“형님, 면허증은 있으시잖요.”

“음.”

“쳇, 셤 봐서 하는 거라문 넌 경운기두 끌구 트랙터두 끌 것이다, 젠장. ……구슬이 스말이문 뭐해여, 꿰야 목걸이를 하던 허리빠를 하던 할 수가 있지.”

평일 오후라서 도로 사정은 나쁘지 않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저 요즘 넘 바빠요. 당분간은 어머니 댁에 못 들른 다구요.”

‘이것이 나를 아예 제 집에는 데리고 가지도 않을 모양이구먼? 동례 씨는 몹시 서운하다. 급하게 오줌이 마려워서 괄약근을 조이며 따진다.

“장은 봐다 줘야잖겠니,……물리 치료 받으러 갈 때두 태워줘야 하구.”

며느리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며 종심을 쳐다본다. 봤죠? 당신 어머니가 이렇다니까요, 하고. 종심이 창밖으로 고갤 돌리며 입을 뗀다.

“우리 집으로 갑시다.”

“무어?”

동례 씨의 반박에, 차 속도가 갑자기 줄어든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것이……그러게 맏이가 돼 갖구 으쩌자구 이혼을 하구 지랄여, 동생덜이 그 뻔 보문 우티갤라구.”

“왜 묵은 빚을 들먹여요?”

“운제 빚을 갚긴 했냐!”

동례 씨는 말을 뱉고 보니 불현듯 통장 생각이 떠오른다.

“엄마 그 성질은 늙지두 않우, 어떻게. ……사람이 나일 먹으면 숨이 좀 죽는 맛이 있어야지.”

“사둔 남 말하구 자뻐졌네, 옘별. ……건너다보니 절터지, 거길 내가 왜가. 차라리 감옥엘 가문 갔지, 느 집인 안 간다.”

“알았으니 그만 합시다.”

차 안엔 정적만이 흐르고 있다.

묵밥 집에 도착하여 시동을 끄자마자 며느리가 동례 씨의 손가방을 건네준다. 얼른 열어보니 있다, 통장이! 동례 씨는 쇼핑백을 끌어안으며 토해낸다.

“간셈보살!”

 

 

2.

종심은 밑반찬이나 좀 마련해드리고 가려고 마트에 들러서 장을 좀 봐가지고 왔다. 바깥마당에 짐을 부려놓고는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 버리는 막내며느리 차를,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바라보던 동례 씨는 고개를 외로 꼰 채 대문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현관을 오르는 다섯 개의 돌층계를 쳐다보며 푸념을 한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집을 계단도 웂이 땅 바닥에 딱 붙여서 방 한 칸만 들이는 건데 그랬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난 동례 씨가 엎드려서 엉금엉금 기다시피 층계를 오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종심도 수심에 잠긴다. 직립보행을 할 수 있을 때까지만 인간에게 자존감이 허락되는 거구나, 육체가 망가지면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집안에 들어와 보니 온통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다. 올케가 집안 청소를 해 놓았으려니, 했던 종심은 맥이 탁 풀린다. 언짢은 기분도 가라앉힐 겸 종심은 커피를 끓여서 내온다. 동례 씨는 사약을 마시듯이 오만 인상을 찌푸리며 커피 잔을 들어다 입매 시늉만 하고는 소파로 올라가 벌러덩 드러눕는다. 오늘 안으로 올라가려면 우선 열무부터 절여 놓아야 할 것 같아서 커피를 마시며 열무 단을 풀어 헤친다. 생각이 저도 정리해 달라고 달라 붙는 통에 종심은 일이 손에서 겉돈다. 거동이 불편해 화장실 출입도 자유롭지 못한 모친을 팽개쳐두고 가자니 도리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딸 알기를 거지 발 씻게 쯤으로만 여기는 저 칡뿌리처럼 질긴 할망구랑 한집에서 동거를 하자니 그건 더 아닌 것 같다. 김치만 담가주고 내빼기로 하자는 쪽으로 마음의 아퀴를 지어 놓으며 일손을 다잡는다. 살 땐 몰랐는데 열무뿌리는 젓가락처럼 가느다랗고 부추는 묶은 부분이 짓물러서 군 손이 많이 간다. 게다가 꽈리고추 조림용으로 사온 멸치는 너무 굵어서 대가리도 떼어내고 뼈도 발라내야 하게 생겼다.

“동방삭이 숨 넘어 가겠네, 젠장 할.”

느닷없는 공격에 종심은 멍해진다.

“저 먼지 안 보여? 동네 사람덜이 오문 자식덜이 들여다 보지두 않는다구 숭보지 않겠느냐고, 이 미련아!”

아니나 다를까, 문병객이 들이 닥친다. 이분들은 마을의 오래된 느티나무나 바위처럼 종심이 태어나면서부터 보아온 분들이다. 동례 씨는 동무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고 종심은 일손을 멈추고 일어나 병원에서 가져온 음료에다 과일을 깎아 들여간다.

“살림은 으떡허구 이렇게 와 있어. 신랑 밥 안 해줘?”

이 양반은 동례 씨와 젊어서부터 너나들이로 지내며 골프장도 함께 다닌 사이이다. 육남매나 두었지만 자식들 졸업할 때 쓰는, 요즘 개나 소나 다 써보는 그 학사모를 한 번도 써보지 못한데 대한 여한이 있다. 자신을 걸고넘어지는 것도 거기에 대한 시샘이란 걸 종심도 알고 있긴 하지만 기분 나쁘다. 그러나 종심이 받아칠 겨를도 없이 또 한패의 문병객들이 들이닥친다. 본디, 어울려 수다 떨기 좋아하는 동례 씨는 입원하게 된 동기와 병원에서의 치료과정을 재생 반복하여 풀어놓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먼저 온 사람들도 가지 않고 지정거리다가 눌러 앉아 아예 자릴 펴고 ‘만단보기’ 화투판을 벌이는 통에 종심은 열무 다듬던 일을 중동무이 한 채 마실꾼 수발드는 일에 전념해야 할 듯하다. 화투판은 두 판으로 늘어나고 짧은 봄 해는 벌써 져서 저녁때가 되어 가지만 갈 생각들을 하지 않는다. 종심은 멸치 장국 끓여 저녁곁두리를 대접해드렸다. 올 때는 따로 오더니 갈 때는 모두 한꺼번에 일어난다.

“이 집 큰따님이 공부만 잘 하는 줄 알았더니 음식 솜씨가 일품이구먼. 부잣집이 와서 재밌게 놀구설라무네 사발농사꺼정 잘 짓고 갑니다.”

“그러게 말여. 모처럼만에 국수다운 국수 한 번 먹어봤다. 종심이, 너 참 애쓴다. 맏이 노릇을 제대로 하는 구나. 고맙다.”

등을 두드려 주는 이 어른은 친구의 모친이시다. 어려서부터 종심을 당신 딸처럼 귀애해 주며, 잘한 일은 소문을 내주고 실수한 일은 덮어 주던 분이다. 종심은 콧날이 시큰해진다. 그리고 부끄럽다, 결혼생활을 순탄하게 이끌지 못해서.

밤이 되자 동생들이며 친척들이 계속 전화를 해대는 통에 종심은 휴대폰을 죽여 놓고 이부자리를 들고 아버지가 쓰던 윗방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방문 뒤쪽 구석에 웬 엄나무다발이 드라이플라워처럼 파르스름한 빛으로 말라있다. 퇴마용인가본데, 현관문도 아니고 왜 하필 아버지 방일까? 잠결에 쓰러트리기라도 하면 성가실 것 같아서 이부자리를 위쪽으로 편다.

한밤중에, 멱을 틀어 잡힌 듯 한 외마디 비명과 함께 메다 꽂히는 둔중한 소리가 나서 종심은 잠이 깼다. 급히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 불을 켜고 보니 모친이 침대 머리맡(안방에는 침대 헤드가 벽 쪽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에 곤두박질 쳐있다. 모친을 일으켜 앉혀놓고 냉수부터 떠다 드린다.

“변소 갈라구 일어나다가 구석으루다 꼬나백혔어. 이상 조화 속이여. 내 몸이 내 말을 안 들어먹어.”

소금 먹은 소처럼 물을 들이켜고 난 동례 씨는 변명삼아 한마디 하고는 고갤 숙인 채 허리춤을 붙잡고 화장실로 간다. 또 비명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모친은 화장실 턱에 미끄러져 있다. 일으켜 앉혀놓고 살펴보니 이마가 풀빵만 하게 부풀어 있다. 종심은 부아가 나서 윗방으로 올라가 엄나무다발을 들고 나온다.

“이딴 거에 의지할 생각 말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요, 제발.”

“그 방에서 아부지가 나오는 거 같어. 자꾸 가위가 눌려.”

“아버지가 엄마한테 해코지 할까, 설마. 조심하라고 선몽을 하면 했지.”

종심은 엄나무 단을 들어다 뒤꼍에 던져 버린다.

그 분경을 치르다 보니 벌써 날이 훤하게 밝았다. 냉장고를 뒤져 조기를 굽고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서 간밤에 담은 열무김치를 상에 올렸지만 모친은 것입맛만 하고는 자리에 도로 눕는다. 물리 치료도 받을 겸 다니던 병원엘 가야할 것 같은데, 하필 토요일이다. 어쩔 수 없이 면소재지에 있는 작은 의원엘 가기로 모녀는 합의를 본다. 동례 씨는 두 사람 왕복 버스비로, 천 원짜리에 동전을 싸서 네 뭉치를 만들어 손가방에 간수하고 앞장선다. 동구 밖 버스 정류장에 다다른 동례 씨가 종심에게 이른다.

“넌 비석 뒤에 가서 있다가 버스 오문 텨 와.”

……?”

“이혼해서 빈털뱅이 된 딸하구, 퇴원한 지 하루 만에 이마에 보리개떡을 해 붙인 늙은이하구 추레하게 서 있는 꼴 남 보이구 싶잖아서 그래여.”

“창피하면 내 뒤에 숨어, 난 괜찮으니까.”

종심은 온몸에 어깃장을 내비치며 버스 정류장에 이정표처럼 서 있는다.

버스가 오고 동례 씨가 먼저 올라탄다. 준비해둔 돈 두 뭉치를 버스비 통에 담고는 숨듯이 안으로 들어가는데, 옆에서 누가 팔을 잡아끈다.

“아이구, 문기 엄니, 퇴원하셨나부네? 근데, 이마는 왜 또 갈어부쳤어유 그래, 약주두 안 하시는 양반이. 하여간에 이리 앉으셔유, 이리.”

“고마워유. 얘, 인사 드려라, 문기 친구 아부지시다. 얘는 문기 큰누이에유.”

“아, 이분이 그 공부 많이 했대는, 소설가 양반이시구만.”

종심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총소리 들은 꿩처럼 사람들 속으로 숨어든다. 문예지를 통해 등단만 했다 뿐, 창작집 한 권 내지 못한 채, 대학에 시간강의를 나가며 출판사에서 일감을 따다가 생계를 꾸리는 형편이므로 소설이야기가 더 발전되는 게 불편하다. 그러나 버스 안의 사람들은 금세 자기들끼리 내생기느라 종심은 안중에도 없다.

 

평소 동례 씨가 단골로 다닌 의원에 휴진 종이가 붙어 있어서 다른 의원으로 왔다. 의원에는 사람들이 많아 창구도 북적댄다. 호명을 받고 동례 씨가 앞으로 나가자 살구 빛 가운을 입은 애송이가 손을 컴퓨터 자판 위에 올려놓은 채 주민번호를 대라고 한다.

“몰르는데…….”

“주민번호 대시라니깐요?”

동례 씨의 답변을 듣고도 간호사는 재차 채근을 한다. 동례 씨 뒤에 서 있는 사람도 무언의 압박을 가해오고 있는데 동례 씨는 다. 이 상황이 불편해진 종심은 주변사람에게 사과하는 뜻으로 동례 씨를 책망한다.

“주민등록증은 왜 안 갖고 왔어요, 병원에 오면서.” “그런걸 뭐해러 갖구 댕겨, 귀찮게시리. 병원이구 은행이구 내 얼굴만 보구두 비밀번호두 안 묻구 알어서 다 해주는데.”

“단축번호 없이도 오남매 휴대폰 번호를 죄다 외우시는 양반이 본인 주민번호를 못 욀 리가 있어요? 맘 가라앉히고 차분히 기억해 봐요, 어머니.”

“귓구녁에 말뚝 박었어? 못 외운다니까 왜 자꾸 성화여!”

동례 씨는 그예 밖으로 나간다. 뒤좇아 가면서 종심이 퍼부어댄다.

“어떻게 본인 주민번호를 못 외울 수가 있어. 똑똑한 체는 독판 하……”

짐자전거와 부딪혀서 동례 씨가 넘어졌다. 자전거 주인 인상이 너무 험악하게 생겨서 종심은 덜컥 겁을 먹고는 얼결에 사과부터 하는데 자전거는 그대로 내달아 버린다. 동례 씨는 손바닥이 까이고 새끼손가락은 접질려서 푸르뎅뎅하다. 동례 씨가 마구 내셍긴다.

“지 에미가 씨러졌는데두 교양만 떨구 자빠졌네. 그따우루다 행동 할래문 석사학윈가 뭔가 하는 그 종이때기 갖다 내버려, 밑닦개루두 못 쓸 누무 거.”

아픈 손바닥을 들여다 보다 말고 동례 씨가 또다시 내셍긴다.

“그래구두 입에 풀칠하는 게 용해여. 저 눔이 날 넹겨트렸는데 왜 니가 고갤 숙이냐구, 이 등신아!”

 

집에 들어서니 둘째와 셋째가 거실에 앉아 만두를 빚고 있다. 한바탕 청소를 했는지 집 안 밖이 반질반질 윤이 난다. 둘째는 웃는 것으로 인사를 퉁치고 셋째는 여전히 만두피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이죽거린다.

“이마에 훈장 달고 어디 갔다 오시나, 우리 모친은?”

“말버르장머리 하구는. …… 느덜만 왔니?”

“막내는 안 오고 달갑지 않은 딸년들만 와서 기분 나쁘다, 이거지? ……모친! 이리 좀 앉어 봐봐.”

“이것들이 아부지 읎다구 인젠 지 에밀 아주 깔어뭉개러 드네. 그래, 앉었다, 우쩔래?”

“우리 딸 셋 엄마가 낳은 거 맞어? 아닌 거 같어, 어째. 나도 자식 키워보지만 둘 다 사랑스럽던데, 손가락 두 개 깨물어 보니까 두 군데서 다 피나고 아프던데, 엄마 우리 친엄마 맞냐고요!”

셋째가 무릎 밑에서 통장을 꺼내어 방바닥에 턱하니 내놓는다. 동례 씨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통장을 뻔히 쳐다보고만 있는다.

“이천만원 삼년 만기 정기예금. ……날짜를 보니까 우리 한참 쪼들려서 허덕허덕 대던 무렵이던데. 가만, 큰언니가 집 사고 잔금 없어 쩔쩔매던 딱 그 시점이네. 맞지?”

셋째가 종심을 보고 물었다. 종심은 모친에게 그만한 돈이 있을 거라는 걸 그 당시에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으므로 통장에 대해서는 그다지 놀랍지 않다. 그렇지만 삼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그 때 받았던 아픔만은 오롯이 되살아나서 저절로 어금니가 깨물어진다.

“왜 남에 살림은 뒤지구 지랄덜여.”

“만두 할려고 교자상을 펴니까 상다리에서 통장이 툭 떨어지던데?”

둘째의 말이다.

“뒤지면 좀 우떠여, 우리 집인데. 태어나보니까 여긴 우리 집이던데.”

셋째는 한 손에 만두피를 든 채 작정하고 퍼부어 댄다.

“이혼하면 딸도 아냐? 동네 창피하다고 친정에 오지 말라고 해서 큰언닌 명절에도 혼자 지내게 하고, 난 동생인데도 맘이 쓰이던데. 동기간의 띠앗이라곤 약에 쓸래도 없는 놈들을 엄만 그래도 두 아들만 끼고 송편 먹고 떡국 먹으니까 오지고 행복한가부지? 어쩌나? 문기네 캐나다로 이민 간다는데, 그래서 맏며느리 짐 떠안게 될까봐 막내 올케가 지레 겁나서 요새 엄마한테 거리 두는 건……아야!”

“이 기집애가 뚫어진 주둥이루다 지껄이문 다 말인줄 아는 가부네.”

동례 씨가 셋째 뒤통수를 갈겼다. 셋째는 발딱 일어나더니 밀가루 묻은 손을 씻지도 않은 채 주섬주섬 짐을 챙겨든다. 방향이 같고 차가 없는 둘째도 데림추처럼 따라 나선다. 썰렁한 거실엔 교자상으로 한 가득 만두가 차지하고 있다.

동례 씨는 다시 입원을 고려할 정도로 앓아누웠다. 예기치 못하게 발목이 잡혀 버린 종심은 심한 갈등을 겪었다. 그냥 입원 시켜 버리고 서울로 올라갈까, 아니면 좀 더 간호를 해드릴까, 하다가, 종심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나도 부모를 차별하고 있었구나, 만일 아버지가 혼자 누워 계셨다면 나는 열일 제쳐놓고 아버지를 모실 생각을 했을 텐데 하고. 종심은 이것저것 다 미뤄두고 당분간 모친의 간병을 하기로 했다. 우선, 출강하던 대학에 한 학기 쉬겠다고 연락을 취해놓고 장기간 집을 비울 준비를 하기 위해 일단 서울행 버스에 몸을 올렸다. 이러다가 강사 자리마저 빼앗기고 출판사 일감도 놓치는 건 아닌가, 불안에 떨다가 좋은 묘안을 생각해 냈다. 그동안 쓴 원고 중에 최종심에서 낙방한, 칠백 매짜리 청소년 소설 한편과 장편소설이 있는데 이 작품을 제대로 손볼 계획을 잡은 것이다. 이 원고를 제본해서 다시 시골 행 버스를 타자, 종심은 마치 집필실에라도 가는 듯 새로운 각오와 희망이 생겼다.

모친을 모시고 병원에 다니는 길에 장을 봐오고, 삼시 세 끼니 뚝배기 밥을 지어드리고 한 방을 쓰면서 시간 맞춰 약을 챙겨드리고 몸종처럼 시중을 들고 있다. 그렇지만 동례 씨는 그다지 탐탁하게 생각지 않고 은근히 막내 네가 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 였다. 손자가 올 때마다 용돈을 쥐어줘도 잘 안 온다고 푸념을 했다.

“걱정 마요, 일주일에 두 번씩 보게 해줄 테니.” 종심의 말을 들은 동례 씨는 콧방귀를 날리며, 돈으로도 못하는 일을 네까짓 게 무슨 재주로 손자를 오게 하느냐고 퉁바리를 주었다. 종심이 국어와 논술을 지도해 주겠다고 제안하자 막내올케는 얼씨구나 좋다 하고 조카를 데리고 왔다. 오매불망 기다리건 손자가 일주일에 두 번 씩 공부하러 오자 동례 씨는 눈에 띄게 원기를 회복해 갔다. 가르치고 있는 딸을 봐도, 배우고 있는 손자를 봐도 대견하다고, 요즘은 사람 사는 집 같다고 사방팔방에다 대고 전화를 했고 티브이 소리도 크게 켜놓아 공부하는데 지장을 초래했다. 집안 분위기를 바꿀 필요를 느낀 종심은 올케와 작당을 하여 윗방을 공부방으로 꾸미기로 했다. 묵은 살림을 추려 광으로 옮기고 허섭스레기는 내다 버리고 도배를 새로 한 다음 광에 있던 오래된 나무 책상을 들어다 놓았다. 헌 한복치마를 마름질하여 책상보를 만들어다 깔아 놓았고 윗방 문에는 ‘쉿, 공부중이니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쓰인 패찰도 걸었다. 네 식구가 함께 박수를 치면서 ‘공부방 개업식’도 했다. 그러고 난 다음 종심은 동례 씨에게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했다.

“핵교라고는 문전에두 못 가본데다 호미자루나 청소 마대자루만 잡아온 손이, 연필이 가당키나 하냐?”

“사람은 환경에 따라 용도변경해가며 몸을 써 먹어야 해. 무릎이 고장 나서 금생에는 농사짓기 틀렸으니까 호미자루 내던지고 볼펜을 잡아 보자구요.”

책상에 앉은 첫날 동례 씨는 한 시간도 못 채운 채 공부방을 빠져나갔다. 그 다음 시간에도 딸년을 잘못 두어 고생을 사서 하게 생겼다고 투정을 부리더니 동례 씨는 점차 배우는 사람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주민등록 번호를 외웠고, 한문으로 본인의 이름 석 자인 오얏 이, 강 이름 동, 예도 례(李潼禮)도 쓸 줄 알게 되었고, 지인들의 전화번호부도 동례 씨가 직접 큼지막하게 새로 적어 정리했고, 신용카드 사용법도 익혀 버스 탈 때 동전을 준비하는 수고를 덜 수가 있게 되었다. 또한 종심은 집안을 건사하는 일에도 신경을 썼다. 의자를 놓고 올라가서 해야 하는 집안의 모든 일은, 고장 난 벽시계처럼 동례 씨의 무릎수술 한 그 시점에 멈춰져 있었다. 빈 방에 벽시계가 멎어 있어서 고장 난 줄 알았는데 건전지를 갈지 못한 거였고, 두꺼운 겨울 커튼을 두고도 여름 커튼을 치고 있었다. 그런 것들을 손보거나 에이에스를 받았다.

종심의 글 작업은 서울에서 보다도 많은 진척이 있었다. 제본해온 작품 중에, 장편을 꺼내어 다시 읽어보니 과거 부분은 무리가 없는데, 현재부분의 고향 마을에서 벌어지는 삶의 행태에서는 정확한 자료조사 없이 추측만으로 이뤄졌다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녹음기를 들고 경로당엘 찾아가서 그분들이 쓰고 있는 속담이나 토속어를 채집하여 적용했더니 소설 속의 인물이 펄펄 살아 움직였고 전체적인 짜임새도 훨씬 탄탄해졌다. 이만하면 출판해도 되겠다 싶어서 일단 공모전에 응모하기로 했다. 두 번씩이나 최종심에 오르고 낙방 하니까 주변 문우들이, 이름이 최종심이어서 징크스가 있는 모양이니 가명으로 투고 하라고 우스갯소릴 한 적이 있다. 이글이 태어난 자리가 바로 이곳 고향마을이고 등장인물 또한 마을 사람들이므로 투고자 이번엔 이름을 이동례로 하고 주소도 친정집으로 해서 발송했다. 또 다시 최종심에만 오른다면 이번엔 이동례가 지면을 탈 테고 본심에 오른다면 ‘최종심’이 제대로 세상 빛을 보게 될 것이다.

모처럼만에 일감에서 놓여난 종심은 모친을 모시고 동구 밖으로 나섰다.

산야는 만화방창으로 꽃 대궐이다. 옛날에 소를 뜯기며 놀던 벌판에, 소와 동무 들은 간데없고 조팝나무가 군락을 이뤘다. 바람이 불자 하얀 조팝나무가 꾸불텅꾸불텅 흰둥이 꼬리처럼 탄력 있게 흔들린다. 종심의 입에서 아! 하고 탄식이 절로 나온다. 좋은 계절에 모친과 함께 꽃구경을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이다지도 지극한 즐거움일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수십 마리의 흰둥이가 물구나무를 서는 것 같다’라고 휴대폰에 적어둔 뒤 종심은 조팝나무 한 가지를 꺾어 모친에게 바치며 농담을 얹는다.

“이동례 학생, 그동안 공부 하느라 욕봤소.”

꽃을 받아든 동례 씨는 흠흠 냄새를 맡더니 노랠 부른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종심도 신명이 집혀 어깨춤으로 슬쩍슬쩍 춤사위를 벌이며 화답한다. “얼쑤~” 소리 나는 쪽을 보니, 동네 선배가 비닐하우스 창고에서 나오며 손을 흔든다. 선배는 하우스 특수작물로 가지 농사를 짓고 있다. 작업 창고에는 출하작업을 마친 가지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선배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소위, ‘마른 기스’ 난 가지를 한 봉지 담아준다. 집에 들어와 보니, 아직도 온기를 간직한 부침개가 거실 탁자 위에 놓여있다. 종심은 갑자기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라고 하던 시구가 생각난다. 결혼 생활은 판이 깨졌지만 내 삶의 판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고 용기를 내본다.

바쁘게 생활하는 가운데에서도 거의 날마다 동네를 한 바퀴씩 돈 덕분에 동례 씨의 다리 근력은 병원에 입원하기 전보다 더 좋아졌다. 종심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게 되었다.

 

 

3.

종심이 떠난 후 동례 씨는 윗방에 올라가본다. 너무 휑해서 가슴으로 찬바람이 쑤욱 밀려드는 기분이다. 화장실엘 들어가 본다. 종심의 칫솔이 눈에 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동례 씨는 칫솔을 두고 갔으니 차를 돌리라고 막내한테 말하고 싶어진다.

“없다 없으니까, 있다 없으니까……”

휴대전화 벨 소리다. 행여 끊길세라 얼른 받아든다.

“큰언니 갔지? 엄마 괜찮어?”

셋째다. 만두를 빚어 놓고 간 뒤로 처음 통화다.

“허전해여, 으 흑……읎다 있으니까 아니, 있다 웂쓰니까…….”

 

 

김세인- 1956년 경기 여주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1997년 <21세기문학> 신인상 당선. 저서: <무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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