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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소설/조영아/집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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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2,980회 작성일 15-07-0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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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아

집의 기억

 

 

나무는 보기보다 쉽게 넘어갔다. 인부가 전기톱을 갖다 대자 허연 속피를 드러내며 우지끈 꺾였다. 잘려진 나무를 다른 두 명의 인부가 달려들어 잔가지를 쳤다. 바닥 한가득 두 팔을 벌리고 누워 있던 나무는 금세 토막으로 변해 한쪽 귀퉁이에 차곡차곡 쌓였다. 일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창에 몸을 바싹 붙이고 밖을 내다보던 나는 식탁으로 돌아와 앉았다. 창밖이 훤하다 못해 허전했다. 방금 전까지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엷은 무늬를 만들어주던 창가가 말끔히 면도를 하고 난 남자의 턱처럼 맨둥맨둥해졌다. 손을 뻗어 그 어색함을 덜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스레인지에 물주전자를 올리고 불을 켰다. 그리곤 다시 창가로 다가갔다. 잘게 잘려진 가지들이 가지런히 묶여 트럭에 실리고 있었다. 잘린 밑동이 기중기에 의해 흙 밖으로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실한 뿌리에 붉은 흙이 묻었다. 죽은 나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뿌리는 옹골차고 우람했다. 속에서 괜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냥 둘 걸 괜히 쑤셔 벌집을 만들었나. 처음 민원을 넣은 지 일곱 달 만이었다.

“늦겠어.”

언제 일어났는지 세수를 마친 남편이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시계를 올려다봤다. 느긋하게 커피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었다. 주전자의 끓는 물을 보온병에 담고 커피믹스를 가방에 찔러 넣었다. 이미 준비를 마친 남편이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지켜봤다. 행여 뭐라도 싸들고 가나 감시하는 눈치였다.

“걱정 마. 달랑 이것뿐이니까!”

가방에 찔러 넣었던 커피믹스를 다시 꺼내 남편 앞에 대고 흔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죽겠는데 남편까지 좁쌀 맞게 구는 거 같아 짜증이 났다. 남편은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말고 조용히 몸만 갔다 오자고 했다. 지난 날 좋지 않은 기억 때문이었다. 작년 일주기 때 해수가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들을 골고루 준비해서 싸가지고 갔다가 제대로 펼쳐놓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들고 돌아와 버렸다. 기름 냄새를 풍기며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만 해도 그랬다. 남편은 평소에 안 보던 코미디프로까지 돌려가며 하루 종일 텔레비전 소리를 키웠다. 명절이나 잔칫날 같았으면 주방을 드나들며 갓 익혀낸 전이나 잡채 따위를 소리 내 집어 먹거나 소매를 걷어붙이고 녹두전을 뒤집어주었을 텐데, 남편은 죽은 사람처럼 잠잠했다. 방안에 어둠이 다 내려앉을 때까지 이부자리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텔레비전 소리만 왕왕 온 집안을 울렸다. 남편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 챈 후로 명절에도 일절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다. 섭섭하기야했지만 살아 있는 사람 애간장 녹이는 것보다야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그렇다고 빈손으로 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남편이 신발을 신는 틈을 타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 가방에 쑤셔 넣었다. 집을 막 나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공인중개사였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도로 사정이 좋았다. 약속시간보다 십오 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주차를 마친 남편이 어디론가 걸어갔다. 가슴이 박하사탕을 쏟아 부은 듯 싸하니 아려왔다. 보온병이 든 가방을 바싹 끌어안았다. 나쁜 년. 나쁜 년. 고작 그걸 살고 가라고 이십구 년을 애지중지 키웠니. 나쁜 년.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쉬었다. 울지 않으려고 입을 앙다물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눈물이 미어져 나왔다. 불쌍한 우리 딸, 어떡해. 이내 울음이 터져 나왔다.

“뭐 해. 내리지 않고. 이 서방 기다리겠어.”

담배를 피우고 온 남편이 차문을 두드렸다. 티슈로 코를 한 번 팽 푼 다음 눈가를 꾹꾹 눌렀다. 사위는 우리보다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

종우가 쪼르륵 달려와 매달렸다. 가방을 내려놓고 종우를 품에 안았다. 종우는 지난 한식 때보다 훌쩍 컸다. 다섯 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이였다.

“이리 와. 할머니 힘들어.”

분위기를 눈치 챈 사위가 종우를 끌어당겼다. 그럴수록 종우는 내 품을 더 파고들었다. 사위도 모르는 척 말을 아꼈다. 해수의 유골함은 소위 말하는 로얄층에 있었다. 아파트처럼 이곳에도 로얄층과 그렇지 않은 층이 존재했다. 서서 분양하기에 가장 편안한 눈높이로 정중앙에 위치한 납골묘가 로얄층에 해당됐다. 로얄층에 해당되는 자리는 몇 개 없었다. 그렇지 않은 층과의 가격 차이도 만만치 않았다. 사위는 가장 좋은 자리에 해수의 집을 마련했다. 죽은 사람이 뭘 알겠는가. 순전히 산 자들을 위한 처사였다.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내 커피를 탔다.

“네가 좋아하는 커피다.”

유골함 옆 해수 사진 앞에 커피 잔을 드밀고 사과도 깎아 놓았다.

“엄마가 저걸 먹어?”

다들 눈을 감고 있는데, 종우가 물었다.

“아빠, 엄마가 저거 먹냐구?”

종우가 사위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흔들었다.

“으응, 먹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왜?”

“그래야 마음이 덜 아프거든.”

사위가 종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남편이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그날은 새벽같이 눈이 떠졌다. 당뇨가 있는 남편을 위해 아침마다 콩을 갈았다. 전날 미리 불려 삶아둔 콩과 인삼 조각을 믹서에 넣고 막 동작 버튼을 누르려던 참이었다.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 잘못 걸려온 전화이겠거니 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집, 집사람이 이상해요.”

좀처럼 허둥대는 법이 없는 사위가 말을 더듬었다. 순간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불린 콩을 믹서에 넣어둔 채 택시를 잡아타고 달려갔다. 해수의 몸은 이미 하얀 시트로 덮여 있었다. 사인은 약물과다복용으로 인한 쇼크사였다. 우울증이라니. 울부짖는 사위 옷자락을 움켜쥐고 흔들었다. 해수는 가끔 아이 유치원 행사에 참여하거나 일주일에 한 번 요리교실에 가는 거를 제외하곤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집안은 언제나 정갈했고 식탁 위 음식은 늘 풍성하고 푸짐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살림꾼이었다. 그런 딸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어디서부터였을까. 어느 시점에서부터 우울해졌는지. 해수를 우울하게 만든 근원이 무엇인지 최소한 그거라도 알면 속이 좀 덜 아플 거 같았다. 사위도, 아이도, 결혼생활도, 경제적 이유도 모두 아니었다. 해수가 남기고 간 일기장 어느 구석에서도 그 꼬투리가 될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무엇이 해수를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살을 맞대고 사는 사위조차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수의 죽음을 방관한 우리 모두가 죄인이었지만 힘들다고 내색 한번 하지 않은 해수가 더 원망스러웠다. 정말 그랬을까. 힘들다고, 힘들어서 미치겠다고, 누구든 내 손 좀 잡아달라고 소리 없이 절규했는데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 손톱 밑에 보이지 않는 가시가 박힌 듯, 불온한 내 일상을 시도 때도 없이 쿡쿡 쑤셔대는 기억이 있었다.

지난 내 생일 때였다. 번잡스러운 게 싫어서 식구들끼리 저녁이나 먹을 요량으로 고기 집을 찾았다. 다들 부지런히 갈비를 먹고 있는데 해수만 젓가락질이 더뎠다.

“왜 먹지 않고?”

“글쎄. 별로 생각이 없네.”

“어디 아프니?”

“아니. 엄마 많이 드시라고.”

“에고 효녀 났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먹어둬.”

내 성화에 해수는 마지못해 고기 몇 점을 우물거렸다.

“사람들이 일 년 동안 먹을 햄버거를 만들기 위해 소가 몇 마리 희생되는 줄 알아?”

해수가 갈비를 뜯고 있는 사위 팔을 툭툭 쳤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와 무슨 상관이야. 고기만 맛있으면 그만이지. 안 그렇습니까. 장모님.”

“너 채식주인지 뭔지 그런 거 하냐?”

사위 말에 눈으로 동의를 구하고 딸을 채근했다.

“아니.”

“그런데 왜 고기를 안 먹어?”

“갑자기 내가 너무 미개인처럼 느껴져서.”

“아니, 소갈비 뜯는다고 미개인이면 보신탕 먹는 사람들은 뭐야? 이 세상에 미개인 아닌 사람이 없겠네. 배부르면 배부르다고 해.”

사위가 콧방귀를 끼며 빈정댔다.

“왜 사람 말을 다 들어보지도 않고 열을 올려? 누가 그런 뜻이래?”

해수는 물 한 컵을 다 들이키더니 티슈로 입을 닦고 일어나 휙 나가 버렸다. 다들 젓가락을 내려놓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해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당황한 사위가 얼른 뒤따라 나갔다. 한참 후에 사위가 해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눈자위가 뻘겠다.

“이 사람이 요즘 예민해져서요. 장인어른, 장모님이 너그러이 이해하십시오. 어이쿠, 고기 다 타네! 종우야, 어서 먹어.”

사위는 우리 내외 눈치를 보느라고 쩔쩔맸다. 그런 사위 때문에 등에서 진땀이 더 났다. 다행히 큰 다툼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해수가 보여준 유아적인 행동을 센티멘털의 극치쯤으로 생각했다. 워낙 감수성이 남다른 애니까. 부모니까 이쯤에서 용서가 되지 남이었으면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게다 이년아. 나는 엉망이 된 기분을 애써 감추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랬는지 한 번쯤은 물어볼 수도 있었는데. 무지막지하게 소비되는 햄버거의 역겨운 기름 냄새 때문인지, 그를 위해 더 무지막지하게 죽어나가는 소떼 때문인지 한번쯤은 슬쩍 물어볼 수도 있었는데.

다 식은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고 사과는 한 조각씩 집어 들었다. 남편은 제몫까지 종우에게 주었다. 종우를 앞세우고 별 생각 없이 사위 차에 올라탔다. 우리 집으로 가자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창밖으로 시선을 둔 남편도 말이 없었다. 종우는 내 품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어디로 가나?”

사위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장모님, 시장하지 않으세요? 두부집인데 어떤지 모르겠네요.”

차는 벌써 식당 주차장을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남편이 밭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장모님이라는 호칭이 낯설게 들렸다. 그제야 차 안에 맴돌던 어색한 기운의 전모가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냥 집에 가서 눕고 싶었다. 자다 깨 밥도 먹지 않고 칭얼대는 종우를 달래느라고 다들 식사다운 식사도 하지 못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편한 자리는 아니었으리라. 사위가 집까지 바래다준다는 걸 애써 만류하고 지하철을 탔다. 속에서 신물이 자꾸 넘어왔다. 급하게 먹은 점심이 얹힌 모양이었다.

“다음부터는 괜히 바쁜 사람 불러내지 마.”

오는 내내 말이 없던 남편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퉁명스레 내뱉었다.

“불러내긴 누가 불러냈다고 그래. 지 마누라 기일에 서방이 안 가고 그럼 누가 가?”

“이런, 말길을 못 알아듣긴.”

남편이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여자는 현관에 들어설 때부터 탐탐치 않아하는 표정이 역력하더니 수박껍질 핥듯 휙 훑고 급하게 신발을 꿰찼다. 다들 취향이 달라 그럴 수 있다지만 내 새끼 못났다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파트를 팔고 작은 마당이라도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한 것은 남편이었다. 그럴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체면이라도 걸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켜켜이 쌓인 그리움이 나를, 우리를 이곳에서 은밀히 밀어내고 있었다.

해수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 지금 집으로 이사를 왔다. 먼저 살던 곳이 개발되면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밀리듯 쫓겨나왔다. 그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 작정이었다. 산자락에 위치해 공기 좋고 조용한 동네였다. 집집마다 꽃나무와 유실수가 아름다웠고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당을 덮은 감나무와 대추나무는 사계절 색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여름이면 담장위에 능소화가 크고 탐스런 오렌지색 꽃송이를 연신 피어댔다. 작은 텃밭에 푸성귀를 가꾸고 저녁이면 실한 잎들을 따 쌈을 싸먹었다. 낙엽이 지고 겨울이 와도 황량하지 않았다. 눈 덮인 소나무에 돌을 던지며 해수는 까르륵 숨이 넘어갔다. 해수는 그 집에서 나고 자랐다. 그리고 그 집과 함께 성숙했다. 어려서부터 마당에서 흙장난을 하고 지렁이를 보고 자란 해수는 또래들보다 감성이 풍부하고 표현력이 남달랐다. 반면에 쉽게 상처받고 아파했다. 해수는 또래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몇몇 단짝인 친구를 제외하고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자기 방에 틀어박혀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고 팝콘을 먹었다. 한마디로 혼자서도 잘 노는 얘였다.

우리 집 방 세 개 중 해수 방은 서쪽에 있었다. 정남향으로 난 안방은 아침이면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해수 방은 그 반대였다. 아침은 물론 늦은 오후까지도 햇빛이 들지 않았다. 저녁 무렵이나 돼야 창가에 지는 햇살이 어른거렸다. 어린애 여린 숨결처럼 자박자박 밀려왔다가는 어느새 붉게 물들었다. 골목에서는 아이들 소리가 시끄러웠다. 해수는 창가에 붙어 서서 지는 노을을 오래 바라봤다. 그런 해수의 뒷모습은 쓸쓸하고 불안해보였다.

“뭘 그렇게 열심히 봐?”

“저기.”

온통 붉게 물든 하늘을 가리켰다. 그 붉은 빛이 섬뜩할 지경이었다. 해수의 표정이 하도 진지해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왜 그때 생각이 자꾸 나는 걸까. 그때 어떻게 해서든 밖에 나가 뛰놀게 했어야 했는데. 왜 그런 후회가 자꾸 드는 걸까. 노을이 아이를 우울하게 만든 건 아닌지. 서쪽으로 난 방 때문에 아이가 쓸쓸해진 것 같아서 콩나물을 무치다가도 우두커니 서 있곤 했다.

우리가 분양받은 아파트는 뉴타운 개발로는 첫 시범이 되는 곳이었다. 근처에는 떴다방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투기꾼들이 몰려왔다. 아파트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억지로 쫓겨나온 걸 그나마 위안 삼았다. 그런데 우리는 이층을 배정받았다.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했는데 하필 층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로얄층과 우리 집과는 분양가자체에서 차이가 벌어졌다. 남편은 엘리베이터 안타고 다녀서 좋지 않느냐며 나를 위로했다.

아파트로 이사를 오고 나서 다행히 해수 방은 이른 아침부터 햇빛이 들었다. 햇빛이 들어서 참 좋네. 나는 종종 해수 방을 찾았다.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햇빛을 쏘였다. 해수는 그런 나를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방을 나갔다. 방을 나간 해수는 주방 식탁에 턱을 괴고 앉았다. 주방에는 식탁 바로 옆에 커다란 창문이 나 있었다. 창문으로 맞은편 동이 그대로 들어왔지만, 그래서 가끔 베란다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 낯선 남자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지만 커튼으로 창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 나무 때문이었다. 창 한가득 보기 좋게 나무가 들어 앉아 있었다. 어쩌다가 벌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이웃집 남자와 눈이 마주쳐도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보다 나무가 주는 여운이 훨씬 컸다. 먼저 집에서는 문만 열면 사방에 나무와 꽃 천지여서 몰랐는데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부터는 나무 한 그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절실히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그걸 해수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 집 중에 여기가 제일 좋아.”

“왜?”

“그냥 여기가 편해.”

해수는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았다. 설마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낯선 남자 때문은 아닐 테고. 나무 때문에? 하고 물어보려다가 그만 두었다. 햇빛이 찬란한 제 방을 놔두고 썰렁한 주방 한 구석을 마음에 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건 제 방이 마음에 안 든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걸 굳이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이라서 그러겠거니. 아직 정이 안 들어서 그렇겠지. 집이란 그런 게 아닌가. 마음에 안 들어도 살다보면 정이 붙고 편해지는 곳, 그게 집의 속성이기 마련이었다. 드러내놓고 물어보지는 않았어도 아마도 나무 때문이 아닐까, 나도 모르게 심중을 굳혔다. 그래서인지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사랑스럽고 각별한 감정이 생겼다. 다른 곳에 있었으면 인식하지도 못했을 텐데 해수가 좋아하는 자리에 알맞게 위치한 때문인지 나는 아침저녁으로 나무에게 인사를 하고 말을 걸었다. 그래도 네가 거기 있어줘서 고맙구나.

해수가 아니더라도 그 나무 덕을 본 건 사실이었다. 새장 같은 아파트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 한 그루의 가치는 컸다. 어쩌다 집에 놀러오는 지인들도 다들 감탄을 했다. 저 나무 때문에 집이 산다고. 주방 창문에 우아하게 들어앉은 나무 한 그루가 집의 가치를 높이는데 일조를 한 것 같아 나무를 볼 때마다 뿌듯했다. 나중에 팔 때 조금이라도 높은 가격을 받으려면 뭐라도 하나 좋은 여건이 아쉬웠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부터 주변 아파트 시세며 땅값 따위에 관심이 쏠렸다. 아까운 동네를 억지로 두고 나온 것에 대한 보상심리도 작용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참에 돈 좀 벌어볼까 하는 기대심리도 한몫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작 나는 별 관심도 없는데 자고 나면 주변에서 아파트 값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아파트를 통째로 들었다놨다했다. 어차피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 생각도 없었다. 적당한 가격이 형성되면 되팔고 다시 개인 주택으로 갈 요량이었다. 그러니 창밖의 나무 한 그루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 게 당연했다. 남편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아파트로 이사를 오고 나서 사람이 달라졌다며 혀를 찼다.

내게 백만 불 같은 나무가 이상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여름 끝자락이었다. 우기가 끝나고 수은주가 삼십 도를 웃돌 때였다. 물을 흠뻑 머금은 나무들은 그 푸른빛이 날로 더해져 갔다. 자고 나면 반지르르 윤이 흐르는 이파리들이 훌쩍 커 있었다. 찻잔을 모아 쥐고 식탁 앞에 앉아서 그 경이로움에 취해 있는데 순간적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어제와 같은 나무, 같은 이파리인데 어딘가 모르게 다르게 느껴졌다.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나 창문 곁으로 다가갔다. 창문을 열고 목을 한껏 빼 나무를 살폈다. 한참 나무를 살피던 내 입에서 아, 하는 작은 신음이 새나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파리 끝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냥 대충 봐서는 티도 안 나 어느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현상이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번 죽기 시작한 나무는 좀처럼 되돌릴 수 없었다. 아주 미세한 증상이지만 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상한 뿌리를 도려내기 전에는 방법이 없었다. 물을 주고 영양분을 공급해줘도 상한 뿌리를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여러 가지 중 가장자리에 있는 몇몇 가지에서만 그런 증상이 발견되었다. 조금 더 두고 보기로 하고 식탁 앞에 와 앉았다.

아침이면 제일 먼저 창가로 가 나무를 살폈다. 처음 며칠은 별 진전이 없어 보였다. 다행이었다. 저러다가 나아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희망도 가졌다. 그런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다른 나무들은 아직 푸른빛이 생생한데 병들기 시작한 나무는 낙엽이 지기 시작했다. 이웃한 나무들이 울긋불긋 고운 자태를 뽐낼 때 병든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그 광경을 매일 매일 지켜보는 내 마음도 앙상하게 말라갔다. 죽은 나무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오히려 흉물스러웠다. 창가에 들어앉은 죽은 나무를 가리기 위해 새로 커튼을 해 달았다.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았다. 괜히 우리 집만 손해를 본 느낌이었다. 관리실에 고사목을 교체해달라는 민원을 넣었다. 관리실에서는 알았노라고 하고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해수가 떠오른 건 두 번째 민원을 넣고 나서였다. 해수가 그렇게 좋아하던 자리인데. 행여 나무 때문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저 죽은 나무 때문에 그곳에 정을 주었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해서든지 내 집 값만 더 챙기려든 어미의 경박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무 한 그루 때문에 집값이 좌지우지 될 리 없었지만 나의 촌스런 속내는 그런 미미한 것에 애간장을 끓이고 있었다. 해수가 마음을 두었던 나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자 자꾸 더 죽은 나무에 눈길이 갔다. 내가 나무를 죽인 것 같아 해수에게 미안함 마저 들었다. 초조해진 나는 관리실이 아닌, 아파트 시공사 홈페이지에 직접 고사목을 교체해달라는 민원을 올렸다. 그리고 한 달여 만인 어제 드디어 나무가 베어졌다.

커튼을 젖히자 나무 베어진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움푹 팬 웅덩이는 주변에 어지럽게 흩어진 나뭇가지들 때문에 폭격을 맞은 듯 황폐하고 을씨년스러뤘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나무 하나를 드러냈을 뿐인데 그 빈자리는 생각보다 크고 음울했다. 잡동사니를 넣어둔 해수 방문을 열어본 것처럼 코끝에 눅눅한 냉기가 훅 끼치는 듯했다.

해수가 결혼을 한 후 해수 방은 내 작은 쉼터가 되었다. 처음 한동안은 그냥 하릴없이 그 방을 서성였다. 비어 있는 옷장도 한번 열어보고 섬유유연제 냄새가 남아 있는 침대 시트를 괜히 이리저리 잡아당겨 보다가 슬그머니 등을 대고 누워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기도 했다. 친정에 다니러 온 해수는 제 방에서 길게 낮잠을 잤다. 그러던 방에 잡동사니가 채워지기 시작한 것은 해수가 죽고 나서였다. 사십구재를 지내고 온 날 초죽음이 되어 곯아떨어졌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 눈을 떴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켜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해수 방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방문을 빠끔히 열고 얼굴을 디밀었다. 해수야. 초로의 둔탁한 목소리가 어둑한 빈방에 울려 퍼졌다. 해수야. 또 한 번 짙게 깔린 어둠을 향해 목소리를 풀어 놓았다. 빈 방을 휘휘 저어 되돌아 나온 것은 쓸쓸한 내 목소리도, 농밀한 한기도 아니었다. 비어 있는데 비어 있지 않은, 꽉 차 있는데 꽉 차 있지 않은, 잊혔는데 잊혀 지지 않은, 쓸쓸함도 그리움도 아닌 아련함. 한참 동안 멍하니 서서 어둠 속을 응시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의식의 촉수를 뻗어 켜켜이 들어앉은 어둠을 헤집기 시작했다. 유치원 시절 흰 드레스를 입고 바이올린을 켜던 어린 해수와 종우에게 젖을 물리던 해수가 동시에 떠올랐다. 두 명의 해수를 놓고 누구를 불러야 할 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어둠은 빠르게 두 사람을 삼켜버렸다.

“거기서 뭐 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편이 등 뒤에 서 있었다. 남편의 부축을 받아 더듬더듬 방을 나왔다. 날이 밝자 남편은 나 모르게 해수 방을 조용히 드나들었다. 나더러 뭐라더니 저 양반도 별수 없군. 나는 모른 척 남편의 슬픔을 외면했다. 그 후 해수 방에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안방에서 굴러다니던 낡은 방석 두 개가 해수 침대 위에 자리했다. 처음에는 무심코 넘겼다. 남편이 들고 왔다가 깜박 잊고 놓고 갔겠거니 했다. 그러나 여러 날이 지나도 방석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는 사이 창가에 선인장 화분이 놓였다. 해수가 태어나던 해 남편이 시장골목에서 사들고 온 것으로 역시 오래되어 가시가 여물대로 여문 놈이었다. 발육 상태가 너무 좋아 약간의 휴지기가 필요한 애였다. 그런 용도라면 온도가 높은 거실보다는 적당히 서늘한 해수 방이 안성맞춤이었다. 얘도 잠시 쉬러 왔겠지. 터질듯이 여문 가시에 가만히 손을 갖다 댔다. 탱탱한 가시는 생각보다 무디었다. 나는 아침이면 여전히 차 한 잔을 들고 해수 방을 찾았고 별 생각 없이 낡은 방석과 오래된 선인장을 스쳐지나갔다. 남편은 부지런히 해수 방을 채워갔다. 이 모든 일은 나 몰래 혹은 내 앞에서 버젓이 행해졌다.

“그걸 왜 거기다가 둬?”

“여기가 비어 있잖아. 저긴 너무 비좁아.”

남편 말대로 해수 방을 제외하면 집 어디를 봐도 여유 있는 공간이 없었다. 오래되고 쓸모없는 물건들이 집 안 곳곳에 쌓여 있었다. 그렇다고 속 시원히 버리지도 못하는 위인들이었으니 남편의 행동에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해수 방은 점점 채워졌고 나는 더 이상 여유 있게 차 한 잔을 마실 수도, 섬유유연제 냄새가 남아 있는 침대에 누울 수도 없게 되었다. 침대 위에는 내가 들여 놓은 옷상자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느새 나도 오래되거나 안 쓰는(그러나 버리지 못하는)물건들을 해수 방으로 하나 둘 옮겨 놓고 있었다. 안 쓰는 운동기구와 금 간 항아리 사이에서 간신히 차 한 잔을 홀짝이다가 으스스한 한기에 눌려 금세 방을 나와 버리기 일쑤였다. 전처럼 한밤중에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방문을 열어 보거나 하지 않았다. 그건 내 의지와 무관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가끔 열어본 해수 방에서는 눅눅하고 텁텁한 냄새가 났다. 오래된 것들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나무를 드러낸 자리에서도 그 냄새가 날 법 싶었다. 당장 창문을 열고 고개를 밖으로 빼 코를 벌름거리면 해수 방에서 나던 눅눅하고 텁텁한 냄새가 훅 끼쳐올 것만 같았다. 괜히 민원을 넣어 애꿎은 나무만 베게 한 건 아닌지 후회가 되었다. 그냥 저냥 죽은 대로 둘 것을. 시뻘건 흙을 드러낸 채로 음울하게 패어 있는 웅덩이를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 비어 있는 것보다는 죽은 나무라도 채워져 있는 게 보기에 나을 듯싶었다. 사실 스산한 웅덩이를 보면서 마음이 짠한 건 새 때문이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새. 몇 번 보지 않았지만 이미 내 속에는 깊은 상흔이 남았다.

죽은 나무에 새가 날아들기 시작한 것은 낙엽처럼 누렇게 마른 이파리들이 거의 다 떨어졌을 무렵이었다. 우기가 끝났지만 날씨는 사흘째 굵은 빗줄기를 퍼붓고 있었다. 심란한 마음으로 집 안을 서성이던 나는 가만히 커튼을 들추었다. 나무가 죽고 나서 새로 해 단 커튼은 좀처럼 젖혀지지 않았다. 온전히 죽은 나무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오랜만에 커튼을 들춘 것도 실은 나무가 궁금해서라기보다는 비오는 바깥을 보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나무와 눈이 마주쳤다. 누렇게 마른 이파리가 이따금 파르르 떨었다. 주변의 다른 나무와 비교하지 않는다면 겉으로 보기에 나무는 나름 꽤 멀쩡해보였다. 워낙 풍채가 남다른 탓이기도 했다. 아까운 마음에 절로 한숨이 새나왔다. 커튼을 내리고 돌아서려다 말고 다시 커튼을 획 젖혔다. 비쩍 마른 가지에 남자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새 한 마리가 부동자세로 비를 함빡 맞고 앉아 있었다. 노란 부리와 흑갈색 꼬리에서 빗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새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러고 앉아 있는 듯했다. 마치 나무에 얹어 놓은 조형물 같았다. 시간이 한참 흐르도록 새는 요지부동이었다. 창문을 열고 날려 보내고 싶을 지경이었다. 결국 내가 먼저 커튼을 닫았고 새는 그 후로도 얼마를 더 앉아 있다가 언제 날아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비는 여전히 퍼부었다. 다음 날 아침 커튼을 살짝 들추고 밖을 살폈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나무에 내려앉았다. 간밤에 이파리를 다 떨어뜨린 나무는 앙상한 몸으로 햇살을 받았다. 새는 보이지 않았다. 새를 다시 본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쌀을 씻다가 문득 밖이 궁금해서 커튼을 열었더니 거짓말처럼 그때 그 새가 죽은 나무에 앉아 있었다. 새는 매일 석양이 아름다울 때 왔다. 그리곤 가만히, 나무를 뉘엿뉘엿 스쳐가는 석양빛처럼, 죽은 듯이 앉아 있다가 내가 모르는 새 어디론가 날아갔다. 초록이 무성한, 성한 나무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오로지 죽은 나무에만 날아왔다. 그래서 애틋했다. 죽은 해수가 살아온 듯 반갑고 아련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새가 날아오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아파트 시공사에 민원을 넣은 지 한참 지난 후였다. 관리실과 달리 시공사에서는 민원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했고 급기야 나무는 베어졌다. 새는 어디로 갔을까.

 

해수가 왜 우울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내가 추측하는 바는 해수의 죽음이 그 애가 몸담았던 집과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사위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해수를 위해 창문이 많고 밝은 집을 장만했다. 아니 해수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요즘 새로 지어지지는 아파트들은 벽 전체가 창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창문 일색이었다. 쏟아지는 햇빛을 주체할 수 없었던 해수는 돌아가며 하얀색 블라인드를 달았다. 사방에 블라인드를 친 집은 병실 같았다. 해수는 어려서부터 숨는 걸 좋아했다. 집에 누가 와도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집구석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손님이 돌아가고 나면 멋쩍은 표정으로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꾸지람을 맞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좋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천성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런 행동을 해야만 했던 것인지 어느 한쪽으로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아무튼 빛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좋아하지도 않았다.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빛의 속성 때문이었을까. 그 반대로 어둠 또한 똑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해수는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을 깨달았다면 그런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내 기억 속의 집은 늘 그랬다.

내가 나고 자란 집은 항상 어둡고 컴컴했다. 햇빛이 들지 않는 반 지하방이거나 해를 완전히 등지고 앉은 북향집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왜 엄마가 이런 어두컴컴한 집들만 골라 가는지를 이해했다. 그래야 모두가 모여살 수 있었다. 너무 일찍이 철이 든 나는 집이 죽도록 싫었다. 병든 아버지가 쿨럭이는 집은 열일곱 내 청춘을 꽃피우기에 너무 칙칙하고 습했다. 모여살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왜 이렇게 칙칙하고 습하게 모여 살아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언제고 떠나는 것을 꿈꿨다. 그리고 마침내 그 꿈을 실행에 옮기기로 작정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어느 날 세상이 온통 천식을 앓듯 쿨럭였다. 아랫목을 차지하고 누운 아버지의 새된 숨소리가 온 집안의 문을 걸어 잠갔다. 가방공장에서 본드 칠을 하다가 점심을 먹으러 온 엄마는 단단히 빗장 질러진 문을 간신히 비집고 바싹 마른 몸을 집안으로 밀어 넣었다. 놀랍게도 엄마 몸은 아주 작은 틈을 거뜬히 통과했다. 엄마는 찬밥에 뜨거운 물을 말아 아버지가 누워 있는 아랫목 저편 냉기가 술술 올라오는 한데에 앉아 퍼진 밥알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단단히 빗장 질러진 문이 덜컹덜컹 흔들렸다. 빈 그릇을 설거지통에 처넣고 부지런히 공장으로 향하는 엄마 뒤를 따라 한길로 나왔다. 쿨럭이던 세상이 뒤척이며 돌아누웠다. 노랗게 현기증이 일었다. 무작정 집을 나선 나는 큰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걷다보면 집과 멀어지리라. 칙칙하고 습한 것들과 이별하리라. 모여 사는 게 진저리 처지던 시절이 아스라이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리라. 따가운 햇볕에 등짝이 녹아내릴 지경에 이르러서야 내딛던 발걸음이 휘청 꺾였다. 그때 나는 무너지는 발목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던 시린 발목들. 아버지와 엄마와 동생들. 한기 어린 단칸방에 나란히 잠든 우리들 머리에 털모자를 씌워주던 아버지의 투박한 손이 내 발목을 잡았다. 돌아서서 집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둠은 열일곱 내게 무너지는 법과 동시에 일어서는 법을 일러주었다. 어둠도 햇빛처럼 그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속성이 있음을 그때 비로소 알아차렸다. 그 후 결혼한 몸으로 친정에 갈 일이 생기면 잔뜩 망설여지곤 했다. 물론 그때 그 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어린 날의 나를 집이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서 몽골이 송연해지곤 했다. 마음 같아서는 마루의 낡은 기둥이라도 부여잡고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사죄라도 하고 싶었다. 우리가 집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집이 우리를 기억하는 거라고. 그 기억 속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 지 궁금했다.

벽면이 창문으로 된 집에서 해수는 숨을 곳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적당한 그늘과 어둠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해수의 죽음에 대해 내가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투명하고 거침없이 세상을 품은 해수의 집이 기억하는 그 애는 아마도 그러했으리라. 그 유리의 기억 속에 해수는 그런 모습으로 남아 있을 지도 모른다.

 

이사 가는 걸 사위에게 알리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괜히 바쁜 사람 불러내지 말자던 남편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건 사위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지 말자는 말이었다. 죽은 해수와 앞날이 창창한 사위를 더는 부부로 엮지 말자는 뜻이었다. 사위와 인연을 끊자는 다짐이었다. 사위는 그렇다 쳐도 종우는, 내 피가 섞인 종우까지 내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따지고 싶을 정도로 억울하고 약이 올랐다. 헌데 누구에게? 남편에게? 사위에게? 따져야 할 상대가 누구인지. 부아가 치밀었다.

해수 방에 있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세간들은 버려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로 대충 점검해 분류해 놓았다. 얼핏 봐도 해수 방은 버려야 할 것들로 넘쳐났다. 그 사실이 부담으로 작용해서 일까 남편과 나는 약속이나 한 듯 그 작업에서 자연스럽게 해수 방을 제외시켰다. 어쩌면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먼지를 풀럭대며 들추다보면 기껏 참고 있던 감정이 증폭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비열한 좀스러움이 두 중늙은이를 한없이 소심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침부터 하릴없이 창밖을 내다보던 남편이 먼저 해수 방문을 열었다. 남편은 말없이 세간들을 살피더니 하나 둘 밖으로 끌어냈다. 낯익거나 그렇지 않은 세간들이 집어넣어진 반대 순서로 끌려나왔다. 안 쓰는 운동기구와 깨진 항아리가 먼저 나오고 마지막으로 선인장 화분이 나왔다. 선인장은 그 속에서도 꾸준한 발육상태를 보여 방에 들여 놓을 때보다 가시가 더 오롯해졌다. 남편은 화분이 넘치도록 꽉 찬 선인장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베란다로 들고 갔다.

“따뜻해지면 분갈이 해줘야겠어.”

베란다 햇빛 잘 드는 곳에 화분을 내려놓고 손을 탈탈 털었다. 쓸데없는 세간을 다 드러낸 해수 방은 예전처럼 아늑하지도 향기롭지도 않았다. 나는 침대에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앉아 한 손으로 시트를 쓸어내렸다. 눅눅한 한기가 손끝에 묻어났다. 방 천정 구석에서 거미 한 마리가 길게 선을 그리며 내려왔다. 거미는 침대 모서리를 타고 밑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거미가 지나간 길을 따라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거미가 사라지고도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나무가 베어진 지 삼 일만에 새 나무가 심어졌다. 처음 나무보다 키도 크고 풍채도 더 좋았다. 베어질 때 쉽게 넘어갔듯이 심는 것 또한 간단했다. 다 기계의 힘이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곤 나무를 웅덩이에 알맞게 조준해 기계를 작동시키는 게 다였다. 뿌리에 흙을 덮는 일도 작은 기계가 탈탈거리며 야무지게 해냈다. 나머지 마무리만 몇몇 인부들이 했다. 마른 흙을 다독여 덮어 두고 기계와 인부들은 떠났다. 내 상식으로는 물을 주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기다려도 물을 주기 위해 나타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주방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활짝 걷어 젖혔다.

새로 심은 나무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보였다.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해서일까 표피 색깔부터 주변의 나무들과 잘 섞이지 못했다. 같은 종의 나무들 틈에 있는데도 이물감이 느껴졌다. 나무를 심은 지 사흘이 지난 뒤에야 첫 물주기 작업이 행해졌다. 물주기 작업 역시 사람의 손을 거의 거치지 않았다. 모자를 삐딱하게 쓴 인부 하나가 탈탈거리며 다가온 작은 물차에서 긴 관이 연결된 호수를 빼 흙 속에 푹 박았다. 새로 덮은 흙이 차츰 젖어들더니 둥근 모양으로 물이 고였다. 고인 물은 자박자박 넘칠 듯이 찰랑댔다. 호수를 던져두고 인부는 화단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인부가 담배를 몇 개비 더 피울 때까지 물주기는 계속 되었다. 나는 물을 흠뻑 머금은 나무가 진심으로 잘 살아주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새가, 죽은 듯이 고스란히 비를 맞고 앉아 있던 새가 다시 날아와 주기를 진정으로 빌었다.

물주기 작업은 일주일 단위로 두어 번 더 행해졌다. 그 새 나무는 주변 나무들과 구색을 맞추고 있었다. 혼자서만 희끄무레하던 표피도 다른 나무들처럼 어둡게 탈색되어 의식하지 않고 본다면 새로 심은 나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다행이었다. 잘 자라고 있다는,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덕분에 우리 집 주방 창문도 간만에 풍성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새는 오지 않았다. 혹시 내가 모르는 새에 다녀가기라도 한 걸까. 아침부터 종일 창가에 붙어 서 있었지만 새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집은 오랫동안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보러 오는 사람들은 꾸준히 이어졌는데 다들 로얄층이 아니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어느 누구는 그에 비해 가격이 세다며 투덜거렸다. 그럴수록 이상한 오기심이 발동했다. 그 좋은 동네에서 쫓겨나온 것도 그랬고 별로 좋지 않은 층에 배정 받은 것도 내 의지와 무관한 일이었다. 그래서 속이 상하고 억울했다. 그런 이치로 따지자면 세상은 억울한 일 천지였다. 허나 조금만 마음을 바꿔 먹으면 어디를 가서 어디에서 사나 집은 내가 정성을 들인 만큼 혹은 그 이상의 무엇을 주는 법이었다. 꼭 해수 또래만한 젊은 부부가 계약을 했다. 가격은 조금 손해 봤지만 남편과 나는 별 흥정 없이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집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둘러보던 여자가 주방 창가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보, 이리 와 봐.”

안방을 둘러보던 남자가 잰걸음으로 주방으로 왔다.

“여기 앉아서 차 마시면 참 좋겠어. 저 나무 좀 봐. 일부러 저기다 심은 거 같지 않아?”

로얄층이 아니라고 투덜대는 사람은 있어도 창밖에 서 있는 나무를 보는 사람은 없었다. 여자의 둥글고 흰 이마에 석양빛이 비쳤다. 나는 여자에게 새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조영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단국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200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마네킹 24호>로 등단했고, 2006년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로 제11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 《헌팅》, 소설집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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