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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조명/남태식/놀며 피는 꽃 외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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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2,582회 작성일 15-07-0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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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식

놀며 피는 꽃

 

 

복지사회란 경제적인 조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의 탐구가 상식이 되는 사회이어야만 하는데, 이러한 영혼의 탐구는 경제적 조건이 해결된 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마치 소학생들이 숙제시간표 만드는 식으로 시간적 절차를 둘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영혼의 개발은 호흡이나 마찬가지다. 호흡이 계속되는 한 영혼의 개발은 계속되어야 하고, 호흡이 빨라지거나 거세지거나 하게 되면 영혼의 개발도 그만큼 더 빨라지고 거세져야만 할 일이지 중단되어서는 안 될 것이고 중단될 수도 없는 일이다.김수영, 1960.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종일을 피어 있는 꽃이 있다.

한낮에나 어슬렁거리고 나와 한나절만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종일을 싸돌아다니다가 해질 무렵 잠깐 피는 꽃도 있으며,

낮에는 어딘가에 박혀 있다가 달뜨는 밤에만 나와 피는 꽃도 있다.

 

여러 철을 이어서 피는 꽃도 있지만, 봄에만 피는 꽃도 있고,

여름에만 피는 꽃도 있으며, 가을에만 피는 꽃도 있다.

겨울에만 피는 꽃도 있고, 언제 피었지? 모르는 새 지나간 꽃도 있으며,

피울까 말까 고민하다가 끝내 안 피는 꽃도 있다.

 

어떤 꽃이 보기에

한낮에 피는 꽃은 한나절을, 해질 무렵 피는 꽃은 종일을 논 꽃,

밤에만 피는 꽃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꽃일 수 있다.

한 계절만 피는 꽃은 집 말아먹을 꽃,

모르는 새 피었다가 진 꽃은 멍청한 꽃,

끝내 피지 못한 꽃은 말을 말아야 할 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늘은 언제나 어김없이 모든 꽃들에게

고루고루 물과 바람과 흙과 햇빛을 내리시고,

꽃들은 또 고루고루 내리시는 하늘을 탈 잡지 않으며,

제 필 때를 알아 피고 함께 피어 있으니,

 

누가 보시더라도 이건 공정하고 조화롭다.

상식의 집에서의 일이다.

상식의 집에서는 이건 그냥 상식이다.

영혼의 탐구가 상식이듯,

호흡이 또 상식이듯.

 

 

 

 

무덤꽃

 

 

금강봄맞이꽃 윤판나물 대극 갯장구채는 봄에 피는 봄꽃이고, 해오라비난초 돌꽃 약모밀 우산나물 절굿대는 여름에 피는 여름꽃이며, 울릉국화 꼭두서니 돌피 낙동구절초 수원잔대는 가을에 피는 가을꽃이고, 수선화 털머위 사프란 해국은 겨울에도 피는 겨울꽃이다.

 

모두 야생의 꽃으로 산과 들과 강변과 길가에서 철을 알고 철따라 핀다. 한꺼번에 다투어 피기도 하고 다투어 이어서 피기도 하지만, 다툼은 다툼이 아니어서 사시사철 갖가지 색 색깔로 조화롭게 꾸밀 뿐, 산야의 작은 한 귀퉁이도 무너뜨리거나 사라지게는 안 한다.

 

무덤 안에서 피는 꽃이 있다. 이 꽃은 그러니까 무덤꽃이다. 무덤 안은 철이 따로 없으니 이 꽃은 철없는 꽃이다. 그러니까 망나니꽃이다. 아무 때나 다투어서 피고 다투어 이어서 피는데, 다툼은 다툼이어서 말을 휘두를 때마다 산야의 한 귀퉁이가 무너지거나 사라진다.

 

개는 개끼리 한통속으로 골목에서, 새는 새끼리 한통속으로 하늘에서 놀듯이, 무덤꽃은 무덤꽃끼리 한통속으로 무덤 안에서 논다. 야생의 꽃들은 야생의 꽃들끼리 다투어도 야생에서 한통속으로 놀아야 하는 법, 무덤 안을 기웃거리는 야생은 곧 시들어 향기를 잃는다.

 

무덤꽃들은 자주 말을 휘둘러 야생의 꽃들을 찍어 내모는데, 언젠가는 무덤꽃들이 어느 야생의 한 꽃무리를 찍어 내몰 때 다른 야생의 몇 꽃무리도 무덤 안으로 가 들러리를 서더니, 철없는 말바람에 철 이른 눈바람이 몰아쳐 한통속의 야생의 꽃들이 무수히 스러졌다.

 

낯익으나 낯 선 풍경 앞에서 나머지 야생의 꽃들은 말을 잃었는데, 무덤꽃들이 뒷춤에 감춘 이어서 누구를 향할지 알 수 없는 저 손가락들을 못 본 체 하고 미리 떨며 선 들러리에 또 오래 줄줄이 수치를 당할 거다. 그러니까 무덤 안에서 노는 꽃은 다 무덤꽃이다.

 

 

 

 

꽃에게 평화를

 

 

(무덤가에 꽃들이 피어있다.

무덤 위에 꽃들이 피어 있다.)

 

무덤가에 핀 주황꽃은 주황꽃이냐 빨강꽃이냐

꽃대를 감아 오르며 뜬금없이 슬쩍 말을 흘리는

담쟁이 하나

 

무덤 위에 핀 노랑꽃은 노랑꽃이냐 빨강꽃이냐

꽃들의 목을 휘감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는

담쟁이 여럿

 

빨초록꽃 빨파랑꽃 빨남색꽃 빨보라꽃

온갖 꽃들에게 빨강물을 칠하는 담쟁이는

육갑이 넘은 메카시

 

꽃들은 왜 하필

무덤가에 피었느냐 무덤위에 피었느냐

주노초파남보

위장이다! 벗겨라!

다 빨강이다!

잠시 사라졌다가 이름만 바꿔 나타나 여전 꽃들을 옥죄는

육갑에 반육갑을 더해 가는 카멜레온

 

꽃들의 형화를 위하여 이제

뿌리를 뽑자!

바짝 말려서,

 

싹 다시 못 틔우도록

불태우자!

온 육갑하는

저 메카시, 카멜레온!

 

 

 

 

다시, 촛불

 

 

무덤가에 안개가 짙다.

안개무덤이다.

안개에는 온갖 먼지들이 겹겹 껴있다.

과거의 논리로 따지자면 이 먼지는

한편 굳건하기도 하여서

쉬이 벗길 수 없을 만큼 단단하다.

 

무덤가에는 잠든 여러 무리의 아이들이 있다.

모두 오래된 아이들이다.

한때는 하루 이틀 사흘 함께 잠을 설치던

나흘 닷새 엿새 함께 속을 쓰리던 아이들이다.

이때껏 보려고 하면 보기는 했으나

이제는 안개 너무 두꺼워 보려 해도 볼 수가 없다고

무덤가에서 지레 봉사 벙어리 귀머거리가 되어

포기하고 한탄만 하다가 잠든 아이들이다.

 

잠의 강에 빠져 비몽사몽 하는 아이들을 향해

한때 함께 설치던 잠은 무엇이었나

한때 함께 쓰리던 속은 또 무엇이었나

대답 없는 물음을 묻고 또 묻는 사이

안개무덤을 감싸는 벽은 차곡차곡 견고하게 쌓이니

오래된 아이들을 향한 물음은 그만 멈추고

오래된 아이들을 향한 바라기도 그만 멈추고

이제 다시 촛불을 든다.

 

일어나자!

솟구치자!

벗기자!

무너뜨리자!

우우우 함께 외치니

앞에 보이는 건

 

갈라져 솟구치는 잠의 강

부서져 흩어지는 무덤의 먼지

벗겨져 물러서는 무덤의 안개

무너뜨리지 않으면 감옥이라고 불릴

, 막아서는, 무너지는, !

 

 

 

 

집중

 

 

안개가 짙다. 안개가 짙으면 안개에만 집중해야 한다.

안개의 몸피를 더듬어 가늠하고 손가락 발가락의 수를 세어보아야 한다. 안개의 표정은 맑은가 어두운가, 입술은 여태껏 앙다문 채인가 배시시 열리는 중인가, 안개의 속살은 두꺼운가 부드러운가 또 얼마나 깊은가 음습한가 헤아려보아야 한다. 안개의 속살 사이에 들어앉은 나무와 풀과 집과 그 안의 숨결들, 웃음들, 빈 들판의 눈물들, 쉼 없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한숨들을 코로 귀로 숨으로 느껴야 한다. 감전된 듯 감전된 듯 온몸을 떨어야 한다. 언젠가는 걷힐 안개에 뒤따르는 햇살, 뒤따라 날아오르는 새 떼들의 날갯짓 따위는 잠시, 어쩌면 오래도록 잊어야 한다.

 

바야흐로 때는 안개가 짙을 때, 어김없이 안개가 짙고, 지금 우리는 오직 이 안개에 집중해야만 한다.

 

 

 

 

협동이라는 말

-어떤 셈법 2

 

 

협동이라는 말,

참 좋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여 온전한 둘이기만 하다면,

둘에 둘을 더하여 온전한 넷이기만 하다면,

 

모두 하나로 시작하는 동네에서 하나가 아닌

셋쯤에서 시작할 꿈같은 것 꾸지 않는다면,

 

셋에 셋을 더하여 여섯에 셋쯤을 더 남기려면

그 남기는 셋은 뻣뻣한 어깨임을 알고,

 

넷에 넷을 더하여 여덟에 넷쯤을 더 남기려면

그 남기는 넷은 거친 주먹임을 알아,

 

더하여 셋을 더하여 넷을

더 남길 궁리 같은 것 짓지 않는다면,

 

땀 흘리던 노동의 시절을 기억하고 노동으로

땀 흘린 만큼만 거둔다면 거두어 함께 산다면,

 

협동이라는 말, 조합해도 좋을 거다.

참 좋을 거다, 협동에 협동을 조합한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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