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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아
베니스의 진주목걸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진주목걸이를 한 여인을 보았다. 그녀는 대 제국을 품을 야망에 가득 찬 역사 속의 클레오파트라도 헐리우드 여배우도 아니었다. 그냥 어쩌다 이탈리아 북부의 수상 도시, 베니스의 한 귀퉁이에 잠시 둥지를 튼 여인이었다. 풍화된 암석같이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그녀는 모서리가 닳아 동그래진 식칼로 닭을 내리치고 있었다. 장작을 내리치는 속도로 닭 날개를 자르고 있었지만 그녀의 귀볼 뒤엔 땀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물을 끓이기 위해 주방에 들어갔다가 그녀를 발견하게 되었다. 난 스무 살의 끝자리에서 방랑을 하고 있었고 숙박 지를 떠날 때마다 맥도날드에서 얻은 종이컵에 차를 담아 기차에 오르곤 했다. 그렇게 베니스를 떠나기 30분 전이었다.
베니스에서 허락된 시간은 고작 3일 뿐이었는데 이틀 내내 비가 오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비가 내리는 베니스의 풍경을 본 적이 없었다. 비취색 물빛 위에 곤돌라 몇 척이 지나고 오색 바람개비가 도는 청량한 창가를 기대했지만 피렌체에서부터 시작한 우기는 그칠 기세가 아니었다. 상점이 즐비한 베니스의 거리엔 나무 갑판대가 한 가운데에 떡하니 놓여 있었다. 비가 오면 금세 육상까지 물이 차기 때문에 베니스시가 마련한 임시방책이었지만 아직 그 위를 걷는 관광객들은 없었다. 비오는 날의 외출은 싫지만 그래도 이곳을 또 언제 오랴. 하는 미래의 후회가 걱정되어 나는 바짓단을 세 번이나 접고 관광을 나갔다. 비에 젖은 베니스의 풍경 몇 컷을 찍다보니 무겁게 젖은 내 바짓단이 내려 앉아 거리를 청소하고 있었다. 꿈속에서라도 가보고 싶던 이 곳. 부족한 여행 자금 때문에 핸섬한 사공이 젓는 곤돌라에 올라 베니스의 풍광을 보는 낭만은 애초부터 포기했지만 “하나님, 이건 정말 너무한 거 아닌가요”. 라고 내 가슴은 투덜대고 있었다. 시큰둥해진 기분과 의무감에 사진 몇 장을 더 찍고 저녁식사 시간보다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나카시마 미카가 부르는 팝송 ‘THE ROSE’가 숙소에 나지막이 흐르고 있었다. 한인 100% 점유율을 자랑하는 한인민박집에서 웬 일본음악이 들릴까. 하는 의아함이 들 때쯤 컴퓨터 앞에 코를 바짝 대고 있는 일본인 투숙객을 발견했다. 그는 한인민박의 저렴함과 서비스를 입소문으로 듣고 일본에서부터 예약을 하고 왔다고 했다. 헌데 베니스에 도착하자마자 계속 비가 내려 이틀 째 숙소에서 있었다며 내게 베니스가 어떠냐 물었다. 난 비오는 베니스의 풍경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서 어쩌면 아무나 볼 수 없는 것 일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비오는 날의 외출은 싫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랬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심정을 안고 떠나온 여행이었기에 작은 풍경, 작은 사실, 작은 문제 하나 조차도 맘에 거슬리고 슬펐다.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감흥 없이 찍어댄 사진을 봤다. 어느 새 부턴가 달달 볶은 고기 냄새가 문틈으로 솔솔 새어 들어왔다. 내 맘과는 다른 냄새였다. 그러고 보니 이 집 이모 솜씨가 다른 숙소 이모들보다 훨씬 손맛이 좋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저녁 메뉴는 갈비에 잡채, 감자조림, 어묵조림, 무생채를 비롯해 나물 반찬 몇 가지에 배추된장국이었다. 넓고 길쭉한 식탁이 반찬으로 가득 찼다. 투숙객들이 빙 둘러앉아 한 입 두입 먹기 시작하고 다섯 번이나 불린 후에야 일본인 투숙객이 멋쩍게 자리에 앉았다. 모두들 갈비를 뜯고 한 움큼씩 반찬을 집고 식사를 할 때 일본인은 혼자서 밥그릇을 들고 자신과 가까운 곳에 놓인 나물만 몇 가닥 집어 먹고 있었다. 식사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맛있어서 사람들은 오로지 먹기만 했다. 주방엔 침묵이 흘렀다. 부족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며 이모는 식탁에서 조금 떨어져 서있었다. 식사 수발을 하는 이모를 보자 내가 마치 대기업의 회장이라도 된 듯 뿌듯했다. 이모는 고개를 내밀어 식탁을 보더니 새 접시에 갈비를 담아 일본인 앞에 놓아 주었다. 그는 “아리가또”라고 말했다. 이모는 수줍은 미소로 답례했다. 그제 서야 모두들 일본인의 존재를 알았다. 나는 그래도 그에게 먼저 몇 마디 건넨 것이 맘에 걸려 말을 걸었다. 그는 밥이 너무 맛있다며 한 그릇 더 먹고 싶단 말을 내게 부탁했다. “이모, 여기 이 친구, 밥 더 먹고 싶데요.” 라고 외쳐 주었다. 이모는 K2 버금가는 높이로 밥 한 그릇을 갖다 주었다. 그는 너무 많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도 반찬이 맛있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이모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고조, 한다고 했는데 입맛에 맞았을련지 몰갔습니다. 맛있었다니 다행입네다.” 이모의 북한말에 내가 흠칫 놀라자 민박집의 아르바이트생이 내게 살짝 이 분은 조선족 할머니라고 귀뜸 해주었다. 나는 처음 만나는 조선족의 신기함에 그녀를 위아래로 슬쩍 훑어보았다.
150센치를 겨우 넘길 키에 색 바랜 분홍 윗도리, 후줄근한 검은 바지에 짧은 머리, 이마며 목에 깊게 패인 주름들. 그녀는 노년에 갓 들어선 조선족 여인이었다. 우리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멀뚱이 섰던 그녀의 얼굴엔 영문을 알 수 없는 훈훈한 미소가 차있었다. 난 침실로 돌아와 잠들기 전 어둠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뭔지 모르게 그녀가 이해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녀의 목에 있었던 진주목걸이 때문이었다. “그 진주목걸이는 진짜일까?... 가짜겠지, 헌데 그녀는 가족도 없는 걸까? 그 나이 되도록 이런 일을 하고 또 어떻게 조선족이 유럽 최고의 낭만도시, 베니스에 있게 됐을까?” 하는 궁금증에 꼬리를 물다 잠이 들었다.
떠나는 날의 아침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야속한 하나님을 또 속으로 몇 번 외치다가 그래도 반나절이나 주어진 시간, 조금이라도 더 보고 가야겠구나 하고 현관에 나섰다. 역시 일본인은 또 인터넷을 하고 있었다. 그의 다음 여행지, 밀라노의 한인 숙소를 찾고 있었다. 난 시버스를 타고 산마르코 광장에 갔다. 이곳에 오면 꼭 세계 문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까페 ‘플로리안’에서 괴테나 릴케처럼 노상 커피를 즐기다 영감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비 때문에 노상탁자들은 모두 가게 옆구리에 접혀 있었다. 보석처럼 찬란하고 고매하게 햇빛에 반짝이는 베니스의 풍경을 보고 싶었지만 어느 것 하나 맞춰주는 것이 없었다. 난 뭘 하는 걸까. 진정한 여행을 하고는 있는 것일까. 신을 향한 원망의 화살이 어느 새 내게로 방향을 틀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 불렸던 이 광장은 비에 젖어 초췌한 노인 같았다. 나는 차라리 등지고 서서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부두를 보았다. 몇 개의 곤돌라가 정박해 있었다. 그건 마치 광대한 바다로 나아가고자 했으나 두려움에 매여 떠나지 못한 나의 이십대를 보는 것 같았다. 지난날은 훌훌 털어버리고 1500년의 역사만큼 위대한 예술로 장식된 도시, 베니스만을 감상하고 싶었지만 비에 섞인 바람이 내 뺨을 차갑게 치며 달아났다.
떠날 시간이 가까워졌다. 숙소로 돌아가 짐을 꾸리고 눅눅해진 맥도날드 종이컵을 꺼냈다. 뜨거운 물을 끓이기 위해 주방에 들어갔다. 조선족 이모가 주방 바닥에 앉아 식칼로 닭을 토막 내고 있었다. 그녀가 조선족임을 알게 되니 내 눈엔 그녀가 조선족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낡은 칼을 몇 번이나 내리쳐야 닭은 먹기 좋게 잘려졌다. 나이가 꽤 든 그녀가 청년이 하기에도 힘든 일을 하는 모습을 보자 어제 저녁에 맛있게 먹은 식사가 떠올랐다. 미안한 맘이 들었다. 나는 “어제 저녁에 밥 정말로 맛있었는데 이렇게 힘들게 준비하셔서 더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족 여인은 말없이 미소 지었다. 나는 덧붙였다. “너무 힘들겠어요. 칼이라도 새것으로 바꿔야겠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세상에 고되지 않은 일이 어디 있슴메까. 나중에 사장님이 새 걸로 사주시겠지요. 지금은 여기도 형편이 아려워서...” 라고 답했다. 난 이참에 궁금했던 그녀의 사연을 묻고 싶었지만 냄비에선 물이 끓고 내겐 시간이 없었다. 주저앉을 것 같은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다행히 컵이 기차 안까지 버텨 줄 것 같았다. 부산하게 티백을 우리고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끊겼다. 주방 바닥엔 냉동 닭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닭을 치는 그녀의 뒷목에 진주목걸이가 할로겐 조명에 빛나고 있었다.
하루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하면서 그녀는 왜 굳이 진주목걸이를 하고 있는 것 일까. 나는 그녀와 비슷한 느낌으로 진주목걸이를 한 또 다른 여인이 떠올랐다. 그녀는 바로 내 어린 시절의 외할머니였다. 일제시대에 태어난 할머니는 위안부 징용을 피하려고 산골에서 자라 배운 것이라곤 밥 짓는 일이 전부였다. 그리고 열여섯이 되자마자 시집을 갔다. 자식 셋을 남기고 먼저 세상을 뜬 외할아버지의 몫을 대신 하느라 할머닌 내가 초등학생일 때까지도 드문드문 행상을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에게 진주목걸이가 생겼는데 할머니는 이 후, 아무리 생활이 궁핍해도 그것만은 내다 팔지 않았다. 지금도 할머니는 여전히 진주목걸이를 하고 계신다. 그런 나의 외할머니가 떠오르자 나는 이 조선족 여인의 미스테리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그래도 목구멍까지 시큰할 이 여인의 인생사가 뜨거운 물에 담긴 티백처럼 내 가슴속에 번지기 시작했다.
조개는 입을 벌릴 때 바다 속 먼지를 마신다. 그리고 그것을 끌어 앉다가 결국 아름다운 광택의 구슬로 변모시킨다. 과거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진주를 너무나 좋아하여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착용할 수 없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에게나 허락되었고 여인네들은 근사한 모임에 나갈 때 진주로 자신의 삶을 우아하게 포장한다. 나는 그런 진주목걸이가 한 번도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갖고 싶은 맘도 없었다. 어린 시절엔 처지에 안 맞는 외할머니의 진주목걸이가 뜬금없고 궁상맞다는 생각을 했었다. 삶의 모든 원초적인 고생은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이미 다 치루고 그 시절 내겐 맘껏 누려야할 인생만이 펼쳐져 있었다. 성인이 되어 때때로 시련들과 마주했을 때 나는 그것을 들이키지 못했다. 어느 날 과연 진정 내 안에서 빛나는 진주를 발견할 수 있을까. 고단한 삶을 살아왔을 이 조선족 여인에게서 빛나는 진주들을 보자 외할머니 생각에 목이 메었다. 나는 비상식량으로 갖고 다니던 쵸코렛 빵을 몇 개를 건넸다. 그러자 그 여인은 떠나는 내게 점심을 먹고 가라며 몇 번이나 권유를 했다. 그녀의 점심이 무척이나 먹고 싶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진주목걸이가 참 잘 어울려요”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기차역을 향했다.
비가 그치고 하늘에는 은근 슬쩍 해가 떠있었다. 역을 연결하는 다리 한 가운데 비취색 물빛위로 곤돌라가 잔잔히 지나갔다. 갓 떠오른 태양아래 베니스의 오래된 주택들은 파스텔톤을 되찾고 상점에 걸린 유리가면들이 멀리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베니스에서 봤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진주목걸이를 한 조선족 여인이었다.
오민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 수필부문, 작사가, 방송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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