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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우리 시대의 시인. 김종철/대표시 고백성사 외 4편/신작시 THE END 외 4편/시론 못의 시학을 위하여/자술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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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시
고백성사 외 4편
못을 뽑습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내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 둔 못대가리 하나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나사못 경전
나사못은 나선형입니다
몸속을 파고들 때나 빠져나올 때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흔들어도 소리 나지 않는’ 용각산처럼
십자드라이버로 꼭 잠근
나사 머리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인간이 고안한 최고의 발명품으로
평가받은 것이 우연이 아닌 것처럼
십자 볼트와 십자드라이버가
무슬림에 퍼진 것도 우연이 아닌 것처럼
그가 목수였던 것이 우연이 아닌 것처럼
나선형으로 하늘 오른 바빌론이
노여움 받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처럼
당신의 정수리에 열십가 새겨진 것도!
그 나사못이 경전의 한 줄이 된 것도!
봄날
이 봄날
세상의 모든 꽃을
딸이라 불렀다
세상의 모든 여자를
어머니라 소리쳐 불렀다
내 옷과 내 가슴을 찢으며
그것들의 물방울 하나 마르지 않게
이 봄날
바다에 이르게 했다!
어린 왕자를 기다리며
하느님을 그려 줘,
주일학교 아이들이 보챘습니다
하느님을 본 적은 없지만
이러려니 하고그려 보이자
십자가가 너무 크다고 했습니다
다른 걸 그려 보여 주니
너무 늙고 힘없어 보인다고 했고
또다시 그린 그림은
이웃 아저씨 닮았다고 투정부렸습니다
나는 귀찮아 그냥 별 하나 그렸습니다
아이들은 눈부시다고 박수를 쳤습니다
어떤 아이는 망원경으로 자세히 살피고
어떤 아이는 자기 또래라고 좋아하고
어떤 아이는 쉿!
하느님을 깨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별은 누구나 쉽게 그릴 수 있어
여간 다행스럽지 않습니다
내가 그린 별 그림 속에서
정작 아무것도 만나지 못하고 나올 때
등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 왔습니다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응?
만나는 법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내일은 언제 오나요?
하룻밤만 자면 내일이지
다음 날 다시 물었습니다
오늘이 내일인가요?
아니란다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또 하룻밤 더 자야 한단다
고향에서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어머니 임종의 이마에
둘러앉은 어제의 것들이 물었습니다
얘야 내일까지 갈 수 있을까?
그럼요 하룻밤만 지나면 내일인 걸요
어제의 것들은 물도 들고 간신히 기운도 차렸습니다
다음 날 어머니의 베갯모에
수실로 뜨인 학 한 마리가 날아오르며 물었습니다
오늘이 내일이지?
아니에요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하룻밤이 지나야 해요
더 이상 고향에서 급한 전갈이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에는
어머니는 어제라는 집에
아내는 오늘이라는 집에
딸은 내일이라는 집에 살면서
나와 쉽게 만나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작시
THE END 외 4편
적당한 때 죽어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생의 연회가 끝나면
배부른 자는 모두 떠나고
그대는 죽음을 준비한다
빈 술병의 무덤에
검은 봄이 오는 것은
왜 월요일이어야 하며
오전 10시와 3시 사이
가을 겨울보다 봄과 초여름 사이
부활을 막기 위해 말뚝 박힌 자들은
왜 북남쪽에 머리를 두는가
사포는 사랑 때문에
히포는 순결을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회한에 못 이겨
클레오메네스는 명예를 위해
데모크리토스는 늙고 쇠약한 몸이 싫어
디오게네스는 삶을 멸시하며
모두 다 자기 살해를 택했다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그어진 국경
원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따라 강제로 이동당했다
그것을 ‘늙었다’는 말로 대신한다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은
백억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이가 똑같다
망치를 들면 모든 것이 못대가리로 보인다*
_위안부냐, 홀로코스트냐
1938년 4월 21일 한 일본 병사는
‘어리석은 어리석은 내 자신’ 일기장에서
<돌격 1호>**만 믿고
천황폐하의 위안소 쪽방
세상에 남은 단 한 여자를 안았다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나가는 싸구려 상품처럼
줄 서서 순번 기다렸던 수치감
반바지 허리끈도 채 매지 않은
금단의 열매까지 보았다
그날 밤은 그들 것만 아니었다
그렇게 자주 긴 줄을 세운 것은,
기도마저 포기한 홀로코스트
알몸의 천사들도
차례차례 수용소 가스실로 끌려갔다
터널로 들어선 검은 기차
가쁜 숨 쉬며 사정하고
너그럽게 용서했던 것은
승전보 올린 늙은 일장기 만이었을까
용서는 하지만 결코 잊지 않는
세상의 홀로코스트 어머니에게
‘어리석은 어리석은’ 병사는 죽어서 말했다
인신매매 위안소를 아무리 허물고 덮어도
돌격 1호만으로는 세상의 양심까지 덧씌울 수 없음을!
*영국 속담
** 콘돔 은어
이렇게 썼다
내 죽음의 책 서두를 읽었다
관 속에 누워
지금은 동해시지만
언제나 묵호라 부르던 역에 멈춰 섰다
내가 묵호였고
존재하지 않는 묵호 때문에
나 이외의 것은 동해시가 분명해졌다
확실할수록 더 부정확해진 묵호를 본다
가난한 포구어깨에 기댄 어선 몇 척
내 속의 바다에 빠져 있는
교과서 삶 속에 갇힌 뇌
육신도 없는 선지자
모두가 나의 노숙자들이다
아무도 듣는 사람 없으면
떨어질 때 소리를 내지 않는
속담 속의 나무가
바로 그들이다
평생 너로 살다가
평생 시를 썼지만
돈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없었지만
후배시인은 집도 사고 생활도 꾸렸다
사양하지 못해 받은 원고료까지 셈하니
3개월치 월급 밖에 되지 못한
한 생애, 시를 살다간다
투정도 하지 않고
한 줄에만 골몰하며
세상일 숙제하듯 내다보면서
평생 일천만 원 벌기 위해
수억 원 재능을 버린 나는
가족에게 시로 밥 한 끼 먹인 적 없다
시는
애써 외면할 수 있는 가난이었기에
이는 곧, 나다 외치고 싶지만
잘 가거라
끝내 팔리지도 읽히지도 않은
나에게 빚만 남겨두고
떠나는 시여.
숨바꼭질
유년의 천장은
비만 오면 중얼거렸다
눈 뜬 아침부터 늦은 밤 사이
산비알 판잣집에서
알전구같은 쥐새끼들이 우루루 몰려다닐 때
6․25 피난살이 또래의 참을성 없는 우리도
쿵쿵거리며 아랫목을 들쑤셔놓을 때
맨발의 지붕은
쥐새끼들과 같은 꿈을 꾸며
이를 갈고 잠꼬대 했다
우리가 저들을 사하듯
참지 못한 지상의 아버지는
천장의 종이 귀퉁이를 찢고
어린 고양이 한 마리를 훌쩍 던져놓았다
비만 오면 중얼거리는
비 맞은 중처럼
시론
못의 시학을 위하여
‘모든 의지와 욕망의 밑바탕에는 사랑이 있다’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했다. 자신이 하느님의 견실한 종복임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그가 예수님의 제 1개명인 사랑을 이야기하며 ‘욕망’과 ‘인간의 의지’를 언급했던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고, 삶을 가치 있게 만들고, 오늘 하루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것……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위해 했던 모든 것들이 결국 가톨릭에서 이야기하는 ‘신의 의지’, 즉 ‘미덕’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했던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 한마디를 알게 된 것은 대학생 때 즈음의 일이었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나는 신앙 안에서 엄격한 하느님을 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인자로운 얼굴을 보아왔다.
하느님을 그려줘, /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이 보챘습니다 / 하느님을 본 적은 없지만 / 이러려니 하고 그려 보이니 / 십자가가 너무 크다고 했습니다 / 다른 걸 그려 보여주니 / 이번에는 너무 늙고 힘없어 보인다고 했고 / (중략) / 나는 귀찮아 그냥 별 하나를 그렸습니다 / 아이들은 눈부시다고 박수를 쳤습니다 / (중략) / 별은 누구나 쉽게 그릴 수 있어 / 여간 다행스럽지 않습니다
<어린왕자를 기다리며> 중에서
어린 시절 성당에서 교리공부를 배울 때, 수녀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손에 남은 못자국으로 죄와 벌의 의미를 설명했다. 못은 우리의 죄에 대한 벌이며, 못자국은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 짊어진 속죄의 고통을 의미한다고 말이다. 내가 예수님이 덜 아팠으면 좋겠다고 수녀님께 이야기하자, 수녀님은 내게 ‘아오스딩’이라는 세례명을 지어주셨다. 그리고 시로 기도를 대신한 아오스딩 성인처럼 훌륭한 시인이 되라고 하셨다. 그해 여름부터 나는 시로 일기를 쓰게 되었고, 그 문학적인 고백이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고해성사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나이 마흔 살에 못의 의미는 한 번 더 강하게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어느 날 아침 손을 펴보니 못 몇 개가 쥐어져 있었다. 누군가를 아프게 했던 말들과 내 스스로를 욕되게 했던 행동들…… 그 모든 것들이 내 손에 쥐어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또다시 못에 대한 일기를 쓰기로 했고, 그것이 내 못 연작시의 시작이었다. 종이 위에 남은 그 못자국들을 통해 나는 죄와 상처가 삶의 흔적, 그리고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될 것이었다.
첫 연작시집 『못에 관한 명상』은 나처럼 손에 못을 쥐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이 박은 못들은 고층 건물에도, 판자촌에도, 시골 읍사무소에도, 명동 번화가에도 박혀 있었다. 못 박고 빼는 일은 그저 그들의 삶이요 내 삶이었다. 나는 죄와 벌, 구속과 해방 등 인간이 직면하는 불가항력적인 고난과 극복하는 과정을 나름대로 표현하고자 했다.
두 번째 연작시집 『등신불 시편』에서는 못 박히고 못 박음을 통해 하나가 되는 못-구멍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본질 또는 삶의 근원을 탐구하고자 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에게 수없이 많은 상처를 주고 또 상대에게서 상처받기도 하지만, 결국 구멍을 통과한 못은 못과 하나가 된다. 사랑이라는 거룩한 의식이 상처에 대한 감수성임을 못을 통해 이야기하며 인간의 한계와 구원의 본질에 대해서 접근하고자 했다.
세 번째 연작시집 『못의 귀향』에서 못은 ‘희생’과 ‘회귀’의 매개물이었다. 예수에게 있어 못은 부활을 의미하지만,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은 나를 위해 못 박힌 이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기억하고 못 박혔던 삶을 반성하며, 못 박고 못 뽑는 일의 출발점인 유년의 고향을 떠올렸다. 그것은 지금과 현재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그것을 통해 참나로서 살아가는 길, 반환점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얻었다.
『못의 사회학』에서 못은 이 사회를 이루는 개개인이었고, 그것은 허허벌판에 홀로 튀어나온 못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 박혀 서로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유기적인 개체였다. 인간 존재는 단독자이면서 동시에 통시적, 공시적인 상관관계와 상징체계를 형성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나는 못을 통해 이야기했다. 노숙자 문제, 베트남전을 통해 희생되고 불이익을 당한 이들, 대기업의 횡포 등에 대해 언급한 것은 모두 그러한 맥락에서였다.
믿음, 진리, 사랑은 내게 있어서 별개의 단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하나의 문자적 양식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껏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것, 불안해하거나 편안해하는 것, 잠들어 있거나 깨어 있는 것…… 모든 행동과 사고들은 그 자체로 삶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와 관계된 그 어떤 것으로도 나를 증명할 수 있겠지만, 내 손에는 못이 쥐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여태껏 종이 위에 수많은 못을 박아 왔던 것이다. 내게 앞으로 몇 페이지가 더 남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맨 뒷장을 펼쳐볼 마음은 없다.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하듯 꾸준히 못을 박고 빼며 ‘못의 시인’으로 남고자 한다. 훗날 누군가가 내가 박은 못들, 혹은 못을 빼내고 남은 못자국을 더듬으며 자신의 삶을 한 번 더 떠올리게 된다면, 나는 이 세상에 박힌 못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 김종철 자술연보
1947년 2월 18일(음력) 부산시 서구 초장동 3가 75번지에서, 김해 김씨 김재덕(金載德)님과 경주 최씨 최이쁜(崔入粉)님 사이 3남 1녀중 막내로 출생. 김종해(金鍾海)시인은 둘째아들.
1960년 대신 중학교 입학. 중학교 2학년때 부산 중앙성당에서 가톨릭 영세 받음.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그해 여름부터 시로 일기 쓰기 시작. 가을 교내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고, 학교대표로 부산시와 경상남도 전역 백일장 대회에 입상해 유명해짐. 중학교 3학년 초여름 집에서 원인모를 큰 화제가 남. 어린 시절 사진이나 물품들은 그때 모두 소실됨.
1963년 문예장학생으로 부산 배정고등학교 입학. 나와 이복구(소설가)는 부산과 영남지역 문예콩쿨을 휩쓸며 밥값을 했음.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재봉> 당선. 박봉우, 황명, 강인섭, 이근배, 신세훈, 김원호, 이탄, 이가림, 권오운, 윤상규 등으로 구성된《신춘시》동인에 박정만 시인과 함께 참여. 김재홍과도 교우 시작. 3월, 미당 서정주 선생이 김동리 선생께 문예장학 특대생으로 나를 적극 추천해 서라벌 예대에 입학. 이시영, 송기원, 감태준, 박양호, 김상렬, 오정희, 윤정모, 김민숙 신현정, 오정환, 조갑상 등과 이동하, 김형영 선배 등과 교우. 그후 서라벌 예대는 중앙대 예술대학 전신으로 바뀌었고, 군입대 등 여러 사정으로 뒤늦게 나는 중앙대 예술대를 졸업, 대학원을 수료했음.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바다 변주곡> 당선. ‘박낙천’ 필명으로 응모, 심사위원 박목월, 박남수 두 분에게서 당선 자진 취소 종용 받음. 목월 선생은 새로운 신인을 막았다고 불같이 화냄. 3월, 영장이 나와 논산 훈련소로 군 입대 소집됨.
1971년 자원해서 베트남전 참전. 백마부대 일원으로 캄란베이와 나트랑 근무. 위생병과로 치료와 약제계 맡음. 후반에는 사령부 지시로 백마사단장(김영선 장군) 전속 수행원으로 발탁. 특수임무 수행함.
1973년 지금의 아모레 퍼시픽 전신인 (주)태평양화학 홍보실과 무역부에서 10여년 간 근무함.
1975년 1월 진주 강씨 강봉자(姜奉子)와 결혼. 첫 시집 《서울의 유서》(한림출판사)를 상재. 첫딸 은경(恩京)이 태어남. 이탄, 박제천, 강우식, 이영걸, 김원호 등과 《손과 손가락》동인 결성. 미당 선생도 참여해 두 차례 동인 작품 발표했음.
1977년 둘째 딸 시내 태어남
1984년 두 번째 시집 《오이도》(문학세계) 상재. <손과 손가락> 동인명을 <시정신(詩精神)>으로 변경함. 정진규, 이건청, 민용태, 홍신선, 김여정, 윤석산 새로 참여함.
1989년 7월, 김주영, 김원일, 이근배 선배 등과 함께 국내 문인 최초로 백두산 기행. (나는 KBS와 여성지에 3개월 기행문을 연재) 12월 어머니가 별세함.
1990년 세 번째 시집 《오늘이 그날이다》(청·하)상재.
제6회 윤동주 문학상 본상 수상
1991년 11월 도서출판 문학수첩 등록.
1992년 네 번째 시집 《못에 관한 명상》(시와 시학)상재.
제4회 남명 문학상 본상 수상
1993년 제 3회 편운문학상 수상, 도서출판 <북@북스>설립
1997년에서 1998년 평택대학교 출강
1999년 이탈리아 시에나 대학문고 시리즈
영문시집 <The Floating Island>(Edition Peperkorn) 출간.
2000년 제3회 자랑스런 문창인상(중앙대 예술대학) 수상.
2001년 다섯 번째 시집《등신불 시편》(문학수첩)상재.
제 13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
2002년∼2004년 중앙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역임
2003년 봄, 종합 문예지 계간 <문학수첩> 창간호 발간. 김재홍, 김종회, 장경렬, 최혜실 교수가 초대 편집위원, 권성우, 유성호, 방민호, 박혜영 교수가 2대, 유성호, 정혜경, 김신정, 서영인 교수가 3대, 고봉준, 허병식, 이경재, 조연정 교수가 4대 편집위원을 맡음. 통권 28호 겨울호로 임시휴간함.
2004년∼2006년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겸임교수 역임
2005년 《어머니, 우리 어머니》(문학수첩)를 김종해·김종철 형제시집으로 상재.
7월에 평양 남북작가회의 부의장 자격으로 참석. 백두산 묘향산 외 평양 주요지역 방문
2009년 여섯 번째 시집 《못의 귀향》(시와 시학) 상재.
제12회 한국 가톨릭 문학상 수상
활판인쇄 특장본 시선집 《못과 삶과 꿈》(시월) 상재.
2011년 봄, 창간호 계간 시전문지 <시인수첩> 발간. <문학수첩> 통권 29호 잇기로 함. 장경렬 구모룡 허혜정이 초대 편집위원. 김병호가 편집장. 2대 편집위원은 구모룡, 최현식, 문혜원, 김병호가 맡음.
2011년 한국 가톨릭 문인회 회장 추대됨. 가톨릭문인 최초로 <제1회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다. 정호승, 이해인, 전옥주 등 다수의 문인들과 조광호신부, 김산춘 서강대 교수 신부 등이 참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선임.
2012년 한국작가회의 자문 위원,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 선임.
2013년 일곱 번째 시집《못의 사회학》(문학수첩) 상재.
무크지 <한국가톨릭문학>을 50년 만에 처음으로 발간함.
7월, 한국 대표 명시선 100 <못 박는 사람>(시인생각) 상재.
제13회 <박두진문학상> 수상.
2014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추대됨. 한국저작권협회 이사 선임.
제12회 <영랑시문학상> 수상. (세월호 참사로 인해 시상식 연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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